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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6화 (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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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계 생활 시작

    던전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아무 인기척도 없는 조용한 구석에 자리 잡은 구원은 일단 인벤토리에서 몬스터의 사체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먼저 제일 간단한 거대 쥐부터 갈까.

    수염과 앞니. 난이도는 다들 둘에 비해 명백하게 낮다.

    비주얼이 토끼와 너구리에 비하면 더 혐오스럽다는 문제점이 남아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좋아, 간다!"

    구원은 마음을 다잡고 거대 쥐의 앞니에 손을 가져가 댄 후 눈을 감아 최대한 그 비주얼을 눈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힘을 줬다.

    우드득!

    혐오스런 소리와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촉과 함께, 앞니는 생각보다 훨씬 더 손쉽게 빠졌다. 이게 다 근력 스탯 덕분이긴 하지만 그다지 감사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시체를 훼손하여 양심이 찔린다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더럽다.

    하지만 약해질 순 없지. 여기서 물러서면 모처럼 이런 아름다운 세계에 떨어져서는 돈이 없어 굶어죽은 희대의 병신이 될 뿐이다.

    구원은 약해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고 수염에 손을 뻗었다.

    투둑. 투두둑.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듯한 기분 나쁜 감촉과 함께 수염이 뽑혀져 나왔다.

    이제 남은 건 마석 하나.

    이놈의 시체 속을 헤집어서 어디 있을지 모를 마석을 찾아내야 한다.

    일단 마석은 놔두고 다른 것부터 해치워 버릴 생각도 안한 건 아니지만 곧 뒤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구리의 발톱은 둘째 치고 꼬리는 힘줘서 뽑았다간 척추까지 한 번에 뽑히는 게 아닐까하는 그로테스크한 상상밖에 들지 않는다.

    토끼에 이르러서는 대체 손으로 가죽과 고기를 어떻게 분리해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그냥 고기를 발라먹는단 생각으로 파헤치자.

    생각해보면 치킨에서 뼈만 발라내는 거랑 다를 게 뭐야?

    그냥 내장이 들어있고, 구운 게 아니라 감촉이 좀 더 미끌미끌한 거뿐이잖아?

    구원은 마음을 다잡고 손가락에 힘을 줘 거대 쥐의 사체를 헤집기 시작했다.

    충분한 근력 스탯덕분에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손가락이 가죽을 뚫고 살을 파헤쳐간다.

    약 3분여간의 말 그대로 피투성이의 혈투 끝에 구원은 새끼손톱만한 푸른 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솔직히 이게 마석이 맞는지 마석이란 걸 처음 보니 확신할 순 없지만, 거대 쥐의 몸속에 이런 게 들어있을 이유가 없으니 마석이 맞겠지.

    만약 꺼내봤는데 쥐새끼가 오늘 아침으로 먹은 음식의 소화돼가는 과정 같은 거면 농담이 아니라 울 거다.

    난 농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진짜다? 진짜로 농담 아니다?

    다 큰놈이 피투성이가 된 쥐 시체 붙잡고 엉엉 우는 꼴 보기 싫으면 넌 마석인 게 좋을 거야.

    구원은 누구를 향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협박을 하며 푸른 돌을 뽑아냈다.

    그 순간, 거대 쥐의 시체가 순식간에 썩어 들어가듯이 수축하더니 곧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어…? 어어…?!"

    이런 씨발!

    설마…. 설마…!

    구원의 뇌리 속에 근거 없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바로 쌓아놨던 거대 쥐의 시체에 손을 뻗어 아까 마석이 들어 있었던 소화기관 근처를 파헤쳐본다.

    역시나 몬스터별로 마석이 있는 위치는 동일한지 곧 푸른 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원이 새로 발견한 그 푸른 돌을 뽑아내자, 이번에도 역시 거대 쥐의 시체는 순식간에 썩어 들어가듯이 수축하더니 곧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드랍 템처럼 그 앞니만 남겨놓고.

    이런 씨발! 씨발! 지금까지 한 내 고생은 대체 뭐였는데?!

    돼지새끼 같은 점주한텐 꺼지란 소리나 듣고! 가게 하나 찾으려고 그 넓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생고생을 하고! 기분 더러운 쥐새끼 앞니랑 수염까지 잡아 뽑고!

    구원은 세 시간동안 활약했던 자랑의 붉은 발을 벽을 향해 강하게 날렸다.

    씨발! 씨발!

    어쩐지 그 종업원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부터 이상하더라!

    이런 뜻이었냐!

    좀 말해달라고! 나만 병신됐잖아!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걷어찼는데, 이게 또 은근 아프다.

    슬그머니 오른발을 내리고 상태 창을 열어보니 세 시간동안 한 번도 닳은 적이 없었던 생명력이 100 넘게 닳아 있었다.

    덕분에 좀 냉정해질 수 있었다.

    그래. 이렇게 벽을 차봤자 나만 손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돼지 같은 점주새끼의 본성을 빨리 파악한 덕분에 귀여운 종업원이 있는 가게도 찾았잖아?

    그리고 토끼랑 너구리를 해체하기 전에 알게 된 게 어디야?

    만약 아까 전에 마석을 방치하고 토끼와 너구리의 해체 작업부터 시작했다면, 난 아마 평생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해보니 참 스스로가 대견하다.

    혹시 난 천재가 아닐까? 아니면 아까 그 순간 나 스스로도 모르게 미래시 같은 초능력이라도 개안한 게 아닐까?

    호들갑떨면서 스킬 창까지 열어봤지만 물론 그런 스킬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대신 새로운 스킬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도축 1

    액티브 스킬

    소모 : 자원 1

    몬스터의 시체에서 마석이 있는 부위를 표시합니다.

    아이템 획득률이 [1%]만큼 증가합니다.

    오오!!

    그래 이거야! 이런 걸 원했다고!

    역시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는 세계면 이정도 융통성은 있어야지.

    얻은 김에 바로 스킬을 써보니 바로 스킬을 써보니 처음 시야에 들어온 토끼 시체의 뱃속의 한 부분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안의 파헤쳐 마석을 꺼내 보니 역시나 가죽만 남기고 썩어 들어가듯 사체는 사라졌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마석으로 얻는 드랍 템은 하나밖에 안 나오는군.

    스킬 설명에서 아이템 획득률이란 말도 있었으니, 마석으로 템을 얻으면 확률에 의존하게 되는 건가?

    구원은 게이머 특유의 본능으로 어느새 손에 맴도는 더러운 감촉도 잊고 당장 검증에 들어갔다.

    먼저 남은 토끼의 사체를 늘어놓고 하나하나 마석을 뽑아낸다.

    그러자 드랍 템이 하나도 없는 사체부터 가죽과 고기 전부 드랍한 사체까지 각양각색의 결과가 나왔다.

    드랍률은 그냥 확률에 의존하는 거라고 봐도 되겠지.

    그리고 다시 남은 거대 쥐 사체 10구를 늘어놓았다.

    각각 앞니와 수염을 뽑은 후 어느 사체에서 뽑은 건지 알아 볼 수 있게 일렬로 정렬해 놓는다.

    그리고 차례대로 하나씩 마석을 뽑으면서 미리 해체시켜놓은 드랍 템들을 확인.

    결과는 예상대로 랄까.

    마석을 뽑는 순간 미리 해체해놨던 일부 드랍 템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즉, 먼저 드랍 템들을 해체해 놓고 마석을 캐든 바로 마석을 캐든 결국 아이템을 얻는 건 드랍률에 따른다고 봐야겠지.

    구원으로선 정말 다행스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검증을 하면서도 만약 직접 해체로 드랍률과 상관없이 모든 드랍템을 다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천생 게이머인 구원은 그 더러운 본인의 정신을 희생하여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직접 일일이 해체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이제 아무런 걱정 없이 편하게 마석만 캐면 되겠어!

    그리고 마석 캐기에는 또 하나의 부가효과도 있었다.

    해체해놨던 일부 드랍템이 사라졌단 부분에서 눈치 챈 사람도 있을 거다.

    바로 마석을 캐내면, 그 시체를 헤집느라 손에 묻은 피나 내장 같은 이물질들도 빠르게 사라져갔다는 거다.

    하긴 이 정돈 해주지 않으면 모험가들은 던전 한번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온몸에 피칠을 하고 나와야 할 테니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지.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점원 아가씨가 다리 걱정을 해준 건 내 피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였군. 훗, 귀엽기는.

    돼지 점주도 그랬다고? 누구야 그건?

    참고로 오른 발에 묻은 피는 사라지지 않았다.

    첫 사냥 때 터져나간 사체는 회수를 안했거든.

    그 시체 산산이 분해돼서 마석 캐기도 쉬울 텐데. 누가 지나가다가 발견해서 캐주지 않으려나.

    아예 직접 가서 캐고 올까?

    그래. 그러자.

    맵 상에서 어디쯤이었는지 대략적인 위치는 기억하고 있고, 어차피 이왕 다시 던전에 들어온 거 문제가 해결됐다고 곧장 다시 나가기도 좀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화와 트레이닝복이라는 아마 이 세계에서 다신 구할 수 없을 물건들을 이런 식으로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그렇게 정한 구원은 남아있던 사체들에서 마석을 캐내 정리하고 곧장 길을 나섰다.

    첫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까지의 여정은 무척이나 순조로워졌다.

    일단 시체를 그렇게 파헤치다보니 이젠 몬스터를 때리는 감촉이나 터져나가는 시체에 익숙해진 것도 있고, 어차피 마석만 캐내면 전투 중에 튄 피는 자동으로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굳이 오른발로만 상대할 필요도 없어졌다.

    오히려 터뜨려버리는 편이 마석 캐기도 쉬우니 스킬 숙련도도 올릴 겸 적극적으로 로우 킥을 사용해가며 상대했다.

    어차피 이런데서 돌아다니기엔 스탯부터 이미 오버스펙이니 구원의 발목을 잡던 장해물을 극복한 지금의 이동속도는 아까랑 비교해서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렇게 가볍게 조깅하듯 맵을 보면서 가다보니 금방 첫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 도착했다.

    피가 터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 발견하기는 무척 쉬웠다.

    사체 파편에 도축 스킬을 사용하고 마석을 분리.

    이걸로 드디어 오른발을 잠식했던 찝찝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왠지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비록 그 흔적은 사라졌지만 오른발을 붉게 물들였던 그 경험은 내 양분이 되어 언제까지나 내 안에 살아 숨 쉬겠지.

    그동안 빌어먹게 감사했습니다!

    구원은 어째선지 벅차오르는 눈물을 참고 코를 쓱 문지른 후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물론 큰절 같은 건 안했다.

    아무리 나라도 던전에서 사라진 시체를 향해 큰절을 올릴 정도로 정신 나간 놈은 아니다. 지나가다 누가 볼지 모르는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조금 걸어 벅차오르는 가슴이 진정되자 다시 목표를 설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아까 전에 시세를 알아보는 건 실패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던전 입구에서 고작 몇 시간 사냥한 걸로 숙박비와 끼니, 덤으로 술값까지 해결될 리가 없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개나 소나 모험가를 하겠다고 달려들겠지.

    다음 층으로 내려 가볼까?

    가는 길을 모르긴 하지만 이렇게 넓은 던전이다.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하나일리도 없으니 걷다보면 언젠간 나오겠지.

    그렇게 하염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딱히 어딜 내려왔다는 느낌도 없었는데 어느 샌가 맵이 전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 던전은 한 층 한 층이 완벽하게 나눠져 있는 구조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길이 기울여져있어서 서서히 내려가는 구조인가보다.

    맵이 갑자기 전환되지 않았다면 내려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던전의 구조를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보다도 여기까지 오는데 상당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입구근처를 점점 반경을 넓혀가며 도는 식으로 맵을 밝혀가며 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귀찮은 방법이긴 하지만 던전에 한 번 오고 말게 아닌 이상 탐색은 기본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해놓으면 다음부터는 입구에서 다음 층까지의 최단거리를 돌파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게이머로서 완벽을 추구하려는 욕심 때문에라도 웬만하면 맵은 구석구석 철저하게 밝혀두고 싶다.

    물론 1층마저 아직 그 끝을 모른다는 이 더럽게 큰 던전은 아마 맵을 전부 밝히기란 평생을 걸려도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돌아다니는 범위는 전부 밝혀두면 언젠간 도움이 될 날도 오겠지.

    컹! 컹!

    풍경도 변한 게 없고 길을 내려왔다는 느낌도 없어서 실감이 잘 안 나지만 확실히 다음 층으로 내려오긴 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던 늑대개가 등장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 동시에.

    아마 지금 레벨로 충분히 상대하고 남을 상대일 테지만 일단 처음 보는 적이니 가볍게 긴장하며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 언제든 덤벼봐라."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말 끝나기 무섭게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빠르다!

    토끼를 처음 만났을 때도 분명 저렙 몬스터일 텐데 10대 레벨인 내가 빠르다고 느낄 정도의 속도였다.

    그런데 늑대개는 그걸 또 상회하는 속도로 육박해왔다.

    하지만 그런다고 당황할 내가 아니지.

    나에겐 아직 비장의 수단이 남아있거든.

    비기! 보너스 스탯 분배하기!

    늑대개가 완전히 다가오기 전에 남아있던 보너스 스탯 중 일부를 민첩에 투자하자 육박해 오는 속도가 충분히 반응하기 쉬울 정도로 느껴졌다.

    점프해서 허리부근을 노리는 늑대개를 옆으로 살짝 피한 후 니킥. 이어서 어깨 쪽을 노리고 들어오는 늑대개의 머리는 팔꿈치로 찍어 누르고 확인 사살로 바닥에 쓰러진 두 마리를 향해 로우 킥을 연속 시전.

    키야! 취한다! 너무 멋있는 거 아니야?

    무협소설 같은 데서 나오는 생각하자마자 몸이 반응하는 경지라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아우우우우~~~~~!!!

    잠깐 스스로에게 취해있는 사이에 죽은 줄 알았던 늑대개 한마리가 일어나 고개를 위로 치켜세우고 자기가 진짜 늑대라도 되는 것처럼 울어대기에 다시 한 번 로우 킥으로 마무리 지었다.

    새끼가 사람이 모처럼 기분 내는데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어.

    더 이상 취해있을 맘도 안 들어서 도축 스킬을 사용하여 시체를 확인하니, 불알 쪽이 빛나고 있었다.

    진짜냐. 아무리 시체라지만 인간적으로 고자로 만드는 건 너무하지 않냐.

    그보다 난 죽은 개새끼 불알이나 만져야 되는 거냐.

    잠깐 고민한 게 독이 된 걸까?

    어느 샌가 주위를 늑대개의 무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열두 마리?

    하하. 친구 울음소리 듣고 왔나 보구나?

    근데 니들 좀 많다?

    엄마가 다구리는 안 좋은 거라고 안 그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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