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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0화 (3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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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 퀘스트

    "자, 그럼 얼른 던전으로 가 볼까?"

    "으, 음. 먼저들 가 있게."

    식사를 마치고 기세 좋게 일어난 구원에게 디아나가 제동을 걸었다.

    "응? 왜?"

    "이, 이 몸은 잠시 용무가 있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게나."

    디아나가 왠지 수상하게 꼼지락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구원은 그 모습을 보고 촉이 발동했다.

    그러고 보니….

    "아, 맞다. 나도 할 일 있었는데 깜박했네."

    "구원 당신도요? 별일이네요."

    "미안미안. 나도 잠깐이면 되는데. 그럼 오늘은 아예 길드에서 모이는 걸로 할까?"

    "으음. 그러도록 하세나."

    "사라야. 미안. 혹시 먼저 가면 할 만한 퀘스트나 있나 알아봐 줄래?"

    "네. 그러죠."

    "그럼 난 먼저 가서 후딱 일 보고 올게!"

    구원은 그렇게 내뱉고는 마치 정말 볼일이 있는 것처럼 재빨리 여관을 빠져나왔다.

    물론 볼일 따윈 없다.

    구원은 살며시 건물 구석에 숨어서 사라와 디아나가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그렇게 수상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자, 사라와 디아나가 같이 나와서는 몇 마디 주고받더니 갈라졌다. 사라는 길드로, 디아나는 시가지 쪽으로.

    구원은 얼른 디아나의 뒤에 따라붙어 사라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말을 걸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으, 음? 자, 자네. 무슨 일인가? 용무가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생각해보니 굳이 지금 할 필요도 없겠더라고. 근데 어디 가는 거야? 어차피 길드에 가도 기다려야 될 거, 나도 따라가도 돼?"

    "으, 으음? 아니, 아니, 안되네. 이 몸 혼자 가야할 일일세. 먼저 가 있게."

    "흐음. 수상해."

    "뭐, 뭐가 말인가? 얼른 가게나."

    "야. 솔직히 말해봐. 너 지금 로브 밑에 아무것도 안 입었지?"

    "자, 자, 자네는 대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겐가?!"

    구원의 예상대로 디아나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어제 얘가 텔레포트인지 뭔지 갑자기 나타났을 때 로브 아래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단 말이지.

    그리고는 전생마법을 썼다.

    레벨이 초기화된 지금 텔레포트같이 거창한 마법을 쓸 수 있을 리도 없으니 지금 디아나는 어제 구원의 방에 찾아온 그 모습 그대로라는 말이 된다.

    "당황하니까 더 수상한데? 사실대로 말하는 게 어때?"

    "사, 상대할 가치도 없군! 얼른 길드에 가서 기다리기나 하게! 이 몸은 바빠서 이만!"

    "자백 안하면 10초 후에 그 로브 벗긴다. 10…9…"

    디아나는 재빨리 말을 마치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신체능력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구원을 뿌리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히익! 자, 자네! 인간으로서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이 있는 걸세!"

    "8 제대로 옷 입고 있으면 아무 문제될 거 없잖아. 7…6."

    "자네가 그러고도 정말 사람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군 그래!"

    "5…4…3"

    "자네 거기에 정좌하게. 이 몸이 사람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도리란 것을…."

    "2…1…0!"

    "히아악! 알았네! 알았네! 진정하게! 말로! 말로 하세나!"

    구원이 숫자를 다 세고 로브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자 그제야 디아나도 백기를 들었다.

    살짝 들어 올린 로브의 틈 사이로 디아나의 새하얀 맨발이 보이는 걸 보면 빼도 박도 못하고 알몸이 맞는 모양이다.

    후우. 이걸로 복수를 완료했다.

    그러게 누가 아침에 사람을 그렇게 놀리래?

    좀 더 놀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여기서 더 놀리면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만 두기로 했다.

    지금부터 같이 던전도 가야하고 말이지.

    "그러게 처음부터 자백했으면 좋았잖아."

    "자네는 참으로 여인의 마음을 모르는군. 여인에게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란 게 있는 법일세."

    "어제 나한테 올 때부터 다 벗고 왔으면서 비밀은 무슨. 네가 노출증이 있어서 그러고 다닌다면 비밀로 할 만하겠지만."

    "그, 그,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말게!"

    디아나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얼굴을 붉히고 외쳤다.

    그냥 한 말인데 이러니까 더 수상해 보이네. 혹시 정말로 노출증인가?

    "잘 듣게. 여기에는 심오한 사정이 있네. 먼저, 이 몸은 자네의 스킬을 시험해 볼 생각으로 자네를 찾아갔었지. 어차피 그런 스킬들이니 이왕이면 피부에 직접 닿는 게 좋고, 로브 위로 만지더라도 그 밑에 겹겹이 입고 있는 것보다는 최대한 가벼운 차림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뭐 그렇지."

    "그래서 이 몸은 절차를 최소화하기위해 로브 아래 아무것도 안 걸치고 자네를 찾아간 걸세. 이 몸은 대마법사. 어차피 아공간을 이용해 물건을 보관하니 잠시 옷을 벗어두는 건 아무 문제될 게 없었지."

    "서론이 긴데, 한마디로 아공간에 옷을 넣어놨는데 바보같이 준비도 안하고 전생을 한 바람에 아공간 마법을 못 쓰게 돼서 지금 알몸이라는 소리 아니야."

    "으윽. 이, 이 몸에게 바보라고."

    "넌 대마법사란 애가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냐?"

    "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마법의 실마리가 눈앞에 있는데 다소 격앙되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알았어. 알았으니까 흥분하지 마. 일단 신발이라도 신어라."

    구원은 인벤토리에서 신발을 한 켤레를 꺼냈다.

    참고로 구원은 인벤토리에 여분의 옷들과 신발들을 제법 챙겨 놨다. 대충 몸으로 때우면서 싸우다보니 심심하면 찢겨나가서 말이지.

    구원의 발에 맞는 신발이니 디아나에겐 상당히 크겠지만 그래도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보단 나을 거다.

    "흐, 흐음. 그래도 제법 눈치는 있구먼 그래."

    "그래서, 결국 옷 구하러 가는 거지? 심심한데 같이 가자. 어디로 가게?"

    "음. 가까운 곳에 옷가게가 있네."

    "옷가게? 너 엄청 유명한 대마법사라면서. 여기 집이나 별장 같은 건 없어?"

    "음. 물론 있네. 다만 사정이 있어서 갈 수 없는 상황이라네."

    "자기 집에 왜 못가? 가출이라도 했냐?"

    "자네는 대체 이 몸을 뭐라고 생각하는 겐가? 존경하라고까지는 안하겠지만 조금 예의를 차리는 게 어떻겠나? 그저 잠시 말을 안 하고 나온 것뿐일세."

    아니, 그거 누가 봐도 가출한 거 맞잖아.

    대마법사란 애가 그런 여관에서 묵었던 것 자체가 이상했는데 절찬리 가출중이셨냐.

    "근데 너 말 들어보니까 소지품은 전부 아공간에 넣어두고 다녔던 것 같은데 옷 살 돈은 있냐?"

    "이, 이 몸 정도가 되면 얼굴만으로도 외상이…."

    "가출한 애가 그렇게 얼굴 팔고 다녀도 되냐? 그냥 빌려 줄 테니까 이따가 던전 갔다 와서 갚아라."

    "가, 가출 아닐세!"

    그러면서도 디아나는 돈을 안 빌린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결국 구원은 디아나에게 값싼 천옷과 신발, 덤으로 척 봐도 마법사 같아 보이는 챙이 달린 고깔모자와 몸에 맞는 새 로브까지 사서 입히고 같이 길드로 향했다.

    디아나는 길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모자 속에 집어넣고 푹 눌러 써서 왠지 음침한 마법사 같은 모습이 됐다.

    "구원! 어머? 디아나도 같이 왔네요?"

    길드에 들어서자, 사라가 황급히 구원 쪽으로 달려왔다.

    "응. 이 앞에서 만났어. 근데 왜 그렇게 부산스러워?"

    사라는 잠깐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아, 그렇죠. 저희도 얼른 던전에 가요. 지금 길드 퀘스트가 발령중이에요."

    "길드 퀘스트?"

    "네. 이번에 길드에서 상층의 미개척 지역들의 탐험을 권장하기 위해서 발령한 모양이에요. 길드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의 지도를 작성해가면 추가 보수를 더 지급한다고 하네요."

    "그래? 그거 잘됐네. 겸사겸사 길드 퀘스트도 수행하면서 돌아다니면 되겠다. 그런데 길드에서 갑자기 왜 이런 퀘스트를 냈대?"

    "아무래도 저희가 어제 상층에서 초월종을 발견한 게 길드 내부에서 화제가 된 모양이에요. 하급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대박을 노릴 찬스라면서 꽤나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라던데요?"

    "뭐? 그럼 우리가 다니던 데도 사람이 몰릴 수 있다는 말이잖아. 안되겠다. 빨리 가자."

    "흠. 서두르는 건 좋네만 자네들 그 길드 퀘스트를 제대로 수행할 수는 있나?"

    "응? 무슨 소리야?"

    "어제 자네들이 지도를 작성하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서 말일세. 지도를 그리는 것도 제법 재능과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네."

    "아, 그, 그렇군요."

    "그거라면 걱정 마. 내가 다 할 수 있어."

    그냥 돌아다니면 맵은 자동으로 그려주거든.

    문제는 내 그림실력으로 맵을 얼마나 똑같이 따라 그릴 수 있느냐지만, 뭐 그림대회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알아볼 수 있게만 그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호오. 자네 보기보다 제법 재주가 다양한 모양이구먼."

    "보기보다 라니. 어딜 어떻게 봐도 재능 넘치게 생겼잖아."

    "흠…."

    "으음…."

    구원의 말에 둘이서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재능이 아닌 게 맞긴 하지만 둘이 뭉쳐서 그 반응은 좀 너무하지 않냐?

    "잠깐. 차라리 지금 어제까지 돌아다닌 곳이라도 보고를 해놓을까?"

    "네? 지도도 안 만들어 놨는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머릿속에 다 들어있으니까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어디서든 그릴 수 있어. 어때 이제 좀 내가 달리 보이냐?"

    "핫!"

    "자, 잠깐 길드 한복판에서 갑자기 뭐하는 거예요?!"

    내 빛나는 재능에 감격이라도 했는지 갑자기 디아나가 내 몸에 안기듯이 바싹 밀착해왔다.

    "쉬잇! 조용히 하게.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세. 자, 한시가 급하지 않은가. 빨리 가세나."

    디아나는 내 몸에 얼굴을 파묻고는 다급히 던전 쪽으로 우릴 이끌었다.

    디아나가 등진 쪽을 바라보니, 웬 번쩍번쩍한 갑옷을 입은 무리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망토와 가슴부분에 은빛 지팡이가 그려진 문양을 새기고 있는 그들은 곧 주변에 있는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을 중점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야…. 너 설마 가출한 게 아니라 뭐 사고치고 도망 나왔거나 그런 건 아니지?"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이 몸이 그런 짓을 할리 없지 않은가! 저들은 그저 이 몸의 평안한 마법 연구 생활을 방해하려는 극악한 무리들일세. 얼른 가세나."

    아무래도 사고는 치지 않았지만 할 일을 내팽개치고 도망쳐 나온 모양이다.

    그래도 되는 거냐. 지고의 대마법사님.

    "아니. 그래도 일단 보고는 하고 가야지."

    "어차피 자네가 지나다닌 곳은 다 길드에서 파악하고 있을 걸세!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얼른 가세나!"

    결국 디아나의 성화에 떠밀려 구원은 보고는 뒤로 미뤄두고 던전을 향했다.

    구원이 돌아다닌 언저리는 길드에서 파악하고 있을 거란 디아나의 말도 나름 일리가 있고, 일찍 출발해서 그만큼 더 돌아다니고 오면 되겠지 뭐.

    하급 모험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라의 말은 사실인 모양으로, 평소 같으면 던전 안에서 한 파티도 만나기 힘들었을 모험가들과 꽤나 빈번하게 마주치게 됐다.

    이정도 수준이면 늑대가 울음소리로 증원을 불러도 몇 마리 더 안 오는 거 아닐까?

    이왕이면 좀 일찍 이런 상태였으면 좋았을 텐데.

    구원은 슬쩍 스탯창을 열어봤다.

    이름 : 구원

    종족 : 인간 24

    직업 : 성자 40 / 모험가 3 / 무투가 12

    레벨 : 40

    생명 : 9200/9200

    정기 : 4000/4000

    근력 : 85

    내구 : 86

    민첩 : 76

    체력 : 55

    지력 : 49

    정신 : 52

    매력 : 89

    보너스 스탯 : 75

    상태 : 보통

    어제 디아나와의 경험으로 폭업을 한 덕분에 이젠 늑대개가 아무리 몰려와도 전혀 두렵지 않을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늑대개 사냥이 좀 안전해지다니.

    심지어 어제 맞춘 방어구도 별 의미 없어진 느낌이 들어서 속이 쓰리다.

    그래도 이왕 맞춘 방어구니 제대로 착용이야 하고 있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방어구를 착용해도 늘어난 스탯 탓에 전혀 몸이 무거워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늑대개 상대로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진 구원이 늑대개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처음 만난 몬스터는 늑대개가 아니었다.

    "응? 뭐야 저건?"

    "고블린이로군. 수준은 늑대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녀석들이네."

    응. 그건 나도 보면 안다.

    녹색의 피부에 구원의 허리 언저리에 겨우 닿은 낮은 키. 듬성듬성 몇 가닥 겨우 나 있는 머리카락에 큼지막한 코를 가진 못생긴 얼굴. 덩치에 비해 튼실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서 힘이 약해 보이지는 않는다. 요즘 묘하게 강하게 묘사되는 추세인 오크의 뒤를 이어 판타지계의 새로운 호구로 떠오른 바로 그 몬스터 고블린이다.

    문제는 쟤들이 지금 여기에 왜 있냐는 거다.

    네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나무로 만든 각종 조잡한 무기들을 곁에 두고 뭐가 그리 신났는지 유쾌하게 떠들면서 빈 공터 한복판에 둘러 앉아있었다.

    왜 갑자기 못 보던 놈들이 여기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지.

    "좋아! 가라! 사라! 디아나! 너희들로 정했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누굴지?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소시천지 // 감사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게 한번 고친 제목이라는 거죠. 하하하하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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