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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89화 (8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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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들의 영역

    그 이후로도 대충 2계층의 오크들의 특징을 듣고, 일행은 일부러 좁은 움막에 들어가 잠을 잤다.

    입구에 알람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역시 비밀기지와는 다르게 안전이 보장되는 곳은 아니다보니 오랜만에 불침번을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 디아나와 레이아를 양 끝에 두죠."

    구원이 입을 열기 전에, 사라가 먼저 그런 제안을 했다.

    "괜찮겠어? 너도 오늘 기절까지 했었잖아."

    "괜찮아요. 그건 이미 전부 회복 됐으니까요. 어차피 누군가는 중간에 봐야 하잖아요?"

    그야 그렇긴 하지.

    하지만 이렇게 나서서 맡아주면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고마워."

    "뭐, 뭘요. 구원도 중간인건 마찬가지잖아요."

    불침번은 디아나, 사라, 구원, 레이아의 순서로 서기로 정하고 일행은 잠이 들었다.

    "구원. 일어나요."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구원이 가장 먼저 느낀 건 전신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크기는 매일 달랐지만, 요즘 잠에서 깰 때마다 손 안에 느껴졌던 그 감촉인데?

    구원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황급히 눈을 떴다.

    역시나. 구원은 손은 앉아있는 사라의 가슴에 가있었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다. 아예 사라를 덮치듯이 껴안고 있었다.

    내가 언제 사라랑 이렇게 붙어있었지? 설마 잠꼬대로 이렇게까지 했다고?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구원은 사라에게서 황급히 떨어졌다.

    어제같이 계속 만지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는다. 같은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지.

    구원이 깨어났다는 걸 확인했는지, 사라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점점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안! 내가 요즘 이상하게 잠꼬대가 심해서!"

    "…아뇨."

    다행이 화는 내지 않고 있지만,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사라의 표정은 여전히 썩어있었다.

    "정말 잠꼬대였다니까."

    "그게 아니라…!"

    "응? 그게 아니면 뭔데?"

    "몰라요! 잘게요!"

    사라는 그 말을 끝으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내가 고의가 아니라는 게 문제가 아니면 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아, 그냥 만진 거 자체를 사과해야 될 문제였나. 잠꼬대라고 변명할 게 아니라.

    역시 여심이란 어렵다.

    아무튼 불침번을 위해 구원은 자리에 앉았다.

    사라는 이불속에 파묻혀있지만, 디아나와 레이아가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모습은 눈을 즐겁게 해주기 충분한 광경이었다.

    특히 레이아가 이렇게 자는 모습을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위를 향해 누워있는 데도 흉부가 부풀어 오른 정도가 굉장하다. 사이즈가 몇이나 되는 걸까?

    숨 쉴 때마다 미묘하게 출렁이는 언덕을 구원은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번 눈이 가면 도저히 뗄 수 없는 마성의 언덕이야.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레이아가 구미호화가 되는 정확한 조건이 뭘까?

    첫날에는 샤워하고 나온 순간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다가 구원이 가슴에 손을 대자마자 갑자기 구미호화가 됐다.

    그럼 저번에는?

    그때는 분명 레이아의 가슴을 만지자마자 구미호가 된 게 아니다. 막 만졌을 당시에는 확실히 레이아도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기선 안 된다는 레이아의 말에도 구원이 손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만져대자 구미호로 변했다.

    가슴을 만지자마자 구미호가 된 첫날과 한참을 만지고 나서야 구미호가 된 얼마 전. 뭐가 다른 걸까?

    혹시 레이아의 인식 문제인가? 레이아가 지금부터 섹스를 할 거라고 인식하게 중요한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아를 위해서라도, 이건 검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결코 저 가슴을 만지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구원은 그렇게 완벽한 이론을 토대로 레이아의 가슴에 손을 뻗었다.

    음. 역시 완벽한 감촉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역시 바로 구미호로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저번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제대로 검증하려면 더 만지고 있어야겠지?

    적어도 저번보다는 오래 만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만졌던 걸까?

    구원이 잠에서 깨기 전부터 만졌을 거라고 가정한다면 시간 추측이 불가능해진다.

    할 수 없지. 이대로 교대시간이 될 때까지 만지고 있자.

    그렇게 한참을 가슴에 손대고 있어도 변하지 않자, 혹시 쾌감이 원인인가 싶어서 깨지 않을 정도로 주물러 보기까지 했다.

    "으응."

    잠결에 살짝 얼굴을 상기시키면서 야릇한 소리까지 내는 걸 보면 쾌감을 느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렇게 교대시간이 될 때까지 가슴을 만져도, 레이아는 구미호로 변하지 않았다.

    역시 단순히 가슴을 만지는 것만으로 구미호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군.

    내 이론이 점점 더 확실해져가는 것 같다.

    "레이아 일어나."

    그렇게 레이아를 위한 이론 검증과 본인의 욕구 만족을 동시에 해낸 구원은, 떨어지지 않는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레이아를 깨웠다.

    "으음. 안녕히 주무…!"

    레이아는 천천히 눈을 뜨다가 갑자기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왜, 왜 그래?"

    설마 들킨 건가?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이아는 얼굴을 붉히고 대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가슴에 미약하게 감각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천사님은 가련한 미소를 띄우고 구원에게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응. 레이아는 잘 잤어?"

    "네. 덕분에요."

    덕분에는 무슨. 오히려 내가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

    "구원씨도 얼른 다시 주무세요. 시간되면 다시 깨워드릴게요."

    "응.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깨워."

    "후훗. 네. 걱정 마세요."

    물론 걱정 같은 건 안한다. 우리 천사님이 맡은 일을 소홀히 할 리가 없잖아.

    바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을 오지 않았다.

    아무리 연구를 위해서라지만 너무 오래 만졌나. 손에 감촉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어.

    "잠이 안 오나요?"

    구원이 그렇게 잠을 못자고 뒤척이고 있자, 레이아가 말했다.

    "아니, 응. 그냥 조금."

    "그러면…."

    레이아는 구원의 머리 뒤에 살며시 손을 뻗어 살짝 고개를 들게 하고, 그 아래에 자신의 허벅지를 가져다 댔다.

    이, 이건 설마! 말로만 듣던 전설의…!

    "이러면 조금 더 괜찮으시나요?"

    그러면서 구원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줬다. 심지어 이런 게 꽤나 익숙한 것 같다.

    누, 누님! 대체 이 분이 보여주는 자애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구원은 한없이 밀려오는 감동에 가슴이 벅차올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평생 믿고 따르겠습니다!

    사실 너무 감동적이라 오히려 더 잠이 안 오는 것 같았지만, 구원은 그런 말은 절대 내뱉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뒤통수에 느껴지는 포근한 감촉과, 머리를 쓰다듬는 레이아의 부드러운 손길에 어느 순간 구원도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져서 서서히 정신이 각성했다.

    "뭐, 뭐하는 겐가?"

    "네? 구원씨가 잠이 안 오는 것 같아서요."

    "하, 하지만 불편하지 않나요?"

    "괜찮아요. 고아원의 아이들에게도 많이 해줘서 익숙하거든요."

    "하, 하지만!"

    "으음…."

    눈을 떴는데도, 뭔가에 가로막힌 듯 눈앞이 캄캄했다.

    뭐야 이거.

    "꺄앗!"

    눈앞을 막고 있는 걸 치우기 위해 구원이 손을 뻗자,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레이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뭐하는 겐가!"

    그리고 바로 디아나의 공격이 구원의 복부에 작렬했다.

    헉! 그러고 보니!

    구원은 그제야 자신이 어떻게 자고 있었는지 기억났다.

    그럼 설마 눈을 가리고 있는 이게 전부 가슴이란 말인가!

    구원은 손 안의 감촉을 확인하며 다시 한 번 전율했다.

    분명 밤새 주물렀던 그 감각이 확실해!

    "…이번엔 상당히 오래 주무르시네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사라의 목소리에 구원은 얼른 손을 뗐다.

    "아, 아니. 미안. 레이아. 잠이 덜 깨서 그만."

    "아뇨, 괜찮아요."

    하지만 레이아는 얼굴을 살포시 붉히면서도 용서해줬다.

    "그런데 다리는 괜찮아? 무겁지 않았어?"

    "네. 괜찮아요. 구원씨 자는 얼굴을 보다보니 무게도 모르겠던 걸요."

    "그, 그래?"

    "네. 후훗. 귀여웠어요. 전투 땐 듬직하신데, 자는 모습은 나이에 맞게 귀여우시네요."

    귀여울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레이아 입장에선 연하니까 귀여울 나이가 맞는 건가?

    "그, 그런가? 헤헷. 고마워."

    아무렴 어떤가. 구원은 헤실 대면서 레이아에게 대답했다.

    아침부터 살살 녹여주시는 구나.

    좋아.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하자.

    "아주 좋아 죽는구먼. 죽어."

    "그러게요. 정말 죽네요. 죽어."

    반면 디아나와 사라는 아침부터 눈꼴 시리다는 듯이 구원의 모습을 쳐다봤다.

    마지막 죽어에 왠지 감정이 실린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이지?

    아무튼 식사를 하기 위해 좁은 움집을 나가기로 했다.

    "크룩?"

    그리고 밖으로 나온 일행은 곧장 오크 한 마리와 마주쳤다.

    놈은 초월종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움집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분명 어제 이 부락을 둘러봤지만, 오크는 한 마리도 없었다.

    즉, 저놈은 다른 곳에서 온 놈이라는 말이 된다.

    "공격해! 놓치면 안 돼!"

    오크와 일행은 서로 당황해서 잠깐 조용히 마주보고 있었지만, 곧 제일 먼저 사태를 파악한 구원이 외쳤다.

    "네!"

    그리고 사라의 화살이 곧장 놈을 꿰뚫었다.

    "혹시 누가 보내서 온 걸까?"

    "음. 일반 오크가 초월종의 움집에서 나오는 걸 보니 뭔가의 용무로 왔다고 보는 게 타당할 테니 말일세."

    누가 보내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초월종이나 계층의 주인이 보내서 왔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놈이 돌아가지 않으면 곧 여기에 뭔가 문제가 있단 걸 깨닫게 되겠지.

    "느긋하게 식사나 할 시간은 없을 것 같네. 미안하지만 당장 출발하자."

    다행히 인벤토리에 육포가 남아있어서 걸으면서도 어느 정도 허기는 채울 수 있다.

    구원은 얼른 부락을 빠져나와 걸으며 생각했다.

    대비는 언제나 최악의 가정을 하고 대비하는 게 좋다.

    만약 아까 그 오크가 계층의 주인이 보낸 거라면, 저 오크가 돌아올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계층의 주인도 이변을 깨달을 거다.

    그렇다면 그 전에 아직 이변을 깨닫지 못하고 무방비한 상황을 기습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는걸.

    게다가 계층의 주인은 아마 주술사일 거라는 예상까지 하고 있는 상태다.

    디아나의 말에 따르면, 주술사는 주위에 동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힘을 발휘하는 타입이다.

    대비를 하면 더 어려워질 지도 모른다.

    "디아나. 어떻게 생각해?"

    일단 던전 경험이 제일 많은 디아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흠. 일리 있는 판단일세. 이 몸도 계층의 주인이 주술사 타입일 거라는 데는 동의하네. 주술사 상대라면 이 몸이 질 리가 없네만, 확실히 대비를 하면 귀찮아 지기는 하겠지. 그럼 아예 지금부터 기습할 텐가?"

    "우리 전력으로 가능하겠어?"

    "웨어 울프 쪽 계층의 주인은 그 특수성 때문에 프로텍트까지 배워야 된다고 했네만, 파티의 전력은 이미 충분히 1계층을 다니기에는 아까울 정도일세. 한번 해보세."

    좋아. 디아나의 보증까지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거겠지.

    일행은 곧장 어제 갔던 그 거석을 목표로 이동했다.

    그리고….

    "어라? 아무도 없어?"

    그랬다. 거석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여기가 다음 계층으로 가는 입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가까이 다가가니, 거석은 초월 한복판에 있는 데도 깔끔하게 닦여져 있고, 뭔가의 주술인지 여러 기묘한 문양들과 함께 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딱 봐도 여기가 중요한 곳이라고 광고하고 있는 모습이다.

    "적어도 여기 주인이 주술사라는 건 확실한 것 같군."

    "그리고 여기가 다음 계층으로 가는 입구인 것도요. 여기 보세요."

    어느 샌가 바위 반대편까지 돌아간 사라가 일행을 불렀다.

    바위에는 마치 동굴입구처럼 구멍이 뚫려 아래로 향하는 나선형 길이 나있었다.

    "여기가 입구 맞는 것 같죠?"

    정말이다.

    그럼 계층의 주인은 뭐하는 거야? 입구 지키고 있는 게 걔 역할 아니었어?

    직무유기해서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있어.

    "그럼…한번 가볼까?"

    아무튼 없으면 이쪽도 굳이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지.

    "음. 아직 준비가 덜됐으니 2계층을 다니는 건 힘들겠네만, 한번 확인이라도 해보세."

    일행은 바위에 뚫린 입구를 지나 천천히 길을 내려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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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여기 파트가 끝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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