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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6화 (5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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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족 사제

    꿀꿀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친 구원은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심심하다. 할 게 아무것도 없다.

    사라도 디아나도 방에서 나올 일은 없을 것 같고, 대체 뭘 하면서 보내야 하지?

    취미라고 해봐야 게임밖에 없는 구원에게, 게임도 없는 세계에서 아무 예정 없이 비어버린 이 시간은 고문에 가까웠다.

    분명 저번 휴일은 양손의 꽃 상태로 데이트 기분을 맛보며 행복하게 보냈는데, 바로 다음 휴일이 이 지경이라니.

    에잇. 일단 밖으로 나가자.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라도 잘 가겠지.

    구원은 일단 밖으로 나가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이렇게 아무 목적 없이 돌아다니면서 보니 건물들도 옛날 유럽 느낌이 나는 건물들이라서 그런지 관광하러 온 기분이 됐다.

    하지만 구원이 어디 여행하며 돌아다니면서 취미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곧 건물들을 둘러보는데 질린 구원은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두리번거리며 필사적으로 할 일을 찾았다.

    차라리 여자라도 꼬셔볼까?

    분명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땐 성자의 능력으로 하렘왕이 될 거라고 설쳤었는데, 사라나 디아나랑 부대끼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지금 내 렙이면 이제 초보 딱지는 진작 벗어던진, 이제 나름 숙련된 모험가라고 할 수 있다.

    얼굴도 이만하면 훌륭하고, 맘만 먹으면 여자 하나둘은 쉽게 꼬실 수 있지 않을까?

    좋아. 그러자. 결심했어. 오늘은 인생 처음으로 원나잇이란 걸 해보자.

    그때부터 구원은 광장 한 복판에 있는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여자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원나잇이 목표라고 해도 아무 여자나 꼬실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내 심미안에 걸맞은 상대를 고르고 싶다.

    이 광장은 길드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광장이다.

    당연히 지나가는 사람들 중 모험가도 상당수 있다.

    이정도로 모험가가 자주 다니는 길목이면 내 눈에 맞는 상대도 나타나겠지?

    하지만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구원의 눈높이에 맞는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젠장. 어쩌다가 이런 일이.

    예쁜 여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모험가를 할 정도니 나름 예쁜 여자들도 있긴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나름 예쁘단 거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예쁜 느낌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예쁘긴 한데 그냥 저 정도면 작업 걸 정도까지는 좀…이라는 느낌이다.

    사라, 디아나 네 이놈들. 이런 식으로까지 날 방해해올 줄이야.

    상중에서도 최상급인 사라와 디아나 덕분에 한껏 높아진 구원의 눈은 분수도 모르고 어지간히 예쁜 여자는 눈에 안 들어오게 되어버렸다.

    설마 이런 어이없는 이유 때문에 내 하렘왕의 꿈이 좌절된다고…?

    구원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며 눈을 부릅뜨고 지나가는 여자들을 더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잖아. 어딘가에 내 맘에 드는 여자가 한명쯤은 있을 거야.

    저 여잔 아니고. 얘도 아니고. 이 사람도 좀 아쉽고. 얘는….

    그렇게 한참을 찾았을 때 드디어 구원은 맘에 드는 여자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확실히 보진 못했지만 눈에 띄는 용모였다.

    구릿빛 피부에 두터운 갑옷 위로도 확연히 느껴지는 육감적인 몸매.

    지금은 구원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서 섹시한 붉은 머리만 보이지만, 방금 얼핏 보인 옆얼굴도 상당한 미인으로 보였다.

    "저기요!"

    구원은 망설일 것도 없이 여성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괜히 망설이다가 놓칠 순 없지.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저런 여자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앙?"

    여자는 구원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이쪽을 향해 돌아봤다.

    근데 앙? 이라니. 어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양아치도 아니고.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같이 차라도…아뇨. 사람 잘 못 봤네요. 안녕히 계세요."

    완전히 드러난 여성의 모습을 확인한 구원은 황급히 뒤를 돌아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인마. 뭘 말 걸어 놓고 도망 가냐."

    하지만 그 행동은 구원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여성의 손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다.

    "이, 이야아. 오랜만이다. 앨리시아. 멀리서 볼 때부터 막 후광이 나는 게 딱 봐도 너 같더라니까."

    "핫! 그런 놈이 도망을 가냐?"

    "하하. 도망은 무슨. 그냥 잠깐 놀라서 그랬지."

    무려 구원이 말을 건 여자는 구원의 동정을 무자비하게 뺏어간 앨리시아였다.

    젠장. 하필 걸려도. 얘랑은 원나잇하면 내 기만 빨릴 거 아냐.

    아니, 아니지. 나도 그때보단 레벨이 훨씬 올랐으니까 혹시?

    구원은 슬쩍 애널라이즈를 써봤지만 역시나 정보 확인은 불가능했다.

    …난 1렙 때부터 대체 몇 렙이랑 섹스를 한 거야.

    어쩌면 그때도 복상사의 위기였던 거 아니야?

    "그래서 이 누님이랑 차 한 잔 마시고 싶다고?"

    앨리시아는 재밌는 장난감이 걸렸다는 눈초리로 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뭐, 하하. 그냥 해본 말이지. 요즘 어때? 잘 지냈어?"

    "그래. 넌 상층에서 초월체도 발견하고 나름 잘 나가는 모양이더라. 병아리."

    그냥 인사치레나 건넨 거였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어라? 그런 소리는 누구한테 들었어?"

    "칸나한테 들었다. 네 이름이 좀 특이하냐? 말하는 거 듣자마자 바로 알았지. 그러고 보니 너 걔네 파티원들이랑 떡치기로 하고 바람맞혔다며? 병아리에서 치킨이라도 됐냐?"

    하하. 그거 제법 센스 있는…아니, 그게 아니잖아!

    "그런 거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던전에서 길을 잃고 조난당하는 바람에 못 갔을 뿐이야."

    정확히는 약속날짜 전에 탈출했고, 그냥 조난당한 바람에 정신이 없어져서 까먹었을 뿐이지만.

    "근데 넌 칸나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같은 클랜이다. 이래 뵈도 이 몸은 간부님이시라고."

    헉. 그 남자를 쇠약사 시킨다는 클랜의 간부?!

    어쩐지 도발 좀 했다고 다짜고짜 여관에 끌고 갈 때부터 알아봤어.

    이거 완전 무서운 년이었네.

    그럼 난 복상사 안당하고 살아있는 게 용한 거잖아?

    설마 또 하자고 덤벼들진 않겠지?

    구원이 하고 싶은 건 서로 즐기는 원나잇이지 일방적으로 기가 빨리는 게 아니다.

    "너 뭐하냐?"

    구원이 이제야 느껴지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자 앨리시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뇨. 그냥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 설마 동정 떼일 때 생각하고 쫄았냐? 특수 직업도 있다는 놈이 뭔 그런 걸로 쫄아? 걱정 마라. 내 레벨에 너랑 한다고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냐?"

    난 알 수 있다. 이 말은 거짓말을 하는 맛이로군.

    그런 애가 내가 1렙인거 뻔히 아는 상황에서 여관으로 끌고 갔냐?

    "그 반응을 보니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네. 너 진짜 종일 던전만 다녔나 보구나? 좀 돌아다니면서 정보도 얻고 그래라. 그땐 신입생 환영회였잖아. 인마."

    "신입생 환영회?"

    "그래 인마. 원래 싹수 괜찮아 보이는 놈들은 그렇게 미리 확인해보는 거야. 너 그 이후로 여관에서 후불로 낸 적 있냐?"

    그, 그러고 보니….

    그땐 그냥 앨리시아가 무작정 빈방으로 들이닥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후불로 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뒷사정이 있었다니.

    "근데 너 우리 칸나가 클랜에 권유하는 것도 거절했다며?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클랜은 사내놈들이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 난 클랜인데 왜 거절했냐?"

    이게 사람을 생초보로 알고 이제 거짓말을 막 하네?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긴! 젊은 남성을 쇠약사시키는 클랜인 거 다 알고 있다고!"

    "앙? 어디서 그런 누명을 씌워.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가 시킨 게 아니라 지들이 스스로 한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떤 미친놈들이 지들이 나서서 죽을 때까지 해대.

    "말로 해선 안 되겠군. 야. 따라와."

    앨리시아는 성큼성큼 앞장서며 말했다.

    뭐지? 표정을 보면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어디 가는데?"

    "우리 클랜 건물이다. 직접 보면 내 말이 믿겨질걸?"

    앨리시아는 성큼성큼 한참을 걸어 고급스런 건물들이 늘어선 주택가로 진입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대저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있는 부지였다.

    와. 유명 클랜이라더니 건물부터 장난 아니네.

    간부라는 앨리시아는 말 한마디로 부외자인 구원까지 입구를 통과시키더니 익숙한 발걸음으로 건물 안에 들어갔다.

    얼마나 건물이 넓은지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꽤나 걸어서야 도착한 곳은…천국이었다.

    그래. 천국이다.

    그저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여기가 바로 우리 남성 클랜원들의 숙소다. 여자는 너무 많아서 다 들어오기 불가능하지만, 수가 적은 남자들한테는 전부 각자 방 하나씩 제공해주고 있지."

    여, 여기가 남자 숙소라고?

    여자를 잘못 말한 게 아니라?

    "우리 클랜도 다른 클랜들처럼 남자들한테 하루 섹스 할당량은 한 번만 부과하고 있다고. 그냥 발정 난 새끼들이 죽을 지도 모르고 해대다가 죽는 것뿐이야."

    옆에서 칸나가 뭐라고 뭐라고 떠들고 있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원의 뇌는 그저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살빛 광경을 저장하기에 바빴다.

    남자 숙소라면서 시야에는 온통 여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전부 한 미모 하는 여자들이 반쯤 알몸에 가까운 차림으로 속살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활보하고 있다.

    가끔 멍하니 서있는 구원을 스쳐지나가며 여자들이 눈웃음치고 꺄르르 웃을 때마다 구원의 상징에 급속도로 혈류가 몰려갔다.

    "남자 숙소는 여기 말고도 더 있어. 각자 레벨 별로 나눠져 있지. 그리고 우리 클랜에 들어오면 자기 숙소가 있는 구역에 있는 여자는 아무나 골라잡아서 해도 돼. 여기 있는 애들은 전부 그러려고 온 애들이니까. 특히 넌 특수 직업도 있다는 모양이니 인기 폭발할걸?"

    뭡니까 이 천국은.

    그 말은 한마디로 이 클랜에 가입만 하면 내 하렘왕의 꿈은 그 즉시 이뤄진다는 말이잖아?

    말을 들어보니 쇠약사 문제도 그냥 자제심이 없는 놈들의 말로일 뿐이다.

    아니, 죽은 놈들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런 게 매일 눈에 들어오면 그야 당연히 자제가 안 되겠지.

    어쨌든 스스로의 자제심에 확신만 있으면 여긴 명백히 지상낙원이다.

    구원은 당장이라도 이 클랜에 가입하고 싶어졌다.

    가입은 어떻게 하면 되지?

    칸나 말로는 무슨 시험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는데.

    "어때? 괜찮지? 지금이라도 생각 있으면 말해. 넌 내가 싹수 있는 것도 확인했으니, 말만 하면 꽂아 넣어주지."

    구원의 눈에는 옆에 있는 화끈한 성격의 여전사님이 천사로 보였다.

    역시 생긴 게 예쁜 애들은 마음씨도 곱다니까.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짓을.

    구원이 당장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에 앨리시아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료도 있다고 했지? 같이 데려와. 같이 꽂아줄게."

    그 말에 구원은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사라랑 디아나는 여기 가입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여기 있는 여자들처럼 다른 남자들이 마음대로 골라잡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사라는 레벨 업에 목말라 있다.

    디아나도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 많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대놓고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과연 그 둘이 구원과 같이 자지 않는 날에 이런 곳에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여기 온다고 무조건 남자들이랑 잘 수 있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미녀들이 넘치는 이곳에서도 사라와 디아나 수준의 미모는 안 보인다.

    그 둘이 들어서는 순간 반드시 다른 남성 클랜원이 덤벼들 거다.

    그런 상상을 한 것만으로도 구원은 소름이 끼쳤다.

    절대 그렇게 놔 둘 순 없지.

    "이봐. 왜 그래?"

    구원의 표정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앨리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아직은 위에서 사냥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동료들이랑 소수로 어울리는 게 편하기도 해서."

    구원은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앨리시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천국을 그냥 지나친 다는 건 정말로, 정말로 가슴 찢어지게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사라나 디아나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것 보다는 백배 천배 더 낫다.

    "흐음? 그래? 제대로 선 걸 보면 기능은 여전히 멀쩡해 보이는데. 짜식 의외로 제법이다?"

    구원의 거절에 앨리시아는 구원의 바지 위로 물건을 만져 커져있는 걸 확인하더니, 그곳을 한 대 툭 치고 씨익 웃으며 구원을 쳐다봤다.

    "뭐, 강요는 안 해. 이걸 보고도 생각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라도 올 생각 들면 말하라고. 건물 앞에서 경비한테 날 찾아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내해줄 거야."

    "응. 그래. 고마워."

    앨리시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나도 그만 돌아가야지.

    구원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건물을 빠져 나오기 위해 돌아섰다.

    아니야. 그 전에 잠깐 할 일이 있지.

    돌아가기 전에 이 낙원의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뇌리에 새겨둬야지.

    그렇게 구원은 아라크네 클랜의 건물을 빠져나올 때까지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찻잔속풍경 // 지적 감사합니다. Ctrl+Z 의 잔재가 남아있었네요. 수정했습니다.

    Gomdoly // 원고료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그 외에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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