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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75화 (7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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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족 사제

    "디아나. 다 왔어. 내려와."

    "…으음? 으음…."

    무슨 소리냐고?

    내 뒤에서 업혀가던 디아나가 잠에서 깨는 소리지 무슨 소리야.

    여관에서 나설 때부터 지금까지 쭉 구원의 등에 업혀있었던 디아나는, 물품 점검을 마치자마자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그대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얘가 잠을 못잔 게 내 잘못이기도 한만큼, 일단 나도 깨우지 않게 조심해서 걸었다.

    그랬더니 무려 비밀 통로를 통과한 지금까지 계속 잠을 잤다는 말이다.

    "쓰읍…."

    …야. 너 지금 침 닦은 거 아니지?

    가죽 갑옷 위라서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찝찝하다.

    "으흠. 고생했네."

    디아나는 구원의 머리를 가볍게 몇 번 쓰다듬더니, 드디어 땅에 제 발로 섰다.

    "괜찮아?"

    그래도 일단 걱정이 돼서 구원은 디아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도 잠이 부족해 피곤할 수도 있고, 잠에 너무 취해서 몽롱한 상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음. 문제없네. 자 출발하세나."

    하지만 디아나는 멀쩡하게 대답을 돌려줬다.

    하긴 얘가 던전을 다니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뭔가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말을 했지, 괜히 위험하게 괜찮은 척을 하거나 할 성격은 아니다.

    "그럼 출발하자."

    디아나의 상태도 괜찮은 것 같으니, 일행은 바로 비밀 기지를 향해서 출발했다.

    오늘 목표는 바로 비밀 기지의 탈환이다.

    초월종도 이쪽 맵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봤을 때, 비밀기지를 막아놨던 바위는 완전히 뚫렸다고 보는 게 좋겠지.

    그렇다면 그 기지 역시 웨어 울프들이 다시 점거하고 있을 거다.

    어쩌면 지난번의 교훈을 되살려 더 많은 수의 웨어 울프가 몰려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별로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웨어 울프가 아예 이 구역에서 내빼준 상태라면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떼로 덤비고도 초월종이 죽었으니, 겁먹어서 꽁무니를 뺐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한편으로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라고 할까? 구원의 그런 기대는 초장부터 박살이 났다.

    "그르르르."

    역시나 쉽게 갈 수는 없네.

    아니. 결국 우리의 진짜 목표는 비밀 기지 탈환이 아니라 직업 레벨의 성장이다. 비밀 기지 탈환은 어디까지나 그를 위한 과정에 불과할 뿐.

    오크보다 더 빠르게 직업 레벨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웨어 울프가 나오는 건 환영할 일이지.

    좋게 좋게 생각하자.

    구원은 어깨를 돌려가며 웨어 울프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전진하면서 꽤나 많은 몬스터들을 만났다.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번에도 역시 삼면이 막힌 지형을 찾아갔다.

    지금까지 본 대부분의 몬스터가 웨어 울프로, 오크의 모습은 어제에 이어서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어제와는 다르게 웨어 울프가 뭉쳐 다니지 않고 한 마리씩 따로 다니는 걸 보아, 초월종이 죽은 걸로 구원 일행을 처리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접은 모양이다.

    하지만 오크를 만난 횟수 자체가 적다보니,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손에 넣은 오크 고기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어제보다는 조금 나은 편인가?

    음식 자체야 굳이 던전에서 공급할 양까지 계산하지 않고, 그냥 오늘 산 걸로만 일주일 내내 먹어도 가능할 정도로 많이 사기는 했다.

    하지만 모처럼 그릴까지 준비해왔는데 정작 고기가 별로 없으니 힘이 빠진다.

    그래도 있는 만큼이라도 하는 게 좋겠지?

    사실 구원이 해보고 싶은 것도 있다.

    이런 던전에서 어울리는 감상은 아니지만, 마치 캠프라도 온 기분으로 말이다.

    "믓."

    구원이 인벤토리에서 그릴을 꺼내자, 막 마법을 준비하려던 디아나가 살짝 묘한 표정이 됐다.

    마치 저건 뭐냐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다.

    분명 어제 같이 가서 샀는데, 기억 못하는 건가?

    하긴, 어젯밤을 생각해보면 그때도 아마 발정 나있는 상태였을 거다.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

    "매번 디아나가 마법으로 준비하기도 번거로울 테니까. 어때? 잘 샀지?"

    "흐음. 이 몸을 위해 산건가? 장하구먼."

    디아나는 표정이 밝아지며, 까치발을 들어 구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구원. 그럼 저희는 장작을 주우러 가요."

    "아, 응. 그럼 디아나랑 레이아는 세팅 좀 부탁할게."

    구원은 인벤토리에서 식기와 스프, 빵 같은 것들을 꺼내 디아나와 레이아에게 맡겼다.

    "으, 으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밝은 표정이었던 디아나가 다시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묘한 표정이 됐다.

    "좋아. 그럼 내 솜씨를 발휘할 시간이군."

    마른 가지를 모아와 그릴에 넣어 불을 붙이고는, 구원은 호기롭게 외쳤다.

    사실 이런 바비큐 파티 같은 걸 해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본 건 있으니 그대로 따라하면 되겠지.

    구원은 고기를 큼지막하게 썰어 그릴 위에 놓는다.

    원래대로라면 목장갑을 끼고 고기들을 뒤섞으며 잘 구워야겠지만, 여기서 그런 걸 바라는 건 사치다.

    구원은 자신의 튼튼한 몸만 믿고 그대로 타오르는 불길위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행이도 이정도 불길에는 크게 영향이 없는 모양이다.

    구원이 화려하게 고기를 구우며 다 익은 건 그릴 한 쪽에 모아두자, 그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여성진들이 바로 고기를 낚아챘다.

    "마, 맛있어요!"

    레이아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구원을 쳐다봤다.

    사제복의 치마부분이 마구 흔들리는 게, 아마 꼬리도 흔들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좋나?

    생각해보니 레이아도 생긴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많이 먹는다.

    저 가냘픈 몸의 어디로 그 영양분이 다 가는 거…아니. 내가 멍청했다.

    당연한 의문을 품다니.

    레이아에게도 한 곳 있잖아. 절대 빈말로도 가냘프다고 할 수 없는 부위가.

    구원은 레이아가 먹는 게 전부 가슴으로 가는 거라고 확신했다.

    여자들한테 말해주면 피바람이 몰아칠 것 같은 엄청난 체질이군.

    "하하. 그래? 그럼 더 먹어."

    구원은 기뻐하는 레이아에게 더더욱 많은 고기를 건넸다.

    결코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복스럽게 먹는 애를 더 주고 싶은 것뿐이다.

    "이 몸도 더 주게!"

    "응. 그래."

    그에 반해서 얘는 대체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설마 이렇게 축적해뒀다가 갑자기 한 순간에 급속도로 성장하는 건가?

    그래. 전생 전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야.

    "응. 너도 많이 먹어."

    구원은 미약한 희망을 걸고 디아나에게도 듬뿍 고기를 건넸다.

    "저, 저도…."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 사라마저도 얼굴을 살짝 상기시키면서도 경쟁하듯 접시를 더 내밀어왔다.

    이거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던전에 올 때 여분의 고기라도 더 사오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예 오크 고기는 팔지 말고 전부 쟁여둘까?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다니면 상할 일도 없고.

    사라에게도 고기를 덜어준 구원은, 자기도 고기를 하나 집어 입에 털어넣었다.

    음. 역시 맛있다.

    디아나가 만든 돌판 위에 굽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고 좋았지만, 역시 그릴로 굽는 건 또 이것 맛이 있다.

    그렇게 그릴로 구운 오크 고기에 푹 빠져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그럼 디아나. 이거 세척 좀 부탁해도 될까?"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구원은 그릴의 단점을 깨달았다.

    일회용으로 버릴 것도 아니니 일일이 먹을 때마다 세척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주위에 강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 순전히 디아나의 마법에 의존해야한다.

    디아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산 건데, 결국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네.

    "음? 흠. 자네도 어쩔 수 없구먼. 역시 이 몸의 도움이 필요하지?"

    하지만 디아나는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살짝 기뻐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설 차례가 있다는 게 기쁜 모양이다.

    그럼 아까 그릴을 꺼냈을 때 묘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자신의 차례가 뺏겨서 그런 건가?

    얘도 나이에 안 맞게 하는 짓이 귀엽다니까.

    디아나의 마법으로 그릴까지 깨끗이 씻어내고, 일행은 다시 비밀 기지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도 밤이 되어서야 비밀기지에 도착했다.

    "역시 바위는 치워져있네."

    이걸 치울 때 초월종도 어지간히 화가 났던 건지, 입구를 막아뒀던 바위는 입구에서 상당히 먼 곳에 처박혀있었다.

    "역시 안에는 웨어 울프가 있겠죠?"

    "그건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그보다는 얼마나 있을지가 문제야."

    통로의 폭이 좁아서 한 번에 한명씩밖에 지내가지 못한다.

    그야 보너스 스탯도 있으니 위험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웨어 울프가 많이 모여 있으면 상당히 귀찮아 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 일단 나부터 들어갈게."

    "네. 조심하셔야 돼요."

    이제는 사라도 자연스럽게 구원에게 이런 말을 해주게 됐다.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지만, 첫 만남을 생각해보면 감개무량해진다.

    "아, 구원씨. 잠시만요."

    곧장 땅굴로 들어가려던 구원을 레이아가 제지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야 기도를 올려 구원에게 버프를 걸어줬다.

    좋아. 이 정도면 준비는 만전이다.

    가볼까.

    여전히 페니스 브레이크가 살짝 트라우마로 남아 이런 곳을 지나가기는 싫지만, 구원은 마음을 다잡고 땅굴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크르르르."

    그리고 역시나 땅굴을 지나 얼굴을 빼내자, 바로 코앞에 웨어 울프는 얼굴이 구원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이거 왠지 심히 기시감이 느껴지는 광경인데?

    한 번 맞춰볼까?

    넌 이 다음에 크르렁! 컹! 컹! 이라고 외친 후 나를 덮친다.

    "크르렁! 컹! 컹!"

    역시나!

    하지만 구원도 학습을 한다. 이런 상황의 대비책 한 둘 정도는 당연히 생각해놨지. 이렇게까지 얼굴을 가까이 붙여놓고 있었던 게 너의 패인이다!

    구원은 곧장 성자의 성수를 사용하고 웨어 울프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우리 아리따운 여성진들 앞에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추태지만, 다행이 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거리낄 게 없다.

    "크륵!"

    구원의 기습을 받은 웨어 울프는 살짝 몸을 움찔했다.

    스킬 레벨도 차이가 나는 만큼, 역시나 성자의 손길만큼의 효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구원은 황급히 땅굴에서 몸을 꺼냈다.

    "크르르르르."

    역시나 대비를 하고 있었던 건지, 비밀 기지에는 웨어 울프의 숫자가 꽤나 있었다.

    다 합쳐서 일곱 마리.

    과연 아무리 레이아에게 버프까지 받은 구원이라도, 혼자서는 상대하기 힘든 숫자다.

    하지만, 구원은 혼자가 아니다.

    조금만 버티면 우리 여성진들이 올 거다.

    "얘들아! 와도 돼!"

    구원은 구멍을 지키듯이 가로막고 서서 웨어 울프를 노려봤다.

    일단 일곱 마리 다 성자의 손길부터 묻혀둘까.

    하지만 웨어 울프들은 어째서인지 구원과의 거리를 좀처럼 좁히려고 하지 않았다.

    …뭐지?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구원은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구원의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아무도 없다.

    "사라?! 디아나?! 레이아?!"

    구원이 당황해서 다시 한 번 땅굴을 향해 외치자, 레이아의 절박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구, 구원씨! 여기에도 웨어 울프들이!"

    이런 젠장! 기습에 양동이라고?!

    자기 몸뚱이만 믿고 무기도 안 들고, 항상 홀로 다니던 놈들이 이딴 짓까지 한단 말이야?

    웨어 울프들이 이렇게까지 하다니. 아무래도 저쪽 맵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한 모양이다.

    "크르르릉!"

    구원이 황급히 땅굴로 돌아가려고 하자, 곧장 웨어 울프 일곱 마리가 동시에 반응을 해왔다.

    그렇다고 곧장 달려든 건 아니지만, 구원이 움직이려고만 하면 바로 위협을 가한다.

    아마 뒤로 땅굴에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일제히 달려들겠지.

    뒤로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앞에 놈들을 전부 해치울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래 인정한다. 니들이 어깨위에 짐승 대가리를 달고 있는 것 치고는 제법 머리를 잘 굴렸다.

    하지만 구원에게는 웨어 울프들이 절대 대비하지 못했을 비책이 하나 있다.

    어디 내가 내구에 보너스 스탯을 전부 때려 박아도 니들이 나한테 상처를 낼 수 있나 한 번 보자고.

    구원은 곧바로 눈앞에 스테이터스창을 띄웠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예비군을 다녀왔는데, 자가용으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서 예비군을 부르네요.

    덕분에 평소보다 오히려 귀가시간이 늦어져버렸습니다.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인 곳도 한 번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소설 한 편 쓰니 하루가 끝나버렸네요.

    Damaoka //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아하즈 // 맞습니다. 전생 전 디아나라고 올린 이미지 입니다. 소설 상의 묘사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외모는 아니니 그냥 참고로만 삼아주세요.

    무꾸914 // 사실 구미호쪽 성격은 어떻게 할지 고민 중입니다. 살리는 방향으로 갈지 어쩔지. 아예 언제 한 번 투표를 해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싸라비 //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연참은 이번 주 안으로 한 번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외에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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