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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화 (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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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시작?

    방학 내내 캡슐 속에 처박혀서 현실을 잊고 살아온 구원은 오랜만에 밖을 다녀왔다.

    물론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가상현실 게임 때문이다.

    오늘은 구원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레이트 어스의 신작 발매일.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한 시간이면 드론으로 배송이 완료되는 요즘시대라지만, 진정한 팬이라면 그 시간조차 헛되이 쓰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집 근처 단골 매장의 오픈 시간에 맞춰 오랜만에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외출을 하고 왔다.

    보통 성인 게임들은 너무 섹스에만 주력하는 이른바 뽕빨물이나, 성인 게임이라면서 과정을 중시하여 눈앞에 여자를 두고 손만 잡고 지내며 비현실적으로 알콩달콩한 연애만 오랜 시간 즐기다가 엔딩 직전에야 겨우 좀 즐겨보려나 싶으면 끝나는 게임이 대부분이다. 가뭄에 콩 나듯 알피지나 시뮬레이션 같은 다른 요소를 첨가한 게임이 등장해도 성적인 부분이나 게임적인 부분이나 어느 한쪽은 부실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이 그레이트 어스사는 제정신으로 만든 건가 싶은 독특한 시스템들을 통해 알피지 요소와 성적인 요소, 두 가지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위업을 달성해내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오늘 나온 신작은 ‘모험가여, 섹스를 하여 던전을 탐험해라!’라는 표어를 내걸은 섹스 앳 더 던전 역시 알피지를 기반으로 한 성인게임인데, 그레이트 어스의 게임답게 제정신으로 만든 것 같지 않은 시스템이 특징이다.

    구원은 이미 발매일 전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공식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대략적인 세계관과 시스템을 꿰고 있었지만, 매뉴얼 역시 게임의 일부라는 본인만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게임이 인스톨되는 동안 매뉴얼을 정독하기로 했다.

    내용을 읽을 필요도 없이 다음 버튼을 연타하여 인스톨을 시작하고, 구원은 케이스에서 매뉴얼을 꺼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대지와 생명, 사랑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관장하는 대지신이 주신인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다. 문제는 이 생명과 사랑을 관장하시는 신이 본인이 관장하는 부분에 애착이 넘쳐흐르시는지 ‘사랑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자 생명을 탄생시키는 행위인 섹스! 아이들아 섹스를 통해 성장하여라!’ 라는 신언과 함께 엄청난 시스템을 구축해버렸다.

    어떤 시스템이냐고? 뭘 숨기랴. 바로 섹스를 통한 레벨 업이다.

    게임의 표어인 ‘모험가여, 섹스를 하여 던전을 탐험해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섹스를 하여 레벨 업을 하고 던전을 탐험하라는 말인 것이다.

    여하튼 이런 크레이지한 세계관에서 다른 세계에 살던 주인공이 내 던져져서 끝도 없이 이어진 지하 던전을 탐험하여 그 끝에 도달하는 게 이 게임의 주된 목표다.

    주인공이 이 세계에 내던져진 이유도 꽤나 황당하다.

    이 대지신이란 놈이 아까 말 한대로 무한한 가능성이란 것도 관장하는데, 그놈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면서 여러 종족들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낳는 것 또한 권장한다는 거다.

    심지어 이 대지신은 여러 무수한 차원을 관장하는 여러 신들 중에서도 상당한 고위 신인지라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종족들을 납치해 자기 차원에 내던져 새로운 가능성이란 놈이 탄생하는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내기조차 한다.

    주인공은 이런 민폐신의 마수에 걸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세계에 내던져졌다는 설정이다.

    역시 그레이트 어스. 제정신이 아니다.

    전작의 파티의 청일점 혹은 홍일점 파티장 겸 힐러가 되어 세계 유일의 회복수단인 섹스를 통해 파티를 경영하고 모험하는 시스템도 상당히 맛 간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전작에서 있었던 다양한 직업군으로 플레이하고 싶다는 요망에 맞추려고 노력했는지 한층 크레이지한 세계관이 되었다.

    매뉴얼을 정독하는 사이에 인스톨이 완료된 걸 확인한 구원은 얼른 캡슐을 덮고 플레이를 시작했다.

    오프닝은 별거 없었다.

    그냥 엄청나게 신성하고 예쁘게 생긴 여신님이 대신전에 강림하여 ‘사랑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자 생명을 탄생시키는 행위인 섹스! 아이들아 섹스를 통해 성장하여라!’라는 미친 소리를 신성한 목소리로 장엄하게 외치며 온 세상이 강렬한 빛에 휩싸이는 장면과 함께 캐릭터 생성이 시작되었다.

    그래봤자 스테이터스나 클래스의 기본치는 고정이고 건드릴 건 캐릭터명과 외형밖에 없긴 하지만.

    캐릭터명은 언제나처럼 구원.

    구원이란 독특한 성과 이름의 조합으로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이름으로 놀림을 많이 받아 한때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게임할 때 캐릭터명으로 써도 제법 괜찮은 이름이라 캐릭터명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어서 요즘은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외형도 원판에서 별로 손보지 않았다.

    평소에 180이 아슬아슬하게 못 넘어서 억울했던 키를 넉넉하게 늘리고 아슬아슬하게 평균 비율을 유지하는 다리 비율도 좀 넉넉하게 늘리고, 피부도 상태도 개선하고 얼굴도 살짝 만지고 근육량도 잔 근육이 좀 더 두드러지는 조각같이 다듬어주고.

    만약 구원을 아는 누군가가 지나가다 지금 만든 아바타 같은 사람을 본다면 십중팔구 ‘구원아, 너랑 저 사람이랑 꽤 닮은 것 같지 않냐? 근데 넌 왜 그렇게 억울하게 닮았냐.’라고 할 정도로 원판의 그림자는 확실히 남겼으니 이정도면 살짝만 손 본 수준이지.

    시작이 상당히 지체되긴 한 것 같지만 구원은 피그말리온이 빙의한 듯 완벽에 완벽을 추구한 결과 흡족하게 캐릭터 메이킹을 마칠 수 있었다.

    캐릭터 메이킹이 끝나자 다시 한 번 온 세상이 강렬한 빛에 휩싸이더니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어느 샌가 구원은 중세 서양식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자타공인 게임폐인인 구원이 고작 가상현실에 접속한 것만으로 가볍다곤 해도 현기증이라니?

    살짝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구원은 그런 꺼림칙한 느낌을 떨쳐버리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습관적으로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이름 : 구원

    종족 : 인간 24

    직업 : 성자(性者) 1

    레벨 : 1

    생명력 : 200/200

    정기 : 100/100

    근력 : 10

    내구 : 10

    민첩 : 10

    체력 : 10

    지력 : 10

    정신 : 10

    매력 : 50

    보너스 스탯 : 0

    상태 : 보통

    이 세계에선 스탯 10이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평균 능력치라고 하니 뭐 어느 게임이나 비슷비슷한 전형적인 초보자 스탯이다.

    매력을 처음부터 50이나 준다는 게 좀 의아하긴 하지만 뭐 세계관이 세계관인 만큼 초반 진행은 좀 편하게 하라는 그레이트 어스사의 배려겠지.

    그보다 더 특이한 점은 바로 직업인 성자인데, 이 직업이 바로 플레이어의 특권이자 아이덴티티이다. 다른 npc는 절대 가질 수 없는 플레이어 고유의 직업으로 글자 그대로 성행위에 보정이 들어가는 직업이다.

    레벨업 방법이 섹스인 이 세계에서는 다른 게임에서 주인공 직업으로 흔히 나오는 용사 포지션의 직업이라고 보면 된다.

    인벤토리도 열어봤지만 최하급 포션 5개와 소지금 5실버가 전부고 심지어 장비 창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왕 가상현실 게임하는 거 되도록 리얼하게 장비를 장착할 땐 직접 입으란 거냐. 그럼 장비 수 제한도 없을 테니 유리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귀찮은 시스템을 도입하셨네.

    몸에 걸친 거라곤 구원이 집에서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하나가 전부.

    초기 장비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스캔해서 만들어 놓다니, 갑자기 이세계에 떨어진 주인공이란 설정을 살리느라 제법 노력한 티가 나는 연출이다.

    매뉴얼엔 모험가 길드에 등록을 하면 튜토리얼이 진행된다고 쓰여 있었지.

    슬슬 시스템 창들을 닫고 거리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코앞에 비상하는 매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간판이 걸린 모험가 길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는 이른 아침부터 상당한 수의 모험가들이 벽면 빼곡히 늘어선 안내판 같은 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 우락부락한 근육질 형님들의 땀내 나는 광경을 생각하기 쉽지만, 모험가란 건 기본적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직업으로 어느 정도 레벨이 받쳐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섹스로 레벨 업을 한다.

    정확히 말하면 섹스로 상대방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경험치를 얻고 레벨 업을 한다.

    이제 좀 감이 잡히지?

    참고로 여성 중에는 평생 동안 한 번도 오르가즘을 느껴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즉, 이 세계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레벨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당연히 모험가의 비율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덤으로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미인이 많다.

    그도 그럴게 경험치 획득 량에 관여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상대방이 절정 했을 시의 만족도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외모가 아름다울수록 섹스 시의 만족도도 큰 법이다.

    미남 미녀일수록 고 레벨이 되기 손쉬운 더러운 외모지상주의 게임이라 이 말씀.

    괜히 초기 스탯에서 다른 스탯과 달리 매력만 가중치를 준 게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땀내 나는 근육 마초 형님들의 우락부락 마초 페스티벌이 아니라 색기 넘치거나 아름답거나 귀엽거나 각양각색의 매력 넘치는 미녀 미소녀들의 심신과 안구가 정화되는 바람직한 광경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레이트 어스.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레이트 어스 게임만큼은 평생 수집한다.

    그렇게 새삼스레 다짐하며 구원은 길드 안내원이 앉아있는 데스크를 향해 걸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미녀들의 물결 사이에 다이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일단 튜토리얼은 마쳐야지.

    "어서오세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모험가들 사이에 가려져 몰랐지만 지금 보니 이 안내원 누님도 굉장한 미인이다.

    "모험가 등록을 하러 왔는데요."

    "네, 등록비는 2실버입니다. 신분확인을 위해 스테이터스 용지에 손을 올려 주세요."

    안내원 누님이 내민 종이에 손을 올리니 이름, 직업, 레벨, 상태 같은 기본적인 스테이터스가 종이 위에 떠오른다.

    과연, 이런 식으로 신분 확인을 하는 거군. 마법이란 편리하구나.

    "어머? 직업이 성자? 처음 보는 직업이네요. 거기다 레벨 1이라니… 모험가 등록이야 물론 가능하지만 모험가는 위험한 직업이에요.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아름다운 누님. 누님은 지금 전설의 시작을 목격하고 계신 겁니다. 누님의 이름 또한 성자 전설의 시작을 알린 안내원으로 기록되겠죠."

    "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게임이기에 가능한 병신 같은 대사를 날리며 안내원 누님께 윙크하자 못 볼 걸 봤단 표정을 일순 짓더니 순식간에 영업용 미소로 돌아와 안내를 시작한다.

    직업정신 투철한 누님이네.

    참고로 만약 내가 현실에서 저런 대사를 날리는 또라이를 만난다면 반경 50미터 안으로 접근조차 안 할 거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지.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명함 크기의 조그만 철판을 내밀며 안내원 누님이 미소 지었다.

    그 철판에는 아까의 스태이터스 종이에 떠올라있었던 스태이터스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이게 바로 모험가용 신분증인가 보다.

    아니 그보다 안녕히 가세요라니? 이제부터 모험가의 기본이니 뭐니 안내하면서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거 아니었어?

    "저…누님? 모험가로서 기본자세나 수칙 같이 뭐 더 알려줄게 있지 않나요? 아직 안내가 안 끝난 것 같은데요?"

    "안녕히 가세요."

    일단 튜토리얼 진입을 재시도 해봤지만 안내원 누님의 철벽같은 미소와 함께 튕겨져 나왔다.

    마치 그 미소가 얼른 꺼지라고 독촉하는 것처럼 보여서 구원은 일단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또라이같은 말 좀 했다고 튜토리얼이 스킵되다니. 고작 길드 안내원 AI에 쓸데없이 너무 힘준 거 아니야?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안내원 누님은 고작 길드 안내원 치곤 조금 많이 예쁘다. 설마 히로인 npc였나? 이제라도 무릎 꿇고 빌면서 안내를 부탁해야 되나?

    "어이, 신참! 잠깐 좀 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길드 한복판에 멀뚱히 서있자니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대사만 보면 전형적인 신입한테 시비걸다 털리는 양아치A가 할 만한 대사였지만,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보이는 건 이건 또 상당히 아름다운 누님이 서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몸매. 조금 드세 보이는 얼굴에 전형적인 전사 차림의 갑옷. 붉은 빛의 사자갈기 같은 머리가 야성적인 느낌을 주는, 판타지 세계의 섹시 여전사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의 아름다운 누님이었다.

    "레벨 1에 직업 레벨도 1. 이거 동정이잖아? 그 나이 먹도록 아다도 못 떼고 뭐했냐? 모험가는 너 같은 동정새끼가 들이댈 정도로 만만한 일이 아니야.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그리고 생긴 것처럼 입도 더러웠다.

    하마터면 내 강철 멘탈에 살짝 데미지가 갈 정도로 더러웠다.

    동정 아니거든!

    …적어도 가상현실에선 아니거든!

    동정은커녕 섹스마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해댔거든!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다짜고짜 저런 폭언을 들어야 되지?

    길드 한가운데 멀뚱히 서있어서 좀 의도치 않게 길막을 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말이 좀 심하잖아?

    아, 그런가! 혹시 튜토리얼은 안내원 누님이 하는게 아니라 이 누님이랑 하는 건가.

    하긴 그레이트 어스 게임의 튜토리얼은 보통 제일 먼저 하는 게 게임 시스템의 안내다.

    즉, 튜토리얼에서 섹스를 하고 2레벨을 찍은 후 이런저런 시스템 안내를 받아야 되는데 아무리 이런 세계관이라도 안내 데스크에 앉아서 일하고 있는 누님과 갑자기 섹스에 돌입할 수는 없지.

    납득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 튜토리얼 npc에게 할 말을 하나뿐이지.

    "하! 내 성검에 박히면 정신도 못 차리고 히익히익 울어댈 년이 말하는 거 보소. 너나 가서 좆물이나 더 처먹고 와라."

    "뭐 이 새끼야? 여관으로 따라와!"

    ============================ 작품 후기 ============================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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