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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0화 (1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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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동료

    늑대개의 약점을 파악한 다음부터 구원은 같은 사이클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단 점심까지 길드에 죽치고 앉아 드나드는 사람들을 애널라이즈로 확인하며 파티원으로 끌어들일만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본다. 점심을 먹은 후엔 던전에 들어가서 야생 늑대개의 중성화에 힘쓰고, 저녁에 다시 돌아와 길드에 죽치고 앉아 파티원을 찾아보다가 자러 간다.

    반복되는 생활 패턴으로 새로운 스킬도 얻었고, 스킬 숙련도도 꽤나 올릴 수 있었다.

    전투로 올리기 힘들다는 레벨도 겨우 1이긴 하지만 올랐을 정도였다.

    돈도 이제는 제법 여유가 생겨, 며칠정도는 던전에 안 가도 여관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쌓였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파티원으로 끌어들일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널라이즈를 하다보면 간간히 구원과 비슷한 레벨대의 모험가들도 발견이 되긴 했다. 그야 이렇게 넓은 길드에 이렇게 많은 모험가들이 모여 있는데, 구원과 비슷한 레벨대의 모험가가 안보이면 그게 이상한거지.

    문제는 외모다.

    예쁠수록 이성을 꼬시기도, 행위 시 만족도도 크다보니 기본적으로 예쁠수록 레벨 업이 손쉽다. 게다가 레벨이 올라가면 매력에도 보정이 들어가니 더더욱 예뻐진다.

    그러다보니 고레벨 모험가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길드에서는 절세미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미인들을 상당한 빈도로 만날 수 있고, 그에 따라 구원의 눈도 쓸데없이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그런 구원의 눈에 아직도 구원과 비슷한 레벨에서 놀고 있는 모험가들의 외모가 눈에 찰리 없다.

    그럼에도 구원은 타협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길드를 드나들며 미인들 상대로 먹히지도 않는 애널라이즈를 시전하는 매일을 보냈다.

    어딘가에, 어딘가에는 분명 아직 기회가 없어 꽃피우지 못하고 저레벨을 전전하는 절세미녀가 한명쯤은 있을 거야.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같이 뒹굴지 모를 파티원인데 타협은 절대 안 돼.

    그런 되지도 않는 기대를 하면서 보내는 매일.

    그런 생활이 일주가 되고, 이주일이 넘어가자 슬슬 구원도 타협을 해야 하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됐다.

    젠장…. 게임이었으면 호구같은 남자새끼들이 손도 못 대서 저레벨을 유지하는 절세미녀가 산처럼 쌓여있을 텐데, 현실의 벽이란 이런 건가.

    그렇게 점점 기대도 옅어져가고 있지만, 오늘도 습관적으로 길드로 향한다.

    아무 기대도 안하고 길드에 들어가자 입구 근처에 굉장한 미녀가 왠지 곤란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어깨에 살짝 닿는 길이의 어두운 와인빛 머리카락.

    심지가 강해보이는 커다란 눈동자와 시원스레 뻗은 콧대가 어딘가 도도하고 쿨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몸매는 전체적으로 슬렌더라고 할까, 키가 크고 늘씬하게 쫙 빠진 스타일이지만 들어갈 데가 확실히 들어가서 여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한다.

    나이는 구원보다 서너 살 어린 정도일까?

    그런 잘 빠진 미녀가 눈썹을 찌푸린 채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구원은 딱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애널라이즈를 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게 외모는 저렙인게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지만, 복장은 그냥 평범한 시골 아가씨나 입을 것 같은 차림이다. 손에 든 활만 없었으면 모험가가 아니라 의뢰를 하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

    곧장 애널라이즈를 실행해보자 예상대로 레벨은 겨우 7에 불과했다.

    이런 미인이 내가 묵는 여관 종업원보다 레벨이 낮다니.

    대체 경험이 얼마나 없는 거야?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구원은 앞뒤 가릴 것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일단 인사를 건넸다.

    이래 뵈도 구원은 커스터마이징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 미남. 멀쩡하게 행동만 하고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감을 가질 외모다.

    이 여자도 도도해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첫인상이 나쁘진 않을 거라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아뇨. 안녕 못하네요."

    여자는 뭔가 불쾌한 눈길로 구원을 한번 째려보더니 다시 정면을 향하고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허허. 예쁜 건 예쁜 값을 한다더니 싸가지 보게.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지.

    너 오늘 잘못 걸렸어.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하. 그러시군요. 왜 안녕 못하실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길드 직원이에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그쪽이랑 상관없잖아요?"

    씨발! 썅년이 몸속에 에어컨을 쳐달았나. 쿨하다 못해 냉방병 걸리겠네.

    너 나한테 따먹힌 다음에도 그딴 말이 입에서 나오나 보자.

    "아뇨. 상관없다니요.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계신데 그냥 지나친다면 신사로서 도리가 아니죠."

    "차라리 그냥 따먹고 싶어서 찝쩍대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요?"

    ……헐. 어떻게 알았냐.

    제아무리 구원이라도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무래도 곤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친절한 미남 작전은 안 먹힐 것 같다.

    이렇게 되면 플랜B다!

    "하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스스로의 외모에 자부심이 굉장하신 것 같은데, 전 그렇게 아무한테나 막 달려들 정도로 발정나지 않았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성분들도 계시고요."

    완벽한 뻥카지만 나정도 외모면 이런 뻥카도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겠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쪽과 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을 걸게 됐습니다."

    "비슷한 레벨끼리 떡쳐서 같이 레벨 업 하자고요? 관심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엄마, 나 얘 좀 무서워. 혹시 독심술 쓰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나에겐 아직 다음 플랜이 남아있다!

    "그럴 리가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동료를 구하고 계신 게 아닌가요?"

    "그러니까 섹스 파트너는 다른데 가서…."

    "아뇨. 제 말은 순수하게 던전에서 같이 싸울 동료를 말하는 겁니다. 장비를 보니 혼자서 던전에 다니실 수준은 안 되시는 것 같은데."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같은데요?"

    "아뇨. 전 이래 뵈도 저레벨 몬스터들 상대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혼자서 다닐 수준은 됩니다."

    "그럼 저랑 동료가 될 필요도 없겠네요. 혼자서 가능하시잖아요?"

    "전투야 물론 혼자서 가능합니다. 다만 제가 이 세계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 꼭 동료가 필요합니다."

    "…흐음?"

    그제서야 여자도 관심이 좀 생기는지 고개를 돌려 구원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계에 떨어졌는데, 여기선 이방인이라고 한다죠? 정말 갑작스럽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눈 떠보니 이 세계에 홀로 있었습니다. 다행이 제 한 몸 지킬 능력은 있어 굶어죽진 않고 있습니다만, 이 세계는 제가 있던 세계와 일반 상식부터 다른 게 너무 많아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던전에 같이 갈 동료가 필요하신 거라면 서로 도움이 필요한 입장끼리 같이 돕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떠냐! 이 완벽한 설정.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크, 이놈의 재치. 이놈의 순발력.

    하늘은 어쩌자고 나에게 이런 재능까지 주셨는가.

    여자는 턱을 괴고 구원을 스캔하듯이 발끝부터 천천히 올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 말. 정말이겠죠?"

    "물론이죠. 거짓말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좋아요. 한 번 믿어보죠. 단,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기만 해보세요."

    됐다! 힘든 싸움이었지만, 아무리 튕겨봤자 결국 내 손바닥 안이지.

    이걸로 첫걸음은 내디뎠다. 이제 같이 동행하면서 서서히 친해진 다음 잘 구슬리기만 하면 돼!

    "하하.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전 구원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여러 방면에서 잘 부탁한다고.

    구원은 속마음을 숨긴 채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사라에요."

    사라도 구원이 내민 손을 마주잡긴 했지만, 스치듯 닿더니 바로 휙 빼버렸다.

    결심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저 도도한 표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너뜨린다.

    "자, 그럼 일단 던전으로 가면서 서로 간단한 소개라도 하죠?"

    먼저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싶지만, 말해봤자 거절당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던전 쪽으로 유도했다.

    애써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한 채 앞장서 가려고 했지만, 사라는 왠지 따라오지 않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응? 왜 그러시죠?"

    "……아직 모험가 등록을 안했어요."

    "아하. 그러시군요. 그럼 얼른 마치고 오세요.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라는 여전히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이 없어요."

    "네? 뭐라고요?"

    여전히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라는, 표정과는 달리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내뱉었다.

    "모험가 등록할 돈이 없어요."

    "……뭐? 고작 2실버가?"

    "고, 고작 2실버라뇨? 여기 물가가 너무 비싼 거예요. 어쩔 수 없잖아요."

    생긴 건 완전 차도녀같이 생긴 애가 궁상맞은 소리하고 있네.

    "…자, 여기. 2실버."

    "으윽. 방금 처음 만난 사람한테 돈을 받을 수는…."

    그래도 꼴에 자존심은 있나보다.

    "이제 같이 던전에 가야되는데 모험가 등록도 못해서 여기 죽치고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되잖아?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니까 얼른 가서 등록이나 하고 와."

    "…고마워요. 돈 버는 대로 바로 갚을게요."

    사라는 꽤나 주저하더니, 결국 돈을 받아서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의외로 꽤나 착실한 성격인가보다.

    아니면 그냥 남한테 빚지고 살기 싫어하는 성격인 건가?

    어느 쪽이든 간에 저쪽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태라면 상대하기 편해진다.

    "다녀왔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사라가 돌아왔다.

    "오, 어서와. 그럼 가자."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은근슬쩍 반말하는데."

    "응?"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뭐, 이제부터 같이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길 동료잖아. 친하게 지내자고."

    "싫어요. 오늘 처음 만난 남자가 친한 척 반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소름 돋아요."

    처음 말 걸었을 때부터 느꼈지만 상당히 경계하네.

    남성혐오증 같은 건가?

    아니, 그래도 레벨이 7이면 남자 경험이 있기는 있다는 얘긴데.

    쓰레기 같은 남자랑 사귀다가 크게 데이기라도 했나?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섬세하게 보듬어주면서 서서히 친밀해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난 내 성격을 잘 알고있다. 그런 게 가능할리가 없지.

    "허나 거절한다!"

    "하?"

    "네 놈은 어차피 2실버를 갚을 때까지 이 몸에게 종속 된 몸! 빚쟁이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 따윈 없다!"

    "묘하게 친절을 베푼다 싶었더니, 그런 속셈이었나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쓰레기군요."

    사라의 눈빛이 완전히 쓰레기를 보는 눈빛으로 변했다.

    이 이상 장난치면 정말로 빚이고 뭐고 도망갈 지도 모르겠다.

    "장난이야 장난. 표정 봐라. 무서워서 어디 장난도 못 치겠네. 이왕 같이 다니는 건데 너무 딱딱하게 지내면 서로 피곤하지 않겠어? 게다가 파티의 커뮤니케이션은 파티의 존속과 생존에도 직결된다고?"

    "…흥."

    생존까지 운운하고 나서니 사라도 할 말이 없어졌나보다.

    "그러니까 사라도 나한테 반말해도 돼. 편하게 편하게 지내자고."

    "안 해요. 대신 반말하는 건 상관 안하도록 하죠."

    사라는 여전히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말했다.

    그래도 반말하는 의도는 이해해준 모양이다. 그냥 존댓말하기 귀찮아서 둘러댄 거지만.

    그나저나 이런 태도면 앞으로 공략하기 상당히 힘들겠는데.

    "그래서, 사라는 직업 레벨이 몇이나 돼? 활을 들고 다니는 걸 보니 원거리 공격 전문인 건 알겠는데."

    그런 언쟁 후 드디어 던전을 향하며, 먼저 사라의 실력 파악에 들어갔다.

    "레벨은 7. 직업은…궁사가 2. 사냥꾼이 1이에요. 아 방금 얻은 모험가도 물론 1이고요."

    "우와. 완전 밑바닥이잖아. 그 레벨로 잘도 던전에 들어갈 생각을 했네."

    "시, 시끄러워요! 그러는 그쪽은 레벨이 몇인데요?"

    "레벨은 13이고 성자 12, 무투가 10 그리고 모험가가 3이다."

    "…정말 혼자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되나보네요. 그런데 성자란 직업은 처음 들어봐요. 어떤 직업인가요?"

    "응?! 아, 아아~. 그냥 뭐랄까. 나 이방인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얻은 특수직이랄까. 아무튼 전투랑 관련된 직업은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어."

    휴. 갑자기 이상한 걸 물어보고 있어.

    아까 반응을 봐선 곧이곧대로 섹스관련 직업이라고 했다간 바로 도망가겠지?

    성자는 여러모로 친밀해질 때까지 비밀로 해두자.

    "뭐 하긴, 직업레벨이 전부는 아니지. 그래서 세부 스탯은 각각 몇이나 돼?"

    "네? 무슨 말이에요?"

    "아니 스탯 말이야 스탯. 근력이나 민첩이나 지능 같은 세부 스탯."

    "…그런 건 수치화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쪽 세계에선 그런 걸 숫자로 알 수 있었나보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구원이 말을 흐리자 왠지 불쌍한걸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만둬.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건 그만 둬! 내 머리 상태는 지극히 양호하다고!

    "잠깐 기다려. 그럼 레벨은 어떻게 수치화해서 아는 건데?"

    "무슨 소리에요. 레벨은 원래 숫자로 알게 되잖아요?"

    말이 안 통한다.

    분명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하나부터 천천히 따져보자. 우선 레벨이나 직업 레벨을 알 때, 상태창을 띄워서 확인하잖아?"

    "아뇨. 그게 뭔가요? 레벨은 그냥 알게 되는 거잖아요?"

    "뭐? 그럼 설마 스킬창도, 인벤토리도 없어?"

    "뭔가요? 그건?"

    뭐라고?! 그런가! 그런 거였나!

    ============================ 작품 후기 ============================

    쿠폰이 더 들어왔었네요.

    재밌게 보시고 보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쓰굴 // 추천 감사합니다.

    kodks // 감사합니다.

    말살 // 코멘트 감사합니다.

    진타 // 이런 속성으로 돼버렸습니다.

    코모에 //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lpo // 저도 즐기면서 재밌게 쓰고 있는 중이라 괜찮습니다.

    미소녀모에 //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개들에겐 미안하지만 아직 조금 더….

    Beautifuldays // 저도 기껏 열심히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공기화되는 건 싫으니 최대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rhrnrgml // 감사합니다. 재밌으셨다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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