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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9화 (6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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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족 사제

    비밀통로를 지나가고 나서 제일 처음 마주친 적은 바로 웨어 울프였다.

    "어머? 늑대개가 두 발로 서있네요?"

    뒤에서 레이아가 그런 맥 빠지는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비밀 통로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설명을 안했었구나.

    저 반응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게다가 수인족이 저런 말을 하니, 위화감이 엄청나다.

    뭐 그건 일단 제쳐두고, 구원은 우선 전투에 집중하기로 했다.

    "레이아, 사라와 디아나에게서 떨어지지마!"

    구원은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가며 말했다.

    웨어 울프가 접근해도 나름 대처가 가능한 사라와 디아나와는 다르게, 레이아는 전혀 대응이 불가능할 거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둘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

    뭐 웨어 울프가 쟤들한테 접근하기 전에 구원이 앞에서 단단히 틀어막는 게 기본이지만 말이다.

    구원이 웨어 울프와 격돌하기 전에, 뒤에서 레이아가 마치 노래하듯이 맑은 목소리로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구원의 몸 주위를 따뜻한 빛이 감싸며 몸에서 활력이 넘치는 게 느껴졌다.

    오오. 이게 바로 버프인가.

    처음 받아 보는 버프는 상당히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아직 저 레벨이라 솔직히 지금 당장은 전투에서 도움될 걸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정도면 충분히 전투에도 도움이 되는 수준이다.

    좋아. 그럼 나도 레이아한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구원은 먼저 마주 달려오던 웨어 울프에게 절정속박을 걸고, 성자의 손길을 발동한 주먹으로 그 콧등을 후려쳤다.

    웨어 울프가 몸을 경직시키자, 그대로 주먹을 연타한다.

    뒤에서는 사라의 화살과 디아나의 마법이 구원의 몸을 피해서 웨어 울프의 몸에 날아가 꽂혔다.

    그동안 직업 레벨을 올린 덕분에 이제는 웨어 울프 한 마리쯤은 성자의 손길로 걸어둔 스턴이 풀리기 전에 잡는 게 가능하다.

    대충 웨어 울프가 죽을 때가 돼자, 구원은 살짝 뒤로 점프하듯 물러났다.

    그리고는 성자의 손길을 발동해 밝게 빛나는 주먹을 치켜들고 힘차게 소리쳤다.

    "내 이 손이 새하얗게 타오른다! 네 놈을 싸게 하라고 맹렬히 울부짖는다! 하아아앗!"

    구원이 웨어 울프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그대로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자, 웨어 울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하얀 액체만의 웨어 울프의 최후의 순간이 어땠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훗. 완벽하군.

    게다가 타이밍을 봐서 이런 식으로 막타를 넣는 건 멋지기만 한 게 아니다.

    공격과 동시에 회피도 겸하는 기술인 거다.

    최고의 회피방법은 아예 사로에서 몸을 빼버리는 거지.

    네놈의 마지막 공격조차 나에겐 닿지도 않았다.

    구원은 바닥에 묻은 흰 액체를 밟지 않게 조심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와! 굉장해요!"

    레이아가 두 손을 마주잡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구원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봐! 보라고! 아는 사람은 안다니까!

    지금까지 구원이 어떤 기술을 써도 미적지근한 반응밖에 없었는데, 이런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이 생기자 구원도 기가 살았다.

    "그렇죠? 그렇죠!"

    "네! 설마 잠자리에서 쓰는 기술을 전투에 응용하다시니, 굉장한 발상이네요!"

    어, 어라 그쪽?

    내 막타가 멋있었던 게 아니라?

    아니, 그래도 나한테 감탄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구원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우쭐댔다.

    "하핫. 제가 원래 좀 독특하고 신선한 발상이…."

    "다 이 몸이 알려준 거지만 말일세."

    "네. 다 디아나님이 알려주신 덕분이죠."

    "와아. 굉장하세요."

    레이아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바로 구원에서 디아나에게로 옮겨졌다.

    "흠. 마법사란 자고로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법이라네."

    디아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인지, 가슴을 펴고 으쓱대며 말했다.

    큭. 분명 이번 전투에서 활약은 내가 다 했을 텐데.

    구원은 씁쓸하게 웨어 울프의 시체에서 마석을 캐냈다.

    "그런데 이번 늑대개는 어떻게 두 발로 걷는 걸까요?"

    "…레이아. 설마 늑대개랑 얘들이랑 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 아닌가요?"

    레이아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응. 뭐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몬스터에 자세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지. 이해해."

    결코 부끄러워하는 레이아가 예뻐서 하는 빈말이 아니다.

    "이건 웨어 울프라고 하는 몬스터에요."

    "네, 네에?! 웨어 울프면 1계층 마지막에 등장하는 몬스터 아닌가요?"

    아무래도 웨어 울프 자체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냥 통로를 지났다고 갑자기 층이 확 바뀔 리가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늑대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응. 여기 1계층 마지막이야."

    "아! 그래서 아까 지나온 통로를 비밀로 하는 거군요!"

    "그런 거지."

    그 이후로도 일행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계속했다.

    오늘도 당일치기가 목적이다 보니, 그다지 멀리 떨어진 곳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레이아의 버프에 힘입어 더욱더 강력해진 일행은 거침없이 사냥을 계속했다.

    다만….

    "웨어 울프가 많네요."

    사라의 말대로, 이상할 정도로 웨어 울프가 많았다.

    저번에 던전에서 일주일을 보냈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굳이 그때랑 비교할 것도 없이, 어제까지만 해도 오크가 웨어 울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 초월종이 부활한 걸까?"

    "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타탕하겠군."

    비밀 기지의 입구는 양쪽 다 바위로 막아두고 왔었다.

    구원의 예상대로 정규루트와 이곳이 이어지는 통로가 그곳 하나뿐이라면, 바위를 치우지 않고 이곳의 웨어 울프가 늘어나는 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원래대로처럼 웨어 울프와 오크를 반반의 확률로 만나는 게 아니라, 확연히 웨어 울프를 만나는 빈도가 높다.

    어쩌면 통로의 바위를 치운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아예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마저 있다.

    아니면 늑대개 초월종을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구원 일행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나선 걸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은 조금 주의를 하는 게 좋겠다.

    웨어 울프 초월종을 잡아봤다고는 해도, 만약 주위에 다른 웨어 울프들을 무더기로 끌고 다니는 초월종을 만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니 말이다.

    그 이후에도 웨어 울프를 만나는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심지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은 세 마리가 같이 다니고 있었다.

    그 따로 놀기 좋아하는 웨어 울프가 같이 행동을 하다니. 역시 이건 구원 일행에게 칼을 갈았다고 봐야하나?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다.

    세 마리 정도야 별로 문제 될 것도 없지.

    뭉쳐있던 일행은 바로 진형을 정돈했다.

    기본적으로 구원이 앞으로 돌출되고, 나머지 셋이 뒤에 있는 진형이다.

    구원이 앞으로 나서자, 이번에도 바로 아름다운 기도소리와 함께 버프가 걸렸다.

    구원이 웨어 울프 둘을 성자의 손길로 잡아두자, 바로 사라와 디아나의 공격이 날아왔다.

    하지만 역시 셋이 상대면 스턴이 풀리기 전에 전부 해치우는 건 불가능하다.

    한 마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쓰러뜨리자, 나머지 두 놈이 스턴에서 풀려났다.

    "크르르르르!"

    놈들은 바로 이성을 잃고 구원을 덮쳐왔다.

    두 마리가 상대니 난 공격하는 것보다는 회피에 전념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막상 상대해보니, 회피를 하면서도 평소보다 여유가 있었다.

    직업 레벨의 성장은 물론이고, 거기에 레이아의 버프까지 겹쳐진 효과인가.

    역시 사제가 파티에 필수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구원은 곧장 반격에 나서기로 했다.

    반격하면서 놈들의 모든 공격을 전부 피하는 건 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가볍게 두 놈 다 처리할 수 있었다.

    전부 피하지 못했다고 해도 겨우 생채기가 조금 생기긴 정도다.

    던전에서 사냥하면서 이정도 상처는 상처 축에도 못 들어가지.

    하지만 레이아의 입장에선 그게 아닌 모양이다.

    "괜찮으세요?"

    전투가 끝나자 빠르게 구원에게 다가온 레이아는 기도를 외워 따뜻해 보이는 빛을 손에 머금게 하고, 구원의 상처 부위에 가져다대 문지르듯이 어루만졌다.

    그러자 레이아의 손의 빛이 구원의 상처에 흡수되듯이 빨려들어가며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갔다.

    힐이란 걸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그냥 마법처럼 멀리서 뿅뿅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많이 아프시죠?"

    "아, 아니 그렇게 까진…."

    두 눈에 걱정의 빛을 잔뜩 띄우고 말하는 레이아에게, 구원은 얼굴을 붉히고 대답했다.

    "어머. 늠름하시네요."

    구원의 대답에 살며시 미소 짓는 레이아를 바라보며 구원은 감동했다.

    천사다. 천사가 여기 있어.

    누님을 위해서라면 설령 불타는 지옥불이라도 뛰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크흠. 흠흠. 고생했네. 역시 이 몸이 인정한 사내답군."

    "네. 앞에서 든든하게 버텨주시는 구원씨에게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게다가 평소에는 이런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디아나와 사라마저 구원을 칭찬하고 있었다.

    평소 안하던 말을 하는 게 부끄러운지 뭔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긴 했지만 말이다.

    레이아 누님의 자애로운 오라가 두 사람에게까지 전달된 건가.

    구원의 마음속에서 레이아를 신봉하는 마음이 더더욱 커졌다.

    그 이후로도 여러 마리가 뭉쳐 다니는 웨어 울프를 만나 구원이 생채기를 입을 때마다, 레이아가 그렇게 어루만지듯이 회복을 해줬다.

    "회복 마법은 굳이 닿지 않아도 사용 가능한 게 아닌가요?"

    아마 구원과 마찬가지로 사제의 마법에는 자세하지 않을 사라가 그런 질문을 했다.

    으악! 말하면 더 이상 이렇게 안 해줄까봐 일부러 나도 말 안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러는 편이 신성력의 효율이 좋아요. 제 레벨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적은 신성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하니까요."

    레이아는 살짝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과연. 레이아 성격이면 전투 중에 구원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는 즉시 바로 회복 마법을 써줄 것 같았는데, 일부러 전투가 끝나고 이렇게 사용하는 건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건가.

    아무튼 다행이다. 앞으로도 내 행복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그, 그렇군요."

    사라도 고개를 레이아의 대답에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잠깐. 그렇다면!

    갑자기 구원의 머릿속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역시 난 천재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다음 웨어 울프 무리를 만났을 때, 구원은 바로 이 빛나는 아이디어를 실행해보기로 했다.

    웨어 울프의 숫자도 적당하게 딱 세 마리다.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로군.

    구원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우선 세 마리 모두에게 성자의 손길로 스턴을 걸고, 집중 공격으로 처음 한 마리를 잡는다.

    그리고 스턴에서 풀린 두 마리를 상대로 맞상대해가며 싸운다.

    전투 과정 자체는 아까 전 전투와 동일하다.

    다른 건 상처를 입는 부위다.

    눈이 돌아가 달려드는 두 마리를 상대하면서, 구원은 신중하게 그 공격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한 놈의 발톱 공격이 적절한 높이로 날아왔을 때, 구원은 행동을 개시했다.

    지금이다!

    구원은 다른 놈의 공격을 회피하는 척하면서 크게 몸을 이동시켜 놈의 발톱 공격을 고간에 스치게 했다.

    불알을 스치는 발톱의 감각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좋아. 계획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더 이상 너희들한텐 볼일이 없다.

    구원은 더 이상 간을 보지 않고 빠르게 두 마리를 정리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괜찮으세요?"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레이아가 구원에게 다가왔다.

    레이아는 구원의 상처를 바라보며 기도를 외우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점점 얼굴이 빨개지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응. 내가 봐도 조금 이상하긴 해.

    구원에게 난 생체기 대부분은 팔과 다리에 집중되어있었다.

    몸 중심선에는 거의 상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 와중에 고간에 난 상처는 유독 눈에 띄었다.

    "응. 괜찮아. 조금 이상한데 상처가 나긴 했지만."

    하지만 구원은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봐온 레이아의 성격상, 이렇게 말해도 무조건 치료는 해줄 거야.

    구원이 기대를 담아 레이아를 쳐다보자, 레이아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뭔가 중얼중얼 거리며 갈등하고 있는 모양이다.

    좋아. 등을 조금만 더 떠밀면 되겠는데?

    "자, 가자. 내 상처는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이 정도는 침 바르면 나아."

    사실 정말로 그냥 놔두면 곧 낫는 상처들이긴 하다.

    내 자연 회복량이 좀 괜찮아야지.

    "아뇨. 그럴 수는…."

    하지만 그 말에 레이아는 결심을 굳힌 모양이다.

    얼굴은 여전히 붉게 물들이고 있지만, 구원을 똑바로 쳐다보고 기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좋아.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군.

    "자네는 바보인가!"

    구원이 씨익 미소 지으려고 한 찰나에, 옆에서 디아나가 구원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으윽. 설마 들킨 건가? 이 내 완벽한 작전이?!

    하지만 이미 늦었다! 기도는 시작됐다고!

    레이아가 기도를 마치자, 밝은 빛이 구원을 감싸며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어?! 이게 뭐야?! 안 돼! 어루만져주는 건?!

    "자, 이걸로 다 나았어요."

    레이아는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 고마워."

    구원은 애써 미소 지으며 레이아에게 감사를 전했다.

    "푸흡!"

    옆에서는 디아나가 빵 터져 배꼽을 잡고 있었다.

    넌 오늘 밤에 두고 보…크흑. 오늘 밤에는 얘 말하는 대로 다 해주기로 했잖아.

    구원은 더욱더 서글퍼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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