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05화 (10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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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협회

바네사에게 심부름 시켜서 가져온 레이아의 나머지 사제복들도 전부 강화를 맡기고, 일행은 가게를 나섰다.

이제 볼 일은 전부 마쳤으니, 일행은 마차를 타고 디아나의 저택으로 향했다.

레이아는 길을 외워두려는 듯이, 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마저 그림이 되신다.

특히 입고 있는 하얀 사제복과 어우러져 더욱더.

게다가 마차의 흔들림에 맞춰 출렁이는 그곳은 감탄사밖에 나오질 않는다.

사제복이란 게 이렇게 섹시한 옷이었다니. 아니, 그냥 옷걸이가 좋은 건가?

아무튼 없던 페티쉬도 생겨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보다간 레이아 옷에 구멍이라도 뚫리겠네요."

사라가 옆에서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확실히 한 번 의식을 하고 나니, 살짝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래 사라가 묘하게 성실해서 일일이 간섭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태도다.

아니,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라의 저런 차가운 모습마저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진짜로 뚫렸으면 좋겠다."

"뭐라고요?"

"응? 아니. 내가 뭔 말 했던가?"

위험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본심이 튀어나와버렸네.

조심해야지.

"그, 그런데 생각해 보니 디아나 옷은 강화할 필요 없었네."

구원은 사라의 차가운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말을 돌렸다.

"음? 무슨 소린가?"

"아니. 디아나는 어차피 집에 그보다 더 좋은 장비가 차고 넘치게 있을 거 아니야. 굳이 강화할 필요 없이 집에 있는 걸 착용하는 게 낫지 않았어?"

"아니, 이 몸은 그걸 입고 다닐 걸세."

"왜?"

"그, 그야…이 몸이 최고급 장비를 두르고 뒤에서 봐주고 있으면, 자네들 실력이 어디 제대로 오르겠나?"

그런 건가. 지금도 충분히 디아나가 버텨주고 있어서 조금 무리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지만, 디아나 말은 그 이상으로 의지하지 말라는 거겠지.

너무 디아나만 믿고 설치기보다는, 스스로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하여 적을 상대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고.

확실히 납득은 된다. 납득은 되지만, 그래도 살짝 아쉽긴 했다.

디아나라면 전설급 아이템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걸 쓰지 않고 썩히게 되다니.

얘도 묘한 부분에서 고지식하다니까.

디아나의 저택에 도착하자, 메이드 한 명이 현관에 마중 나와 있었다.

"텔루나님.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음. 그들인가?"

"네."

"하아…. 알겠네."

디아나는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 앞에서든 당당한 디아나가 이런 표정을 짓는 상대라니. 대체 누구길래?

궁금증은 바로 해소가 됐다.

"텔루나니이이이이임!"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디아나를 부르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로비에는 로브를 입은 십 수 명이 무릎을 꿇고, 동시에 한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남성이 말했다.

"지금까지 어디 계셨던 겁니까! 텔루나님이 사라지신 후로 저희는…저희는…크흑, 찾아다녔습니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다.

다만 그 눈동자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광기 같은 게 살짝 엿보였다.

"그, 그랬나."

구원은 디아나가 왜 어두운 표정을 지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이러면 누구라도 질색할거다.

"디아나 얘들 뭐야?"

"음. 이 자들은…."

"네, 네놈이야 말로 뭔가! 텔루나님께 무슨 말버릇인가!"

구원의 물음에 디아나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니. 그러는 넌 지금 디아나 말을 잘랐는데. 그것도 버릇없는 짓 아니냐?

"뭐긴. 디아나가 소속된 클랜의 클랜장님이시다."

구원은 일단 자신의 지위를 어필해보기로 했다.

사실 지위랄 것도 없지만 말이다. 클랜도 어제 막 만든 클랜이고.

"핫! 텔루나님이 클랜같은 걸…."

"정말일세."

"그, 그럴 수가!"

남자는 마치 나라라도 잃은 듯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짓더니, 곧 구원을 엄청나게 노려봤다.

훗. 추하구나. 남자의 질투 따위.

"클랜장이라고 해서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놈이 텔루나님께 말버릇이 그게 뭔가! 텔루나님은 지위도 연령도 네놈 따위에게 반말을 들을 위치에 있는 분이 아니다!"

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구원은 고추 달린 놈에게 말로 질 생각은 없었다.

"디아나가 존댓말하지 말래. 디아나가 시키는 말은 제대로 지켜야지. 그치 디아나?"

"음."

구원은 일부러 도발하듯이 디아나를 연호하면서 말했다.

"으으윽. 네, 네놈…."

"너야말로 아까부터 반말인데. 난 디아나가 소속된 클랜의 클랜장이라니까? 지금 우리 클랜 무시하는 거야? 이거 디아나를 무시하는 거라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헛소리 마라! 아니, 마세…크흠! 텔루나님! 저는 절대 텔루나님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놈은 결국 구원과 대화하는 걸 포기한 모양이다.

훗. 그러게 덤비긴 왜 덤벼. 억울하면 너도 다음 생에는 미인으로 태어나라.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줄이게."

"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무, 무슨 일이라니! 텔루나님!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남자는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남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말게!"

디아나는 당황하면서 황급히 우리 쪽을 향해 돌아봤다.

응 걱정 마. 여기에 저런 정신 나간 놈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놈들은 아무도 없으니까.

"디아나님이 사라지신 이후로 저희 모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 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디아나님이 안 계시는 협회는 웃음을 잃고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고통을 맛보는 반시체들이 즐비해있는 공간에 불과합니다. 제발 다시 돌아오시어 저희를 구원해주십시오!"

아무래도 이놈들은 디아나를 협회인지 뭔지로 데려가기 위해서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몸은…."

"부탁드립니다!"

곤란해 보이는 디아나를 향해 로브 무리들이 일제히 외쳤다.

"이, 일단 진정하고 얘기라도 해보세."

디아나는 골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 쥐고 말했다.

지금까지 디아나가 가출한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는데, 과연 이런 문제가 있었나.

저런 애들이 떼로 달려들면 가출하고 싶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말하면 될 텐데. 왜 저렇게 확실히 쳐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걸까?

아직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그럼 이 몸은 이 자들과 얘기 좀 하겠네. 자네들은 편히 쉬고 있게나."

디아나는 로브 일당을 대동하고 위층으로 사라졌다.

돌아선 놈들의 로브 뒤에 박힌 문장이 묘하게 낯익었다.

저걸 어디서 봤더라?

아, 그래. 전에 길드에서 디아나를 찾아다니던 그 기사들.

"디아나. 괜찮을까요?"

사라도 걱정이 되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음. 뭐 일단 괜찮지 않을까? 태도는 저렇지만, 저 로브 놈들도 디아나를 존경하고 있는 모양이고. 디아나가 누구 강압을 받을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애초에 디아나한테 뭔가를 강요할 수 있는 애가 이 세계에 존재하긴 해?

요 며칠사이에 지고의 마법사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제대로 느낀 구원은 태평하게 생각했다.

디아나가 자기가 그럴 맘이 들지 않는 이상, 저놈들을 따라 갈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구원은 디아나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디아나가 평생을 걸쳐 쫓았다는 마법의 실마리가 내 스킬에 있는 거잖아?

게다가 디아나는 분명 구원이 늙어 죽을 때까지도 연구가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었다.

저번에는 가출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모양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 연구에 진척이 없어서 저들을 거절할 변명거리가 딱히 없었던 것도 한몫할거다.

지금은 구원의 스킬이라는 실마리도 확실히 잡은 상태고, 아직 연구도 다 안 끝났을 텐데 내 곁을 벗어날 리가.

뭐, 디아나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보다 레이아한테 저택을 안내해줘야지. 일단 여기를 클랜 하우스로 등록했으니, 아마 이제 앞으로 올 일이 많을 거야."

"네. 지금부터 안내하겠습니다."

구원이 안내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바네사가 안내해줄 모양이다.

물론 그래도 따라갈 거지만.

구원은 레이아의 조금 뒤를 따라가며 그 뒤태를 감상했다.

아직 딱 달라붙는 옷이 익숙지 않은 듯, 걸을 때 가끔 몸을 꾸물대는 게 더없이 훌륭하게 보였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꼬리 부분에 뚫린 구멍의 틈새로 희미하게 살색이 엿보였다.

아무래도 딱 꼬리 크기에 맞게 구멍을 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하면 답답할 테니 일부러 좀 넉넉하게 만든 건가?

아무튼 덕분에 살랑대는 꼬리 사이로 힐끗힐끗 엿보이는 살색이 구원의 낭심, 아니 남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레이아의 뒤태를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레이아의 엉덩이 부분을 가렸다.

"레이아. 뒤에 변태가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변태라니! 이건 남자의 본능이다!

"네? 아…."

사라의 말에 레이아가 구원을 돌아보더니, 살포시 얼굴을 붉히며 꼬리의 움직임을 멈췄다.

으앗. 꼬리가 멈추면 희미하게 보이던 살색이 완전히 다 가려지잖아.

"정말…. 꼬리가 그렇게 좋으세요? …에잇!"

레이아는 구원이 꼬리를 보고 있었다고 착각한 듯, 꼬리를 움직여 그 끝으로 구원의 가슴을 살짝 쓰다듬었다.

"크헛!"

"구, 구원씨? 괜찮으세요?"

구원이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무릎을 꿇자, 레이아가 놀라서 황급히 다가왔다.

"아니, 안 괜찮아. 죽을 것 같아."

이대로 죽으면 사인은 심쿵사다.

"어, 어쩌지. 꼬, 꼬리 만지게 해드릴까요?"

레이아는 당황하며 구원에게 꼬리를 내밀었다.

그 말은 즉, 엉덩이를 이쪽으로 내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구원은 이번엔 다른 이유로 일어설 수 없게 됐다. 아니, 어떤 의미론 이미 섰다고 봐야하나.

"…구원. 괜히 수작부리지 말고 일어나세요."

"어…음…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구원은 마음속으로 최대한 경건하게 애국가를 부르며 말했다.

"이젠 아예 대놓고 엉덩이를…!"

"아니, 잠깐만! 그런 거 아니야!"

확실히 보긴 했지만, 지금 일어날 수 없는 건 좀더 낮은 위치에서 엉덩이를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사라 넌 대체 날 얼마나 변태로 보는 거야.

나도 그 정도 상식은 있어.

"그럼 뭔가요?"

"어…음…그게…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자 얼른 가자."

겨우 아랫도리를 진정시킨 구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말했다.

사라의 의심스런 눈초리에도 구원은 꿋꿋이 철면피를 유지했다.

"여기가 레이아님의 방입니다."

저택을 한 바퀴 돌고, 마지막으로 사라와 디아나의 방이 있는 곳으로 왔을 때, 바네사가 한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하지만 전 신전에서 생활하는 걸요."

"디아나님께서 레이아님에게도 방을 하나 배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뭐. 가끔가다가 여기 묵을 일이 있을 지도 모르잖아. 어차피 방도 많이 남는 것 같고."

"그런가요?"

"그럼. 그럼."

방이 생겨서 레이아가 자주 묵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에, 구원은 사양하려는 레이아를 설득했다.

내 마음의 오아시스는 항상 곁에 두고 싶으니까.

"그럼 잠시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바네사가 한 방으로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디아나의 드레스 룸으로, 저번에 갔던 매장과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옷이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잠깐 치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미 드레스 룸에 대기하고 있던 몇 명의 메이드가 신속하게 레이아와 사라에게 달려들었다.

"네, 네?! 하지만 전 사제복이…!"

갑자기 메이드들이 레이아의 몸 구석구석을 만지며 이리저리 치수를 재자, 레이아는 놀란 모양이다.

사라는 어제 한 번 당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침착했다.

흐뭇한 광경이다. 흐뭇한 광경이지만….

구원은 이렇게 많은 수의 옷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으읏. 어제의 악몽이….

구원은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드레스를 입은 자태를 감상하는 건 식사시간에 해도 충분하다.

"그럼 난 잠깐 방에 가있을게. 이따 봐."

구원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 신속히 자리에서 이탈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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