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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1화 (3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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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 퀘스트

    "…뭐라고요?"

    사라의 날카로운 눈빛이 구원에게 날아와 꽂혔다.

    훗. 하지만 그런다고 굴할 내가 아니지.

    "누, 눈과 눈이 마주치면 ㅍ…"

    "마주치기는커녕 이쪽을 눈치도 못 채고 있는 것 같네만."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디아나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방해를 한다.

    젠장. 사라 혼자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쟤들이 눈치 채기 전에 선공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합니다. 원거리 딜러님들."

    "음. 잘했네."

    구원이 고개를 숙여 부탁하자, 디아나가 대견하다는 듯이 구원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게다가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사라도 왠지 주저하더니 손을 내밀어 마찬가지로 구원의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사라야?"

    "크, 크흠. 빨리 공격하죠."

    구원이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자 사라가 얼굴을 붉히더니 얼른 손을 떼고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너까지 왜 이러니. 넌 여기 이 겉보기만 어려보이는 할머니한테 물들면 안 된다.

    어느 샌가 디아나도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손짓하며 마법진을 만들어내, 사라가 화살을 쏘는 것과 동시에 마나 애로우를 발사했다.

    역시 대마법사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닌지, 사라가 화살을 쏘는 속도와 거의 같은 속도로 매직 애로우를 만들어 쏘아댄다. 그 위력 역시 사라의 화살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보인다.

    아니, 이 경우에는 궁사 레벨도 한참 낮으면서 디아나의 매직 애로우와 거의 같은 수준의 위력의 화살을 날리는 사라가 대단한 건가?

    어쨌든 고블린은 생긴 것처럼 힘에 스탯이 몰린 몬스터인지, 늑대개들만큼의 속도는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사라와 디아나의 협동공격에 이쪽을 눈치 채고 접근하려고 했지만, 결국 근처에도 오지 못한 채 네 마리 전부 온몸에 구멍이 뚫린 모습으로 쓰러졌다.

    "음…. 그래도 나름 처음 만난 몬스터라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뭔가 허무하네."

    "그러게요."

    "자네는 물론이고, 애초에 사라양이나 이 몸에게도 한참 아래 상대니까 말일세."

    아니 넌 몰라도 사라는 얘들보다 확실히 궁사레벨이 낮은데.

    물론 이 공격력을 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고블린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서 도축 스킬을 사용해 밝게 빛나는 심장 부근에 자리 잡은 마석을 캐내니, 시체뿐만 아니라 손에 들고 있던 무기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죽만 몇 장만 땅에 남았다.

    "뭐야? 시체는 그래 사라져도 이해가 돼. 근데 왜 무기까지 없어져?"

    "흠. 우리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저런 학설들이 있었네. 가장 주류가 되는 학설은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은 던전에 의해 몬스터의 마석과 동화되어 몬스터의 몸처럼 취급된다는 학설이지."

    하긴 무기나 방어구도 고스란히 떨어지면 여기 대장장이들은 먹고살 방법이 없겠지.

    나름 밸런스 패치란 건가.

    "그럼 무기도 드랍하는 경우도 있긴 있다는 말이네?"

    "음. 물론일세. 다만 어느 계층에서도 무기를 고스란히 드랍하는 건 꽤나 희귀한 일일세."

    일종의 레어 드랍템이란 건가.

    뭐 드랍한다고 해도 고블린이 쓰는 무기는 써먹지도 못할 수준일 것 같지만.

    우선은 드랍템에 연연하지 말고 맵 작성이나 힘쓰자.

    드랍템을 전부 수거하고 잠깐 걷자 이번에도 역시 고블린 무리와 마주쳤다.

    늑대개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아무튼 이번에 만난 놈들은 아까 풀어져있던 놈들과 다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정찰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시야에 보이자마자 이쪽을 눈치 채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좋아! 가…"

    "1절만 하세요."

    휙!

    구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사라가 먼저 화살을 날렸다.

    사라야. 왜 이렇게 재미없게 자랐니. 이 오빠는 슬프단다.

    이번 고블린도 기껏해야 5마리다.

    쟤들도 아까처럼 다가오기 전에 다 처리되겠지.

    구원은 사라와 디아나가 열심히 공격하는 걸 지켜보며 옆에서 응원밖에 할게 없는 입장.

    이것이 바로 남들 박 터지게 싸울 때 혼자 팝콘을 씹던 박쥐남의 기분인가.

    아니지. 난 스펙은 짱짱하지만 굳이 나서지 않는 것뿐이야. 박쥐남이랑은 경우가 많이 다르지.

    "힘내라 힘! 힘내라 힘!"

    그렇게 방심하면서 언제 적 노래인지도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구원의 시야 옆으로 뭔가 휙 날아왔다.

    "으악! 깜짝이야! 놀래라."

    구원이 아니라 사라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옆으로 회피한 사라보다 오히려 방심하고 있던 구원이 깜짝 놀라버렸다. 그나마 압도적인 신체능력 덕에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잡아채는데 성공해서 겨우 쪽팔림은 좀 덜했다.

    그래봤자 사라와 디아나가 한심스런 표정을 짓는 걸 막을 순 없었지만.

    손에 들어온 물체는 그냥 평범한 돌멩이였다.

    응? 뭐야 이거? 겨우 돌팔매질이 그렇게 강했다고?

    황급히 정면을 바라보니 저 무식하게 앞으로 돌진해오는 놈들 뒤에 한 놈이 뭔가를 빙빙 돌리고 있다. 투석구인가?

    녀석은 이번엔 구원을 향해 투석구의 돌을 날려왔다.

    "조심해요!"

    "걱정 마. 이 정돈 거뜬해."

    구원은 아까 깜짝 놀란 건 없던 일이란 듯이 덤덤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제까지의 구원이라면 막기보다는 차라리 피하는 편이 좋을 정도로 제법 위력적인 공격이었지만, 폭업을 한 덕분에 방심만 하고 있지 않으면 쉽게 막을 수 있다.

    "와. 쟤들 저런 것도 쓸 줄 알아?"

    "흠. 너무 방심하지 말게나. 무기를 쓰는 놈들은 전부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네."

    그렇게 말하는 디아나도 크게 경계하는 모습은 아니다.

    대마법사로서의 여유인지. 아니면 정말로 크게 위협적인 공격이 아닌 건지.

    그래도 귀찮긴 한지 매직 애로우의 타겟을 돌팔매질하는 놈한테 집중시킨다.

    그래도 돌팔매질이라는 공격방식 자체는 제법 괜찮아 보인다.

    저 투석구 드랍하지 않으려나.

    맨손으로 한번 던져볼까?

    원시적이지만 내 신체능력과 합쳐지면 위력은 충분하지 않을까?

    구원은 마운드에 선 투수처럼 크게 다리를 올려 자세를 잡고 그대로 힘껏 손에 쥔 돌을 던지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잠깐. 여기서 내가 던질 돌이 저 고블린 머리통을 폭발시켜버리면 사라한테 할 말이 없어지잖아?

    어제 그런 식으로 변명을 하면서 사라를 돌려보냈는데, 실은 디아나랑 섹스해서 레벨이 올랐다고 해봐라. 대체 얘가 뭔 짓을 해올지 상상하기도 겁난다.

    구원은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좋아. 원거리 공격은 전부 내가 막을게! 너희는 공격에만 전념해!"

    "이미 처리했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투석구를 돌리던 놈은 어느 샌가 머리를 땅에 박고 쓰러져있었다.

    그냥 응원이나 하고 있자.

    내일은 팝콘이나 좀 사올까. 진짜 팝콘을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놈들도 다가오기 전에 전부 처리되고, 대망의 도축시간이 다가왔다.

    구원은 투석구를 던지던 놈의 시체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드랍해라! 투석구!

    "자네 뭐하나?"

    "보면 몰라? 기도중이잖아. 내가 살던 곳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하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캐기나 하게."

    "그래요. 오늘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 것이 목표라고요. 잊었어요?"

    쳇. 그래. 나도 사실 그런 말 안 믿었어.

    둘이서 그렇게 압박할 건 없잖아?

    곧장 디아나와 사라의 독촉에 바로 마석을 캤지만, 물론 그렇게 사정 좋게 아이템이 드랍될 리도 없었다.

    드랍한 건 가죽 몇 장과 멍청하게 닥돌하던 놈이 들고 있던 곤봉 하나가 전부였다.

    "호오. 어제 그 초월종도 그렇고. 자네는 그래도 운 하나는 좋구먼."

    좋기는 뭐가 좋아. 써먹지도 못하는 템인데.

    무투가는 기본적으로 맨손전투를 상정한 직업이라 패시브 스킬이나 액티브 스킬이나 전부 맨손 공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런 허접한 곤봉을 들면 무투가의 직업 효과도 못 받아서 오히려 맨손보다 공격력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에휴. 빨리 맵이나 만들러 돌아다니자."

    "흠. 아무것도 안 그리고 있네만 정말 괜찮은 겐가?"

    "걱정 말라니까. 내 감각은 여기 있는 사라가 증명할 수 있어. 지금까지 한 번도 헤맨 적이 없다니까. 그렇지?"

    "그러고 보니…. 레벨을 올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신경 못썼는데 정말 그러네요."

    "흠. 사라양이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만하군."

    어쩌다가 내 신뢰도가 이렇게까지 떨어졌을까.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다음 전투에선 파티 리더로서의 위엄을 보여줘야겠어.

    그렇게 다짐하고 길을 걷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원의 귀에 뭔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모험가 파티인가?

    던전에서는 다른 모험가들의 전투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기본적인 룰이다.

    괜히 남이 잡던 몬스터를 건드리면 드랍템 소유권 문제도 있고 복잡해지기만 한다.

    얽히면 귀찮아지니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모험가들의 전투에 들릴법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럴 땐 사라가 나설 차례지.

    사냥꾼과 궁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라는 관련 스킬이라도 있는 건지 구원보다 시력이나 청력이 더 뛰어나다.

    "사라. 이 소리 들려?"

    "네. 이건…아무래도 늑대개와 고블린이 싸우는 소리 같네요."

    과연 가까이 다가갈수록 개 짖는 소리와 사람 목소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걸쭉한 괴음이 들려온다.

    몬스터끼리 싸우기도 하는 건가.

    게임과 닮은 세계라고는 해도 역시 현실은 현실. 이런 부분에서 게임과의 차이가 드러난다.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다가가자 역시나 늑대개와 고블린 무리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중이었다.

    늑대개는 수컷이 셋, 암컷이 둘. 고블린의 숫자 역시 다섯 마리.

    고블린이 수컷 늑대개보다는 조금 강하지만, 암컷 보다는 약해서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느낌이다.

    놈들은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서 아직 이쪽을 눈치 채지는 못하고 있다.

    "좋아. 기습하자. 내가 늑대개들을 맡고 있을게. 고블린 놈부터 처리해줘."

    구원은 재빠르게 늑대개들을 향해 돌진했다.

    물론 레벨이 급상승했다는 걸 사라에게 들킬 수는 없으니 전력으로 공격할 생각은 없다.

    대충 어그로 끌면서 맞아주고 있어야지.

    구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성자의 스킬을 발동시킨 상태로 제일 가까이 있는 수컷 늑대개를 가볍게 한 대 툭 쳤다.

    "끼이잉!"

    "으아아악! 씨발!"

    아차! 잊고 있었던 성자의 손길 레벨 업!

    구원의 손이 닿는 순간 늑대개는 미친 듯이 몸을 비틀며 거시기에서 하얀 물을 쫙쫙 뽑아내기 시작했다.

    구원은 순간적으로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으며, 하얀 액체가 자신의 몸으로 날아오는 게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지금은 레벨 업을 들키고 자시고가 따질 상황이 아니다. 지금이야 말로 내 진정한 힘을 드러낼 때!

    구원은 그 어느 때보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신체능력을 120% 발휘해서 겨우 사방으로 비산하는 그 액체를 피할 수 있었다.

    씨발. 하마터면 개새끼한테 부X케 당할 뻔했네.

    구원에게 공격당한 놈은 아직도 절정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자빠져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이정도 위력이었단 말이야?

    디아나 쟤가 어제 기절한 것도 이해가 된다. 정말 용케 마나의 계약은 거절할 정신이 있었구나.

    구원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구원의 공격에 당한 놈을 보고 상당히 놀랐는지, 늑대개들과 고블린 역시 서로 싸우는 걸 멈추고 전부 구원을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확실히 사기급 위력이긴 한데….

    이걸 정말 계속 써야 된다는 말이야?

    구원이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구원의 등 뒤에서 화살과 매직 애로우가 날아와 강제로 싸움이 재개됐다.

    이런 젠장!

    사라와 디아나에게 어그로가 끌려 돌진하는 몬스터들을 향해 구원은 반사적으로 성자의 손길을 두른 펀치를 한방씩 먹여줬다.

    늑대개나 고블린이나 다를 바가 없어서, 모두들 구원의 펀치 한방에 다리가 풀려 주저 않으며 하반신에서 물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고블린은 밑에 더러운 거적때기라도 하나 걸치고 있어서 튈 확률이 늑대개보다는 적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물론 그렇다고 구원이 입은 정신적 피해가 보상받는 건 아니지만.

    세우고 있는 걸 보면서 싸우는 것도 이제 겨우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좆물을 날려대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니.

    심지어 이번엔 시각적 테러만이 아니라 자칫 방심하면 몸에 튈 수 도 있다는 공포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구원은 몬스터들에게 차례로 한 방씩 주먹을 날리며, 감당할 수 없는 너무도 잔혹한 현실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so4542003 // 직업 레벨은 종족 레벨이 아니라 그냥 레벨을 넘지 못합니다. 종족 옆에 쓴 건 나이 표시로 쓴 건데 레벨처럼 써놔서 헷갈리셨나보네요.

    펄미스트 //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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