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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스킬의 숨겨진 효능
구원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시선이 따갑다.
구원의 앞에는 사라, 디아나, 레이아가 구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디아나는 분노로 이글이글 거리는 눈동자로. 레이아는 어째선지 실망했다는 눈동자로. 그리고 사라는 평소처럼 쿨하고 도도한 눈으로.
아니, 사라 넌 용서해 준 거 아니었냐? …응. 아니었네.
생각해보니 사라가 바네사랑 잔 걸 용서해 준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따가운 시선은 비록 앞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제일 강렬한 시선은 옆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바네사 너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옆에서 마찬가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바네사는 구원을 살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바네사…자네마저…."
앞에서 디아나가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풉."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지만, 그 대사에 구원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네가 무슨 카이사르냐.
"지금 이 상황이 웃기나?"
"아뇨."
하지만 구원은 곧바로 정색을 하고 대답해야했다.
"이 몸이 분명히 말했을 텐데. 우리 애들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네사를 건드려?"
"디아나님. 제가 바네사랑 자게 된 건 피치 못할 사정이…."
"닥치게!"
"네."
구원은 닥쳤다.
지금은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일단 욕 좀 먹고, 분위기가 진정되면 그때 가서 이유를 말하자. 그래도 늦지 않을 거다.
"바네사. 자네도! 이 몸이 이 남자는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를 믿고 이 남자의 시중은 자네에게 전담시킨 건데! 어쩌다가 마수에 빠지게 된 건가?!"
지금에서야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
나만 메이드가 아니라 집사인 바네사가 시중을 들었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아무리 그래도 날 너무 못 믿는 거 아니냐?
게다가 마수라니…. 꼬신 거 아닌데.
애초에 난 그렇게 재주 좋은 놈이 아니다. 연애 경력 제로인 내가 딱 봐도 최악의 난이도로 보이는 바네사를 꼬셨다고? 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디아나님.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이 남자와 자게 된 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자네까지 그런 소리를 하는 겐가? 뭔가? 어디 한 번 말해보게. 그 피치 못할 사정이란 걸."
뭐야 이 차별. 미묘하게 상처받는데.
아무튼 발언권을 얻은 바네사는 구원과 자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네사의 말이 이어질수록, 디아나의 표정이 점점 더 구겨졌다.
"자네 바본가! 이 몸이 자면서 성역 선포는 사용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거야 던전에서 푹 자지 못하면 위험하니까 그런 거지. 던전을 나와서까지 스킬 강화를 안 할 이유는 없잖아?"
"이유야 차고 넘치지 않나! 주변에 누가 있을 줄 알고 범위 기술을 사용하는 겐가!"
"설마 내가 해소시켜주지 않으면 안 될 줄 알았겠어? 성역 안에 누가 있더라도 그냥 자위로도 해소될 줄 알았지."
"그게 말이 되나! 그런 걸로 해소가 되면 몬스터들이 왜 자네에게만 달려들겠나!"
디아나는 이마에 혈관까지 띄우고 구원을 매도했다. 조금만 더 나가면 아예 발로 밟을 기세였다.
그런데 잠깐. 얘 지금 뭐라고 했지?
"너…설마 알고 있었어? 내 스킬에 당한 사람은 나 말고 해소 못시켜주는 거?"
"당연하지 않나! 그럼 이 몸이 스킬 연구라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런 분석도 안할 줄 알았나?!"
"그럼 왜 말 안 해줬는데?"
그러자 디아나가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 그야…알려줬으면 자네 성격에 악용할 것이 뻔하지 않나!"
응. 뭐 솔직히 그건 그래.
만약 디아나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알려줬다면, 한창 섹스밖에 머릿속에 없었던 구원은 보이는 여자마다 스킬을 사용하려고 들었을 거다.
디아나와 첫 경험 때는 죽을 걸 알고도 전생 전의 디아나에게 박아 넣기까지 했으니. 디아나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구원은 최대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날 그렇게 못 믿었던 거야? 난 우리가 제법 두터운 신뢰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좋아. 당황하기 시작했어. 이틈에 적당히 마무리하자.
"디아나가 알려주기만 했다면 애초에 이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잖아? 앞으로 조심하면 되지."
"이, 이…. 잘못은 자네가 해놓고 어딜 책임 전가 하려고 드는 겐가!"
하지만 구원의 속셈은 통하지 않았다.
크윽. 역시 이렇게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는 아닌가.
"하지만 그렇잖아? 너희도 내가 바네사랑 자게 된 이유는 방금 설명으로 납득했잖아? 몰랐던 걸 어떻게 해. 앞으로라도 조심해야지."
구원은 배 째라 작전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정도로 납득가게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충분하잖아.
"구원씨…그렇게 무책임한 태도라니. 실망이에요."
하지만 구원은 천사님의 한마디에 바로 태세전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그런 표정으로 절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레이아가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자,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일단 사죄부터 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들어왔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그렇군. 일단 앞으로 우리 애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네. 맹세합니다."
"건드리면 자네 밑에 달려있는 물건을 잘라버리는 걸세?"
"…잠깐만요. 제가 나서서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죠?"
"지금 뭐라고 했나?"
"아뇨. 아무 말도요."
"그리고 바네사 자네는 앞으로 이 자의 시종은 그만두게."
"…네."
바네사는 풀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무표정이 저렇게까지 되니까 미안해지네. 이거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지?
지금의 살벌한 디아나한테 의견을 내는 건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지만, 구원은 그래도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만. 그건 아닌 것 같아."
"뭐? 자네 지금 이 상황에서도 바네사를 노리는 겐가?!"
"아냐. 잠깐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디아나가 다시 꼭지가 돌려고 하는 걸 구원은 필사적으로 달랬다.
"내가 바네사랑 붙어있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네가 그런 명령을 하면 마치 바네사를 못 믿겠다는 것처럼 해석되잖아. 바네사도 어쩔 수 없이 나한테 안긴 거고, 피해자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건 너무해. 그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면 평생 너만 모셔온 바네사가 어떤 기분이겠어?"
"으윽…. 하, 하지만…."
구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긴 건지, 디아나의 기세가 약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내 시중은 바네사한테 맡겨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줘야하지 않을까?"
디아나가 바네사를 쳐다보자, 바네사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알겠네. 이번에 이 남자와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아예 물건을 잘라 버리게."
"네."
바네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어? 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이거 완전 내가 내 무덤 판 건 아냐?
"…고맙습니다."
하지만 바네사가 구원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구원은 아무래도 좋아졌다.
설마 진짜로 자르기라도 하겠어.
그렇게 해명하는 자리가 일단락되는 분위기가 되자, 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헉!"
하지만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여파로, 다리가 전기로 지지는 것 같이 저려왔다.
구원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하필 바네사 쪽으로.
든든한 바네사는 구원이 쓰려져 와도 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미동도 없이 버텨냈다.
덕분에 마치 구원이 바네사에게 안겨 붙는 것 같은 자세가 돼버렸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바네사!"
"네. 자르겠습니다."
바네사가 당장 구원의 바지를 벗기려고 들었다.
물론 생명보다 소중한 것에 위협을 느낀 구원은 필사적으로 바지를 끌어올렸다.
으아아. 얘 왜 이렇게 힘이 센 거야.
"자, 잠깐! 너희도 어떤 상황인지 봤잖아! 다리가 저려서 그랬어! 이런 건 봐줘도 되잖아?! 잠, 진짜로?! 말로, 말로 하자!"
구원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서 겨우 물건은 사수할 수 있었다.
"풉. 농담일세. 제대로 달려있는 소중함을 알았으면 앞으로 잘하게. 달려있을 때 말일세."
"안심하십시오. 저도 디아나님의 농담에 어울렸을 뿐입니다."
아니. 너희 눈빛은 진심이었어.
구원은 이 주종이 살짝 무서워졌다.
일이 일단락되자 이미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언제나의 일상이 펼쳐졌다.
레이아는 신전으로 갔고, 디아나는 마법사 협회의 사람들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라와 구원은 구원의 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지 법의 눈을 피해서 사라의 복수를 이룰 수 있을까.
디아나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우리끼리 이렇게 고민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 아무리 사라의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라고는 해도, 둘이 계획하고 있는 일은 엄연한 범죄다.
괜히 다른 사람까지 더 말려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둘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포츠를 던전에서 죽이기만 하는 거라면 간단하다.
포츠가 싸우고 있을 때 포츠에게 성자의 손길이나 파동 같은 걸 사용하면 된다.
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몬스터와 제대로 싸울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몬스터에게 죽게 만드는 것도 모험가 카드에 기록되지 않겠냐고?
만약 공격을 한다면 모험가 카드에 기록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탑에서 마법사의 실드를 통과하는 걸로, 성자 스킬이 공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
다만 시야가 탁 트인 2계층에서 포츠에게 몰래 접근하는 게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건 내가 암살자 레벨을 올리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포츠를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었다.
바로 포츠가 던전에서 싸울 때는 바로 옆에 케이트가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저번에 놈이 케이트의 자랑을 떠들었을 때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놈은 케이트와 이 도시에서 만났다. 사라의 할아버지를 죽인 이후에 만난 거다.
한마디로 케이트는 사라의 복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던전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도중에 포츠를 죽여 버리면? 당연히 같이 있던 케이트도 죽게 된다.
포츠가 죽은 다음에 구해주면 되지 않겠냐고? 그것도 불가능하다.
포츠가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인 후에 몬스터에게 당하고, 직후에 바로 구원 일행이 구해주러 나타난다. 누가 생각해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케이트는 포츠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하겠지.
당연히 바지에 싸지른 정액도 확인이 될 거고, 그렇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하고 구원이 범인이란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사라와 구원은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관계없는 사람을 말려들게 하지 않고 포츠만 깔끔하게 죽일 수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고아원에서 카일의 거시기는 터뜨리지 말 걸 그랬다. 암살자인 놈에게 부탁하면 일이 좀 편해졌을 지도 모르는데.
이제 내 말은 죽어도 안 들으려고 하겠지?
아냐. 쓸 수 없는 패를 아쉬워해봤자 쓸데없는 짓이지.
어차피 놈에게 의뢰를 해서 포츠를 죽여 봤자,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손 안에서 처리를 해야 한다.
아무리 고민해도, 마땅한 해결책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역시 그냥 제 활로 처리해버리는 게…."
사라가 안달 난 표정으로 말했지만, 구원은 그런 사라를 진정시켰다.
"사라. 진정해. 할아버지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안달 나는 건 알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그런 쓰레기 때문에 네 인생이 망가지면 저승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기뻐하시겠어?"
"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나도 그런 쓰레기 때문에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둘이서 좀 더 고민해보자."
"……네."
하지만 결국 그날은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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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츠의 운명은 사라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이미 정해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