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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47화 (13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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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스킬의 숨겨진 효능

하지만 이대로 무서워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가 잘못한 상황에서 피투성이가 된 사라에게 다가가는 건 엄청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구원은 일단 사라에게 더 다가갔다.

그리고는 도망가지 못하게 사라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그러자 사라가 움찔거리며 손을 뒤로 빼려고 했다.

손을 잡는 것조차 이런 반응이라니….

"사라야. 들어봐 내가 바네사랑 하게 된 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어."

"…그러시겠죠."

사라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약간 미적지근했다.

몬스터를 때려잡으며 스트레스가 조금 풀린 걸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화가 풀린 거랑은 조금 다른 반응이다.

이 반응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그래. 마치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돼? 딴 여자랑 했다는 걸 알자마자 저택 밖으로 뛰쳐나갈 정도로 격렬한 반응을 보였던 앤데, 이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안 쓰게 된다고? 말이 안 되잖아. 날 좋아하는 마음이 갑자기 확 식어버린 게 아닌 이상….

거기까지 생각한 구원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얘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성격이지.

이대로는 정말 위험하다.

비난하는 것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더니.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사라야. 들어봐. 알고 보니 내 스킬에 나도 몰랐던 특수한 효과가 있었어. 바네사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게 된 거야. 생각해봐. 내가 아무리 꼬셔봤자 바네사 성격에 그런 게 아니면 나랑 잤겠어?"

사라는 구원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구원을 쳐다봤다.

그 표정은 언제나의 냉정한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다행이다. 이렇게 물어볼 정도의 관심은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다.

"스킬에 맞으면 몬스터들이 너희가 가까이 있어도 무시하고 나한테만 달려들잖아? 알고 보니까 내 스킬에 맞은 상대는 내가 해소시켜주지 않으면 계속 성욕이 해소가 안 된다고 하더라. 바네사가 우연히 내 스킬에 맞았는데,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딱 한 번 잔거야."

"우연히 스킬에 맞아요? 우연?"

"그게, 성역 선포의 위력을 강화하려고 밤새 켜놓고 잤거든. 그런데 하필 바네사가 성역의 범위 안에 있었다네."

"성역 범위 안에 누가 있을지 알고 그걸 켜놓고 자요?"

오히려 누가 있을 걸 기대하고 켜놓은 거였지.

사실대로 말하면 된통 깨지겠지? 하지만 여기서 더 거짓말을 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도 없었다.

"사실 살짝 기대…잠깐. 화내지 말고 들어봐. 결코 범위 안에 있는 여자들을 어떻게 해보려는 속셈은 아니었어. 내가 변태긴 하지만, 마음도 없는 여자를 그런 방법까지 사용해서 억지로 안을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야. 너희가 있는데 내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난 그냥 혹시 범위 안에 있는 애들이 자위하는 거라도 구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런 순수하게 변태적인 발상으로…."

"…지금 자기가 무슨 얘기하는 건지 이해하는 거예요?"

응. 바보 같은 소리라는 건 잘 안다.

근데 그게 사실인 걸 어떻게 해.

"그리고 당신 스킬에 영향 받으면 당신이 해소시켜 주기 전까지 해소가 안 된다면서요? 자위만 하고 끝난다고 생각했다고요?"

"스킬에 그런 효과가 있는지 그때까지는 나도 정말 몰랐어. 바네사가 그렇게 된 덕분에 처음 알게 된 거야. 하늘에 맹세코 사실이야. 믿어줘."

사라는 구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구원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사라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정말로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아. 그렇게 바보 같은 소리를 늘어놓으니까 오히려 의심하는 게 바보 같아지네요."

결국 사라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믿어주는 이유가 조금 석연치 않았지만, 일단 믿어주는 모양이다.

"믿어 주는 거야?"

"좋아하지 말아요.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당신이 바네사랑 한 건 변함이 없고, 저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으니까요."

안도하는 구원을 사라가 쏘아보며 말했다.

"애초에 거짓말은 왜 한 거죠? 피치 못해 그렇게 된 거라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으면 됐잖아요."

그 말대로다. 결국 괜히 거짓말로 모면하려다가 오히려 더 꼬여버리게 됐으니 말이다.

내가 바네사랑 잤다고 순순히 말하지 못한 이유라…. 그거야 명백하다.

하지만…아니. 사실대로 말하자.

구원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거야. 널 좋아하니까. 괜히 다른 여자랑 잤다는 얘기를 해서 미움 받고 싶지 않았어."

사라를 그저 모험가 동료로만 여겼다면 다른 여자랑 잔 걸 숨길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레벨이 높아졌다고 자랑을 해도 될 정도다. 결국 바네사랑 잔 걸 숨긴 이유는 이런 이유 밖에 없었다.

디아나나 레이아도 있으니, 지금까지는 대놓고 이렇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피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흐음…."

구원은 꽤나 각오를 하고 한 말이었지만, 사라는 뭔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뒤를 돌았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구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죠?"

심지어 말도 돌려버렸다. 뭐야 이거.

하지만 구원은 순순히 대답했다.

"넌 예뻐서 눈에 띄니까. 수소문하면서 다니니까 쉽게 찾아올 수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던전 안에서 그렇게 찾는 건 불가능하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지만."

"그럼 아까 같이 있던 모험가는 뭔가요?"

"응? 그냥 지나가던 놈이야."

"그런 것 치곤 꽤나 친해 보이던데요? 원래 알던 사이 아닌가요?"

"친해 보이기는. 어제 그 2계층에서 나한테 당한 놈이랑 한 잔 했다고 했잖아. 그때 마침 그 놈 옆에 아까 걔도 있었거든. 그래서 같이 한 잔 한 게 다인 놈이야."

"…그렇군요. 당신에게 당한 사람과 같이 있었다는 건, 아까 전 그 사람도 2계층에서 모험가 생활을 하는 모양이죠?"

사라는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포츠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런 모양이던데. 왜 그래? 서, 설마…너 그런 놈한테 관심 생긴 거야?"

"네. 상당히 관심이 생기네요. 기회가 되면 소개시켜 줄래요?"

사라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라고?! 그 놈의 어디에 관심이 생기는데!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어딜 봐도 내가 더 낫잖아!

"싫어!"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저 스스로 접촉해보죠. 같은 2계층에서 모험하다보면, 언젠간 만날 일도 있을 거고."

"뭐, 잠깐만. 사라야. 내가 잘못했다니까? 농담이지?"

"농담 아닌데요?"

사라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라야. 제발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좋아해. 너랑 이런 식으로 끝나고 싶지 않아."

구원은 바로 매달렸다.

그냥 사라가 구원에게 복수하려고 질투심을 유발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괜히 그런 가능성을 믿고 대범하게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사라가 진심일 가능성이 1%라도 존재한다면, 그를 막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저택으로 돌아가죠. 옷에 피가 묻어서 찝찝하네요."

하지만 사라는 냉정하게 구원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저택을 돌아가는 내내 구원은 사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야. 그런 놈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데?!"

결국 그런 소리까지 나와 버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라가 멈춰 섰다.

"누가 그 사람이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뭐, 뭐?"

사라는 뭔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할아버지의 원수에요."

그리고 사라는 갑자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발언을 터뜨렸다.

"뭐? 잠깐. 응? 뭐라고?"

너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라, 구원은 당황해서 몇 번이고 되물어봤다.

"그 사람이 몇 달 전 저희 마을에 와서, 절 강간하려다가 할아버지를 죽였어요."

그 말을 이해한 순간, 구원은 머리에 피가 쏠렸다.

"뭐?! 강간?!"

"당하진 않았어요. 말했잖아요. 제 첫 상대는 당신이라고. 강간을 시도했지만, 할아버지께 들켰어요. 그러다가 몸싸움으로 번져서 할아버지를 죽이고 달아났죠. 그리고 전 그 복수를 위해 여기에 온 거예요."

좋아. 결정했다. 죽여 버리자.

그 새끼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

"잠깐만요. 어디가세요?"

"지금 2계층에 있을 테니까 가서 죽여 버리고 오게."

하지만 사라는 그런 구원의 앞을 막아섰다.

"이래서 말 안하려고 한 거예요. 이건 제 복수에요. 당신의 손에 피를 묻힐 순 없어요."

"난 널 위해서라면 그런 것 쯤 아무렇지도 않아!"

"제가 싫어요! 아시겠어요? 이건 제 문제에요. 당신이 간섭하시면…앞으로 당신이랑은 말도 안할 거예요."

사라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구원도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예전에 맹세했잖아. 사라의 목적이 뭐든 간에, 난 그걸 도와줄 거라고.

물론 그 맹세가 아니더라도, 사라의 복수를 그냥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건 싫었다.

"그럴 순 없어. 어떻게 네 일을 모른척해. 네 문제는 내 문제나 마찬가지야. 아니면, 우리 관계가 그 정도밖에 안 돼?"

구원은 사라가 그저 단순한 동료라고는 생각지 않고, 사라도 그렇게 생각해 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구원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사라도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일단 말이라도 해줘봐. 어떻게 복수할 생각인데? 네 할아버지를 살인한 거면, 그냥 감옥에 처넣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제가 살던 마을은 작은 화전촌이었어요. 제대로 된 영주도 없는 곳이었죠. 그런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제대로 처벌해 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냥 감옥에서 썩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요."

"그 말은 네가 죽일 거라는 말이야?"

"네."

"그럼 네가 범죄자가 되어버리잖아."

사라의 복수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놈 하나를 죽이기 위해 사라가 범죄자가 되는 건 싫었다.

"던전을 이용해야죠. 던전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이면…."

"하지만 모험가 카드는?"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러고 보니 얘는 처음 모험가가 될 때 설명을 안 들었었지.

"모험가 카드에 보면 상태란이 있잖아. 모험가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면 거기에 표시가 돼."

던전 안에서 사람의 눈이 없는 틈을 타 다른 모험가를 급습하고 이득을 취한다. 당연히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범죄다.

길드는 이를 막기 위해 모험가 카드에 한 가지 조치를 취했다. 모험가 사이에 불상사가 발생하면 모험가 카드에 표시가 되도록 말이다.

세부 스탯도 없는 이 세계에서 모험가 카드에 상태란이 있는 건 그런 이유였다. 모험가가 모험가를 죽이면, 상태란에 살인자라는 표시가 뜨게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둘 다 모험자인 경우에만 그런 모양이지만 말이다.

이걸 이용해서 모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닌지 물어봤지만,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마나가 어쩌고 복잡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솔직히 이해는 안 되서 그냥 흘려들었다.

그땐 그게 나한테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고.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할 수는…."

역시 사라는 그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물론 복수를 포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 난 그런 쓰레기 때문에 네가 범죄자가 되는 건 싫어. 같이 천천히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완벽한 복수를 할 수 있는지. 나도 같이 고민해볼게."

"구원…네. 알았어요."

결국 사라도 구원이 복수를 돕는 걸 승낙하는 모양이었다.

"자네들 어떻게 된 건가? 그, 그 모습은?!"

"사라씨! 어디 어디 다치셨어요?!"

저택에 돌아오자, 디아나와 레이아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 그런가. 아침도 안 먹고 갑자기 집을 뛰쳐나갔으니.

"아, 아뇨. 이건 제 피가 아니에요. 잠깐 몬스터를 사냥하고 왔거든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전 샤워 좀 하고 올게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침부터 어떻게 된 건가? 설명을 해주겠나?"

"음…."

솔직히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사건이 벌어져서, 구원도 머릿속으로 다 정리가 안됐다.

일단 간단한 경과만 말할까.

"바네사랑 섹스한 걸 사라한테 걸렸어."

어차피 사라한테 들킨 거다. 얘들한테도 들키는 건 시간문제.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얼른 고백해 버리는 게 좋겠지.

"흠. 그렇구먼. 그래서 사라양이 뛰쳐나간 건가. 응? 잠깐. 뭐라고? 누구랑 섹스를 해? 에? 뭐야아아아?!"

디아나는 일견 냉정하게 대답하는 것 같더니, 곧 구원이 한 말을 이해하고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 뒤에서는 바네사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린 채 아연한 표정으로 구원을 쳐다봤다.

미안 바네사. 들켜버렸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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