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2화 (32/1,205)
  • 32====================

    길드 퀘스트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수컷 암컷을 가리지 않고 구원의 손에 닿은 놈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다리가 풀려 쓰러진 채 부들부들 떨어댔고, 그 다음은 사라와 디아나의 공격으로 마무리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전투로 얻은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구원의 멘탈에 결코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 전투였다.

    하얗게 불태웠어….

    구원은 전투가 종료되자 고개를 푹 숙이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끼며 털썩 주저앉…으려다가 바닥에 고인 하얀 액체들이 시야에 들어와 황급히 무릎에 힘을 주고 버텼다.

    씨발…. 마지막까지 함정을 파놓다니.

    죽은 개새끼한테 산 구원이 당할쏘냐?!

    "흠. 굉장하군 자네. 이리도 간단히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을 줄이야. 성자의 스킬은 어그로를 끌뿐만 아니라 공격용으로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라…. 역시 재미있는 스킬이야."

    "정말 굉장한 스킬이군요. 이걸로 한층 전투가 편해지겠어요."

    구원의 멘탈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디아나와 사라는 앞으로도 전투 중에 계속 구원이 이 스킬을 쓸 거라는 듯한 말을 했다.

    "…근데 니들 왜 이리로 안 오냐?"

    "……."

    "……."

    "더럽냐?! 엉?! 고결한 너희들은 이런 더러운 장소에는 못 오겠다는 거냐?"

    "지, 진정하게."

    "그, 그래요. 그런 게 아니에요."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구원이 한 걸음 다가가자 사라와 디아나는 바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야. 바닥이 더러우니 여기 안 오는 건 그래 뭐 이해한다. 근데 니들 왜 도망가기까지 하냐? 설마 내 몸에 묻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안 묻었거든? 내 화려한 몸놀림 못 봤냐? 완전히 다 피했거든? 니들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그, 그런 게 아니에요."

    "그렇다네. 그리고 액체라는 게 사방으로 튀다보면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 입자가 튀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완전히 튀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게 이 한 몸 바쳐서 열심히 싸운 동료를 대하는 태도냐?!"

    "크, 크흠. 농담일세, 농담. 거 너무 열 올리지 말게. 우선 마석부터 캐내는 게 어떻겠나?"

    "그래요. 그러면 몸에 튄 것도 전부 사라질 거예요."

    씨발…. 더럽다 더러워. 어디 서러워서 쟤들이랑 다니겠냐.

    그래도 구원은 하는 수 없이 마석부터 캐기로 했다.

    마석이 가슴에 박혀있는 고블린놈들이야 둘째 치고 고환에 박혀있는 수컷 늑대개새끼들 건 딸 때 상당히 기분이 더러웠지만, 안구를 더럽히는 액체들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서 피를 토하는 기분으로 나이프를 박았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시체가 말끔히 사라지자, 그제야 사라와 디아나가 슬금슬금 구원에게 다가왔다.

    가증스러운 년들….

    다음엔 일부러 너네 쪽으로 몹몰이해서 내 기분이 어떤 거였는지 똑똑히 맛보게 해주마.

    구원의 원망에 찬 눈빛에 그래도 양심이 찔리기는 하는지 디아나와 사라는 필사적으로 구원을 추켜세웠다.

    "흠. 대단한 활약이었네."

    "정말이에요. 언제나 앞에서 든든하게 버텨주는 구원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자네의 그 화려한 기술은 가히 필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로군. 지고의 대마법사인 이 몸이 친히 이름을 붙여주겠네. 엑스터시 펀치! 어떤가? 자네의 그 기술에 딱 맞는 이름 아닌가?"

    "와아! 정말 멋진 이름이에요. 잘됐네요, 구원."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쿵짝이 맞아서는 잘 놀고 자빠졌다.

    "…좋아. 결심했어."

    "음?"

    "뭘요?"

    "오늘부터 우리 파티의 목표는, 내 기술 한 방에 안 싸는 놈이 있는 곳까지 진출하는 거다. 이론은 받지 않는다. 단 한 방. 단 한 방만 버티는 놈들이면 돼."

    "크흑."

    "푸흡."

    구원의 한없이 진지한 파티 목표 설정에 어째선지 사라와 디아나가 빵 터졌다.

    니들 일 아니라고 웃기냐? 난 지금 궁서체로 말하고 있는 거다만.

    물론 목표가 그렇다고 해서 땅을 파고 갈 수도 없는 일이고, 지금 당장 갈 방법은 없다.

    일단은 안다녀본 곳들을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며 맵을 그리는 게 상책이다.

    아까 상황을 보면 늑대개들과 고블린들은 명백히 적대관계다.

    아무래도 늑대개의 영역을 고블린들이 침범하기라도 한 거겠지.

    구원의 생각을 뒷받침해주기라도 하듯, 그 이후에도 세 차례 만난 적들 역시 전부 고블린 무리들이었다.

    물론 고블린 무리들 상대의 전투는 구원은 간간히 날아오는 돌멩이만 쳐내주고, 디아나와 사라가 다가오기도 전에 처리를 해서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거…혹시 우리 탓인가?"

    "음.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지."

    "그 초월종들이 지금까지 암컷들을 데리고 고블린들의 침략을 막고 있었던 거군요."

    "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암컷이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도 자연히 설명이 되는구먼."

    "그렇다면 여기 어딘가에 고블린들의 영역으로 통하는 길이 있기는 있다는 말이 되는데…."

    구원이 맵을 보며 길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드디어 늑대개의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수는 무려 수컷이 4마리에 암컷이 3마리.

    아무래도 고블린들에게 몰리다보니 여럿이 뭉쳐 다니게 된 모양이다.

    좋았어!

    구원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구원은 아까의 굴욕을 잊지 않고 있다.

    당한 건 언젠가 반드시 갚아주는 것이 구원의 철칙이다.

    "좋아, 사라! 디아나! 공격!"

    물론 구원이 말 할 것도 없이 사라와 디아나는 이미 화살과 매직 애로우를 각각 준비한 상태였다.

    늑대개들은 스피드가 빨라서 고블린들처럼 다가오기도 전에 전원을 해치우는 건 무리가 있다. 원래대로라면 구원이 앞으로 나가 몸을 대줘야 하지만, 구원은 굳이 멀리 나가지 않고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선 상태로 대기했다.

    크크큭. 아까 내가 당한 굴욕. 너희도 똑같이 당하게 해주겠다.

    이름하여 사라&디아나 쿨한 미녀와 깜찍한 미소녀의 W 부X케 대작전!

    "구원! 뭐하는 거예요?!"

    "빨리 앞으로 나서게!"

    구원의 장대한 계획을 눈치 챘는지, 사라와 디아나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쿨한 사라와 태평한 디아나가 저렇게까지 당황하다니 확실히 싫긴 싫은 모양이다.

    "걱정 마. 굳이 멀리 안 나가도 너희 몸에 생채기 하나 안 나게 할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

    역시 니들도 다칠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좆물 묻을 걱정을 하는 거구나.

    구원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씨익 웃자, 사라와 디아나도 구원의 결심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달은 모양이다.

    사라와 디아나는 무려 공격당하면 수컷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할 암컷들을 방치한채, 수컷들에게만 모든 공격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니들 대체 얼마나 싫은 거냐. 목숨보다 그쪽이 더 우선시 되는 거냐.

    아니, 뭐 나도 정말 다치게까지 할 생각은 없으니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긴 하다만.

    결국 둘의 선택이 헛되지 않아서, 수컷 늑대개들은 다가오기 전에 전멸시키는 위업을 달성해냈다.

    쳇. 실패인가.

    구원은 할 수 없이 암컷들에게 돌진해나갔다.

    "가게나! 구원! 엑스터시 펀치!"

    너 의외로 그거 맘에 든 모양이다?

    기술명을 외치는 건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정확하게 응용까지 해내다니. 과연 대마법사.

    아니, 그건 상관없나?

    "펀~치!"

    "그게 대체 뭐하는 거예요…."

    흥이 나서 맞장구쳐준 구원을 사라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뭐 어떠냐. 이왕 하는 거 재밌게 즐기면서 하자고.

    암컷 늑대개들은 구원의 펀치를 맞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는 가볍게 몇 번 밟아주는 걸로 상황종료.

    안 그래도 디아나가 파티에 들어오면서 공격력이 급증했는데, 성자의 손길마저 이정도 위력을 발휘하니 이젠 이정도 수준의 몬스터들 상대로는 도저히 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구원이 마석을 캐내는 동안, 디아나가 다가와서는 아까의 가벼운 태도는 버리고 근엄하게 말했다.

    "자네는 전위로서 적들이 후위 근처로 다가오지 못하게 할 의무가 있네! 전투 중에 공사를 혼동하지 말게나!"

    한 마리로 다시는 방금 전 같이 멍청한 계획은 세울 생각하지 마라! 라는 소리인 것 같다.

    "죄송합니다."

    "음. 반성하면 됐네."

    그래도 맞는 말인지라 구원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전혀 위험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법. 너무 긴장을 푸는 건 좋지 않은 일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어린 애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도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구원이 고개를 획 들자 아니나 다를까 사라가 어정쩡하게 손을 내미는 자세를 취하려다가 획 뒤로 뺐다.

    "…사라양?"

    "뭐, 뭔가요?"

    필사적으로 쿨한 표정을 지으려는 게 귀여워서 내가 한 번만 봐준다.

    사라&디아나 쿨한 미녀와 깜찍한 미소녀의 W 부X케 대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구원도 더 시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정석대로 전투를 했다.

    아까는 당황해서 그냥 성자의 손길을 두른 채 쳐버렸지만, 생각해보니 수컷 늑대개놈들은 뒤로 돌아서 고환만 따버리면 되는 놈들이다.

    그렇게 고블린 무리는 원거리에 저격. 암컷 늑대개는 성자의 손길로. 그리고 수컷 늑대개는 강제 중성화라는 전술을 확립하여 순조롭게 맵을 밝혀갔다.

    전진하면 전진할수록 늑대개들을 만나는 확률은 점점 더 줄어갔고, 이제는 완전히 고블린들만 보이게 되었다.

    아무래도 어느 샌가 늑대개의 영역과 고블린 영역의 경계선을 넘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여기부터는 확실히 길드에서 지도를 원하는 미개척 영역이라는 말이 된다.

    고블린따위에게 당할 걱정은 전혀 안 들지만 일단은 조금 긴장을 하면서 전진해 나갈 때, 멀리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모험가들인가?

    젠장. 설마 앞질러온 놈들이 있을 줄이야.

    구원의 파티가 출발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원래는 이정도 몬스터들을 상대할 전력이 아니다.

    물론 탐험 속도도 이 근처에서 놀 수준인 다른 모험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빨랐을 거다.

    무엇보다도 구원의 파티는 다른 파티와 다르게 지도를 작성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혹시 우리가 선두주자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모양이다.

    모험가들 사이의 관례상 마주치지 않게 다른 길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지만, 하필 또 길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장소다.

    "이거 어쩌지?"

    "음. 이 경우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오해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통과하도록 하세나."

    "그래요.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왔어요."

    역시 그게 좋겠지?

    귀찮은 일에 말려들지 않으면 좋겠는데….

    "이봐! 여기 좀!"

    "여기에요!"

    "흐윽, 흑, 흑."

    아니나 다를까 구원에게 거보라는 듯이 귀찮은 상황이 발생했다.

    전사 둘과 성직자 하나의 여자로만 구성된 모험가 파티가 고블린 8마리에게 둘러싸여 고전하고 있었다.

    어쩌다 고블린이 저렇게 몰렸지?

    전사 둘은 필사적으로 싸우고는 있지만 그저 방어하는 것도 급급해 보였고, 뒤에 있는 성직자는 힐을 하면서 울고 있다.

    재빨리 얼굴을 스캔해봤지만 역시나 우리 사라나 디아나만큼의 미모를 자랑하는 인물은 없다.

    하아…패스하고 싶어졌다. 나 얘들 때문에 괜히 눈만 엄청 높아진 거 아니야?

    구원은 미약한 희망을 담아 농담을 던져봤다.

    "쳇. 할 수 없지. 최대한 빨리 통과한다!"

    "네?! 구해주는 게 아니라요?"

    "응? 귀찮게 우리가 왜?"

    "자네도 참…. 사람의 도리라는 게 있는 법일세."

    사라와 디아나의 눈빛이 점점 쓰레기를 보는 눈빛으로 변해갔다.

    "노, 농담이야. 농담. 너흰 내가 그렇게 인심 없는 쓰레기로 보이냐?"

    제길. 할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뒷말 나오지 않게 인터넷에서 본 사람을 구할 때 취해야할 행동요령을 전부 수행해야겠지?

    볼 때는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생각하며 웃어넘겼던 건데 설마 진짜로 쓸 일이 올 줄이야.

    "이봐요! 도와드려요?"

    "흐, 흐에에엥."

    앞에 선 전사 둘은 전투에 여념이 없어 대답할 여력도 없는 모양이고, 뒤에서 울고 있던 성직자가 대답인지 그냥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대답해주세요. 정말 도와 드릴까요?"

    "흐윽, 네에!"

    "혹시 저희가 구해준 다음에 전리품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적대시하거나, 저희에게 몬스터를 전부 떠넘기고 도망가 버리는 등…."

    "야 이 개새끼야! 도와주기 싫으면 꺼져!"

    듣다 못한 여전사 중 하나가 결국 폭발해 버렸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