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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04화 (10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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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랜 창설

    "그럼, 이왕 온 김에 예배라도 하고 갈까?"

    이미 점심시간이지만, 예배 정도는 하고 가도 괜찮겠지.

    "어머. 구원씨는 여신님을 신앙하시나요?"

    레이아는 기쁜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여신님 최고지."

    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여신님 만세삼창을 할 수 있을 정도야.

    "바람직한 태도네만, 오늘은 그만두세. 우리 고지식한 바네사는 그동안에도 마차 안에서 꼼짝도 않고 대기하고 있을 걸세."

    그러고 보니 바네사가 있었지.

    하는 수 없나. 계속 기다리게 하기도 미안하고.

    "그럼 전 이만 실례할게요."

    "잠깐만. 레이아도 같이 가자."

    "네? 하지만 볼 일은…."

    "실은 우리가 묵는 곳을 여관에서 디아나네 집으로 옮겼거든. 레이아도 위치를 알아둬야지. 그리고 장비 정비도 같이 하고 싶고."

    "어머. 그렇군요."

    그렇게 레이아까지 동행하여 우선은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그런데 레이아는 어디 가는 길이었어?"

    "잠깐 빈민가에요. 그곳 사람들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무료 진료소를 열거든요."

    빈민가라…. 판타지 세계관의 빈민가하면 그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 보다는, 할렘처럼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괜찮은 걸까?

    뭐, 레이아도 한두 번 하는 게 아닐 테고, 괜한 걱정인가.

    "역시 레이아는 대단하네."

    "아, 아뇨. 제가 아니라 신전에서 하는 일이에요. 저는 당연한 일을 하는 건데요."

    레이아는 살포시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그걸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해.

    저 가련한 얼굴을 보니, 구원은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름다우신데, 빈민가 녀석들도 눈이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런데 장비 정비는 뭘 할 생각인가요? 레이아씨 장비를 더 맞출 게 있었나요?"

    그때 옆에서 사라가 그런 질문을 했다.

    좋은 질문이다. 사실 구원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까 잠깐 떠올린 게 있다.

    "응. 그거 말인데. 레이아, 아까 그 제인씨는 사제복이 좀 다르던데 왜 그런 거야?"

    "아, 제인은 꽤 레벨이 높아서, 던전에도 자주 다니거든요. 던전 탐험에 맞게 사제복을 강화했다고 들었어요."

    "모양이 꽤나 달라지던데, 그래도 되는 거야?"

    "네. 던전에 다니는 분들께 그 정도 융통성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모양이 변하는 것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고 들었어요."

    레이아는 구원이 예상한 것과 비슷한 대답을 해줬다.

    사실 고레벨 전용 장비라고 생각했는데,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강화를 하는 거였나.

    "이 세계는 강화하는 게 많네. 새로 만들거나 하는 게 아니었어?"

    "뭐 하러 새로 만드나. 기존 장비에 재료만 보태서 강화하면 성능은 거의 동일하지 않나. 보통 장비를 새로 사는 건 서로 다른 용도의 장비를 맞출 때라네."

    어? 그런 거였어? 뭐야 그 원판불변의 법칙을 철저하게 박살내는 시스템은.

    아무튼 새로 사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거라면, 더 좋다. 아주 바람직하다.

    구원은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걸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런데 강화를 한다면 역시 재료가 들어가는 거지? 보통 어떤 재료들이 필요해?"

    "지금 가지고 있는 거라면 가죽과, 털. 그리고 몬스터를 잡아서 나온 장비를 녹여서 만든 마나가 담긴 철 정도일세.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화는 가능하겠지만, 잡화점에서 몇 개를 더 사도록 하세."

    "재료를? 뭐 더 필요한 거라도 있어?"

    "음. 앞으로 2계층도 가야하지 않나. 2계층에 다니려면 사막 도마뱀의 숨통으로 장비를 강화하는 건 필수라네."

    "사막 도마뱀의 숨통? 그건 또 뭐야?"

    "2계층에 간간이 보이는 몬스터라네. 사막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숨결을 내뱉는데, 그 숨통으로 장비를 강화하면 2계층의 더위에 맞서서도 어느 정도 지장 없이 움직일 수 있다네."

    과연. 디아나가 전에 말했던, 2계층으로 가기위한 준비라는 게 그런 거였나.

    2계층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2계층에 있는 몬스터의 재료로 장비를 강화해야 한다니.

    상당히 골치 아픈 시스템이다.

    뭐, 우리야 돈을 벌만큼 벌었으니 별 문제될 건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선 사막 도마뱀의 숨통을 사기 위해 잡화점 한스 & 에리나에 갔다.

    "어서 오세…으잉?"

    들어가자마자 한스가 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뭐야. 그 반응은. 이 가게는 손님한테 인사도 똑바로 못하는 건가."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무슨 귀족흉내인가. 아니, 그보다 옆에 계신 미인 분들은 누구인가?"

    "보면 몰라? 내 동료들이잖아."

    "자네, 나한테는 도둑놈이니 뭐니 했으면서 이런 미인들과 같이 다닌 건가?"

    한스가 억울해 죽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매번 구원 혼자서 재료를 팔러 들렀으니까, 한스는 사라 말고는 처음 보는 건가?

    게다가 그 사라마저도 한스가 봤을 때보다 훨씬 예뻐졌을 거다.

    난 매일 보니까 그다지 체감이 안 되지만, 레벨이 엄청 올라간 만큼 보정도 엄청나게 늘었을 테니 말이다.

    "훗. 부럽냐?"

    "그야 당연히…아니. 안 부럽네."

    "이미 늦었어. 다음에 만나면 에리나씨한테 다 일러야지."

    "그, 그만두게! 누굴 잡으려고 그러나!"

    한스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덩치에 안 맞게 에리나한테 잡혀 사는 건가?

    "누굴 잡기는. 널 잡으려고 그러지."

    "으윽…. 워, 원하는 게 뭔가."

    "사막 도마뱀의 숨통을 넘긴다면 아마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걸."

    "10…아니, 15퍼센트 깎아주겠네. 이 이상은 때려죽여도 안 되네."

    "뭐 어쩔 수 없지. 그 정도로 봐줄까."

    구원은 거드름을 피우며 그렇게 말했다.

    "후훗. 재밌으신 분이네요."

    레이아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아저씨의 어디가 재밌어.

    "저 아저씨가 재밌는 게 아니라 내가 재밌는 거지. 저 아저씨는 그냥 나한테 끌려 다닌 것뿐이고…."

    "뭘 그렇게 필사적으로 항변하나요. 꼴불견이에요."

    으윽. 사라야. 오랜만에 좀 아팠다.

    아무튼 정가보다 싼 가격으로 사막 도마뱀의 숨통을 조달한 일행은, 장비 강화를 위해 한나의 대장간으로 갔다.

    "강화를 하려고 하는데. 이번엔 좀 거하게 하려고. 재료들은 얼마든지 써도 되니까 최대한 성능을 올려줘. 그리고 여기 사막 도마뱀의 숨통도 있으니까 2계층 대책도 해주고."

    구원은 인벤토리에서 일행의 장비를 모조리 꺼내며 말했다.

    이왕 강화하는 거 굳이 사막 도마뱀의 숨통으로만 강화할 게 아니라, 아예 전체적으로 손을 보기로 했다.

    이젠 사냥터도 2계층으로 옮기게 될 테고, 싸우려면 장비도 든든한 편이 좋겠지.

    "좋아.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해야 겠군. 그런데 이렇게 한꺼번에 강화하면 강화비 좀 깨질 텐데?"

    "돈은 걱정 마. 그냥 이 재료로 할 수 있는 한 제일 좋게 만들어줘."

    "오. 화끈한데? 네 그런 점 좋아한다고."

    "응. 나도 네가 좋…."

    "구원."

    구원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려고 하자, 사라가 옆에서 바로 제동을 걸었다.

    아니. 이런 여자가 좋아한다고 말해주니까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알았으니까 그 표정 좀 어떻게 안 될까?

    "그런데 옷은 뭐야? 이건 우리가게에선 강화 못 해."

    한나는 구원이 건넨 장비를 살펴보던 중, 디아나의 마법사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그래?"

    "옷은 모험가 옷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에서 강화해야 하네."

    역시 게임처럼 그냥 한 가게에서 한 번에 전부 강화는 안 되는 건가.

    하는 수 없지.

    한나에게 장비를 맡기고, 일행은 디아나의 안내로 한 옷가게에 들어섰다.

    어제 갔던 그 가게와는 다른 의미에서 화려한 옷들이 진열된 곳이다.

    어제 간 곳에 있던 옷들이 귀족적인 느낌 물씬 나는 화려한 디자인의 옷들이었다면, 여기 있는 옷들은 뭐랄까…판타지 게임의 코스프레용 옷들이라고 하면 좋을까? 그런 다른 방향으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옷들을 살펴보는 모험가들이 꽤나 보였다.

    "옷을 강화하려면 이곳일세."

    "어서 오세요."

    혹시 이 애가 재봉사일까? 상당히 귀엽게 생긴 여자가 인사를 했다.

    키가 구원의 허리정도까지 밖에 오지 않는 걸 보니, 나이가 어리다기보다는 아마도 그냥 키가 작은 종족인 모양이다.

    "강화를 하려고 왔는데요."

    "네, 네. 무엇을 강화해드릴까요?"

    구원은 우선 디아나의 마법사 옷을 건넸다.

    "우선 이거랑…레이아. 벗어. 끄악!"

    지금까지 당했던 옆구리 공격 중에 가장 강력한 공격이 들어왔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요."

    "잠깐! 사라야! 진짜 아파! 미안! 말이 짧았어!"

    필사적으로 외쳐서, 간신히 사라의 옆구리 공격에서 해방됐다.

    젠장. 아무리 나보다 레벨 좀 높다고 해도, 내 방어력을 뚫고 공격이 들어오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더러운 용사보정.

    참고로 간밤에 결국 레벨 차이는 못 뒤집었다.

    "헉. 헉. 레이아. 일단 이 옷으로 갈아입고 사제복 좀 건네줄래?"

    "네."

    구원이 인벤토리에서 건넨 천옷을 받아들고, 레이아는 탈의실 쪽으로 사라졌다.

    탈의실이라…. 금단의 마력을 가진 장소다.

    지금 저 건너편에는 알몸의 레이아가….

    구원은 저도 모르게 탈의실 쪽으로 발이 움직였다.

    "어디가요?"

    사라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우리 레이아가 저쪽에서 무방비하게 있는데, 혹시 위험한 놈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어떻게 되겠어.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으려고."

    "여기서 자네가 제일 위험한 것 같네만."

    "뭐? 설마? 나같이 순수한 사람이 위험?"

    "…아, 안 어울리니까 그런 얼굴은 그만두게나."

    구원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쳐다보자, 디아나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여기요."

    그 사이에 레이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버렸다.

    젠장. 실수를 가장해서 살짝 엿볼 수 있을까 했는데.

    구원의 천 옷을 입고 나온 레이아는 또 볼만한 모습이었다. 옷이 크다보니, 가슴골이 살짝살짝 보이는 게 무척이나 섹시했다.

    청순한 얼굴로 저런 섹시함이라니. 최고다. 레이아 누님!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사제복을 더 가져올 걸 그랬네요."

    그러고 보니 사제복이 입고 있던 것 하나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이건 내 불찰이다. 레이아 누님의 사제복을 전부 개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

    "신전에 다시 한 번 다녀올까?"

    "그럴 필요 있나. 바네사를 시켜서 가져오도록 하세."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나. 귀족적인 발상이군.

    "그럼 우선 디아나의 마법사복이랑 레이아의 사제복. 이 두 개만 먼저 강화해주세요."

    "네, 네."

    "아, 잠깐."

    구원은 슬쩍 여성진들의 눈치를 살피며 재봉사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이왕이면 사제복은 몸에 딱 들어맞게 줄여주세요."

    이걸 못하면 오늘의 강화는 전부 실패나 다름없다.

    "손님도 대단하시네요. 네. 주문 받았습니다. 손님 잠깐 치수를 확인하겠습니다. 여기로 와주세요."

    재봉사는 구원의 말을 듣고 장난스런 미소를 짓더니, 레이아의 손을 이끌고 갔다.

    좋아. 저 재봉사는 뭔가 좀 아는 것 같군. 훌륭한 가게야.

    여기도 단골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마구 든다.

    디아나와 레이아의 옷을 강화하는 동안, 가게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레이아가 이런 차림인 채로 밖에 돌아다니기도 곤란하고 말이다.

    "자, 다 됐습니다."

    그렇게 가게 안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자, 재봉사가 옷을 가지고 나왔다.

    우선 디아나의 옷은 어차피 로브다보니 그다지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자수가 좀 추가되고, 재질이 좀 더 매끈해 보이는 정도다.

    디자인적인 측면만 보면 레이아의 사제복도 마찬가지지만, 이쪽은 극적으로 변한 게 하나 있다.

    "이, 이거. 좀 작지 않나요?"

    "아뇨. 손님의 사이즈에 딱 맞게 조절했습니다."

    그렇다.

    레이아의 몸에 딱 들어맞게 줄여진 사제복은 레이아의 훌륭한 몸매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지금 내 볼에 흐르는 물은, 분명 감동으로 빛나고 있을 거야.

    "훌륭해! 브라보!"

    구원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그런가요?"

    레이아가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에 따라서 꼬리도 마치 몸을 가리듯이 레이아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렇다. 저 재봉사는 무려 레이아의 꼬리도 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줬다.

    저렇게 딱 맞는 옷을 입기 위해서는 당연한 작업이었겠지만, 구원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거다.

    훌륭하다. 훌륭해!

    구원은 재봉사를 바라보며 엄지를 척 세웠다.

    "아주 좋아 죽으시네요."

    이 순간만은 옆구리를 꼬집는 사라의 손조차 구원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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