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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3화 (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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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암컷들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늑대개들이 몰려들었던 어제의 마지막 전투와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어제처럼 수컷이 섞인 것도 아닌 순수하게 암컷으로만 구성된 무리다.

    아무리 어제보다 사라나 내 레벨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상대하기 힘들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흠. 다 끝났나?"

    "무슨 소리야? 네 눈엔 우리 주위를 빙 둘러싸고 대기타고 있는 애들이 안보이냐?"

    "안보일 리가 있나. 초월종 처리는 끝났는지 묻는 걸세."

    "훗. 저따위 한낱 발정난 개새끼 따위. 덩치가 아무리 커봤자 나한텐 안 돼지."

    "그럼 이제 그만 해도 돼겠구먼."

    "응? 뭘?"

    로브녀의 천 덩어리 가운데쯤이 스윽 올라갔다.

    응? 손을 든 건가? 뭐하는 거야?

    딱! 하고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나더니, 그때까지 주위를 둘러싸고 바라만 보던 늑대개들이 일제히 구원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야! 이거 뭐야!"

    "허허. 자네는 저들이 왜 지금까지 공격을 안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겐가?"

    아무래도 이 로브녀가 다가오지 못하게 뭔가 수를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것도 할 줄 알면 할 줄 안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알지! 그럼 대체 지금 왜 푼 건데?"

    "다 끝났는지 물어보지 않았나."

    "내가 그런 뜻인 줄 알았겠냐?! 다시 할 수 있지?! 할 수 있다고 해주세요!"

    "흠. 힘드네."

    "젠장. 사라 따라와! 돌파한다!"

    "네!"

    사방이 둘러싸인 상태로는 상대하기 힘들다.

    구원은 우선 한쪽을 돌파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물론 성자의 스킬을 발동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적어도 어그로 끌기에는 최적화된 이 기술덕분에 어제처럼 사라한테 어그로가 끌리는 일은 막을 수 있겠지.

    다른데 신경 쓸 필요 없이 눈앞의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좋아. 그럼 우선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한 곳을 돌파해 사라를 나무 위로 올려보내고 늑대개 전원에게 성자의 손길을 묻혀서 어그로를 집중시키는 거다.

    "야! 넌 안도와주냐?!"

    "흠. 힘내게. 난 여기서 응원을 담당하겠네."

    로브녀는 어느 샌가 공중에 두둥실 떠올라서 느긋하게 관전 중이다.

    젠장. 넌 나중에 내 스킬을 직접 맛볼 때 보자. 울면서 빌어도 절대 안 멈춰준다.

    늑대개들이 완전히 포위를 좁히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달려 나가 늑대개들을 후려친다.

    일단은 데미지를 중시하기보다는 어그로를 집중시킨다는 생각으로 성자의 손길을 발동하고 전부 한 대씩 후려치고 얽히며 사라를 보낸다.

    "일단 나무 위로 올라가!"

    "알겠어요. 조심해요!"

    그렇게 겨우 일점 돌파를 성공하고 사라를 나무 위로 피신시킨 구원은 얽혀있던 놈들을 처리하고 뒤를 돌아 암컷들과 대치했다.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저 로브녀다.

    지금은 방관하고 있다지만 결국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도와주기는 하겠지?

    아무래도 성자 스킬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니 체험하기도 전에 죽게 놔두진 않을 거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초월체를 잡을 때까지 얘들을 전부 붙잡아두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둥둥 떠 있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상상 이상으로 거물인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나무에 올라간 사라는 벌써 화살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그 위력은 이제는 암컷들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라서, 사라에게 어그로가 끌려 서커스 묘기 같은 이단 점프를 하려는 놈들을 공중에서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구원이 성자의 손길을 묻히고, 혹시 놓친 놈들이 점프해서 공격하려고 하면 사라가 화살을 쏴 떨어뜨린다.

    사라가 늑대개에게 당할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진 구원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날뛰었다.

    가장 먼저 달려들어오는 놈을 그대로 잡아 던지고 발로 내려찍는다.

    옆에서 달려드는 놈을 팔꿈치로 가격하고, 그대로 손을 뻗어 앞에 있는 놈을 타격.

    다리를 노리는 놈은 무릎으로 찍고 로우 킥으로 다리를 걸듯이 후려쳐 뒤에 있는 놈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방벽을 쌓는다.

    그 사이에도 사라의 화살이 꾸준히 날아와 늑대개들을 차례차례 지워간다.

    이대로만 하면 의외로 여유롭겠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잠시.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숫자의 폭력에는 이길 수 없었다.

    사라의 화살 수도 한계는 있고, 야금야금 갉아져가는 구원의 생명력도 결국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왔다.

    젠장. 그 초월종 새끼는 암컷이란 암컷들은 전부 모아 놓기라도 했나. 뭐가 이렇게 많아?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초상 치르겠다.

    "야! 너 진짜 거기서 구경만 할 거냐? 제발 살려주세요!"

    "이쯤이 한계인가. 어쩔 수 없구먼."

    로브의 천 덩어리 한가운데가 아까처럼 불쑥 들리더니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저 막대한 에너지가 로브녀가 있는 곳으로 결집되는 게 느껴진다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게 바로 마나라는 걸까?

    그리고 그 에너지들은 일제히 무수한 구체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 수는 아마 남아있는 늑대개의 머릿수와 동일.

    그 구체들은 늑대개 한 마리에 하나씩 부딪히더니 순식간에 늑대개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그래. 말 그대로 지워버렸다.

    늑대개들은 고통을 느끼는 모습도 상처를 입는 모습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저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마 방금까지 녀석들과 직접 싸우면서 입은 고통과 상처가 아니었다면 전부 꿈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덧없는 광경이었다.

    땅에 떨어진 마석과 드랍템의 존재만이 늑대개들이 그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음? 이 몸의 정체는 이미 말해줬다고 생각하네만. 까먹은 겐가? 기억력이 상당히 나쁘구먼. 알려주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잊는 건 상당한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나? 어쩔 수 없지. 이번엔 제대로 기억하도록 하게나. 이 몸의 이름은 디아나. 마도의 길을 걷고 있는 몸일세."

    "그 중2병 같은 소개를 까먹을 리가 없잖아! 이름을 묻는 게 아니야. 정체가 뭐냐고 묻는 거다."

    "…이 몸을 모르나?"

    "알 리가 없잖아. 너 나 언제 봤냐?"

    "흠. 이름을 밝혔는데도 반말을 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네만 설마 이 몸을 모를 줄이야. 거기 처자도 이 몸을 모르나?"

    "네? 네."

    사라도 방금 디아나의 마법을 보고 상당히 놀랐는지 디아나가 말을 건네 오자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둘 다 이 몸의 정체를 몰랐다고? 이런 수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데 잘도 데리고 다녀줬구먼."

    스스로 수상한 차림새란 자각은 있는 거냐.

    "뭐, 모른다면 모르는 대로 있어도 상관없네. 걱정 말게나. 이 몸은 정말 아무 꿍꿍이도 없이 순수하게 성자란 직업의 스킬이 궁금할 뿐이거든. 자네들에게 해 끼칠 생각은 없네."

    "그런 놈이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방치하냐?"

    "자네도 이방인 아닌가? 이방인이란 족속들은 가끔 위기에 처하면 새로운 힘에 각성하는 경우가 있더군. 그래서 자네에게도 한 번 기대해봤네만 아쉽게도 자네는 그런 부류는 아닌 모양이군."

    대체 어디 살던 만화 주인공 같은 새끼들이 넘어와서 그딴 선입관을 만들어 놓은 거야.

    아무튼 얘가 나한테 딱히 해코지할 생각이 없다는 건 사실일거다.

    방금 늑대들을 쓸어버리는 걸 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할 테니까.

    그리고 아마 힘으로 원하는 걸 얻는 놈도 아닌 모양이고.

    "그럼 마석과 재료들이나 회수하는 게 어떤가? 초월종은 상당히 희귀한 걸 줄 가능성도 있다네."

    오오. 그렇지. 초월종을 잡자마자 암컷들이랑 박 터지게 싸우느라 지금까지 초월종이 뭘 떨어뜨렸는지 확인도 제대로 못했다.

    "근데 초월종도 길드에 보고하면 보수가 나오나?"

    "음. 한 번 보고된 녀석은 다시 발견된 예가 많으니까 말이지. 보수는 상당히 괜찮게 나올 걸세."

    좋아. 상당히 고레벨일 디아나도 상층에서 초월종을 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으니 아마 우리가 첫 발견일 거다. 저번에 암컷을 발견한 것도 보수가 상당했으니 이번에도 기대해도 되겠지?

    한껏 부푼 마음으로 암컷들의 드랍템과 마석을 회수하면서 초월종을 쓰러뜨렸던 곳에 가보니, 거의 내 주먹의 절반만 마석이 떨어져 있었다. 암컷 늑대들의 마석도 엄지 첫마디 정도의 크기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다. 이러니까 내가 그렇게 때려도 버티지.

    "호오. 이정도 크기면 다음 계층의 몬스터와 비교 해봐도 손색이 없군. 자네 용케 이겼구먼."

    뭐야?! 그런 애랑 싸웠는데 보고만 있었냐?!

    아니지. 암컷들을 멈추는데 전력을 쏟은 건가?

    저 태평한 모습을 보면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말이지.

    마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드랍템을 확인한 순간, 구원은 두 눈을 감싸 쥐었다.

    아악! 내 눈.

    "야, 디아나."

    "음? 뭔가?"

    "원래 이런 것도 떨구냐?"

    "호오. 상당히 드문 물건이 나왔구먼. 자네 보기보다 운이 좋군."

    이게 운이 좋은 거냐.

    초월종이 드랍한 아이템은 무려 본인의 거시기였다.

    심지어 죽기 직전의 빳빳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그 우람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좋은 거면 네가 좀 들고 다녀 줄 수 있을까?"

    좋은 템이건 뭐건 간에 난 건드리기 싫거든.

    "자네 여성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군 그래. 정 건드리기 싫으면 저기 저 처자한테 부탁하는 건 어떤가?"

    디아나가 한쪽에서 열심히 암컷 늑대개들의 드랍템을 줍고 있는 사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 초상 치르는 꼴 보고 싶냐? 쟤한테 말했다간 화살로 찌르려고 들걸."

    "자네들도 참 재미있는 한 쌍이구먼."

    재미는 무슨.

    어쩔 수 없이 구원은 최대한 닿는 면적이 적게 손끝으로 집어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대체 이딴 건 어디에 쓰라고 드랍하는 거야. 혹시 어디 쓰는 건지 알아?"

    "……흠. 뭐,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네."

    "그래? 제일 흔하게 쓰이는 용도가 뭔데?"

    "자, 자네가 그런걸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나? 팔아버리면 그만인 물건 아닌가."

    만나고 처음으로 디아나가 곤혹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잖아. 뭔데? 어디 쓰길래? 응? 알려줘라. 웅? 응?"

    "시끄럽네! 자넨 정말 여성에게 못하는 말이 없군! 말만으로 성희롱이 성립된다는 건 아는가?!"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갑자기 왜 성희롱이 튀어나와? 뭐 딜도로라도 쓰냐?"

    "……."

    어라? 설마 진짜로?

    "미, 미안."

    "…시끄럽네."

    그 뒤론 디아나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아, 구원도 묵묵히 아이템 수거에만 전념했다.

    계속 이것저것 말하면서 떠들던 애가 조용하니까 엄청 거북하네.

    "그래서, 이제 어쩔까?"

    겨우 아이템 수거를 끝내고, 구원이 불편한 침묵을 깼다.

    몰려있던 늑대개가 상당히 많았다보니 아이템을 수거하는 것만 해도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내려가는 길을 찾든지 길드에 알려진 길을 따라 내려가든지 해야겠지만 방금 전 전투로 생명력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

    아무리 내 자연회복력이 좋다고 해도 만전을 기하기엔 꽤나 시간이 소요될 거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가보는 곳을 만전도 아닌 상태로 갈 수도 없는 일.

    그리고 시간이 너무 애매하다.

    오늘은 애초에 던전에 오는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지금 마을에 돌아가서 재정비하고 다시 던전에 오기에는 벌써 늦은 시간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마무리 짓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어차피 이 이상 밑으로 내려가고 싶다면 마을에 한 번 돌아가야 할 걸세. 적어도 기본적인 방어구는 갖춰야하지 않겠나? 처자는 후위 담당이니 괜찮을지 모르지만 자네는 뭔가? 전위에 서는 사람이 무기는커녕 제대로 된 방어구 하나 갖추지 않다니. 자네는 목숨이 두 개라도 되나?"

    디아나는 아직도 조금 삐진 건지 말에 가시가 돋쳐있었지만 현 상황에 정확한 어드바이스를 해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얘도 꽤나 남 챙기기 좋아하는 타입이구나.

    "정말이에요. 당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쪽까지 불안해져요."

    게다가 디아나한테 일방적으로 신경전을 벌이던 사라까지도 그 의견엔 동의하는 모양이다.

    방어구인가….

    여유자금도 조금은 있으니 지금까지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못 살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거추장스럽단 말이지.

    원래 세계에서도 기능성을 중시해서 운동복만 입고 다니던 내가 온몸에 덜그럭 덜그럭 거리는 철판을 두르고 다녀야한다니.

    하지만 맞는 말이다.

    방어구를 제대로 갖췄다면 방금 전 전투에서도 결국 디아나의 손을 빌릴 것도 없이 구원과 사라가 전부 처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까지 양학만 하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입어야겠지.

    "알았어.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어차피 방금 전 전투로 얻은 수익만 계산 해봐도 이미 오늘은 벌만큼 벌긴 했다.

    생각해보면 원래 오늘은 던전에 올 생각도 없었고, 하루정도는 일찍 마무리해도 괜찮겠지.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쓰굴 // 감사합니다.

    카르디오스 // 감사합니다?! 재밌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아린 // 퇴근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쓰다 보니 가끔 이렇습니다.

    향향공주 // 최강의 도발기죠.

    붉은정의 // 크기는 평범해도 모양은 예쁩니다!

    ifo // 정조가 위기에 처할수록 더 필사적으로 싸워서 없는 힘도 발휘가 되겠죠.

    qkzks135 // 구원은 동정이 아니라 청년막이 따여도 흑마법사는 못되겠네요.

    kodks // 감사합니다. 재밌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마녀서윤 // 설마 따이는 걸 바라신….

    sodooril // 괜찮아! 스치지도 않았어!

    말살 // 늑대개 수컷은 보스마저 얄짤이 없네요.

    무꾸914 // 슬슬 벗겨야 할 텐데 말이죠.

    완글아 // 천 옷 따위는 허리힘으로 뚫어버릴 몬스터의 파괴력을 간과하시는 군요.

    마왕을위한지침서 // 이번편은 암컷들 상대라 청년막은 안 위험했네요.

    칼데라린 // 안심하긴 이르다. 경계를 유지하라. 오바.

    illya // 본인은 쓸 일이 없는 득템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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