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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7화 (9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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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랜 창설

서류와 펜을 건네받은 디아나는, 처음 항목부터 써나가지 못하고 구원을 바라봤다.

"그런데 클랜명은 어떻게 할 건가?"

그러고 보니 그걸 안정했네.

클랜명이라. 사실 구원은 이런 걸 정할 때 고민을 안 하는 성격이다.

"세이비어스Saviors 어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닌가?"

뭐 어때서 그러냐! 난 게임 시작할 때 캐릭터 이름도 내 이름 그대로 시작한 놈이다. 불만 있냐?

게다가 세이비어스란 이름이 그냥 내 이름 따서 지은 것만도 아니다.

우린 결국 마왕을 물리치고 이 세계의 구세주가 될 테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선전포고의 의미도 담겨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뭐 어때. 뜻은 좋잖아? 아니면 디아나는 반대야?"

"아니, 반대하는 건 아니네만…."

"사라는 어때?"

"네, 네? 아, 네. 저도 그걸로 괜찮아요."

사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구원의 물음에 새침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쿨한 표정 짓고 있어도, 그렇게 두리번거리면 촌티난다 사라야.

말 해줘야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괜히 나서서 구박당할 일을 만들 거 없지. 게다가 아닌 척 하면서 신기한 듯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꽤 귀엽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레이아도 데려올 걸 그랬네."

이런 건 이왕이면 전원의 의견을 들어보고 정하고 싶은데.

그리고 오전에 그렇게 호의호식했는데, 레이아만 따돌린 것처럼 되어버리기도 했고.

그야 레이아까지 동행했다면, 쇼핑 중에 내가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레이아양이라면 좋아할 걸세.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 이름이기도 하고 말일세."

그도 그런가. 그래도 일단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저…텔루나님? 이 자는 대체…?"

구원이 그렇게 디아나와 대화를 하고 있자, 접수대에 있던 아줌마가 경악한 표정으로 구원을 바라봤다.

얘랑 말 트고 얘기하는 게 그렇게 신기한가?

그냥 처음 만났을 때부터 편히 말하라고 하던데.

"우리 클랜장이 될 자일세."

디아나는 딱히 감출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 텔루나님이 클랜장이신 게 아니고요?"

"이 자가 클랜장일세."

아줌마의 얼굴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변했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댁 나이를 생각해.

구원은 왠지 이 아줌마랑 눈을 마주치기 무서워졌다.

클랜명이 정해지자, 디아나는 거침없이 서류의 항목을 채워갔다.

슬쩍 들여다보니 클랜 하우스의 주소 같은 것도 있었는데, 저건 어디 주소를 적은 걸까.

"흠. 클랜 문장은…."

"좋아. 또 내가 나설 차례로군."

전혀 정해둔 건 없지만, 난 이런 걸로 고민하지 않는다.

내 숨겨진 예술성을 발휘할 때가 왔군.

"혹시 남는 종이 하나 있나?"

"아, 네."

"여기다가 드래곤 한번 그려보게."

디아나는 아줌마에게 빈 종이를 받더니, 구원에게 펜과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드래곤? 뭐 어려울 건 없지만."

대체 왜?

구원은 순순히 종이에 드래곤을 그렸다.

길쭉한 대가리. 뾰족한 뿔. 굵은 다리와 몸통. 짧은 앞다리에 박쥐 날개.

모티브는 불 속성 주황색 드래곤의 최종 진화형이다.

요즘엔 721마리라고 하더라. 151마리까지는 이름도 전부 외웠었는데.

흠. 좋아. 완벽하군.

"나중에 정해도 되겠는가?"

디아나는 구원의 그림을 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아니, 왜?! 이정도면 잘 그렸잖아?!

젠장…. 뭐가 문젠데. 꼬리에 불꽃이 달린 게 문제야?

"네. 물론입니다."

"그럼 나중에 사람을 보내겠네."

그렇게 말하고 디아나는 나머지 항목들도 전부 채워서 서류를 제출했다.

"그 외에 클랜 창설 자격이 되는지 확인 같은 걸 하는 걸로 알고 있네만."

"아, 아닙니다. 텔루나님 상대로 어떻게 감히…."

"그런가? 하지만 원칙은 원칙이지 않나."

"텔루나님 같은 분들을 위한 예외 항목이 있습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아줌마는 황송하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런가. 그럼 이걸로 끝인가?"

"네. 나중에 클랜 문장만 여기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흠. 알겠네. 그럼 수고하게나."

"네! 안녕히 가십시오!"

일행은 그렇게 건물을 나섰다.

"이거…내가 올 필요 없지 않았어?"

대체 난 아침부터 무엇을 위해 그런 고생을….

구원은 인생이 무상해졌다.

"무슨 소리인가. 클랜장은 자네니 자네가 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아님 뭔가? 같이 와서 억울하기라도 하다는 건가?"

"아뇨. 그럴 리가요. 저야 디아나님과 함께해서 영광이죠."

디아나의 서슬퍼른 눈초리에, 구원은 얼른 꼬리를 말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구먼. 원래는 자격 확인 같은 걸 보는 시간도 계산하고 있었네만."

"자격이란 게 뭘 확인하는 건데?"

"이 몸도 클랜 창설은 처음이니 확실하진 않네만, 클랜 구성원의 명성이나 영향력 같은 걸 확인한다고 알고 있네. 아무나 클랜을 만들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일세."

아까 그 아줌마가 당황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마법사님 상대로 명성이나 영향력 시험 같은 걸 하려면 그야 피가 마르겠지.

"그런데 클랜 하우스 주소는 어디를 적은 거야?"

"이 몸의 저택일세."

"응? 그래도 돼? 괜찮겠어?"

"안될게 뭐 있나. 상관없네."

디아나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오오. 갑자기 디아나님 뒤로 후광이!

"그럼 이제부터 뭘 하죠?"

"흠. 그렇군. 원래는 내일로 미루려고 했네만, 그럼 길드에 가보겠나?"

"그 전에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음. 그러세."

애초에 관청에 들르기 위한 옷이었다.

모험가 길드에 가는데 이런 옷을 입고 가는 건, 그냥 관심 종자나 하는 짓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정장차림은 불편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워낙 활동성이 좋은 모험가 차림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이런 차림에 적응이 안 된다.

"아…."

하지만 옆에서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원은 슬쩍 사라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평소와 다름없는 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레스 같은 건 웬만해선 입을 일이 없기도 하니, 혹시 더 입고 지내고 싶은 건가?

그냥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다. 그냥 이대로 가자."

"음? 무슨 바람이 분 건가?"

"아니. 그냥 니들 예쁜 모습이나 더 보려고.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보겠어."

"하, 할 수 없네요. 그래요 그럼."

사라가 이때다 싶었는지 잽싸게 반응했다.

역시 내 착각이 아니었어.

사실 길드에 이런 차림으로 가는 건 조금 쪽팔리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만하지.

그래서 이번에도 마차를 잡고, 길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엄청나게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윽. 역시 너무 눈에 띄긴 하네.

"아, 저, 가, 갈아입고 올까요?"

사라도 드디어 길드에 이런 차림으로 온다는 게 어떤 행동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쏟아지는 시선에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을 모르면서 말했다.

쯧쯧. 아직 멀었구나. 이럴 땐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야하는 법이야.

"뭐하러?"

"구원은 이 시선이 안 느껴져요?!"

"당연히 느껴지지! 다 우리가 너무 뛰어나게 미남미녀라서 저렇게 보는 거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멋있고 예쁜가 보지! 보고 싶으면 더 당당히 보라고!"

"그, 그만해요!"

구원이 정색하고 외치자, 사라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얼른 뜯어 말렸다.

"자네…사라양을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게나."

디아나는 옆에서 한숨을 쉬면서 그런 소리를 했다.

아니, 놀리다니. 난 완전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저, 절 놀린 거예요?!"

"아니. 이럴 땐 원래 정색하고 나가야돼. 봐. 이제 우릴 보는 시선도 많이 사라졌잖아."

구원의 말대로, 아까에 비에서 확연히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줄어있었다.

훗. 원래 사람들이란 대놓고 하라고 하면 오히려 안하는 법이지.

"그냥 자네 행동에 기가차서 그런 것 아닌가."

디아나는 대마법사님답게 금방 진리를 파헤쳐내셨다.

"뭐 그런 것보다 볼 일이나 보자고. 그냥 안내원 누님한테 가서 말하면 되나?"

"흠. 따라오게나."

디아나의 뒤를 따라가서 도착한 곳은 구원이 평소에 신세를 지던 안내원 누님이 있는 곳이었다.

"잘 지냈나?"

"네? 어머. …혹시 디아나님?"

"음. 오랜만이군."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거예요? 혹시 전생하셨어요?"

"음. 뭐 그렇게 됐네."

"아직 전생하실 때는 아니셨던 게…어머, 구원씨? 그럼 혹시 그때부터 계속 디아나님과 같이 다니셨던 거예요?"

"네, 뭐. 누님도 디아나랑 아는 사이였어요?"

"네. 저도 엘프니까요. 그보다 지금 그냥 이름으로…."

안내원 누님은 긴 옆머리를 살짝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 귀가 길다.

긴 귀를 머리에 딱 붙이고, 뒷머리를 묶으며 그 안쪽에 고정 시킨 느낌이랄까.

"상관없네. 이 몸이 그러라고 했네."

"보통은 그런다고 해서 그렇게 부를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안내원 누님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보다, 길드장에게 안내해 줄 수 있겠나. 할 말이 있다네."

"어머니 아니, 길드장님께요? 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어머니? 지금 어머니라고 했어?!

대체 당신은 왜 여기서 안내원이나 하고 있는 건데?!

어쩐지 이상하게 레벨이 높다고 했어! 얼굴도 혼자 유독 예쁘고!

알고 보니 완전 높으신 분이었잖아.

난 이런 분한테 섹스 애널라이즈를 사용해 보겠다고 그렇게 고군분투한 건가….

안내원 누님은 데스크 옆을 열어 통로를 만들고, 일행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데스크 안쪽의 문으로 들어가자, 사무실 같은 곳이 나왔다.

그곳에선 여러 사람들이 종이다발들을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쪽에는 이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나.

안내원 누님은 그곳을 지나쳐,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몇 층인가 올라가서 아마 최상층에 도달했을 때, 드디어 커다란 문과 마주했다.

"길드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이 시간에 약속된 사람은 없을 텐데."

안내원 누님이 문을 두드리고 말하자, 안에서 차분한 분위기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겠네."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디아나가 맘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가…디아나."

구원도 디아나를 따라 들어가자, 이번에도 역시 엄청난 미인이 튀어나왔다.

금발에 벽안. 안내원 누님과 닮았지만, 조금 더 성숙하고 차분한 분위기다.

"오랜만이군."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갑자기 만나러온 거죠? 당신이 사라지고 마법사 협회는 난리가 났어요. 그 놈들이 저한테까지 찾아와서 얼마나 귀찮게 구는지…."

길드장은 디아나를 보자마자 쏘아붙였다.

"여, 역시. 그런가. 이거 미안하구먼."

디아나도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얘 가출한 거 맞잖아.

"하아. 무슨 일로 온 거죠?"

"음. 실은 던전 일로 할 말이 있네."

"네? 디아나가 던전이요? 이제 그만 다니시는 거 아니었어요?"

"음. 실은 요즘 다시 들어갈 일이 생겨서 말일세."

디아나가 살짝 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드장도 그제야 구원의 존재를 알아챈 듯, 구원을 바라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 설마 남자가 생긴 거예요? 확실히 생긴 건 괜찮은데…."

오오! 생긴 게 괜찮단 소릴 들었어!

역시 내 얼굴이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은 아니라니까!

사실 외모 언급을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살짝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는 상태였다.

혹시 이 세계는 미남의 기준이 다른 걸까 하고 말이다. 역시 난 잘생긴 거였어!

"무, 무슨 소린가! 그런 거 아닐세! 조금 특이한 스킬을 가진 이방인이라 같이 다니며 실험을 해보는 걸세!"

"하긴. 마법밖에 모르는 당신이 그럴 리가 없죠."

디아나의 항변에 길드장은 바로 납득 하고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던전 관련 무슨 얘기를 하러 왔나요?"

"음. 듣고 놀라지 말게나. 실은 말일세…."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selene0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분명 몰라뵈서라고 썼는데 한글이 자동으로 맞춤법을 수정했나 보네요.

카미카제류 // 거짓말이면 금방 들킬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사칭이라는 미친 짓을 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들고요. 그 이유는 나중에 나옵니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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