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36화 (120/1,205)
  • 136====================

    밀크 로드 메이커

    암살자 레벨이 올라있어.

    아침에 일어나서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해보려고 스탯창을 열었을 때, 구원은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어제 사냥을 마치고 확인해봤을 때도 암살자 레벨은 여전히 8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암살자 레벨이 13으로 올라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마을로 돌아오고 나서 레벨이 올랐다는 말인데.

    마을로 돌아오고 나서 한 일이라고는 밥 먹고 섹스한 것 밖에 없다. 암살자다운 짓을 한 적이 있다면 기껏해야 화장실에 잠입할 때 은신을 쓴 것 정도다.

    고작 그런 걸로 레벨이 올랐다고?

    음. 모르겠다. 그냥 디아나가 일어났을 때 물어보자.

    구원은 암살자에 대해 고민하는 건 잠시 그만두고 이번엔 스킬창을 열었다.

    어디보자. 성역 선포가…좋아! 역시 엄청나게 올랐군!

    밤사이에 성역 선포 레벨이 무려 9로 올라있었다.

    성자의 스킬들은 기본적으로 정기 효율이 좋고, 구원도 관계 시에 스킬을 난사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그 효과를 전혀 볼 일이 없었지만, 힐링 섹스의 기본 효과는 자연 치유력 증가다. 즉, 생명력 뿐 아니라 정기 회복 속도도 증가하는 거다. 절정 시에 회복되는 건 생명력뿐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기본 효과를 이용해서 구원은 어제 관계하는 내내 성역 선포 스킬을 사용했다.

    매력이 극도로 높아져 쓰지 못하게 된 다른 스킬들과 달리, 위력이 낮은 성역 선포는 오히려 관계 시에 적절한 자극을 선사해줬다.

    게다가 힐링 섹스의 레벨이 높다보니, 성역 선포만 켜놓고 있으면 힐링 섹스의 회복량 증가 효과로 정기 소모를 전부 커버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섹스 중에는 성역 선포를 무한으로 켜놓을 수 있었던 거다.

    쓰레기 스킬이라고 해도, 이왕 배운 건데 이대로 썩히기엔 아까우니까 말이지. 스킬 레벨이라도 왕창 올려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아직 전투 시에 효과를 보기엔 힘들겠지만, 이렇게 스킬 레벨을 계속 올리다보면 언젠가는 효과를 볼 날이 올 거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은 자는 도중엔 꺼놨던 성역 선포를 다시 발동하기로 했다.

    아무리 효과가 약해도 도트 데미지가 몇 시간이고 지속적으로 들어가면 나름 위력을 발휘한다. 잘 때까지 계속 켜놓고 자면 디아나가 제대로 잠을 못 잘 테니 자기 전에는 꺼놓고 있었다.

    성역 선포를 사용하자, 방 전체가 옅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성역의 선포는 레벨이 오를수록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다 보니, 이런 식으로 범위를 조절 할 수 있다.

    한번 최대 범위로 발동해볼까?

    구원의 뇌리에 사악한 생각이 떠올랐다.

    스킬 레벨이 9로 오른 만큼, 현재 스킬 범위는 최대 9m. 이 여관의 상당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범위다.

    그리고 이 여관에 묵고 있는 투숙객들은 하나같이 전부 모험가들이다. 물론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여기에 묵는 다는 건 2계층을 모험할 수 있는 레벨, 그것도 샌드 웜을 뚫고 온 중견 모험가들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보니 다들 나름 괜찮은 미모를 자랑하고 있어서 식당에선 꽤나 눈이 즐거웠다.

    물론 우리 파티 세 명이 압도적으로 예뻤던 건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이런 미인 모험가들이 잔뜩 묵고 있는 여관 한가운데에서 성역 선포를 최대 범위로 1시간 정도만 발동시켜봐라. 아마 상당히 흐뭇한 광경이 연출되지 않을까?

    구원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성역 선포를 발동하려고 하는 찰나, 불현 듯 레이아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이대로 성역 선포를 해버리면, 레이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제 위력 실험할 때는 괜찮았다지만, 과연 지금도 괜찮을까?

    그럴 리가. 그때보다 스킬 레벨도 올랐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켜둘 거다.

    구원은 황급히 범위를 줄였다.

    하마터면 이른 아침부터 레이아를 구미호로 만들 뻔 했네.

    미인 투숙객들 모두가 발정 난 꿈의 여관은 아쉽지만 접어둬야 할 것 같다.

    "아응…. 으음…."

    성역 선포를 발동하고 대략 30분 정도 흘렀을 때, 디아나가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자고 있는 사이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다.

    미묘하게 움직이는 디아나의 허리에 맞춰 구원도 살살 허리를 움직였다.

    "흐그윽. 하앗. 이, 이건…."

    그러자 결국 디아나가 잠에서 깨버렸다.

    일어나자마자 경황이 없는 와중일 텐데도, 디아나는 거부하지 않고 바로 구원의 허리 움직임에 순응하여 자기도 움직였다.

    그리고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디아나가 구원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아침부터 뭐하는 짓인가! 이 느낌은 성역 선포겠지? 얼른 끄지 못하겠나!"

    과연 마나에 민감하신 대마법사님. 바로 눈치 채신 모양이다.

    구원은 얼른 성역 선포를 껐다.

    그리고 한동안 디아나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스킬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 중이란 건 이해해줬지만, 결국 아침부터 켜두는 건 금지됐다.

    어차피 요즘 일어나자마자 모닝 섹스를 하는 게 거의 일상처럼 됐으니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잠을 깨는 건 좋은 경험이 아닌 모양이다.

    별 수 없나. 다음부터는 행위 중에만 켜두기로 하자.

    "오크들의 습격이다!"

    마침 아침밥을 다 먹었을 때, 갑자기 여관 입구로 누군가 박차고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습격?"

    "음. 말하지 않았나. 텔레포트 마법진이 눈에 띠다 보니 가끔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다고."

    디아나는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나가서 싸워야하나?"

    "딱히 그럴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도와주는 게 불문율이긴 하네. 여기가 함락당하면 여길 이용하는 우리도 곤란해지니 말일세."

    "잘됐네요. 어차피 오늘도 사냥 하러 갈 생각이었잖아요? 몬스터들 쪽에서 와주면 오히려 편하고 좋네요."

    사라도 습격에 대한 긴장감은 전혀 없이, 전의를 불태웠다.

    뭐 그러는 나도 긴장 같은 건 전혀 안하고 있지만.

    솔직히 2계층 몬스터들은 아무리 몰려와도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성자 스킬을 봉인해도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한데다가, 성자의 손길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면 한 방이면 전부 뻗어버리니 말이다.

    "그럼 어디 한 번 가볼까."

    구원은 느긋하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오오. 장난 아니게 많네."

    밖에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장관이었다.

    저거 수백 마리는 되는 거 아냐?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눈대중으로 짐작이 안 될 만큼 많은 숫자의 오크가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저렇게 숫자가 많다보니, 마치 전쟁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지금부터 우리가 직접 싸울 거라는 실감이 안 났다.

    "왜 저렇게 많아? 1계층에 있던 애들보다도 훨씬 더 많네."

    "몇 개의 오크 마을에서 일제히 오는 걸세. 여긴 본래 오크들의 영역이었으니 말일세."

    그러고 보니 디아나가 2계층에서 오크들을 소탕하려고 했었다는 둥 하는 얘기를 했었지. 설마 여기 얘기였나.

    "그런데 왜 하필 오크들 영역에다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했데?"

    "샌드 웜 때문일세. 놈들이 습격을 하면 처치하기 전에 마법진부터 망가질 우려가 있으니 말일세. 놈들이 출몰하지 않는 오크들의 영역에 설치를 한 게지."

    그러고 보니 샌드 웜은 여기서 조금 걸어야 나타나기 시작했었지. 오크들이 샌드 웜의 천적이라도 되는 걸까? 왠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샌드 웜이 한 놈을 습격해서 물면, 나머지 오크들은 물린 녀석에게 신경도 안 쓰고 샌드 웜을 패죽일 것 같으니까 말이다.

    하여간 숫자가 많다는 건 무서운 거다.

    "여러 오크 마을에서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건, 초월종도 있는 건가?"

    아직까지 2계층에서 초월종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두렵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특히 2계층의 오크 초월종이라면 주술사다. 구원이 상성 상으로 절대 우위에 있다는 그 주술사.

    저렇게 오크들이 많으니, 오히려 주술사 본인보다는 주술사의 버프가 걸린 주위 놈들이 더 성가실 거다.

    "네. 몇 마리 보이네요."

    사라가 손으로 차양을 만들고 오크 떼들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혹시 여기서 잡을 수 있겠어?"

    놈들과 맞붙기 전에 초월종부터 잡아놓는다면 전투는 훨씬 쉽게 풀릴 거다.

    아직 거리가 한참 멀어서 이 근처에서 사냥하는 평범한 궁사라면 절대 못 맞출 거리지만, 우리 사라는 평범한 궁사가 아니니까.

    아마 놈들도 이 거리에서 벌써부터 공격이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방심하고 있겠지.

    "한 번 해볼게요."

    역시나 사라는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해줬다.

    못한다는 말을 안 하는 걸 보면, 사라의 성격상 확실히 맞출 자신이 있는 거다.

    사라는 화살을 시위에 걸고 평소보다 꽤나 공을 들여 조준했다.

    그리고 쐐액하는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어때? 성공했어?"

    "아뇨. 도중에 다른 오크들이 방패가 되어서 막혔어요.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앞을 가리는 오크들을 뚫고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거리에선 힘들겠네요."

    사라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크들을 관통하고 초월종을 잡으려면 대체 얼마나 강해야 되는 거야.

    구원은 살짝 식은땀이 났다.

    저번에 내 방어력을 그냥 뚫어 버리고 허벅지를 관통시키기도 했고, 얘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싸우지 말아야지.

    "그럼 쟤들이 좀 더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 마을 근처에서 싸우면 괜히 건물들에 피해만 생기니까 우리가 저쪽으로 더 다가가야 하나?"

    "조바심 내지 말게. 조금 기다리면 어차피 여길 담당하는 클랜이 나설 걸세."

    디아나의 말대로, 곧이어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모험가들답게 차림은 각양각색이지만, 다들 공통적으로 몸 어딘가에 물방울 모양의 마크를 새겨 넣고 있었다.

    클랜의 총 전력인지 수는 꽤 많았다. 그래봤자 저기 몰려오는 오크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구원의 예상대로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치르려는 듯, 그 물방울 클랜원들은 계속해서 전진해나갔다.

    "뭔가 호령을 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거 없네."

    그들은 다른 모험가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일 없이, 자기들끼리만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애초에 여기 모험가들이 도와주는 건 선의에 의한 거지 의무가 아니지 않나. 자유로운 걸 좋아하는 모험가들 상대로 명령한다고 통솔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일세. 그리고 무엇보다, 저들은 자기들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싶은 거겠지."

    "쟤들만으로 저 많은 수를 처리할 수 있다고?"

    "흠. 아마 가능은 할 걸세. 다만 저들만으로 막으려면 피해가 꽤나 막심하겠지. 하지만 어차피 다른 모험가들도 도와줄 테니 일종의 허세를 부리는 걸세."

    거 참 피곤하게 사네.

    하지만 클랜의 명예와도 관계하는 일일 테고, 저런 게 보통인 걸까?

    일단 나도 클랜장이다보니 허세라고 마냥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나도 클랜의 명예를 위해서 저렇게 허세를 부려야할 날이 올지도 모르고.

    잠깐만. …명예?

    그러고 보니 지금 현재 구원의 명성은 바닥이었다.

    아니, 전에 길드 직원들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마이너스 수치에 도달해있었다.

    지고의 대마법사님을 반반한 외모만으로 꿰어내서 빈대 붙는 기둥서방이라는 이미지니까.

    이거 어쩌면 기둥서방 이미지를 청산하고, 제대로 명성을 날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물론 디아나의 명성을 생각해보면, 고작 2계층 몬스터를 때려잡는 걸로 기둥서방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아무 능력도 없이 외모만으로 빈대 붙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가게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안 받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쓰러뜨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사라, 디아나, 레이아. 전투가 시작되면 너희는 일단 대기하고 있어."

    구원은 지평선을 가득 매우 듯 쳐들어오는 오크들의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이라니요? 구원은요?"

    "난 혼자 돌격 좀 하고 올게."

    구원은 이번엔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에?! 안돼요!"

    그러자 제일 먼저 우리 천사님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걱정 마. 성자의 손길을 쓸 테니까. 그거 한 방에 몬스터들 픽픽 쓰러지는 거 레이아도 봤잖아."

    "그, 그래도…."

    레이아는 불안한 눈동자로 구원을 쳐다봤다.

    "굳이 혼자 돌격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그거야 기둥서방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서지.

    하지만 얘들한테 대놓고 그렇게 말하기는 조금 쑥스러웠다. 애초에 얘들은 기둥서방이라고 생각도 안하고 있을 테니까.

    "명색이 클랜장인데 내가 너무 명성이 없는 것 같아서. 전에 디아나도 말했잖아. 명성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지금이 명성을 얻을 좋은 기회 아니야?"

    그래서 구원은 살짝 이유를 바꿔 말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면 디아나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흠. 그렇군. 자네도 일단 생각이란 걸 하고는 있었구먼."

    역시나 디아나는 구원의 말에 찬성하고 나섰다. 말투가 살짝 그랬지만 말이다.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아무 생각 안하고 사는 놈 같잖아.

    "정말 괜찮을까요?"

    "여차하면 사라양과 이 몸이 화력을 지원하면 되지 않나. 레이아 양도 멀리서 치료를 해주면 되고. 어차피 성자의 손길에 스치기만 해도 쓰러지는 녀석들이니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걸세."

    하지만 디아나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보람은 있었다.

    사라와 레이아는 살짝 불안해보였지만, 디아나가 설득하는데 힘을 보태줬다.

    "그럼 난 먼저 가볼게. 너희는 성자의 손길에 쓰러진 오크들을 처리해줘."

    "잠깐 기다리게."

    "응?"

    "아무리 쉬운 상대라도 방심은 금물일세. 마나가 부족해지거나, 위험해지는 상황이 오면 곧장 후퇴하는 걸세."

    "네. 누나."

    구원은 디아나를 향해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고, 오크 떼를 향해 달려 나갔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디아나와 키스하는 건 아직 조금 더 얘기가 진행되야 나올 것 같습니다.

    열세번째냥이 // 역시 티가 났군요.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더군요. 이러다가 씬만 3편을 써야할 것 같아서 묘사도 좀 줄이고 도중에 적당히 마무리했습니다. 요즘 씬을 쓰면 너무 길어져서 고민이네요.

    SheerBliss // 설명이 부족했네요. 디아나의 옆모습이 의자에 앉은 자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산초나베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