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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4화 (6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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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족 사제

    "그, 그러니까 앞으로 파티의 힐러를 담당할 레이아…."

    그 차가운 목소리에 구원은 드디어 분위기를 파악하고 얌전하게 대답했다.

    "자네는 그 처자를 파티에 영입하려고 같이 잔 거였나?"

    "어디까지나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제가 말하지 않았었나요?"

    "음. 사라양이 말하는 대로일세. 게다가 하룻밤 자고 파티에 영입이라니."

    "그렇게 좋았나요?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죠?"

    하지만 그래도 디아나와 사라는 구원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쏘아져 나오는 말들에 구원은 할 말이 궁색해졌다.

    하긴 자신들은 구원의 몸을 걱정해서 잠도 못 잤는데, 구원이 이렇게 높은 텐션으로 말하면 화날 만도 하지.

    "여, 여러분 진정하세요. 구원씨는 어디까지나 저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런 구원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레이아가 구원의 앞을 지켜주듯 가로막고 섰다.

    그러자 어째선지 사라와 디아나가 더더욱 욱하는 표정이 됐다.

    "아무래도 제 체질이 다른 남성분과의 성관계는 불가능 한 것 같아서…그래서 유일하게 상대 가능한 구원씨가 같이 다니면서 개선해보지 않겠냐고 말씀해주신 거예요. 구원씨는 그저 친절을 베풀어주셨을 뿐이에요."

    레이아의 말에 사라와 디아나도 더 이상 구원을 구박하지 못했다.

    "저 말, 정말인가요? 정말 그 외에 다른 뜻은 없었던 거죠?"

    "응? 으, 응…."

    구원은 곧게 이쪽을 쳐다보는 사라의 시선을 차마 똑바로 마주보지 못하고 대답했다.

    같이 다니면서 고쳐보지 않겠냐고 한 건 정말이야.

    다만 그저 친절을 베풀려는 마음이 아니었을 뿐이지.

    "다른 음흉한 뜻이 있었던 건 아닌가?"

    "그, 그럴 리가. 그냥 이대로라면 좋아하는 사람과도 이어지지 못할 테고, 그럼 너무 불쌍하잖아."

    디아나는 구원의 얼굴을 지긋이 보다가, 구원의 말에 만족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같은 미인들이 옆에 계시는데, 설마 구원씨가 저한테 음흉한 마음을 품을 리가요."

    레이아는 구원을 완전히 믿는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윽. 마음이 아프다.

    죄송합니다. 실은 누님한테 음흉한 마음이 대부분이었어요.

    "아, 아뇨. 레이아씨도 충분이 미인이세요."

    "으, 으음. 자네도 충분히 괜찮으니 너무 스스로를 비하할 건 없네."

    레이아의 말이 사라와 디아나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듯 헛기침을 했다.

    역시 여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쁘다는 말에는 약한 모양이다.

    "그래서. 자네만 상대 가능하다니 어떻게 된 건가. 얘기를 해보게나."

    그런 개인적인 일을 막 떠벌려도 될까?

    구원이 그런 의미를 담아 레이아를 쳐다보자, 레이아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그렇다고만 알아둬. 아무튼 나 말고 다른 남자는 백이면 백 전부 죽을 거야."

    "으, 으음. 미안하네. 이 몸이 호기심이 많아서 말일세."

    "아뇨…."

    디아나도 레이아의 표정을 보고 상황을 짐작했는지, 바로 사과해왔다.

    "그럼 구원도 위험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 난 전혀 문제없어. 괜히 성자가 아니라니까."

    구원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자, 사라와 디아나는 더 이상 추궁해오지 않았다.

    좋아. 드디어 사라와 디아나도 이해를 해준 모양이다.

    "그럼 레이아씨가 파티에 들어오는 건 다들 문제없지?"

    "…그러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레이아씨."

    "음. 꼭 자네 체질도 개선할 수 있을 걸세. 힘내게나."

    "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원래 힐러는 구하려고 했었잖아. 참 잘됐지 않아?"

    구원이 웃으며 말하자 사라와 디아나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제 레벨 업에 소홀해지면 저도 생각이 있어요."

    "이 몸과의 스킬 연구도 부족한 점이 생겨선 안 되네."

    "무, 물론이지. 그럴 일 전혀 없을 거야."

    역시 어제 구원하고만 한다고 말했어도 이런 면에선 가차 없으시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사라와 디아나도 레이아를 파티원으로 받아들여줬다.

    드디어 얘기가 일단락되고 겨우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다.

    사라와 디아나는 막 파티에 들어온 레이아와 빨리 친해지기 위해서인지 이것저것 물어보며 수다를 떨었다.

    눈앞에서 미인 셋이 모여 수다를 떠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광경이었다.

    다만 너무 셋이서만 얘기하다보니, 구원이 철저하게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뭘까. 이 소외감은.

    이게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이란 건가?

    분명 넷이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마치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레이아도 소외되어있는 구원이 신경 쓰이는지 가끔 이쪽을 힐끔거렸지만, 사라와 디아나의 질문공세에 다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네. 아기 때 신전에 거둬져서 계속 신전에서 생활했어요. 아뇨, 모두들 정말 가족 같이 대해주셔서…."

    "그런데 저희와 파티할 거면 방랑 사제가 돼야 하나요? 신전 사제라고 들었는데…."

    타이밍을 노리던 구원이 드디어 기회를 포착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째선지 사라와 디아나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레이아는 구원을 바라보고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렇죠. 하지만 저희 신전은 그렇게까지 규율이 엄격하지 않으니까요. 신청만 하면 방랑 사제가 되는 건 간단하고, 방랑 사제가 되도 신전에서 지낼 수 있으니 괜찮아요."

    "그렇군요. 하긴 외박도 이렇게 자유로우니…."

    "아앗! 그러고 보니 무단으로 외박해버렸어요! 걱정하고 계실 텐데…."

    레이아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냥 외박에도 자유로운 신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잊고 있었던 거냐.

    "어, 어쩌죠. 지금이라도 어서 가봐야. 저, 저 다녀올게요."

    "잠깐만요. 그럴 거면 같이…."

    "자네는 무슨 소릴 하는 겐가. 거길 자네가 왜 같이 가나?"

    "그래요. 저희는 그동안 던전이나 가죠."

    "뭐? 하지만…."

    "간단하다고는 해도 방랑 사제가 되는 절차를 밟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걸세. 게다가 가족 같은 사람들과 할 얘기들도 있지 않겠나."

    "그래요.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눈치 좀 키우세요."

    사라와 디아나가 구원을 구박했다.

    아, 그런가.

    하긴, 내가 가봤자 그냥 옆에서 구경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없겠지.

    다만, 사라야. 왠지 눈치 없단 말에 엄청나게 힘이 실린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이니?

    그야 이 상황에서 부정할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아니에요. 같이 가셔도 괜찮아요. 신전 여러분에게 소개도 시켜드리고 싶고요."

    하지만 레이아는 웃으며 그렇게 말해줬다.

    천사다. 천사가 여기에 있어.

    "아닐세. 스태프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동안 이 몸들이 가서 하나 구해오겠네."

    "네?! 정말요?!"

    그러자, 레이아가 구원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그럼요. 당연하죠. 다녀오세요."

    그 눈빛에 당한 구원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럼 다녀올게요."

    레이아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는 여관을 빠져나갔다.

    구원은 그 모습에 헤벌쭉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정면을 봤다.

    거기엔 아름다운 외모의 귀신들이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헤어진 천사님과 빨리도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입이 귀에 걸리겠네요."

    "아주 푹 빠졌구먼 그래."

    특별한 이유 없는 구박이 구원을 덮쳐왔다.

    아니 이유가 없는 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밤새 걱정하느라 잠도 못잔 애들을 내가 먼저 도발한 격이니.

    아무래도 구원에게는 화가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뇨. 그럴 리가요. 이렇게 아름다우신 여러분과 지내는데 이 이상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이제 와서 아부해도 늦었어요."

    "이 몸이 아름다운 건 자네가 말 안 해줘도 충분히 알고 있네."

    그렇게 말하는 사라와 디아나는 썩 나쁜 기분은 아닌 것 같았다.

    아까 레이아가 외모를 칭찬하자 기분이 풀렸던 걸 기억해내고 그대로 실행한 건데, 다행이도 유효하게 먹힌 모양이다.

    그렇게 식사 내내 충분히 비위를 맞춰줘서, 다행이도 사라와 디아나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었다.

    "자, 그럼 오늘도 사냥을 해보자고!"

    평소 컨디션을 되찾은 구원은 던전에 들어와서 활기차게 말했다.

    오늘 목표는 레이아의 스태프 재료, 즉 성기를 얻는 거다.

    "그러고 보니 늑대개 초월종. 그 놈 다시 나온 거야?"

    레이아도 그놈을 노리고 갔던 모양이고, 다시 나왔단 소문이라도 있는 걸까?

    "음. 가능성은 높네. 초월종이나 계층의 주인은 잡아도 일정 주기가 지나면 어느 샌가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난다네. 가끔 예외도 있긴 하지만 말일세."

    "그럼 성기를 얻기 위해 그 놈을 노릴지, 아니면 밑으로 내려가서 오크를 잡을지 인데…."

    인벤토리에도 성기가 있긴 하지만, 종류별로 하나씩만 남겨놨기 때문에 레이아의 스태프로 만드는 건 곤란하다.

    지금은 쓸데없는 성기라도, 언제 그 성기가 열쇠가 되는 비밀통로를 발견할지 모를 일이고 말이다.

    "오크를 잡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여기서는 저희 성장도 안 되잖아요."

    하긴. 이왕 던전에 왔으니 그냥 성기만 얻고 돌아가기 보다는, 직업 레벨 성장도 같이 노리는 게 좋겠지.

    굳이 비밀 장소까지 가려고 하지 않으면 비밀 통로를 지난 곳 근처에서 사냥하고 돌아오면 하루 만에 1계층 마지막으로 사냥을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한 일행은 만나는 몬스터들을 적당히 상대하며 곧장 비밀 통로로 향했다.

    이제는 여기 몬스터들은 말 그대로 한주먹 거리라서, 잡는데 수고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고블린들이 다시 안보이게 됐네.

    늑대개 초월종이 죽은 이후로 여기 늑대개들의 영역에 고블린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었는데, 다시 고블린들이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게 됐다.

    역시 늑대개 초월종이 돌아온 건가?

    그 해답은 비밀 통로에 도착하자 곧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늑대개 암컷들이 주위를 둘러싼 그 가운데 도저히 늑대개로는 보이지 않는 덩치가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본능적으로 구원의 강함을 깨닫고 있는지,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낮게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우리 지나가야하는데? 길 좀 열지 그래?"

    하필이면 초월종 놈이 딱 비밀 통로의 정면을 틀어막고 있어서 지나가려면 무조건 부딪혀야 한다.

    어차피 이놈들은 잡아봤자 그다지 경험치도 안 된다.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구원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기점으로 늑대개 초월종과 늑대개 암컷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사라! 디아나! 내 뒤에 꼭 붙어있어!"

    아무리 약한 놈들이라지만 이렇게 떼로 달려드는 데 한 대도 안 맞을 수는 없다.

    게다가 방어력이 약할 사라나 디아나는 치명상을 입을 지도 모르니 구원은 벽 쪽에 사라와 디아나를 세우고 그 앞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구원의 기우인 모양이었다.

    한 발에 한 놈씩.

    게다가 빗나가는 일도 없이 정확히 꽂히는 사라와 디아나의 폭풍 같은 공격에, 늑대개들은 감히 다가올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오로지 초월종만이 계속해서 전진해 구원에게 달려들어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그 회심의 물어뜯기도 구원의 건틀릿에 간단히 막혔다.

    이렇게 부딪혀 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놈은 웨어 울프보다 조금 강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이런 곳에서 웨어 울프보다 조금 강한 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게 강한 거지만, 웨어 울프 초월종도 때려잡는 구원의 파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게 사라와 디아나는 계속해서 암컷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견제를 하고, 구원이 일 대 일로 치고받았다.

    사라와 디아나가 초월종을 공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구원은 성자의 손길을 사용했다.

    그러자 예전처럼 초월종이 입에 침을 질질 흘리고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옛날 생각나네.

    하지만 스턴 상태로 움직일 수는 없는 상태다.

    그리고 지금의 구원은 이놈을 스턴 상태가 풀리기 전에 끝장낼 수 있다.

    "너한테 청년막을 노려지던 그 때랑은 다르다고!"

    구원은 그 때 생각이 떠오르자 화가나 더욱더 거세게 주먹을 휘둘렀다.

    "네놈이야 말로 등짝! 등짝을 보자!"

    구원이 그런 말을 하며 스턴이 걸려 멈춰있는 놈의 뒤로 돌아가자, 놈의 동공이 당황한 듯 진동하는 것 같았다.

    물론 구원에게 그런 취미는 없다. 그냥 겁만 줬을 뿐이다.

    구원은 뒤로 돌아가서 평범하게 주먹질을 다시 시작했다.

    "원망하려면 내 청년막을 노렸던 자신을 원망해라."

    "끼이이잉."

    녀석은 마치 내가 그런 게 아니지 않냐는 듯한 억울한 눈빛을 보내며 그렇게 숨을 거뒀다.

    녀석이 숨을 거두자, 주위를 에워싸던 암컷들도 순식간에 뒤로 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거 의리 없는 놈들이네.

    "어쨌든 이걸로 일단 오늘 목표는 달성했네."

    마석을 캐내자 당연하다는 듯이 드랍한 성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구원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비밀 통로를 향했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연참은…내일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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