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오크들의 영역
"흠. 됐네."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던 디아나는 그다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곧 눈을 뜨고 일어났다.
"응? 벌써 다 회복했다고?"
"다 회복한 건 아닐세. 하지만 기습을 하려면 시간이 생명 아닌가? 적당히 조절하면서 싸울 테니, 우선은 가보세."
역시 기습의 묘미를 아시는 군.
덕분에 오크들의 부락에서 아직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기 전에 재차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사라의 화살공격이 다시 퍼부어지자 몇몇 튀어나오는 놈들이 있었지만, 화재 때문인지 많은 수가 나오지는 못했다.
덕분에 놈들은 일행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사라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쿠뤄러러!"
그렇게 두어 차례 공격을 가했을 때, 다른 오크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이 튀어나왔다.
물론 곧바로 사라의 화살이 날아갔지만, 놈은 들고 있던 박도같이 생긴 무기로 화살을 튕겨냈다.
"아까 화살을 튕겨냈다는 놈이 저놈인 모양이지?"
"네. 그런 것 같네요."
척 봐도 초월종인 걸 알 수 있는 놈이다.
그래봐야 오크의 초월종. 웨어 울프 초월종보다 강하지는 않겠지.
웨어 울프와는 달리 제대로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기껏해야 비슷한 정도일 거다.
놈은 제대로 성질이 났는지, 분을 못 참고 씩씩대면서 어깨로 호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렇지. 부하들은 전부 놔두고 혼자 튀어나오다니. 넌 초월종의 자격이 없다.
구원이 놈에게 달려가자, 놈도 마침 잘 걸렸다는 듯이 구원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둘이 격돌하기 전, 화살 한 발이 날아왔다.
놈은 성가시다는 듯이 무기로 화살을 쳐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화살에 부딪힌 무기가 튕겨나가며 어깨에 화살이 박혔다.
"촌놈아 마나 공격 첨보냐? 그럼 보너스다. 내 손길 맛도 쬐금만 보거라!"
당황하는 놈에게 구원이 바로 성자의 손길을 날렸고, 당연히 놈은 경직됐다.
경직된 몬스터 한 마리와, 1계층 몬스터로는 개개인이 과분한 상대인 파티원이 전부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 이후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놈도 성기를 드랍했다.
드디어 일반 오크의 성기를 맘 편히 팔아버릴 수 있게 됐군.
만약을 위해 가지고는 있었지만, 일반 드랍템 주제에 인벤토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은근히 맘에 안 들었다.
"쿠룩?"
구원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초월종의 성기를 들고 씨익 웃고 있었을 때, 오크 부락 쪽에서 오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재 진압을 맡기고 밖에 나간 초월종이 돌아오지 않자 확인을 하러 온 걸까?
놈은 초월종이 졌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건지 느긋한 발검음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나와 보자 초월종은 온데간데없자, 심히 당황한 모양이다.
"쿠, 쿠뤡!"
놈은 무조건 돌격만을 하던 오크의 특성도 잊어버리고 등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구원은 반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집어던졌다.
"쿠에엑!"
신체능력이 어마어마한 구원이 반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던진 거다. 구원의 손을 떠난 물건은 일자로 쭉 뻗어나가 도망가던 오크의 엉덩이에 빨려가듯 틀어박혔다.
"놈을 쫓아! 딜, 성기를 맞았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정말이었다.
놈은 몇 발자국도 옮기지 못한 채 바닥에 고개를 박고 쓰러져 꿈틀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도망 못 가게 막을 필요가 있었나요?"
늑대개들이 알을 따일 때도 눈 하나 깜박 안하던 사라도 과연 이 모습은 안쓰러워 보인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이제 남은 놈들은 초월종을 잃은 오합지졸이다.
이놈을 놓쳐서 초월종이 죽은 게 오크들에게 알려져 봐야, 놈들이 다 같이 돌진밖에 더 할까.
"아니, 그냥 반사적으로…. 그보다 다들 바로 다시 전투에 들어갈 테니까 준비해!"
구원은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얼른 놈의 숨을 끊어주고 마석을 캐냈다.
좋았어. 이걸로 증거는 인멸됐다.
"자, 그럼 다들 사냥을 시작하자고."
구원은 애써 밝게 말하며 사냥의 시작을 알렸다.
도망갈 때 너무 열심히 공격을 했기 덕분일까? 화재현장에 남아있는 놈들을 전부 정리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아마 숫자는 이틀에 걸쳐 정리한 부락 놈들이나 이 놈들이나 비슷한 숫자였을 텐데도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오크들을 전멸시킨 일행은 우선 비밀 기지로 돌아갔다.
"처음엔 오크들 영역이 너무 넓어서 쫄았는데, 이렇게 보니 진짜 좋은 사냥터네. 부락 간에 넓이도 어느 정도 있어서 한꺼번에 몰려오지도 않고."
"정말요. 어쩌면 이번에 레이아씨의 사제 레벨도 전부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그게 제일 좋긴 한데 말이야.
뭐, 어차피 소모품이라고 해봐야 음식 정도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 음식조차 오크들의 고기로 무한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 구원의 인벤토리에는 이미 고깃집을 차려도 될 정도로 오크 고기가 쌓여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맘만 먹으면 언제까지고 던전에서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원도 이왕이면 레이아가 프로텍트를 배울 수 있는 레벨이 될 때까지는 던전에 머무르고 싶었다.
문제는 정신적인 면이지. 밥 먹고 전투만 하는 생활을 언제까지나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아무튼 아직까지는 셋 다 그런 방면에서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언제나 전투에는 의욕을 불태우는 사라와 경험이 많은 디아나는 물론, 레이아마저도 얼굴에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래봬도 파티장으로서 파티원들의 상태에는 항상 주의하고 있다.
좋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보자.
저녁을 먹고 구원은 바닥에 앉아서 스킬 연습을 하기로 했다.
참고로 사라와 레이아는 뭔가 둘이서 뭔가 신중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고 있고, 디아나는 마법으로 식기를 씻는 중이었다.
대마법사님이 설거지 담당을 하는 파티라니.
남들이 알면 불경하다고 욕하려나?
그래도 가능한 게 디아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디아나도 그걸 아니 저렇게 해주는 거겠지. 물론 그래도 디아나가 착하다는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언제나 도움받고 있습니다. 디아나님.
아무튼 지금은 스킬의 연습이다. 물론 성자의 손길을 다른 부위로 사용하는 연습이다.
이걸 발로도 사용이 가능해지면, 구원도 그동안 손으로만 싸우던 전투법을 벗어나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싸울 수 있어진다.
그래서 일단 목표를 발로 잡고 꾸준히 연습을 해봤지만, 역시나 쉽게 발동이 되지 않았다.
성기로 발동이 가능한 걸 보면 다른 부위로 발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건 아닐 텐데 말이야.
구원은 시험 삼아 성기로 발동을 해봤다.
어라? 잘 안되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구원은 발로 발동한다는 목적도 잊고 성기로 발동을 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몇 번의 노력 끝에, 성기로 성자의 손길을 발동하는 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안될 리가 없지.
"…자네 뭐하나?"
구원이 자신의 성기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자, 디아나가 구원을 뭐라 말하기 힘든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했다.
참고로 구원의 물건은 현재 발기까지 되어있는 상태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남자들이라면 알거다. 딱히 야한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가끔 아무 이유도 없이 발기가 되는 거 말이다.
"어? 야. 오해하지 마라. 그런 거 아니다."
"이렇게 세워놓고 뭐가 아닌…흐으읏!"
"엇차."
디아나는 손끝으로 구원의 물건을 콕 찌르며 말하다가 몸을 떨며 구원 쪽으로 쓰러졌다.
구원은 반사적으로 그런 디아나의 몸을 잡았다.
"흐아아앙!"
더 큰 혼란을 불러왔을 뿐이지만 말이다.
아차, 손에 걸었던 것도 안 풀고 있었지.
"으앗! 미안!"
구원이 화들짝 놀라서 손을 떼자, 디아나는 구원의 몸에 포옥 들어온 채 몸을 잘게 떨었다.
호흡도 거친 게, 기습적으로 받은 쾌감이라 더 강렬하게 다가온 모양이다.
이제 디아나와의 레벨차도 많이 좁혀져서 섹스할 때도 손길만으로 이정도 반응은 안하니 말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여기 밖이잖아? 설마 얘….
"구원? 무슨 일이에요?"
사라와 레이아도 디아나의 신음성을 듣고 다가왔다.
그러자 디아나의 몸이 또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그걸로 구원은 확신했다.
하여간 얘도 어지간하다니까. 이제 나한테 변태라고 하기만 해봐라.
일단 도와는 줘야겠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디아나가 갑자기 발을 헛딛었는지 넘어졌는데 내가 잡아주다가 엄한 데를 만져서."
"그게 왜 아무것도 아닌가요?"
사라의 눈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젠장. 그냥 넘어졌다고만 할 걸 그랬나. 내가 미안하다고 외친 걸 커버하려고 했던 건데, 되레 꼬이게 생겼다.
"…정말 아무것도 아닐세. 겨우 허리를 만진 것 같고 호들갑을 떤 걸세."
하지만 겨우 숨을 고른 디아나가 그렇게 말했다.
크으. 역시 돕고 사는 사회. 남을 도와주면 반드시 그 남도 나를 도와주게 돼있다니까.
"그, 그래요?"
"음. 아무 문제없네."
"혹시 넘어질 때 어디 다치시지 않았어요? 힐이라도 해드릴까요?"
"아, 아닐세. 전혀 안다쳤네. 걱정 말게."
레이아가 짧게 기도를 외워 손에 빛을 내고 묻자, 디아나는 크게 당황하며 말했다.
하긴 지금 레이아가 어루만져주면 더 큰 참사가 벌어지겠지.
"이 몸은 스킬 연구로 이 자와 할 얘기가 있네. 자네들도 하던 얘기나 마저 하게나."
"그, 그랬죠. 저희는 가요."
"네."
사라는 디아나의 말에 레이아를 데리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럼 뭔가 변명할 말은 있는가?"
사라와 레이아가 떠나자마자 바로 디아나가 구원을 쏘아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숨은 필사적으로 고른 모양이지만, 얼굴은 아직도 꽤나 붉다.
"변명이라니? 뭘? 애초에 네가 와서 갑자기 건든 거잖아."
"설마 이런 곳에서 거기에 스킬을 사용하고 있을지 이 몸이 알았겠나?!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겐가?! 거기로 사용은 금지라고 이 몸이 똑똑히 말하지 않았던가!"
"연습하고 있었다고. 다른 부위로 사용하는 연습 말이야. 일단은 성공한 곳부터 사용해 볼까 싶어서."
"으으으윽!"
구원의 말에 디아나는 이성적으로는 납득을 했지만 감성적으로는 납득이 안됐는지 구원을 노려봤다.
그래. 네 입장에선 갑자기 날벼락 맞은 꼴이니 내가 이해한다.
"자, 자. 사고였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런데 너 속옷 안 갈아입어도 돼?"
방금 내 위로 쓰러졌을 때 허벅지에 닿은 부분에 습기가 느껴졌는데 말이야.
구원의 말에 디아나는 황급히 자신의 고간을 양 손으로 억눌렀다.
그리고는 그 자세로 새빨개진 채 굳어져버렸다.
혹시 확인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여보세요?"
"…으으윽. 주, 주게."
구원이 인벤토리에서 디아나의 옷가방을 꺼내주자, 디아나는 가방을 낚아채 황급히 저기 구석으로 갔다.
역시 갈아입을 속옷은 가방 안에 들어있는 거였어.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디아나는 꽤나 창피했는지, 그 이후로 구원에게 다시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계속 가방을 끌어안은 자세로 이쪽을 경계하듯 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 나도 스킬 연습이나 다시 할까.
디아나랑 이런 므흣한 헤프닝이 벌어졌는데도 왜 이렇게 담담하냐고?
그야 나도 남자인데 당연히 흥분된다.
다만 상대가 디아나다보니 이 이상 들이대지를 못하겠다.
그렇게 던전 내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데 엄하게 군 디아나니까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스킬 연습을 하고, 잘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어제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안 될 텐데 말이지.
이틀 연속으로 힐링 섹스도 못 받고 기만 빨리면 아무리 성자라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어제처럼 운 좋게 사라와 디아나에게 안 들킬 거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한 번 했던 잠꼬대를 또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잘 때 손을 묶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나.
"디아나."
"뭐, 뭔가?"
얜 아직도 경계를 하네. 아까 일은 사고였잖아. 안 잡아먹는다.
"오늘은 레이아 대신 네가 옆에서 잘래?"
혹시 같은 잠꼬대를 해도, 양 옆에 있는 게 사라와 디아나라면 어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걸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뭐, 뭐어?!"
하지만 디아나는 구원의 제안에 양 손으로 몸을 감싸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 자네 설마?!"
"아냐, 그런 뜻 아냐! 설마 내가 저번에 그렇게 혼났는데 그런 일을 할까봐!"
"그, 그럼 뭔가!"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어진다.
어제 잠꼬대로 레이아 가슴을 만진 덕분에 레이아가 구미호가 돼버려서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 그냥 오늘은 디아나랑 옆에서 자고 싶어서."
이렇게 된 이상 이걸로 간다.
먹히든 안 먹히든 떼를 써서라도 디아나가 옆에서 자게 만들겠어.
"허, 헛소리하지 말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제발! 누나! 옆에서 자주세요!"
"아, 알았네! 알았으니 그만 일어서게!"
구원이 무릎까지 꿇고 빌자, 디아나가 기겁을 하며 승낙했다.
훗. 역시나 응석 부리면 결국엔 먹히는군. 과연 할머…누님.
그렇게 해서 이번엔 사라와 디아나를 양 옆에 끼고, 레이아가 위에 누운 채 잠을 자게 됐다.
좋아. 오늘이야말로 숙면을 취할 수 있겠군.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