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4화 (1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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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아의 일상

    "그럼 다녀올게."

    "으으음. 다녀오게…."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디아나를 놔둔 채 저택을 나섰다.

    디아나는 또다시 그 광신도들과 마주할 생각에 상당히 우울해보였지만, 그것만큼은 구원도 어떻게 구해줄 방법이 없었다.

    강하게 살아라.

    우선은 그 센스 있는 재봉사의 옷가게에 들러서 레이아의 옷을 챙겼다.

    이건 지금 레이아가 입고 있는 것과 동일하게 의뢰한 거니, 크게 확인할 것도 없었다.

    중요한 건 한나에게 맡긴 장비들이다.

    "한나, 나 왔어. 맡겨놨던 장비들 강화는 다 끝났어?"

    "물론이지. 주문하신 대로 호화롭게 강화해줬다고. 따라와."

    한나는 바로 일행을 공방 쪽으로 안내했다.

    "자, 어때?"

    공방 한 구석에는 여러 장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설마 이게 우리 장비야?"

    만약 한나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못 알아봤을 정도로 모습이 변해있었다.

    밋밋한 모습이었던 가죽갑옷에는 뭔가 멋들어진 음각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색깔도 평범한 갈색에서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색으로 변했다.

    색부터 시원해 보이게 바뀌었군.

    강화 전에는 그냥 초보자용 가죽 갑옷이라는 느낌의 갑옷이 상당히 괜찮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틀릿과 부츠가 엄청 멋있게 변했다.

    건틀릿의 너클 부분과 부츠의 발끝에 발톱처럼 뾰족한 돌기들이 생겼는데, 이게 또 마음에 쏙 들었다.

    아마 웨어 울프의 발톱을 합성한 모양이다.

    돌기들의 크기는 자유로운 행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날카롭게 벼려져있어서 실용성은 충분해보였다.

    옷가게의 재봉사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은 멋이라는 걸 꽤나 잘 안다니까.

    역시 장비는 이렇게 점점 모습이 업그레이드돼야 강화하는 보람이 있지.

    "맘에 드나보지?"

    "응. 맘에 쏙 들어."

    구원은 당장 장비들을 몸에 걸쳐봤다.

    "오오. 시원한데?"

    대장간의 화덕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이 안은 꽤나 더웠는데, 갑옷을 입자 갑자기 순식감에 체감 온도가 확 떨어졌다.

    이거 신기하네.

    "그렇지? 마법 없이도 이런 게 가능하다니. 역시 몬스터란 놈들은 신기하다니까."

    아니, 댁이 이렇게 강화한 거잖아. 넌 신기해하면 안 되지.

    "너흰 어때 맘에 들어?"

    구원은 자신의 장비들에서 눈을 떼고 사라와 레이아를 바라봤다.

    "네. 괜찮네요."

    "네!"

    사라는 꽤나 덤덤하게, 레이아는 무척 기쁜 미소를 띠우고 대답했다.

    어째 상상했던 거랑 반응이 반대네.

    전투에 관련 된 것인 만큼, 레이아보다는 사라가 훨씬 기뻐할 줄 알았는데.

    아니. 레이아도 원래부터 스태프를 얻으려고 고생했었으니, 기뻐하는 건 당연한가.

    레이아는 스태프를 양팔로 꽉 껴안고, 거의 얼굴로 비벼댈 모양새였다.

    천사님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절로 풍족해집니다.

    특히 스태프가 이제는 확연히 몸 굴곡을 드러내는 사제복의 가슴골 사이에 끼어서 더더욱.

    저 스태프의 강화에 얼마나 많은 몬스터의 양물들이 들어갔을 지를 생각하면 조금 미묘한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안 돼. 되도록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지 말자. 우리 천사님을 더럽힐 순 없어.

    이번엔 사라를 제대로 살펴봤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건 활이다.

    왠지 활이 점점 더 커지는 거 같단 말이야.

    그만큼 모습도 화려해졌지만, 처음 사라가 들고 다니던 활과는 크기 차이가 상당히 나게 되어버렸다.

    저래선 들고 쏘기 힘들지 않을까? 궁사 보정이 있으니 상관없나?

    갑옷은 구원의 것과 마찬가지로 살짝 푸른빛이 감돌고 음각의 문양이 새겨졌다.

    물론 사라의 가죽갑옷은 구원의 것과 다르게, 조금 더 기동성을 살리기 위해 몸의 선이 그대로 드러날 만큼 매끈한 형태였지만 말이다.

    "이러니까 커플 갑옷으로 맞춘 것 같네."

    같이 강화를 맡긴 만큼 음각의 문양도 같은 모양으로 새겨져있고. 색깔도 똑같고.

    "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아요! 어떻게 강화한 장비를 보고 처음 감상이 그래요?"

    "뭐 어때. 싫어?"

    "시…! 꼭 싫다는 건 아니지만…."

    사라는 반사적으로 싫다고 하려는 것 같았는데, 무슨 생각인지 도중에 말을 바꿨다.

    오오. 이거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좀 더 칭찬해볼까?

    "이야. 이쁘고 좋네. 역시 옷걸이가 좋으니까 뭘 입어도 느낌이 사는군."

    "부, 부끄럽게 무슨 소리에요! 그만해요!"

    사라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면서, 쿨한 표정이 깨지려고 하고 있었다.

    좋아. 여기서 좀 만 더.

    "아예 이러고 돌아다닐까? 혼자 갑옷입고 다니기 부끄러우면 나도 같이 입고 돌아다녀줄게. 커플처럼…."

    "됐어요! 벗을 거예요!"

    분명 아예 싫어 보이진 않았는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옷을?"

    구원의 그런 고민과는 다르게, 입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헛소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갑옷을요!"

    결국 사라의 쿨한 표정이 깨지는 것보다 먼저 구원이 한 대 얻어맞는 것이 빨랐다.

    저걸 인벤토리에 넣으면서 ‘사라가 막 벗은 따끈따끈한 갑옷…하악 하악.’ 이라고 농담하면 이번엔 한 대 맞는 걸로 끝나지 않겠지?

    구원은 이번엔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농담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장비를 전부 챙기고, 신전에 도착했다.

    레이아는 준비를 위해 안으로 들어갔고, 구원과 사라는 밖에서 일단 대기하는 신세가 됐다.

    신전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평화롭네."

    "…그러네요."

    "사라야."

    "네, 네?"

    "안 잡아먹을 테니까 경계 좀 풀지 않을래? 이 오빤 쓸쓸해 죽을 것 같다."

    "누, 누가 오빠에요. 누가. 그리고 딱히 경계 같은 것도 안했거든요?"

    "그럼 이 거리는 뭔데?"

    참고로 사라는 구원의 옆 벤치에 앉아있었다.

    사라야, 벤치란 건 원래 하나에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거란다.

    "글쎄요? 마음의 거리?"

    "크헉."

    쿨한 표정으로 내뱉는 사라의 말에, 구원은 가슴을 부여잡고 앞으로 엎어졌다.

    이번 건 정말로 아팠다.

    말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갈비뼈를 관통하고 심장에 틀어박힌 기분이었다.

    "난…대체 앞으로 무얼 위해 살아가야…."

    "자, 장난이에요."

    과연 구원의 반응이 너무도 애달팠는지, 사라도 놀라서 얼른 구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구, 구원이 계속 장난만 치니까 저도 잠깐 장난친 거예요. 생각해보니 아무리 장난이라도 말이 너무 심했어요. 미안해요…."

    사라는 앞으로 꼬꾸라진 구원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구원의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좋아. 난 역시 틀리지 않았어.

    적어도 얘가 나한테 아예 호감이 없는 건 절대 아닐 거야.

    아까는 정말로 침울해졌지만, 사라의 반응에 구원은 바로 회복했다.

    넘어져도 일어나는 게 빠른 것이 또 내 수많은 장점 중 하나거든.

    하지만 구원은 아직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순 없지.

    "안 돼. 용서 못해."

    "네, 네?! 구, 구원도 아까 저한테 실컷 장난…."

    "으윽. 아까 심하게 상처받는 바람에 가슴에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워, 원하는 게 뭔데요?"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실은 그냥 놀리고 싶었을 뿐이야.

    뭘 요구하는 게 좋을까? 뭘 해달라고 해야 얘가 더 당황할까.

    구원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원이 말이 없자, 사라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구원의 머리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대고, 그대로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사라는 구원의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아있었다.

    그 상태로 구원의 머리를 끌어당겼으니, 자연스럽게 구원이 얼굴을 사라의 허벅지에 파묻고 엎어져 있는 모양새가 됐다.

    그 상태로 사라는 구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미안해요…. 진심이 아니었어요."

    얘, 얘가 사람 양심 찔리게 갑자기 왜이래.

    너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갑자기 허를 찔려서, 구원은 적잖이 당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개를 쳐들진 않았지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득은 취하는 남자라고 불러다오.

    하지만…나도 아까 놀린 건 사과해야겠지?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사과 안하고 있으면 완전히 개새끼잖아.

    구원 안에서도 적정선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다.

    "사라야 그…."

    막상 사과 같은 걸 하려니 쑥스러워서 구원은 머뭇거렸다.

    에잇. 이런 분위기가 문제야. 왜 갑자기 이렇게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좋아. 간다!

    "나도…꾸엑!"

    하지만 구원의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가 구원을 확 밀쳐낸 바람에, 구원은 그대로 벤치에서 굴러떨어졌다.

    "갑자기 이게 뭐하는…."

    "어머. 레이아. 준비 끝났어요?"

    사라가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레이아와 어제 본 사제 중 순수해 보이는 쪽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서있었다.

    분명 이름이…크리스였나?

    "네.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날씨가 좋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구원? 바닥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그만 일어나요."

    사라는 언제 상냥하게 굴었냐는 듯이 쿨한 표정으로 구원에게 말했다.

    이, 이것이….

    "구원씨 바닥에서 뭐하세요?"

    "아, 아니. 그냥 맨손 운동 좀 했어."

    "어머. 쉬는 날에도 열심히시네요."

    "하하. 내가 좀 성실하잖아. 가방 줘. 내가 옮길게. 그쪽의 크리스양도."

    "고마워요."

    레이아와 크리스에게 가방을 건네받으며, 구원은 사라를 노려봤다.

    사라는 레이아와 크리스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필사적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냥 남한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모양이다.

    사실 구원도 그 간질간질한 분위기에서 해방되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굳이 쉽게 용서해줄 필요가 없겠지?

    구원은 사라를 바라보고 입을 뻥끗뻥끗 거렸다.

    나중에 두고 보자.

    사라는 구원의 입모양을 읽는데 성공했는지, 살짝 절망한 표정이 됐다.

    안 그래도 내가 요즘 너만 보면 잘 하지도 못하는 심리 파악을 해보려고 골이 아팠는데, 이 기회에 너도 맘고생 좀 해봐라.

    그렇게 가볍게 사라에게 복수를 마치고 구원은 레이아와 크리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오늘도 빈민가로 가는 거지? 멀어?"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3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거예요."

    꽤 먼데. 잘도 이 가방을 들고 다녔네.

    뭐가 들었는지, 가방은 꽤나 묵직했다. 뭐, 나야 인벤토리에 넣으면 그만이지만.

    "어때요? 레이아랑은 잘 돼가요?"

    그렇게 조금 걷던 도중, 크리스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내용이 꽤나 의미심장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의 뜻이에요. 레이아랑 잘 돼가냐고요."

    "아니, 나랑 레이아랑은 딱히 그런…헉, 설마…!"

    구원의 머리에 한 가지 놀라운 가설이 떠올랐다.

    "호, 혹시 레이아가 나한테 관심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 있어?"

    "아뇨. 전혀."

    하지만 구원의 기대는 순식간에 박살났다.

    "그럼 왜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쪽은 레이아를 좋아할 거 아니에요. 레이아 같은 애랑 같이 다니는데 안 반할 남자가 있을 리가 없는 걸요."

    확실히 레이아가 여러모로 천사 같긴 하지. 가끔 보면 정말 우리와 같이 인간계에 사는 생물인지 의심이 된다니까.

    아니, 잠깐. 그 말은…?

    "혹시 레이아…인기 많아?"

    "그야 당연하죠. 말이라고 하나요?"

    응. 내가 물어봐 놓고도 괜한 질문이라는 생각은 들었어.

    젠장. 겨우 디아나한테 엉겨 붙는 놈팡이들을 처리해서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엔 또 레이아한테 어떤 놈팡이가….

    아냐. 진정하자. 레이아는 다른 애들이랑 경우가 달라.

    일단 적어도 섹스는 절대로 나하고만 할 수 있어.

    우선 그쪽 방면으로는 완벽하게 안심할 수 있어.

    다른 놈들이 백날 들이대 보라지. 섹스는커녕 키스만 해도 시체가 될 놈들이.

    구원은 순식간에 마인드 컨트롤을 끝냈다.

    "훗. 그래봤자 나한텐 안 되지."

    "오오. 자신감이 대단하네요."

    크리스는 짝짝짝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멋있지?"

    "네."

    "크으. 이놈의 인기란. 반하지 말라고?"

    구원은 스스로에게 도취돼서 말했다.

    멋있단 말은 언제 들어도 안 질린다니까.

    "네. 안 반해요."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딱 잘라 말하면 상처 받잖아.

    농담이야. 반해도 돼.

    "레이아 누나아아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마을 풍경이 조금씩 허름해지기 시작했고, 그 상태에서 조금 더 길을 들어걷자 갑자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뭐…라고? 사라의 영압이…사라졌다고…?

    연참은…제 의욕도 의욕이지만 시간이….

    요즘은 한 편 쓰기도 벅찰 정도로 너무 일이 바빠서요.

    이번 주말은…가능하려나?

    저도 확신은 못하니 기대는 하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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