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65화 (65/1,205)
  • 65====================

    수인족 사제

    그렇게 오늘도 오크와 웨어 울프를 사냥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던전 탐험을 나서는 건 내일 레이아가 합류하고 나서다.

    오늘은 그냥 비밀 통로를 빠져나온 곳 근처를 적당히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다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던전에서 나왔다.

    평소 하던 것처럼 늦게까지 사냥을 하면 레이아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지도 모를 일이니 그냥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나왔다.

    그랬더니 아직 저녁을 먹기에도 이른 시간에 던전에서 나와 버렸다.

    기다리게 하는 것보단 나으니 상관없나.

    "그럼 마석 정산은…늑대개들 잡은 거라도 해야겠지?"

    물론 오늘 사냥으로 잡은 몬스터들 대부분이 오크와 웨어 울프였지만, 던전에 하루만 다녀온 거라 처분하기가 곤란하다.

    물론 며칠 쉬었으니 그 사이에도 던전에 있었다고 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런 건 철저히 하는 게 좋겠지.

    그리고 늑대개 초월종을 잡을 때 늑대개 암컷들도 상당한 수를 잡았기 때문에 그것만 팔아도 제법 돈이 될 거다.

    물론 오크와 웨어 울프들을 잡으며 생기는 수입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말이다.

    "그럴 필요 있나요? 다음에 한꺼번에 하고 오늘은 그냥 가죠?"

    "아냐. 성직자 장비에 돈이 들지도 모르잖아. 저녁때까지 아직 시간도 있으니까 금방 하고 갈게. 먼저 가."

    레이아가 어제 던전을 다니던 모습을 보면 던전을 다니는데 필요한 장비 같은 건 전혀 없을 거다.

    게다가 어쩌면 성기를 스태프로 만들 돈조차 없을 가능성도 있다.

    잡화점에서도 살 수 있을 성기를 굳이 혼자 구하러 왔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요? 그럼 먼저 갈게요."

    "딴 길로 새지 말고 곧장 여관으로 오게나."

    "알았어. 내가 애도 아니고 뭐."

    디아나는 가끔 저렇게 사람을 애 취급한단 말이지.

    외모 때문에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저럴 때면 잔소리하는 할머니 같아서 연륜이란 게 느껴진단 말이야.

    어쨌든 인벤토리에 모든 물건을 보관하고 다니는 구원은, 여느 때처럼 사라와 디아나를 먼저 보내고 마석 정산을 하러갔다.

    "안녕하세요. 누님. 오늘 마석은 여기요."

    "안녕하세요. 어머? 오늘은 조금 작네요?"

    "아, 늑대개들만 조금 잡다가 왔거든요. 하는 김에 초월종도 잡았고요."

    "…혹시 늑대개들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요?"

    안내원 누님은 살짝 질린 표정으로 구원을 쳐다봤다.

    하긴 이젠 웨어 울프까지 상대하는 놈이 굳이 거길 가서 늑대개를 때려잡고 왔으니 그런 오해도 생기는 건가.

    "네. 실은 어렸을 때 개한테 물려서요. 그 이후로 개는 꼴도 보기 싫어요. 보이는 족족 입도 뻥끗 못하게 도륙을 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구원은 모 만화의 주인공 풍으로 말하며 진지한 얼굴로 끄덕였다.

    사실 구원은 개한테 아무 감정도 없다.

    다만 왜 굳이 거길 갔냐는 의문을 사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놔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살짝 거짓말을 했다.

    "그, 그러세요."

    예상대로 안내원 누님은 살짝 반응하기 곤란한 표정이었다.

    구원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었다고 혼자 흡족해하면서 마석 정산을 마쳤다.

    마석 정산에 이어서 아이템도 처분하고, 구원은 곧장 여관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레이아를 마중하러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건지는 서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때가 되면 레이아가 여관으로 찾아올 거란 생각에 그런 거지만.

    그래도 일행이 언제 올지 모른 채로 시간을 재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니, 던전에서 돌아왔다고 알려주러 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가보자.

    구원은 여관을 향하던 발걸음을 신전 방향으로 돌렸다.

    신전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사람들이 엄청나게 북적이고 있었다.

    어제 아침에 사람들이 많았던 건 그냥 아침 예배 시간과 겹쳐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대체 여기 신님은 인기가 얼마나 많은 거야.

    사람의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한참을 가자 겨우 저 멀리서 신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의 신전은 흔히 생각하는 서양의 화려한 성당 건물 보다는 장엄한 수도원을 생각나게 하는 거대한 건물이다.

    신전 사제와 일부 방랑 사제들이 아예 여기서 거주하는 모양이니 어느 정도 건물이 큰 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방이 엄청나게 남지 않을까?

    아니면 그렇게 신전 사제들이 많은 건가?

    어쨌든 겨우 신전 건물에 들어간 구원은, 일단 사람의 물결에서 빠져나와 한숨을 돌렸다.

    막상 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안 잡힌다.

    사제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봐?

    레이아의 방이 어딘지도 모를 뿐 아니라, 그러면 도둑놈이나 변태로 오해받기 딱 좋을 거다.

    그냥 지나가다 보이는 사제 한 분에게 물어보자.

    그럼 어제 갔던 사제를 고용할 수 있는 곳이 가장 빠를까?

    구원은 그 쪽을 향하려다가, 문득 다음에 올 때는 예배라도 드리자고 생각했었던 게 떠올랐다.

    구원은 생각을 바꿔 생각하고 다시 사람의 물결에 발을 들였다.

    예배가 얼마나 걸리겠어.

    그리고 이쪽으로 가도 분명 사제들은 있을 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거대한 예배당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도 충분할 만큼 넓은 그 공간은 과연 장관이었다.

    거대한 공간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 늘어선 의자들과 천장과 벽에 그려진 장엄한 벽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장엄하고 멋진 공간이다.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 만큼 멀리 위치에 있는 단상에 사제들이 몇 명 보였지만, 지금 저기까지 가서 레이아의 행방을 물어보기는 힘들 것 같다.

    예배가 끝나면 사제들도 내려올 테니, 그때를 노리자.

    구원은 적당히 자리에 앉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전부 자리에 앉게 되자, 예배가 시작됐다.

    일종의 마법인건지, 단상에 선 사제의 목소리는 장엄하게 이 공간 전체에 울려퍼졌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무교였고, 친구 따라 교회 몇 번 가본 게 전부인 구원은 당연히 지루할 줄 알고 그냥 대충 신님께 감사 기도나 올리고 말자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의외로 단상에 선 사제가 하는 말들은 흥미로웠다.

    일단 모시는 신이 신이다보니, 엄청나게 섹스 얘기가 많이 나온다.

    멀리 있어서 외모가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는 엄청난 미성이다.

    이런 미성으로 성행위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솔직히 조금 꼴렸다.

    하지만 단상에 선 사제는 진지했고, 듣고 있으니 정말로 섹스를 신성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사람이 성장하는 행위, 게다가 새로운 가능성을 낳는 행위.

    온갖 미사여구로 섹스를 칭송하는 얘기를 늘어놨다.

    사실 여기 신이 그냥 섹스 신이 아니라 대지신이다 보니, 섹스 얘기 말고도 신의 은총인 풍요로운 대지나 무한한 가능성 같은 얘기들도 나왔지만 구원이 집중해서 들은 건 섹스 얘기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마치 성경의 얘기를 하듯 섹스와 관련된 온갖 얘기들이 이어지는데, 재미있게 듣고 있다 보니 어느 샌가 예배가 끝났다.

    뭐야 벌써 끝났어?

    시간 삭제라도 당한 기분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예배에 몰리는 이유도 납득이 간다.

    이거 재밌잖아.

    의외로 예배가 재밌었던 덕분에 원래 목적을 까먹을 뻔 했지만, 그래도 구원은 가까스로 원래 목적을 기억해냈다.

    그럼 이제 레이아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지.

    하지만 단상에 있던 사제들은 구원이 다가가기 전에 빠르게 사라졌다.

    젠장. 조금 늦었나.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사제들 고용하던 그곳으로 가야겠다.

    구원은 일어서고 나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거동이 조금 수상한 걸 깨달았다.

    뭐지? 묘하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듯한….

    예배를 마친 신도들은 경쟁하듯 빠른 걸음으로 하나같이 들어왔던 문이 아닌, 옆쪽에 난 통로로 나가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 다른 건가?

    문 옆에 있는 함에 다들 돈을 집어넣는 걸 보니, 저런 식으로 성금을 내고 나가는 모양이다.

    구원도 그들을 따라 일정량의 성금을 내고 옆문으로 나서자, 일렬로 빼곡하게 문이 있는 통로에 도착했다.

    여긴 또 어디야? 이러면 길이 헷갈리는데….

    게다가 신도들은 하나씩 각자 다른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들어간 문은 손잡이 부분이 붉게 점멸하여 사람이 있는 곳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걸 보니 그다지 방의 넓이가 넓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 고해성사라도 하는 곳인가?

    그럼 사제든 누구든 간에 신전 관계자가 있을 거다.

    구원은 아무 곳이나 비어있는 방을 찾아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구원이 늦은 건지 어느 곳도 빈 방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빈 방을 찾아 헤매는 와중에 결국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주위에 그 많던 사람들도 전혀 보이지 않고, 일렬로 늘어서있던 문들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신전 안이 이렇게 크고 복잡해.

    아무리 통로를 따라가도 그 끝이 어딘지도, 여기가 어딘지도 전혀 모르겠다.

    "어머? 구원씨?"

    구원이 벽에 달린 창문을 바라보며 이젠 여길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레, 레이아!"

    "여기서 뭐하세요?"

    "언제 던전에서 돌아올 거라고 얘기를 안했잖아. 그래서 아예 내가 만나러 왔는데 길을 잃어서…."

    "어머. 그렇군요. 일단 다른 곳으로 가요. 여긴 여성 사제들이 머무르는 곳이에요."

    뭐?! 그럼 들키면 변태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레이아는 구원의 말을 완전히 믿는다는 듯이 차분히 미소 지으며 구원의 손을 잡고 앞장섰다.

    음. 역시 천사 같다.

    "그런데 어디서 여기까지 오게 되셨어요?"

    "온 김에 예배도 참여하고 문이 쫙 늘어선 복도로 나갔는데, 거기서 나갈 길을 못 찾고 정체 없이 걷다보니…."

    "교육장으로 나가셨군요. 처음 가시는 분은 꼭 길을 잃더라고요."

    레이아는 입가에 손을 가져대고 쿡쿡 웃으며 말했다.

    교육장이라. 고해성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또 교육까지 따로 받는 건가?

    여기 신도들도 어지간하네.

    "그런데 어떻게 됐어? 수속은 다 밟았어?"

    "앗. 실은 그 일로 안 그래도 구원을 불러오려고 했었어요."

    당연히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본 거였는데,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레이아는 살짝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구원을 쳐다봤다.

    "지금부터 대사제님과 만나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갑자기 대사제님은 왜?"

    "아무래도 제가 들어가는 파티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신 모양이에요. 개인적으로 어머니 같은 분이셔서…."

    "그, 그래? 그런 거라면."

    구원도 그제야 레이아가 살짝 부끄러운 기색인 이유를 깨달았다.

    딸이 어머니께 남자친구라도 소개시켜주러 가는 것 같잖아.

    하지만 구원의 그런 알콩달콩 두근두근한 기분은 대사제를 만나고 순식간에 깨졌다.

    "당신인가요? 우리 레이아를 데려가려는 자가."

    신전의 대사제라고 하니, 아무래도 푸근한 미소의 인자한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아의 인도로 만난 건 깐깐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인상은 물론 나이마저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

    기껏해야 30대 초반정도 될까?

    깐깐해 보이지만 이건 또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제들이 하나같이 한 미모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이 세계에서 사제 클래스는 매력 수치를 올려주는 건가?

    어쨌든 이 대사제님께서는 구원을 보자마자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이러니까 진짜로 장모님 맘에 들지 않는 사윗감이 인사드리러 온 것 같네.

    "대, 대사제님. 구원씨는…."

    그런 대사제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레이아가 구원을 감싸려고 했지만, 대사제의 반응은 냉정했다.

    "레이아는 조용히 있으렴. 그럼 한번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당신만 우리 레이아와 제대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요? 대체 어떤 원리죠?"

    구원이 레이아를 슬쩍 보자, 레이아는 디아나가 물었을 때와는 다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머니 같은 사람이라고 했으니.

    구원은 차근차근 어젯밤에 있었던 얘기를 설명했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연참을 기대하신 분들껜 죄송합니다.

    실은 구원이 교육장의 빈 방에 들어가는 내용으로 다음 화까지 썼었는데, 전개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 갈아엎었습니다.

    연참은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습니다.

    심심행 // 일단 레이아가 사제라서 지켜본다는 얘기는 못 한 겁니다. 섹스를 신성시하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보이며 하는 행위는 그 신성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여긴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레이아가 섹스할 때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으면 신전에서도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자라는 직업이 잠자리에서 어떤 위력을 가지는지 잘 알고있는 사라와 디아나는 구원이 섹스로 죽을 거란 걱정은 그다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