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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2화 (9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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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랜 창설

    "그럼 난 마석부터 정산하고 갈게."

    길드에 도착하고, 구원은 언제나처럼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뭘 빼고 정산해야하지.

    오크 초월종이랑 계층의 주인만 빼면 되나? 아, 2계층 오크들 잡은 것도 빼야 되겠구나.

    비밀이 있다는 건 이래서 귀찮다.

    "아니. 오늘은 그냥 가세."

    "응? 왜? 걱정 마. 이번엔 딴 길로 안 샐게."

    "어차피 지금 해봐야 또 빼먹고 정산해야하지 않나. 그 건으로 긴히 할 말도 있으니, 일단 가세나."

    디아나의 설득에 일행은 일단 다 같이 여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사도 룸서비스로 주문하여 구원의 방에 다들 모여 앉았다.

    "클랜을 만드세."

    디아나가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클랜? 우리끼리?"

    "음."

    "…뭣 하러?"

    클랜이라고 하면 보통 대형 파티 여럿이 친목 도모나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친 연합을 말한다.

    그런데 겨우 네 명이서 굳이 클랜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클랜이란 건 무조건 규모가 커져서 만드는 게 아닐세. 물론 규모가 커지면 필수적이지만, 규모가 작아도 클랜을 만드는 경우는 여럿 있다네."

    "자세히 설명해줘."

    "음. 하긴 다른 세계에서 온 자네는 잘 모르겠구먼. 우선 클랜이란 건 그냥 모험가 몇 명이 뭉친 파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네. 국가에서 정식으로 세력을 인정받는 집단인 거지. 때문에 많은 수가 모이는 경우에는 관리를 위해 의무적으로 클랜 등록을 하도록 되어있다네.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클랜을 등록하면 정식으로 권리를 주장할 자격도 갖게 된다는 말이 되네. 한 마디로 말해 우리가 다니는 비밀 구역의 정보를 길드에 일방적으로 넘기는 게 아니라, 그 곳에서 얻을 이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게 된다는 말이지."

    과연. 요약하면, 비밀 구역의 정보를 그냥 길드에 넘기는 건 아까우니 이득 좀 챙기자는 거다.

    하지만….

    "우리 넷이서 클랜을 만든다고 그렇게 잘 풀릴까? 오히려 힘으로 누르려고 들 것 같은데."

    여기 사람들이 다들 규칙을 준수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거대 세력 중에는 아직 힘이 약한 일행에게서 그 권리란 녀석을 강압적인 수단으로 뺏으려고 하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네는 정말로 이 몸이 누구인지 잊는 것 같군 그래."

    하지만 디아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구원을 바라봤다.

    아차. 그랬지.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디아나는 무려 지고의 대마법사라고 사람들이 공경하는 대마법사다.

    아무리 소수 클랜이라고 해도, 이런 애가 멤버로 떡하니 있으면 웬만큼 간이 크지 않은 이상 강압적인 수단을 취하려는 놈들은 없겠지.

    "그런데 그러면 네가 어디 있는지 다 소문내고 다니는 거잖아. 괜찮아? 너 가출했잖아."

    "가, 가출 아닐세! 그거야 뭐…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라니. 나한테 말해봤자 나도 모른다고.

    아무튼 클랜이라….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던전에서의 권리만 주장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뒷일을 생각해도 클랜을 만드는 건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결국 나와 사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힘을 기르고 마왕을 쓰러뜨리는 거니까.

    클랜을 만들어서 세력을 만들어두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 그러기로 할까. 하자고. 클랜 등록. 그래서 클랜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절차야 복잡할 거 없네. 관청에서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몇 가지 심사만 거치면 된다네. 이 몸이 알고 있으니 걱정 말게나. 자네는 이 몸만 따라다니면 되네."

    역시 믿음직스러우시다. 이런 상황에서 디아나만큼 의지되는 애가 없지.

    "그런데 결국 비밀 루트를 공개하자는 말이잖아요? 괜찮을까요?"

    "음. 지금까지 계층을 넘어가는 통로는 하나밖에 발견되지 않았었네. 하지만 저번 발견으로 또 다른 통로가 발견됐지. 이건 우리만 알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중대한 사안인 것 같네. 어차피 완전히 2계층으로 넘어가면 그 구역에 갈 일도 없어지기도 하고 말일세. 그렇다면 아예 공개를 해서 이득을 취하고 명성도 챙기는 게 낫지 않겠나?"

    "이득은 그렇다 치고 명성이라…. 디아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이 몸도 그렇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네만, 그래도 살다보면 명성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라네. 게다가 자네는 특히 그렇겠지. 자네들은 아직 고작 던전 초입의 초월종 발견으로 조금 알려진 신출내기 아닌가. 이 기회에 명성을 좀 쌓게나."

    오오. 뭔가 오랜만에 나이 값하는 대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특히 그렇다니? 마치 난 앞으로 명성이 무조건 필요할 거라는 말투다. 대체 뭐지?

    "난 왜 특히…."

    "문제는 그쪽 루트를 공개하고 나서 마나풀 서식지의 관리를 어떻게 할지일세."

    확실히. 아무리 비밀스럽게 숨겨진 곳이라고 해도, 그쪽 루트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생기면 우리처럼 그 방을 발견하는 사람도 생길 거다.

    그렇다고 그냥 거기까지 공개하기에는 아쉽다.

    마나풀이 자라는 속도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양의 고정수입이 날아가 버리는 결과가 될 테니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두고 직접 관리를 하는 거겠지만, 그럴 인원은 없고. 혹시 위탁 같은 건 할 수 없을까?"

    "위탁?"

    "그래. 신전에는 마나풀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아예 신전에 그 장소를 알려줘서 관리를 맡기고 수익의 일정부분을 넘기게 하는 거야. 안되려나?

    아마 신전정도 되면 거기를 상시 관리할 정도의 인력은 있겠지.

    "아뇨! 될 거예요! 반드시 될 거예요! 제가 대사제님께 잘 말씀드릴게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구원의 제안에 레이아가 튀어오르듯이 의자에서 일어나 구원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아 가슴에 끌어안았다.

    으음. 훌륭한 감촉이다. 게다가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봐라.

    천사님이 저런 시선으로 바라보시는데 내가 거부할 리가 없지.

    "그럼. 신전에 가서 한 번 얘기해보죠. 어차피 신전에는 가야하고."

    공부하러 가는 거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비밀 루트를 공개하는 쪽으로 얘기가 진행됐다.

    몇 가지 세세하게 더 생각해야할 부분은 있지만, 그건 차차 생각해보면 되겠지.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좋아. 그럼 일단 얘기는 일단락 된 거지? 다들 수고했어. 오늘은 이만 해산!"

    마침 다들 식사도 끝난 상황이다.

    구원은 지금부터 있을 일에 벌써부터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외쳤다.

    "내일은 바쁠 테니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적당히 하게나. 적당히."

    구원이 왜 그렇게 신난 건지 눈치 챘다는 듯이, 디아나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그렇게 내뱉은 후 방을 나섰다.

    그렇게 티가 났나. 살짝 부끄럽네.

    하지만 사라와 레이아는 둘 다 구원의 방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디아나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붉힌 채 구원과 눈을 못 마주치고 있는 레이아는 당연하다.

    지금부터 일을 치를 거니 말이다.

    오히려 저런 태도는 바람직하다. 저 얼마나 가련한 모습이냐.

    문제는 사라다.

    "저…사라양?"

    "네? 왜요?"

    "오늘은 이만 해산…."

    "아, 그냥 여기서 씻을게요. 귀찮게 구원이 굳이 제 방으로 다시 오는 것보다는 그게 낫죠?"

    사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얘 설마 순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던전에 다녀오면 일단 무조건 자기가 먼저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오늘은 레이라 차례인데."

    구원은 사라의 눈을 똑바로 보고 확실하게 말했다.

    이런 건 문제가 터지기 전에 확실히 정해둬야지.

    그러자 사라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잠깐 얘기 좀 하죠."

    불만인 건가?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다.

    사라가 목적을 가지고 구원과 관계를 맺으려는 것처럼, 레이아가 파티에 낀 목적도 자신의 체질을 고치기 위해서다.

    사라 혼자만 급한 게 아니란 말이다.

    "잠깐만 기다려. 레이아. 먼저 샤워라도 하고 있어."

    구원은 결의를 다지고 사라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사라야. 던전에 다녀오면 무조건 너부터 하는 게 아니라, 순서는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하는 걸로 하자."

    "그야 당연하죠. 제가 그렇게 저만 아는 여자로 보였나요?"

    구원의 말에, 사라는 오히려 상처받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어, 어라? 그게 아냐? 그럼 뭔데?

    "그래서. 그렇게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할 때, 정말로 오늘이 레이아 차례인가요?"

    사라는 뭔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구원은 사라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다가, 곧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얼어붙었다.

    서, 설마….

    구원은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꿀꺽하고 울렸다.

    "저…그…실은 말이죠…. 그게 던전에서 살짝 기묘한 일이 있긴 했는데…."

    거짓말 하면 큰일 난다.

    구원은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사라에서 실토했다.

    "그래서. 순서대로 하면 레이아 차례인가요?"

    사라는 완벽한 무표정으로 구원에게 되물었다.

    아니, 자세히 보면 눈동자 안에서 분노의 불길이 조용하게 타오르는 것 같다.

    역시 완전히 눈치 채고 있었잖아.

    설마 그때 깨어있었던 거야? 왜 그땐 말 안했는데?

    아니, 말 안 해줘서 감사합니다만. 디아나한테 들켰으면 정말로 죽었을 거다.

    "자, 사라야. 진정하고 내 말을 좀 들어봐."

    "어머? 전 지금 무척 진정하고 있는 걸요."

    아냐. 너 지금 엄청 무서워.

    "사실 말이야. 레이아는 갑자기 그런 자극을 받으면 성격이 돌변해서 남자를 잡아먹으려고 들어. 레이아 스스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못하고 말이야. 내가 저번에 너한테 그랬던 것처럼 잠버릇으로 레이아를 건드리는 바람에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그리고 중요한 건, 그땐 끝까지 안 갔어."

    구원은 결국 사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아 미안.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사라가 어디 가서 그런 얘기를 떠들고 다닐 애는 아니니까 용서해줘.

    "그런 일이…. 흥. 그렇다고 용서해 줄 것 같아요? 끝까지 안가면 끝인가요? 그래요 그럼. 레이아랑 즐거운 시간 되세요."

    사라가 그 일을 알고 있는 이상, 순서대로 레이아의 차례라는 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끝까지 가고 안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레이아의 목적이 구미호화의 치료고, 그 사건으로 분명히 실마리가 잡히긴 했으니까.

    순서대로라면 확실히 사라의 차례가 맞다.

    구원이 오늘 레이아와 하려는 건, 레이아가 그 날 일을 모르고 넘어가게 하기 위한 짓에 불과하다.

    사라 입장에서는 구원이 약속을 어긴 게 되는 거지.

    저번에 사라가 자길 소홀히 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거기까지 생각한 구원은 그대로 가버리려고 하는 사라의 손을 황급히 붙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뭔가요?"

    "지금 어디 가려고?"

    "오늘은 해산이라면서요? 제가 지금부터 어딜 가든 구원이랑 상관있나요?"

    젠장. 역시나.

    구원읜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다.

    이대로 사라를 그냥 보내면 그대로 다른 남자와 놀아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오늘은 레이아와 하는 걸 포기하고 사라와 하면, 던전에서 있었던 일이 레이아에게 들통 난다.

    아마 사제는 다른 사람에게 행위가 보이는 걸 금기시 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는 이상, 그걸 들킨다는 건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

    어쩌면 좋지.

    "오늘 못하는 건 미안. 레이아가 그 날 일을 기억 못하니 어쩔 수가 없어. 사라도 레이아가 왜 우리 파티에 왔는지 알잖아? 내가 절대 널 소홀히 하는 게 아니야."

    결국 전부 사실대로 말하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사라가 다른 남자랑 하다니. 나는 여러 여자랑 하면서 이러는 건 내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대 남자를 찢어 죽이고 싶어진다.

    "흥. 정말일까요."

    "정말이고말고! 내가 널 소홀히 여길 리가 있나. 오히려 난 널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그러니까 부탁이야."

    사라를 필사적으로 말리느라, 구원은 고개를 숙이면서 평소 같으면 낯간지러워서 하지도 못했을 말을 서슴없이 했다.

    구원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사라도 구원의 진심이 조금 느껴졌나 보다. 붙잡고 있는 손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크흠. 아무래도 정말인 모양이네요. 알았어요. 이번 한번만 넘어가드리죠. 하지만 다음은 없어요."

    사라는 쿨하게 말하려다가 삑사리가 나서, 헛기침을 하고 다시 쿨하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 사라의 얼굴을 보니, 스스로도 부끄러운지 얼굴이 엄청나게 빨갰다.

    구원도 평소 같으면 삑사리를 듣자마자 웃었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사라야!"

    "꺄악!"

    구원은 사라를 힘껏 껴안았다.

    내 억지도 받아주다니. 내가 처음 만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얘가 표정은 이래도 애는 참 착해요.

    "고마워. 사라야."

    "아, 알았으니까 떨어져요!"

    사라는 양손으로 각각 구원의 가슴과 얼굴을 밀쳐내고 얼른 떨어졌다.

    "이번 한 번 만이니까요. 다음은 없어요."

    사라는 돌아서서 그 말만 내뱉고 황급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전생 후 디아나가 몇 살 정도로 보이는 지는 일부러 자세히 묘사를 안 하고 있습니다. 성인 소설인지라 법이 무서워서요…. 독자분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저번 화 마지막 구원의 감상은 기대치가 레이아였던 데다가, 등이라 감촉을 느끼기 힘들어서 더 그렇게 느낀 겁니다. 아예 없는 수준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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