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7화 (8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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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들의 영역

구원의 치료가 끝나고 우선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에서 마석을 캐낸 일행은 이동을 하기로 했다.

계속 여기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사라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안전하게 지낼 장소를 찾아서 마나풀이 자라던 곳으로 왔다.

오크들도 이곳을 알고 있을 테니 여기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냥 길 한복판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기습에 대비하기도 더 용이하고.

"기분 탓인가? 마나풀이 더 늘어난 것 같네."

"정말요?!"

"음. 이 몸이 보기에도 그렇다네. 번식이 빠르구먼."

마치 며칠 내버려뒀다고 금방금방 자라나는 잡초 같다.

이런 게 없어서 못 구할 정도라니.

"으응…."

그때 사라가 소리를 냈다.

"사라 정신이 들어?"

"여기는…. 구, 구원?! 이, 이게…!"

정신을 차린 사라는 바로 구원에게서 상체를 떨어뜨렸다.

참고로 현재 사라는 구원에게 업혀있는 상태다.

당연하잖아. 기절한동안 어떻게 이동했겠어.

"잠깐만. 지금 내려줄게."

"아, 아뇨. 기다려요!"

"응? 왜?"

"모, 몸에 힘이 안 들어가요!"

"하지만 방금 전에는…."

"상체는 괜찮은데 아직 다리에는 힘이 안 들어가요!"

사라는 왠지 필사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보다 제가 어떻게 된 거죠?"

"온 몸의 마나를 다 써서 그렇다는데?"

"…그렇군요."

드디어 기억이 난 모양이다.

사라는 차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 더 쉬는 게 낫겠지?"

"네. 아, 아뇨! 이대로 바로 다시 사냥하러 가죠!"

"뭐? 하지만…."

"도착할 때쯤이면 저도 완전히 회복될 거예요. 다친 것도 아니니까요. 바로 출발하죠!"

아무리 사냥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애초에 지금쯤이면 회복이 됐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되네만…."

하지만 구원의 생각과는 달리, 마나 전문가인 디아나는 오히려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은 게 수상쩍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정말로 그리 심한 건 아닌 모양이다.

"지, 지금은 조금 힘이 안 들어가네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구원의 등 뒤에 다시 상체를 밀착시켰다.

사라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설마 걷기 싫다고 꾀병 같은 걸 부리겠어? 사라가 너도 아니고.

그래서 일행은 다시 오크들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다친 게 그렇게 걱정됐어? 모든 마나를 소비할 정도로 공격을 하고."

오크 부락으로 향하면서 구원은 장난스럽게 사라를 놀렸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누가 걱정을!"

"그렇잖아? 아니면 왜 그런 공격을 한 건데?"

"파, 파티가 위험해 질 것 같으니 그런 거잖아요! 애초에 구원은 생각이 있는 건가요? 구원이 당하면 파티 모두가 위험해지는데 방심하다 그런 공격이나 당하고!"

사라는 구원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움직여, 꾸중하듯이 구원의 가슴을 손으로 가볍게 치며 말했다.

"윽. 미, 미안."

얼마 전에 멋있었다고도 해줬으니 조금 호감도가 오른 것 같아서 농담을 한 건데, 씨알도 안 먹히는구나.

역시 사라야. 요즘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해서 차가운 시골 여자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란 건가.

"…그, 그런데 다친 덴 괜찮아요?"

그러면서도 은근히 착해빠진 것도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으니 오크의 부락에 금방 도착했다.

"괜찮아? 설 수 있겠어?"

사라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정말로 고작 그 사이에 회복이 될지는 의심스러웠다.

"잠깐만요. 오크들이 안 보이는데요?"

사라는 대답대신 구원의 어깨너머로 얼굴을 내밀어 오크 부락 쪽을 바라본 후, 그런 말을 했다.

"뭐? 그럴 리가. 걔들 거의 절반은 남아서 도망갔는데."

"하지만 정말인걸요."

사라는 여전히 구원의 등 뒤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 일단 가볼까."

사라가 이런 걸로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만약 오크들이 숨어있는 거라고 해도 어느 정도 다가가면 사라가 소리를 듣던가 해서 알아채겠지.

하지만 오크 부락에는 정말로 도망간 오크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본인들이 원래 살던 부락으로 도망간 건가?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원래 여기서 살던 것도 아니고, 도망쳐놓고 고작 코앞에 있는 이곳에 숨어들기는 무서웠을 테니까.

"그럼 다른 부락으로 가봐야겠네. 그런데 사라야. 이제 몸에 힘은 좀 들어가?"

"네? 네…."

아무래도 대답이 석연찮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아직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으면 여기서 조금 쉬다가 가자."

"아뇨…. 괜찮아요. 곧장 가죠. 내려주세요."

"아냐.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래. 점심이라도 먹고 가자. 마침 시간도 딱 점심때네."

아니, 오히려 평소 점심 먹는 시간보다 늦었을 정도였다.

하긴. 워낙 박 터지게 싸우긴 했지.

"상체는 괜찮다고 했었지?"

"네? 네. 왜요?"

"아니. 혹시 상체도 아직 힘이 안 들어가면 먹여주려고 했지."

"그, 네, 아니, 괘, 괜찮아요. 그럴 필요 전혀 없어요."

사라는 마치 랙이라도 걸린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전혀라니. 내 딴에는 나름 신경써줘서 한 말인데 너무하지 않냐? 상처받잖아.

아니, 사라 성격에 그런 말을 듣고도 질색하는 표정을 안 지었다는 것만으로도 선방한 거라고 봐야하나.

"…그래도 고마워요."

응. 이건 선방 이상이다.

전혀라고 한 것도 그냥 구원이 너무 신경써줘서 사양의 의미로 한 말이었나 보다.

사라의 감사 인사 한 마디에 바로 기분이 좋아진 구원은 기분 좋게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 구원은 다시 사라의 앞에서 몸을 숙였다.

"뭐, 뭐에요?"

"그냥 조금이라도 더 쉬라고. 다른 부락에 도착할 때까지 업어줄게."

"…그, 그래요 그럼."

제법 도도하게 말했지만, 아마 속으로는 또 고마워하고 있겠지?

이번에도 호감도가 쌓였을 게 틀림없어.

그래서 일행은 다른 부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어제 토벌했던 부락의 옆쪽에 있는 부락이다.

"그럼 사라야. 무리하면 안 돼. 상태 안 좋은 것 같으면 바로 말해."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간 후, 구원은 사라를 등에서 내려주며 말했다.

얘는 목표가 목표다 보니 사냥할 때 무리하는 경향이 있단 말이야.

"저, 정말로 괜찮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라는 구원의 등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왜 그래? 역시 아직 힘이…."

"그럼 공격할게요."

사라가 너무 느리게 내려와서 구원이 또 걱정의 말은 건네려고 하자, 사라는 더 이상 구원이 말을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바로 화살을 날렸다.

등에서 내려오던 것과는 다르게 그 동작은 민첩했고, 화살에도 힘이 담겨있었다.

이정도면 괜찮아 보이네.

"어머?"

"왜 그래?"

"한 마리 맞췄더니 다들 숨어버렸어요."

뭐? 저 돌격의 화신. 록타르 오가르 밖에 모르는 애들이?

"쿠뤄러러!"

그런 의문을 불식시키듯이, 오크들이 갑자기 순식간에 엄청나게 몰려나왔다.

공격 한 번에 총공격이라니. 혹시 우리들, 오크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라도 했나?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튀어나온 오크들의 수는 많긴 하지만 부락 전체가 튀어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적다. 기껏해야 절반 정도다.

게다가 놈들은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오긴 했지만, 좀처럼 그 이상 앞으로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설마 이 녀석들….

"사라야. 확실히 말해. 지금부터 쟤들 전부 상대할 건데 정말로 컨디션 괜찮지?"

"네. 문제없어요."

"좋아. 그럼 간다. 안녕 얘들아! 우리 구면이지! 반갑다야!"

구원은 인벤토리에서 화살통을 대량으로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크게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크루룩!"

그러자 놈들은 그제야 마주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는 패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구원이 달려가니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역시 예상대로다. 이놈들 아까 도망쳤던 그놈들이잖아.

그렇게 구원과 오크 떼들이 뒤엉켰다.

처음에는 상대하기 쉬웠다. 시작부터 겁을 먹은 녀석들은, 구원이 방어도 안하고 공격 일변도로 나서는데도 제대로 구원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놈들이 정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식으로 달려드는데,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놈들이 완전히 눈이 돌아간 바람에 후위에 있는 여성진에게 공격을 시도하려는 녀석들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 말은 체력이 받쳐주는 한 언제까지고 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좋아!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결과적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구원이 이겼다.

애초에 질 싸움이었으면 시작도 안했을 테니 당연한 거다.

다만 엄청나게 피곤했다.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초월종이 있던 부락 하나를 전멸시킨 거다.

아무리 스탯 빼면 시체인 구원일지라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어어어."

"후훗. 고생하셨어요."

싸움이 끝나자마자 구원이 바닥에 벌러덩 드러눕자, 레이아가 다가와서 치료를 해주며 말했다.

고생은요. 천사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절로 납니다.

"결국 오늘도 초월종이 있던 부락 하나를 전멸시켰네요."

"응. 그러네."

사라의 말을 듣고, 구원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제일 처음에 있던 부락에는 분명 초월종이 없었다. 이미 죽었거나 한 건 아니었을 거다. 다른 사람이 이 장소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다른 몬스터에게 죽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게, 1계층에서 오크 초월종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웨어 울프 초월종 정도 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쪽 구역에 웨어 울프의 초월종이 있는 곳은 없다.

한마디로 처음 부락에는 애초에 초월종이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 두 부락에는 초월종이 있었다. 게다가 둘이 붙어있는 부락이었다.

뭔가 느낌이 오지 않아?

구원은 머릿속에 정규 루트의 지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에도 지도상으로 둥글게 초월종들이 모여 있었지.

이거 어쩌면….

구원은 당장 자신의 가설을 얘기해봤다.

"여기에 또 다른 계층의 주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인가요?"

"흠. 충분히 가능한 얘기로군. 자네 말대로 계층의 주인 주변에 초월종이 몰려있는 건 아래 계층들에서도 마찬가지라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는 반드시 그 앞을 계층의 주인이 지키고 있었지. 다만 지금까지는 어느 계층에서도 다음 계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두 개 이상 발견된 경우가 없었다네. 계층의 주인도 마찬가지고 말일세. 그래서 계층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거지. 정말 여기에 또 다른 계층의 주인이 발견되고 다음 계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발견된다면, 그것만으로 큰 발견이 될 걸세."

디아나는 말하면서 꽤나 흥미가 동하는지, 점점 말투에 열기를 띄어갔다.

던전 탐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디아나마저 이렇게 말할 정도다.

"대, 대단하세요."

디아나의 말에 레이아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구원을 쳐다봤다.

"뭘요. 아직 계층의 주인이 있을 거라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요."

"아뇨. 구원씨는 여신님의 인도가 함께 하시니까요. 분명 있을 거예요."

"한 번 찾아보죠."

사라까지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던전은 성장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여기는 사라라도, 이런 것까지 그냥 넘기고 사냥이나 하자고 할 정도로 던전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결국 만장일치로 일행의 목표가 직업 레벨 성장에서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는 또 다른 길 찾기로 변했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약속했던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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