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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7화 (5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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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족 사제

    아라크네 클랜에서 나온 구원은 멍하니 광장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이번엔 원나잇을 위해서가 아니다.

    지상낙원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오자 왠지 그런 의욕은 팍 죽어버렸다.

    원나잇이든 뭐든 간에 전부 부질없는 짓이지.

    오늘 하루의 목표를 상실해버린 구원은 다시 어떻게 시간을 죽여야 할지 막막해졌다.

    이제 겨우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아직도 오늘 하루는 한참 남아있다.

    일단 점심이나 먹으러 한 번 여관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지만, 곧 포기했다.

    하지만 아침에 느꼈던 그 비참함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으니까.

    에잇. 이렇게 시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생산적인 일이라도 하자.

    구원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모험가로서 할 일은 아직 많이 있다.

    정보 수집을 해도 되고, 새 동료를 구해도 된다.

    앨리시아와의 대화에서 드러났듯이, 던전의 진행상황이나 레벨과는 다르게 구원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새내기 모험가다.

    솔직히 궁금한 건 디아나한테 물어보면 바로 그때그때 답변을 들을 수 있으니 경시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항상 곁에 디아나가 붙어있는 게 아니니 말이지.

    그리고 새 동료 영입.

    웨어 울프의 초월체까지 수월하게 잡아낸 지금, 이제 1계층에서 구원 일행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계층의 주인밖에 남아있지 않다.

    디아나는 그 계층의 주인을 잡기 위해서는 임시로라도 파티원을 보강할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임시 파티원을 들이는 건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

    파티를 떠날 사람에게 비밀 통로의 존재를 알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임시 파티원 하나 때문에 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까지 그 긴 정규루트를 통해 가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결국 계층의 주인을 잡으려면 파티에서 계속 함께할 동료를 영입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결국 구원은 오늘도 길드에 가기로 했다.

    정보 수집을 하든지 동료 영입을 하든지 간에 모험가가 많이 몰려있는 곳이 제일이다.

    모험가가 제일 많이 몰려있는 곳 하면 역시 길드지.

    길드는 오늘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리고 있었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

    정보 수집이라고 해도 별거 없다.

    그냥 귀를 열어두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주목하는 것뿐이다.

    지금 핀 포인트로 알고 싶은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험가와 관련된 전반적인 지식을 알고 싶은 거니 이게 최선이지.

    그렇게 귀를 열어둔 상태에서 구원은 길드의 벽으로 향했다.

    종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은 맞지만, 의뢰들이 붙어있는 곳이 아니다.

    바로 모험가들의 파티 구인 광고가 붙어있는 곳이다.

    모험가들이라고 처음부터 파티가 짜여있는 것이 아니다.

    파티가 없어 동료를 구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갑작스런 결원 발생으로 임시 파티원을 구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 벽은 그런 모험가들이 구인 광고를 내걸어놓은 곳이다.

    여기서 파티원을 구하는 힐러가 있는지 확인해서 일단 만나볼 생각이다.

    처음 동료를 들일 때는 섹스에 눈이 돌아가서 외모만 보느라 이런 곳은 이용할 생각도 안했었지만, 지금은 또 그때완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파티원을 구할 때까지 혼자서 늑대개만 잡으면서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마왕을 잡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으니 말이다.

    디아나도 핀 포인트로 힐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힐러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진 우월한 스펙으로 힐러 없이 버텼지만 그게 언제까지 통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게다가 섹스는 사라와 디아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이런 식으로 파티원을 구하는 게 전혀 거부감이 없는 건 아니다.

    파티원이 둘 다 절세 미녀인 상황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당연히 모든 파티원을 그렇게 꾸리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다.

    사라와 디아나만으로도 운이 좋은 거지.

    구원은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면서 벽에 붙어있는 구인 광고를 하나하나 살펴봤다.

    하지만 역시나 힐러는 귀한 모양이다.

    벽에 붙어있는 구인 광고를 전부 일일이 살펴봤지만, 파티원을 구하는 힐러는 전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힐러는 귀하신 몸이라 굳이 광고 같은 거 없어도 파티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젠장. 그럼 내 쪽에서라도 구인 광고를 붙여 놔야겠다.

    구원은 길드의 테이블 한 구석에 앉아서 구인 광고를 하나 작성했다.

    구하는 직업은 힐러에 요구 레벨 20~50.

    요구사항은 이정도만 써도 충분하겠지?

    레벨 하한선을 너무 낮게 잡은 것 같기도 하지만, 저 정도는 내가 밤낮으로 열심히 힘쓰면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구원이 종이를 들어 확인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저…."

    응? 헉!

    소리 난 곳을 돌아본 구원은 그만 숨을 들이 삼켰다.

    이건 또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울 정도의 미인이 구원의 옆에 서 있었다.

    찬란하게 밝은 금발에 상냥해 보이는 생김새.

    머리 위에는 세모난 동물귀가 쫑긋 솟아올라 있었다.

    수인족인가? 어떤 종족이지?

    얼굴에 생글생글 띄우고 있는 부드러운 미소가 그 성격을 알려주는 것 같다.

    모든 응석을 다 받아줄 것 같은 누님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미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대했다.

    옷을 뚫고 나오려는 듯이 로켓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그곳은 펑퍼짐한 사제복으로도 전혀 가려지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이정도면 전생 전의 디아나 급인가?

    구원은 자기도 모르게 전생 전에 만졌던 디아나의 가슴 촉감을 떠올리며 눈앞에 있는 가슴과 비교해봤다.

    아니, 정확한 건 만져봐야 알겠지만, 아마 그 이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원의 취향을 직격하는 외모였다.

    "저…괜찮으세요?"

    구원이 여성의 흉부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말을 잃고 있자, 여성이 곤란한 듯한 미소를 띄우며 상냥하게 구원에게 되물었다.

    "네? 아, 네! 그럼요! 물론이죠! 무슨 일이세요?"

    구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여성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위험해. 사라와 디아나의 미모로 단련된 내가 정신을 뺏길 정도라니. 엄청난 파괴력이다.

    "그 종이…힐러를 구하시고 계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파티에 들어가면 오크도 잡을 수 있나요?"

    "오, 오크요? 그야 물론 잡을 수 있습니다만."

    "와아!"

    구원의 말에 여성은 구원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고 그대로 가슴 앞에 모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구원을 올려다봤다.

    저…제 손이 가슴에 닿고 있달까, 파묻혀 있습니다만.

    물론 입밖으론 절대 내지 않는다.

    이럴 땐 그냥 그대로 행복한 기분에 잠겨주는 게 신사의 도리지.

    "그럼 저를 파티에 동행시켜 주실 수 있을까요?"

    구원은 다시 한 번 찬찬히 여성을 살펴봤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직업은 성직자인 것 같다.

    그럼 일단 직업은 합격.

    외모는 더 볼 것도 없이 무조건 합격. 아니, 제발 파티로 들어와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수준이다.

    레벨은….

    구원이 애널라이즈를 사용하여 확인한 여성의 레벨은 18이었다.

    솔직히 미모로 보고 상당히 고레벨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엄청 낮았다.

    하지만 이정도면 뭐 아슬아슬하긴 해도 합격선으로 쳐줄 수 있는 정도다.

    다른 부분이 훌륭하니 저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그럼 이제 남은 조건은 별거 없다.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야지.

    "저희가 꾸준히 같이 할 사람을 모으고 있는데요. 가능하신가요?"

    그러자 여성의 얼굴이 조금 흐려졌다.

    "그게, 그건 조금…."

    어라?

    설마 다른 조건은 다 통과하고 여기서 막힐 줄이야.

    "무슨 문제라도?"

    "그게…계속 같이 하면, 역시 레벨 업도 하면서 던전 깊은 곳을 노리는 건가요?"

    "그야. 물론이죠."

    그 말에 여성의 표정이 더더욱 흐려졌다.

    설마 이 여자도 사라처럼 섹스에 거부감이 있는 과인가?

    무슨 이런 세계에서 이렇게 섹스에 거부감 있는 모험가가 많아?

    아니, 뭐 그러니까 저 미모에도 아직까지 레벨이 낮겠지만.

    "죄송해요. 실례했습니다."

    여성은 구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뒤로 했다.

    "자, 잠깐만요!"

    되도록 놓치고 싶지 않은 미모였던지라 구원도 아쉬운 마음에 쫓으려고 했지만, 모험가의 물결에 휩쓸려 여성의 모습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젠장. 저런 미인을 놓치다니.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미모였는데.

    얼굴이나 몸매, 분위기까지 완전히 내 이상형이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길드 안에서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그 미인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눈앞에서 대박을 놓친 구원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에 돌아와 그대로 방으로 돌아가려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눈앞에 보이는 건 어째선지 구원의 방 문 앞에서 사라와 디아나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이 몸의 차례인 걸로 알고 있네만."

    "네. 하지만 스킬 연구니까요. 벌써부터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건 모르는 말일세. 연구니까 오히려 더 오래 붙잡고 관찰해야하는 법이지."

    "그렇군요. 전 그렇게 연구 목적으로 한 적이 없어서 몰랐네요."

    "으음. 그러는 자네 역시 레벨 업을 위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속닥이고 있었지만, 워낙 작은 소리로 주고받는 대화라 정확한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얼굴은 심각해 보이는 것이 뭔가 중요한 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쟤들이 남의 방문 앞에서 작당모의라도 하나.

    "…너희 여기서 뭐해?"

    "구, 구원! 어서 와요."

    "으, 음. 아무것도 아닐세. 어서 오게나."

    서로 마주보고 있던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원에게 인사했다.

    …수상한데. 대체 뭔 대화를 나눈 거지?

    어쨌든 얼굴을 보건대 둘 다 어느 정도 제 컨디션을 찾은 모양이었다.

    사라는 아직도 조금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긴 했지만, 구원의 눈을 피하려는 기색은 없다.

    디아나 역시 푹 잤는지 눈가에 기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언제나처럼 하얗고 뽀송뽀송한 피부로 돌아와 있었다.

    "응. 무슨 말을 한 거야?"

    "그냥 여자끼리 대화에요. 그보다 배 안고프세요?"

    "음. 어서 식당에 가세나."

    그러고 보니 점심도 걸러서 상당히 배가 고프다.

    구원은 사라와 디아나와 함께 식당으로 내려왔다.

    그래. 이거야. 바로 이거라고.

    이래봬도 난 이런 미인들을 양 옆에 끼고 밥 먹는 놈이라고.

    오늘 아침이 조금 특별했던 것뿐이야!

    누구 뭐라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구원은 괜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뽐내듯이 주변을 스윽 훑어봤다.

    "흠. 그래서 어딜 그렇게 돌아다닌 겐가?"

    "응? 그, 그냥. 쉬는 날이니까 이곳저곳."

    아라크네 클랜의 지상낙원, 그리고 이름 모를 성직자의 훌륭한 외모를 차례로 떠올린 구원은 그만 가랑이를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이곳저곳이요? 구체적으로는 어디요?"

    왠지 그 주제에 사라가 더욱더 자세한 대답을 촉구해왔다.

    "그냥. 디아나 말이 생각나서 혹시 힐러를 구할 수 없을까 찾아보다 왔어."

    어떠냐! 파티를 위해 쉬는 날에도 힘쓰는 이 내 모습이.

    거짓말도 아니니 구원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은 신전에 다녀왔다는 말인가?"

    그런데 어째선지 사라와 디아나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어, 어라? 어째서? 오히려 날 칭찬해줘야 하는 부분 아니야?

    "시, 신전? 아니, 길드에 다녀왔는데. 그런데 구인 광고 쪽을 둘러봐도 파티 구하는 힐러는 전혀 없더라고."

    구원의 대답에 사라와 디아나의 시선이 동시에 부드럽게 풀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고 보니 자네는 이방인이라 잘 모르는 게군. 힐러라면 신전에서 구하는 게 보통이라네. 내일이라도 이 몸과 같이 가세나."

    "그래요. 저도 꼭 같이 가요."

    하긴. 힐러면 보통 성직자니까. 신전에서 구하는 게 당연한 건가.

    그래서 힐러의 구인 광고 같은 게 하나도 없었구나.

    나름 정보수집도 겸한다고 길드에서 있었던 건데 이런데서 또 한 번 초보티를 내고 말았다.

    응? 그럼 길드에서 파티를 구하던 그 미인은 대체 뭐였던 거지?

    의문은 커져만 갈뿐이었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Abraham // 야생의 칸나는 던전에 출몰 중입니다.

    펄미스트 // 걱정 마세요. 한 번 써먹은 거라도 상황만 맞으면 또 써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토므스크 // 여기서 또 폭렙하면 보스 잡을 때 다음 동료가 필요 없어져서요….

    그 외에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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