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58화 (142/1,205)

158====================

복수

"…라는 일이 어제 있어서 말이야."

으드득.

"사, 사라야?"

"…왜요?"

아니, 무섭다고.

구원은 지금 사라에게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낸 작전대로 하기로 하면서 거의 모든 일을 내가 주도하게 됐지만, 이 복수는 사라의 복수다. 당연히 사라는 복수의 과정을 전부 상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디아나가 깨어난 후에, 먼저 방을 나와서 이렇게 다른 여자와 잔 것을 사라에게 보고하고 있는 거지만…사라의 표정이 엄청나게 무서웠다.

저 눈은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눈이야.

으드득.

그리고 그 고운 입술을 비집고 뭔가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온다.

"사라야? 이거 다 계획의 일부라는 거 알지? 네가 하라고 했잖아."

구원의 말에 사라의 얼굴이 표독한 표정에서 한 순간에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차. 이 말은 너무 비겁했나. 사라도 이런 방법을 원해서 이 방법을 택한 건 아니었을 텐데.

"알아요. 알지만…."

"미안."

구원은 사라를 껴안고 그 머리를 다독여줬다.

"그래도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어제 케이트랑 하면서 진짜 놀라울 정도로 아무 감정도 안 생기더라. 케이트랑은 그냥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뿐이야. 나한텐 너희뿐이야."

"…이럴 때는 너희가 아니라 너뿐이야 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아니. 그건…."

예상외의 말에 구원은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이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하다니.

그래도 전에는 왠지 모르게 사라가 스스로의 마음을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적극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 좋아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 구원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 얼굴은 언제나의 쿨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쨌든 알려줘서 고마워요. 또 뭔가 진행이 되면 알려주세요."

"고맙긴. 당연한 일이지. 맡겨둬."

사라와 식당에 내려가 있자, 곧 디아나와 레이아도 내려왔다.

디아나는 식당에 내려오자마자 살짝 움찔움찔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케이트가 없는 걸 확인하자 안심했는지, 잽싸게 이쪽으로 달려와 구원을 노려봤다.

아니,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원은 디아나에게 엄청나게 갈굼을 먹었다.

확실히 디아나의 성벽을 알고 있으면서 연결된 채로 문을 열어버린 건 내 잘못이기 때문에, 구원은 순순히 디아나의 비난을 받아들였다. 다만….

"심지어 그 상태로 허리까지 흔들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이 몸이 참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실까지 왜곡시키면서 비난을 받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아니. 허리는 네가 흔들었잖아. 이 노출증아. 누가 보니까 정신줄 놓고 허리를 비벼댄 주제에. 그리고 참기는 무슨. 완전히 소리란 소리는 다…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구원이 팩트로 공격하자, 디아나의 큼지막한 눈동자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원은 다시 순순히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불리하면 저러는 거 너무 치사하지 않냐? 어떻게 이기라고.

"그렇네! 전부 자네 잘못일세!"

디아나는 그렇게 한참 구원을 매도했다.

하지만 지금 저 표정을 보면, 아직도 화가 다 가신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게 어제처럼 얼굴도 안 마주치려고 했던 것 보다는 낫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제 한 대화가 효과는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구원은 흡족했다.

"걱정 마. 케이트도 얼굴을 못 봤으니 누군지 모를 거야. 그런 높은 신음소리로 누군지 알겠어?"

"그, 그렇게 높은 신음 소리는 안냈네! 그리고, 이 몸인지 모른다고 해도 여기 셋 중 한 명이라고는 생각할 것 아닌가!"

"그럼 어때. 오히려 우리 사이가 돈독하다는 걸 자랑…."

"자랑할 방법이 없어서 그런 방법으로 자랑하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구원씨? 무슨 말씀이세요? 신음 소리? 자랑?"

가만히 듣고 있던 레이아가 결국 궁금증을 못 참겠는지 질문해왔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어젯밤에 살짝…."

구원의 대답에, 레이아는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귀엽다.

"흐응. 오늘도 따돌리시는 건가요. 어젠 사라씨랑. 오늘은 디아나씨랑 그렇게…."

아니, 오히려 플레이의 과격함을 따지면 레이아랑 할 때가 최고니까.

너도 요즘은 의식이 있으니까 알잖아? 구미호 상태가 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그럼 내일은 레이아랑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늘 밤 과격하게 하면 돼지! 그럼 아무 문제…."

"문제투성이네!" "바보 아니에요?!"

동시에 태클이 들어왔다.

하지만 레이아는 구원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살짝 입을 뻐끔거리며 미소 지었다.

그 입모양을 읽어보니 이랬다.

"약속이에요?"

물론입니다. 레이아 누님! 사랑합니다!

"…잠깐 시간 있나요?"

그렇게 노닥거리고 있자니,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케이트가 복잡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디아나는 케이트를 보자마자 움찔하면서 구원의 품안에 파고들어 얼굴을 감췄다.

아니, 그러면 어제 그게 너라고 괜히 더 티내는 것 같잖아.

구원은 품안에 파고든 디아나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니. 난 우리 애들이랑 식사중이라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다른 여자가 끼어들 틈은…."

"헛물도 적당히 켜시죠?! 저도 포츠랑 먹을 거거든요! 그냥 잠깐 둘이서 할 말이 있는 것뿐이에요!"

케이트는 욱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보아하니 발정상태가 풀려서 꽤나 살만한 모양이군.

하지만 그런 거라면 잘 됐다.

사실 할 말이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둘이서?"

"그, 그래요. 문제 있어요?"

"뭐, 좋아.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케이트는 구원을 데리고 여관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래서, 할 말이란 게 뭔데?"

"…착각하지 마세요."

"응?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제 전 술에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착각하지 말라고요. 전 당신한테 아무런 감정 없으니까요. 그리고 어제했던 말들도 전부 술김에 나온 헛소리에요. 전부 잊으세요. 당신과 전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

과연. 어제 있었던 일을 전부 술기운 탓으로 돌릴 셈인가.

어제의 행위와는 별개로, 일단 포츠를 향한 마음이 진심이기는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언제까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나는 계획이 다음 단계로 진행될 때라는 걸 깨달았다.

"그쪽이야말로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뭐에요?"

"대체 내가 왜 그런 착각을 해야 하지? 혹시 내가 그쪽에 마음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구원이 차갑게 내뱉자, 케이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지만 어제 당신이 먼저…."

"말했잖아. 난 직업 특성상 욕구불만인 사람들이 싫어도 눈에 보인다고. 난 그저 눈앞에 그런 사람이 있으니 도와준 것뿐이야. 생각해봐. 네 눈앞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있는데, 팔만 뻗으면 쉽게 구할 수 있어. 그럼 너도 구하겠지? 그거랑 마찬가지야. 미안하지만 너한테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구원의 말에 케이트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구원은 대답은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너한테 관심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겠지.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없겠어. 우리의 복수 대상은 어디까지나 포츠. 케이트는 거기에 말려든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에도 더 유리했다.

"그, 그거 잘 됐네요. 그럼 우린 어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 제 말 알겠죠?"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너도 나도 각자 서로 파트너가 있잖아. 어제 일은 잊고, 서로 파트너에게나 잘 해주자고. 뭐, 네 쪽 파트너가 잘 해줄 가치가 있는 놈인지는 의문이지만."

"뭐에요?! 그게 무슨 소리죠?!"

"강간마에 살인범. 그런 놈이 정말로 잘해줄 가치가 있는 놈인지 의문이라는 말이야."

"……잠깐만요. 그게 무슨 소리죠?"

내 중얼거림에, 케이트는 아까완 달리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질문했다.

이 반응을 보니 역시나 로군. 얘는 포츠가 과거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는 거야.

뭐, 포츠놈이 그걸 직접 말해줬을 리도 없고, 그러지 않는 이상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만.

문제는 얘가 그걸 알고도 포츠를 계속 사랑한다고 지껄였을 때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변수 때문에 나도 많이 고민을 했다.

이대로 케이트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계획을 진행하는 편이 더 확실한 거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내 성자의 능력만 있다면 충분히 케이트를 함락시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케이트 역시 또 하나의 피해자나 마찬가지라는 점이 그런 생각에 발목을 잡았다.

물론 내가 쓰레기이기는 하지만, 역시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될 수 없어.

이미 한 번 케이트에게 함정을 걸어 관계를 맺어놓고 무슨 헛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 이상 쓰레기가 될 각오는 없었다.

케이트가 만약 모든 사실을 알고도 포츠를 감싼다면 그땐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우선은 사실을 밝히고 결정권을 주자. 그렇게 결심한 거다.

"역시 모르면서 사귀고 있었군. 의뢰를 받고는 힘없는 화전민 마을에 가서는 아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겁탈. 그리고 그를 저지하려는 마을 사람들을 무참하게 살해. 그리고 자신을 모르는 이 던전 도시로 도주. 전부 포츠가 한 짓이야. 포츠 녀석이 이 도시로 온 거,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

나는 포츠의 행적을 살짝 과장해서 말해줬다.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사라의 마을에서도 그런 거다. 딴 데서 또 그러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고, 만약 그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안한 마음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케이트의 눈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좋아. 이 반응을 봐서는, 포츠를 감싸줄 것 같진 않군.

"미,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은…당신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는 거죠?!"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케이트는 일단 내 말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뭐, 그야 그렇겠지.

하루 관계를 가진 것에 불과한 타인과, 자신의 남자친구. 어느 쪽을 믿을지는 뻔한 건가.

"그 녀석한테 강간당하고 가족을 잃은 사람을 알고 있거든. 실은 난 그녀의 부탁으로 녀석을 처리하러 온 거야."

"뭐, 뭐에요?! 그, 그럼 당신 설마 어젯밤…!"

"아니. 그건 아니야. 아까 말했다시피, 너와 관계를 맺은 건 정말로 그냥 사람 돕기에 지나지 않아. 아무리 여자 친구라고 해도, 넌 놈의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관계없는 사람까지 말려들게 만들 정도로 난 쓰레기가 아니야. 놈과는 달리 말이야."

"……."

케이트는 내 대답에 뭐라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동자를 떨었다.

"아무튼 얘기는 이걸로 끝이지? 잘 가라고."

"자, 잠깐만요!"

"또 뭐야?"

"…당신. 정말로 포츠를 처리할 셈인가요?"

"그래. 설마 말릴 셈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죄인을 감싼다는 건 너도 그 죄에 관계하게 된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너도 처리할 수밖에."

"읏…! 그, 그런 거…! 누가 강간마에 살인범을…! 당장 헤어질 거예요!"

내가 계속해서 압박해오자, 케이트는 홧김에 내뱉듯 그렇게 외쳤다.

좋았어. 별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친 보람이 있었군.

케이트는 이제 완전히 내 말을 믿는 눈치였다.

솔직히 증거를 대라고 하면 곤란했는데 말이야.

왜냐하면 그런 거 전혀 없으니까.

굳이 증거를 대자면 사라의 마을까지 케이트를 데려가는 건데…과연 그렇게까지 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포츠 몰래 케이트와 거기까지 다녀오는 것도 불가능하고 말이다.

"그런가."

"그래요. 이제 그런 쓰레기와 전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그 남자가 그런 범죄자였다니! 조금 밝히긴 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렇게 외치는 케이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드디어 다음 단계로 접어들 말을 내뱉었다.

"복수하고 싶지 않나?"

"뭐, 뭐라고요?"

"자신의 범죄행위를 모조리 숨긴 채, 본성을 숨기고 네 앞에서 착한 척을 하고 있었던 놈이다. 아마 이대로 갔다면 결혼까지 했을 지도 모를 놈이고, 그렇다면  넌 아무것도 모른 채 평생 최하급 범죄자와 함께 인생을 보냈을 지도 모를 일이지. 하마터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뻔 한 거야. 복수하고 싶지 않나?"

"그, 그건…하지만 어떻게…."

"간단해. 놈에게 똑같은 아픔을 맞보게 해주면 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아픔을. 적어도 지금의 놈이 너에게 빠져있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니까."

"……그 말은 즉…계속 그 쓰레기와 애인 행세를 하면서 당신을 도우라는 건가요?"

내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던 케이트는, 조금 냉정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쳇. 역시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나도 놈도 모험가. 내가 직접 놈을 처리할 수는 없지. 하지만 놈을 이대로 그냥 감옥에 처넣는 건 내 의뢰인의 요구에 반하는 거야. 나 혼자선 손을 쓰기 힘들어. 도와줬으면 좋겠어."

"역시 절 이용하려고 접근한 거잖아요!"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자유지만, 그것만큼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어. 애초에 네가 거기서 그렇게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있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내가 네 욕구불만을 조장했다고 라도 말하고 싶은 건가?"

"그, 그건…. 읏…아무튼 싫어요. 그런 쓰레기와 계속 애인 행세를 하다니. 당장 헤어질 거예요."

내 질문에 케이트는 대답할 말이 궁한 건지, 잠시 날 노려보다가 그렇게 내뱉었다.

"물론 그냥 도와달라고는 안 해. 나도 힘든 부탁을 한다는 자각은 있어. 그러니 날 도와준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주도록 하지."

"상응하는 댓가라고요?! 그런 쓰레기와 붙어있는 것에 상응하는 댓가가…!"

"지금까지 맛본 적 없을 극상의 쾌락을 주지. 어제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극상의 쾌락을."

그래. 케이트에게 진실을 밝히기 전에 한 번 관계를 가진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좋으나 싫으나, 케이트의 몸에는 어제 나와의 행위로 얻은 쾌락이 확실히 각인되어있을 거다.

그런 쾌락을 맛보고, 그보다 더한 쾌락을 주겠다는데 과연 거절할 수 있을까?

"읏…!"

과연 내 말에 고민되기 시작한 건지, 케이트의 눈동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 난 그런 여자가…."

"그래. 거절하는 건가. 알았다. 힘든 부탁을 해서 미안하군."

"자, 잠깐만요! 아직 거절한단 말은…!"

"그럼 뭐지?"

"읏…새, 생각할…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결국 케이트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렇게 내뱉었다.

"좋아. 그럼 결정하게 되면 내게 말하라고. 어떤 결정을 내리던 말이야."

떨리는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케이트를 뒤로하고, 구원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얘기를 하신 건가요?"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레이아가 구원에게 물었다.

디아나도 관심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힐끗힐끗 이쪽을 보는 게, 신경은 쓰이는 모양이다.

사라는 이미 무슨 얘기를 했는지 짐작하고 있겠지. 살짝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 거 아니야. 그제도 어제도 잘 때 너무 시끄럽게 굴었으니까. 옆방까지 다 들려서 시끄러우니까 조금 조용히 하라고 한 소리 들었어."

"읏!"

구원의 말에 디아나가 말없이 구원을 토닥토닥 때렸다.

그러니까 그렇게 때려봤자 네 손만 아프다니까.

"그런가요. 그럼 오늘은 자중해야겠네요."

아니, 레이아 누님. 누님이 그러기로 마음먹어서 자중할 수 있어지면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잖아요. 자중 가능하세요?

"아니. 난 외세의 압력에 굴하지 않아. 오늘도 옆방에 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그런 건 좀 굴하게!"

소란스런 아침식사를 마치고 사냥에 나선 일행은, 오늘은 한 번 초월종을 찾아보기로 했다.

케이트 쪽에는 일단 밑밥은 다 뿌려놨으니 말이다. 이젠 슬슬 사냥에도 신경을 써야할 때다.

그래서 구원은 텔레포트를 타고 길드에 올라가서 2계층의 지도 하나를 사왔다. 길드의 지도에는 초월종의 위치도 표시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만 2계층의 지도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는 모양이다.

표식이 될 만한 것도 마땅찮은 광활한 사막의 지도다 보니, 정확성이 다른 계층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나.

그래도 구원에게는 사기적인 맵이 있다 보니, 초월종의 대략적인 위치만 알아도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고 보니 여기 계층의 주인은 어떤 몬스터야?"

솔직히 초월종이라고 해봤자, 전혀 긴장은 되지 않았다. 오크 토벌 때 이미 오크 초월 종들을 몇 마리 상대해봤으니 말이다.

웬만하면 봉인해둘 생각이지만, 정 위험하면 성자 스킬을 써서 무력화 시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걱정이 될 리가 없었다.

"거대한 샌드 웜일세."

"그래? 얼마나 큰데?"

"흠. 그렇군. 몸 둘레가 10m가 조금 안 될 걸세."

그건 또…. 더럽게 크네.

입 벌리면 날 옆에서부터 한입에 집어넣을 수 있는 크기란 거잖아.

"그런 놈 상대로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흠. 근접전은 확실히 힘들지. 보통 탱커 여럿이 앞에 나서서 막고 그 사이에 원거리 공격으로 끝장을 내네. 탱커들의 수고가 크지. 몇몇 공격들은 정말로 위험해서 말일세."

전략 자체는 우리 파티의 기본 전략이랑 별 다를 게 없었다.

탱커가 중요하단 말이지. 또 내가 활약해야겠군.

하지만 오늘은 일단 초월종이다.

구원은 지도를 보고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초월종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근데 왜 하필 쟤네야…."

"당신이 여기로 인솔한 거잖아요?"

아니, 그야 그렇긴 한데. 막상 저 모습을 보니 싸우기 싫어진다.

저 멀리에서 엄청난 규모의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딱히 구름을 이루고 있는 모기의 개체수가 더 많은 건 아니다.

규모가 더 큰 건 그냥 단순하게 구름을 만들고 있는 모기들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이다.

디아나의 말에 따르면, 모기떼는 원래 무리를 지어 다니는 놈들이기 때문에 초월종이라고 해도 일반 모기떼들을 더 이끌고 다니는 건 아니라는 모양이다. 다른 초월종이 꼭 주위에 일반 몬스터를 이끌고 다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다만 저 검은 구름을 구성하는 모기 한 마리 한 마리가 일반 모기들보다 강화된 초월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상대하기 껄끄럽다면 이 몸이 나서겠네."

구원의 표정이 안 좋은 걸 보고, 디아나가 마법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구원이 그런 디아나에게 손을 들어 막았다.

"아니. 일단 우리가 해볼게. 디아나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줘."

초월종을 상대하는 건 우리가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직업 레벨을 더 올리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부러 성자 스킬도 어그로 끌기용으로 성역 선포만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디아나에게 의지할 수는 없지.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제르디엘 // 포츠가 죽인 건 사라의 할아버지입니다. 18화에서 사라를 강간하려다가 할아버지를 죽이고 도망간 모험가가 바로 포츠에요.

스온 // 모험가 카드에 기록이 남는 건 던전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모험가 동시에 살인이 벌어지면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모험가끼리 죽였 때, 정확히는 던전 도시의 모험가 카드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끼리 죽였을 때만 기록이 남습니다. 그리고 이 던전 도시의 모험가 카드만 그런 기능이 있죠. 사라의 할아버지는 던전 도시에서 모험가 생활을 한 적 없고, 포츠도 그때 이 던전 도시 소속 모험가도 아니었습니다. 19화에 보면 포츠가 던전 도시로 가서 한탕 할 계획이라는 구절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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