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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48화 (13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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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 스킬의 숨겨진 효능

    아침에 일어난 사라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일어나자마자 구원이 키스를 해 올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섹스 중이 아닐 때 키스하는 건 처음이네.

    그렇게 생각하니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그래도 마주 닿은 입술을 떼어낼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제 엄청 좋았어."

    진한 키스 후 입술이 떨어지고, 구원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 마냥 말할 때까지만 해도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나도 엄청 좋았어. 이렇게 좋을 수 있다니.

    아무리 구원이 나보다 레벨이 낮더라도, 이렇게 좋으면 레벨이 오르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레벨을 확인한 사라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감각을 맞봤다.

    64라니. 간밤에 레벨이 3이나 올랐다.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그게 가능할까?

    아니, 지금까지 경험 상 불가능할 거란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답은 단 하나. 구원의 레벨이 나보다 높다는 얘기가 된다.

    난 용사의 특성 상 지난 전투로 레벨이 상당히 올랐다. 그런데 그런 나보다 구원이 레벨이 높아?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구원이 고레벨의 여성과 잠을 자는 거다.

    보통 남자라면 고레벨의 여성과 잠을 자서 레벨 업을 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성자라는 특수 직업을 가진 구원이라면 가능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차갑게 얼어붙었던 머리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구원이 디아나나 레이아와 자는 것도 그다지 탐탁지 않았었다.

    하지만 둘은 같이 생사를 함께하는 소중한 동료다. 레벨 업 효율이 가장 좋은 구원과 자는 걸로 던전에서의 생존율도 올라가게 되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둘 다 그것 말고도 구원과 자야만하는 이유가 있다.

    때문에 사라는 자신의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독점욕을 억누르고 디아나나 레이아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여기서 만족을 못하고 고레벨 여성과 잠을 잤다고?

    아냐. 아직 확정된 건 아냐.

    사라는 최대한 냉정을 가장하고 구원을 떠봤다.

    하지만 사라의 기대를 배반하고, 구원이 다른 여성과 잠을 잔 건 명백해보였다.

    사라는 머릿속에서 뭔가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감정이 격해서 구원을 마구 쏘아붙였는데, 심지어 같이 잔 게 바네사라고 하는 거다.

    그럼 뻔뻔하게도 동료들이 모두 있는 이곳에서 당당하게 바람을 폈다는 말 아니야?!

    사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저도 레벨 높은 남자 하나 꼬셔서 잘 거예요!"

    나오면서 그런 말까지 내뱉고 말이다.

    레벨 높은 남자를 만나려면? 당연히 모험가 길드다.

    저택을 빠져나온 사라는 모험가 길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솔직히 구원에게 너무 화가 나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모험가 길드에 도착해서 다른 남자 모험가들의 면면을 보니, 꼬실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사건 이후로, 남자들은 전부 쓰레기로 보인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구원이다.

    그런데 저런 남자들을 내가 나서서 꼬신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저택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구원에게 화가 풀린 것도 아니고 말이다.

    던전이나 들어가 볼까?

    다른 생각할 것 없이 사냥에만 몰두하다보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

    사라는 곧장 던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 아무런 장비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입구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 난 용사잖아. 괜찮을 거야.

    사라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몬스터들을 때려잡았다.

    역시나 생각한 대로, 입구에 있는 몬스터들은 두 주먹만으로도 아무런 피해 없이 사냥할 수 있었다.

    오히려 주먹을 한 대만 맞춰도 퍽퍽 터져나가서 허무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사라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구원 바보! 멍청이! 바람둥이!"

    차례차례 다가오는 몬스터를 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먹을 휘두르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사라는 자기가 하고 있는 짓이 허망해졌다.

    하아….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마석을 캐는 건 신경도 안 쓰고 때려잡기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머리에 피가 올라 있을 땐 못 느꼈지만, 조금 흥분이 식고 나자 엄청나게 찝찝했다.

    …돌아가자.

    지금쯤이면 구원도 조금 반성을 했을 거다. 내가 다른 남자랑 잔다는 얘기만 나와도 그렇게 기겁하던 구원이니, 현관 앞에서 똥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지도?

    사라는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입구에 다가가자, 저 멀리서 구원이 서있는 게 보였다.

    설마 내 뒤를 쫓아온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상황도 잊고 구원에게 달려갈 뻔 했다. 하지만 사라는 다리를 멈췄다.

    아니야. 이 상황에서 이러면 내 화가 다 풀렸다고 생각할 거야.

    아직 화가 다 풀린 건 아니다. 그럼 전혀 아니지.

    그저 아까보다는 조금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가 있을 뿐이다.

    구원도 뭔가 변명을 하려는 것 같았고, 어디 그 변명이라도 들어볼까.

    사라는 최대한 차가운 표정을 만들고 구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곧 구원이 혼자 있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구원의 옆에는 웬 남자 모험가 하나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구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사라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그날 이후로 단 한순간이라도 잊은 적은 없었다.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

    그저 죽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사라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더듬으며 활을 찾았다. 물론 없는 활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주먹으로 때려잡아야하나?

    그렇게 생각하자, 사라는 몸이 떨려왔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날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 사라는 이제 그 누가 봐도 중견 모험가라고 하기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는 몸이 떨렸다.

    설마 겁먹은 거야? 그렇게 찾아 헤맸던 할아버지의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아무리 자신을 질책해 봐도, 떨리는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 남자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사라질 때까지, 사라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사라를 발견한 구원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사라는 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저 복수를 실행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는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구원이 완전히 다가와 사라를 부르자,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 남자와 구원은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구원은 이방인이다. 이 세계에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만났고, 그 이후로는 거의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쭉 같이 행동했다. 그동안 구원이 저 남자와 만나는 건 본적도 없다.

    그럼 나랑 만나기 전부터 아는 사이였단 말이야?

    설마 나한테 처음 접근한 것도…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됐다.

    그동안 구원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잘 지켜봐왔다.

    조금 바보 같고, 애 같은 면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런 교활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하면서 날 속여 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남자 모험가들은 원래 초면에도 친한 척 한다고 하잖아? 구원도 그걸 배운 모양이니, 그냥 초면에 어울린 것일 수도 있다.

    분명 그런 걸 거야. 아니,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좋아. 확인해보자.

    사라가 곰곰이 생각하는 와중에도, 구원은 바네사와 잔 이유를 변명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은 이게 궁금한 게 아니지만, 여기서 갑자기 모험가 얘기부터 하는 건 이상하니까. 신중히 접근하자.

    사라는 일단 구원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구원과 얘기를 하면 할수록, 구원을 의심하는 게 바보 같아 졌다.

    메이드가 자위하는 걸 보고 싶어서 성역 선포를 사용했다니.

    진짜 바보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실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이런 바보 같은 남자가 그 남자와 짜고 계획적으로 나한테 접근했다니. 지금까지 모습이 전부 거짓말이라니.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사라는 쏘아붙이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애초에 거짓말은 왜 한 거죠? 피치 못해 그렇게 된 거라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으면 됐잖아요."

    그래. 거짓말만 안했으면 내가 이런 바보 같은 고민은 안했어도 됐잖아.

    잠깐이지만 구원까지 의심한 자신이 바보 같아져서, 사라는 더욱더 책망하는 말투가 됐다.

    "그거야. 널 좋아하니까. 괜히 다른 여자랑 잤다는 얘기를 해서 미움 받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구원은 사라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렇게 대답했다.

    위험해.

    "흐음…."

    사라는 최대한 냉정한 목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돌렸다.

    구원의 그 한마디로, 사라는 자신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야 말로 진짜 바보 아니야?

    방금까지 어설프게 의심이나 하고, 또 좋아한다는 한 마디에 바로 헤실 거리기나 하고.

    진짜 자기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할아버지의 원수를 찾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 할아버지의 원수를 찾았는데 뭐하고 있는 거야.

    구원과 함께 있다 보면, 구원밖에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사라는 마음을 다잡고, 그 모험가에 대한 단서를 잡기로 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죠?"

    "넌 예뻐서 눈에 띄니까. 수소문하면서 다니니까 쉽게 찾아올 수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던전 안에서 그렇게 찾는 건 불가능하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지만."

    예뻐…아니. 안 돼. 정신 차리자. 지금은 복수가 먼저야.

    "그럼 아까 같이 있던 모험가는 뭔가요?"

    "응? 그냥 지나가던 놈이야."

    그렇게 말하는 구원의 표정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다행이다. 딱히 친한 것도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사라는 만약을 위해 한 번 더 떠보기로 했다.

    "그런 것 치곤 꽤나 친해 보이던데요? 원래 알던 사이 아닌가요?"

    "친해 보이기는. 어제 그 2계층에서 나한테 당한 놈이랑 한 잔 했다고 했잖아. 그때 마침 그 놈 옆에 아까 걔도 있었거든. 그래서 같이 한 잔 한 게 다인 놈이야."

    그러고 보니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지.

    사라는 이제야 완전히 안심이 됐다.

    "…그렇군요. 당신에게 당한 사람과 같이 있었다는 건, 아까 전 그 사람도 2계층에서 모험가 생활을 하는 모양이죠?"

    "그런 모양이던데. 왜 그래? 서, 설마…너 그런 놈한테 관심 생긴 거야?"

    게다가 구원은 사라가 계속 그 남자에 대해 물어보자, 질투까지 하는 것 같았다.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네. 상당히 관심이 생기네요. 기회가 되면 소개시켜 줄래요?"

    하지만 사라는 일부러 오해를 사는 말투로 대답했다.

    나한테 그렇게 마음고생을 시켰으니, 자기도 한 번 마음고생 좀 해보라지.

    "싫어!"

    구원은 마치 어린애가 떼쓰는 것처럼 외쳤다.

    풋. 귀엽기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저 스스로 접촉해보죠. 같은 2계층에서 모험하다보면, 언젠간 만날 일도 있을 거고."

    그래. 신중하게 가자.

    그 남자만 생각하면 머리에 피가 끓어올랐지만, 조급하면 일을 그르칠 뿐이다.

    그동안 길드에 있을 때마다 주변을 살피며 그 남자를 찾아봐도 전혀 실마리조차 없었는데, 2계층을 다닌다는 걸 알게 된 것 만으로도 큰 수확이잖아.

    우리는 구원 덕분에 빨리 빨리 레벨 업을 하고 엄청난 속도로 던전을 돌파하고 있지만, 다른 모험가들이 보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속도다. 그 남자도 분명 2계층에서 한참을 머물었을 거고, 앞으로도 한참을 2계층에서 머물 거다.

    냉정하게 기회를 엿보다가,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그 목숨을 거둬주겠어.

    "뭐, 잠깐만. 사라야. 내가 잘못했다니까? 농담이지?"

    "농담 아닌데요?"

    "사라야. 제발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좋아해. 너랑 이런 식으로 끝나고 싶지 않아."

    사라가 계속 오해를 사게 말을 하자, 구원이 바로 매달렸다.

    저 말을 들으니 바보 같게도 바로 용서해주고 싶어졌지만, 사라는 꾹 참았다.

    아니야. 마음 약해지지 말자.

    적어도 저택에 돌아갈 때까지는 마음고생하게 내버려 둬야지.

    이 사람은 가끔 이런 식으로 마음고생을 해봐야 내 마음을 알지.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번 편은 같은 내용 다른 시점이라 쓸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해설도 겸해서 썼습니다.

    내용 부풀리기처럼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같은 날 연참으로 올리는 거니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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