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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371화 (371/414)
  •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371회

    팔색 하렘에 기술 혁명!변기력 1년 세 번째 달.

    나는 방에서 벨라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인님. 어때?"

    "흠……."

    벨라를 세워 놓고 의자에 앉아 무게를 잡는다.

    고민되는군.

    팔색 조개 성의 중대한 분기점이다.

    내 하렘에 속한 여자들은 당연하게도 거의 다 임신한 상태.

    그리고 세 번째 달에 접어들어, 배가 불러오면서 슬슬 컨디션에 난조를 보이는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벨라는 그녀들이 쉴 수 있게 조개 성의 공간을 내어주는 한편

    레크리에이션 룸을 만들자는 계획에 맞춰 나한테 이런저런 건의 사항을 들고 온 참이었다.

    그녀가 내세운 비전은 이랬다.

    "현대 문명을 도입하자고?"

    "주인님이 사는 세계를 현대라고 일컫는 거라면, 맞아.

    그 세계에 재밌는 물건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벨라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 세계에서 허락된 시간을 잃었다.

    하지만 많은 여신을 거느린 지금이라면 떼써서 돌아가지 못할 것도 없다.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다들 혼란스럽지 않을까?

    정보를 아예 차단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가 시아의 세계에 무슨 문제를 초래할지 모르겠어."

    현대 문명의 산물이라면

    흔한 발명품 하나, 책 한 권조차 위험하다.

    편리한 점도 있지만, 갑자기 현대 문명을 도입한다니, 괴리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주인님은 나를 통해 그쪽 세계의 부산물을 얻고 있었잖아?"

    "내가?"

    "응, 한우라거나, 와규라거나, 이베리코 흑돼지라거나……."

    "……."

    뜨끔했다.

    미식은 현대가 훨씬 낫다는 이유로 벨라에게 온갖 식자재를 가지고 오게 했지.

    덕분에 엘린과 셀레네의 요리 솜씨가 한계를 뚫고 발전하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부산물을 얻어 오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지금도 도서관에 주인님이 살던 세계의 책들이 있어.

    헤르카가 재밌게 읽던데."

    이미 우리 생활에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군…….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벨라가 현대 문명에 관심이 많은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 욕심 때문에 이러는 거 아냐.

    아니, 내 욕심도 있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야?"

    "주인님. 잊은 거 아니지?

    나도 임신했다는 거."

    벨라가 원하는 걸 무조건 들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눈앞에 있는 여신을 최면으로 굴복시켰다고 한들

    내 아이를 뱄고 배가 불러오는 순간 2 대 1.

    나한테 승산이 없다.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굴복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임신 초기에는 티가 안 나지만, 적어도 15주가 흐른 지금

    벨라의 배에는 전에 없던 굴곡이 생겼다.

    아직은 임산부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변화였지만…….

    "주인님의 아기 임신하려고, 현신해서 질내사정 잔뜩 받았는데……."

    "알았어. 도입하자."

    벨라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주인님 꼼짝도 못 하네?

    자기 아이를 밴 여자는 함부로 못 하겠지?"

    "애 낳으면 보자."

    "또 주인님의 아기 임신할 건데? 웅? 그러면 어쩔 건데?"

    "……큭."

    이런…….

    내가 졌다.

    심심풀이는 성에 지내는 모든 임산부들에게 필요하다.

    실용적인 물건도 갖출 수 있겠지.

    "대신 규칙을 만들자.

    현대 문명의 물건은 시아의 세계에 반입하지 않기로.

    나는 시아가 만든 세계에 혼란이 생기길 바라지 않아."

    "그래?

    왕국이 떠들썩하던데. 그거 주인님 작품 아니었어?"

    "……."

    "한 귀족 아가씨의 젊은 신랑이 바람둥이에,

    빼어난 미남으로 유명해서 만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던데?"

    "그건 처음 들었어."

    왕국에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군.

    용사 파티의 일원이며 희대의 난봉꾼으로.

    "내가 우려하는 건 그런 혼란이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앞당기고 싶지 않아.

    기술의 발전까지 빨라지면 얼마나 참담하겠어?"

    "주인님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우아하고, 일 잘하는 보지 노예가 있잖아?"

    나는 벨라를 따라서 웃었다.

    "그렇지.

    좋아. 성주인 내가 허락한다. 팔색 조개 성의 기술 혁명을!"

    "와아!"

    그리하여.

    우리는 팔색 조개 성의 현대화에 착수했다.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검토하고 하나씩 들여오는 식이다.

    벨라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처럼

    현대의 물건을 신계에 가져와 쓸 수 있게 현지화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보급품으로 선택한 건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이걸 여기서 쓸 수 있어?"

    "주인님은 나만 믿어."

    이 스마트폰은 운영체제가 뭐냐?

    안드로이드? IOS?

    어느 쪽도 아닌 듯하다.

    바로 만져 보니,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었다.

    놀라운데?

    톡방에 벨라가 쓴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아한 여신님:보여요?]

    "잘 보여."

    "주인님도 톡으로 대답해야지!"

    "까다롭게 굴기는……."

    나는 바로 답장을 썼다.

    벨라는 깜짝 놀라서 날 바라보았다.

    "주인님. 벌써 다 쓴 거야?"

    "반평생 함께한 물건을 다루지 못할 리가 있겠어?"

    "……."

    우아한 여신님이 글자가 잘 안 보이는 노쇠한 사람처럼 스마트폰과 눈싸움을 하고 있다.

    글자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는 듯하다.

    "이걸 쓰려면 모두가 대리인 스킬에 있는 통역 기능이 필요하겠는데. 그렇지?"

    "……."

    "벨라?"

    "……잠깐만. 이거 다 쓰고."

    나는 벨라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벨라는 겨우 폰에서 관심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익숙해지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내가 모두한테 가르쳐줘야 하는데.

    서툴면 웃음거리잖아!"

    "장담해도 좋은데, 아무도 너보다 잘 알지는 못해."

    "……그래? 하긴.

    혼돈계 지식을 이 정도로 습득한 여신은 드물지.

    그 시아도 이게 벽돌이라고 생각할걸?"

    …….

    시아라면 왠지 금방 해낼 것 같은데.

    그때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현우 오빠."

    "아, 서연아. 들어와."

    서연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와, 벨라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벨라는 가벼운 눈짓으로 인사를 받는다.

    여신님 아니랄까 봐…….

    "주인님. 나는 나갈까?"

    "아니. 다 같이 얘기하려고 불렀어.

    서연아. 이거 한 번 써봐."

    나는 내가 쓰던 폰을 서연이에게 건넸다.

    "응? 어디서 구한 거야?"

    "벨라가 이제부터 성에 보급할 물건이야.

    문제 있는지 확인 좀 해줘."

    "음~."

    서연은 능숙하게 폰을 조작한다.

    벨라가 움찔했다.

    "좋다.

    어떻게 여기서 와이파이가 터지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의 힘으로 가능해졌어."

    서연은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진짠데?"

    서연이 귀엽게 웃는 걸 보니 정말 현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벨라는 왠지 서연 앞에서 작아진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박서연… 씨?"

    "네?"

    "나한테도 다루는 법을 알려줘요."

    "좋아요."

    좀 걱정했는데, 서연은 벨라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단정한 옷차림에 땋아 내린 검은 머리카락, 날 보며 항상 웃고 있는 눈.

    이렇게 보면 도저히 마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붙어있는 걸 흐뭇하게 보고 있으니,

    곧 내 톡방에 이모티콘들이 쏟아졌다.

    "……."

    나는 그걸 보며 한숨을 쉬었다.

    "돈 주고 사야 하는 이모티콘을 다 뚫어놨어?

    아무리 이 세계에서 쓸 물건이라지만……."

    "오빠. 망구리 군 새 시리즈도 나왔어."

    진짜네.

    오리너구리가 춤추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그쪽 세계에서 인기 있구나. 망구리.

    조금 그립다.

    갑자기, 잊었던 향수가 밀려오는 듯했다.

    아니…….

    지금은 참자.

    어차피 시간은 많다. 임신한 여자들을 두고 현대의 여자를 탐하느라, 예전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렘의 주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내 아이를 밴 여자─하렘 구성원 한정─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

    "어때?

    이 스마트폰을 성에 보급할까 하는데."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은 것 같아!

    여자들끼리 단톡방 만들고 싶어."

    "네가?"

    "응! 감시하기 편……."

    서연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을 멈추고 얼버무렸다.

    "다, 다 같이 친해지려고~"

    "……다 들켰다. 이 녀석아."

    나는 서연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아브브.

    지, 지켜줄 생각이었어. 지켜줄 생각…!

    오빠가 슬퍼하는 건 싫으니까."

    "그러면 좋아.

    박서연을 스마트폰 교육 담당으로 임명한다."

    "영광입니다!"

    벨라는 복잡한 표정이다.

    유능한 노예라는 포지션을 뺏기고 싶지 않았던 걸까.

    "모두 벨라 덕이야.

    내가 가지고 와봤자 고철밖에 안 되는 걸, 벨라가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맞아요. 정말 신기해요."

    "으흠…! 뭐, 주인님 전용 노예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지!

    교육 담당 정도는 양보해도 좋아."

    "사용법 가르치는 건 현대 사람에게 맡겨.

    오히려 벨라도 배워. 나보다 서연이가 더 잘 다루니까."

    "잘 다룹니다! 컴퓨터 게임도 좋아해요."

    컴퓨터…….

    그걸 가져올 수 있을까?

    먼 미래 얘기는 아닌 듯하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셋이 힘을 합쳐서

    팔색 조개 성의 인프라를 개선하자. 우린 이제 한 팀이야."

    "현우 오빠가 팀장님!?"

    "아니. 벨라가 팀장님이야."

    "나?"

    "벨라 없으면 시작도 할 수 없으니까.

    벨라가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아야지."

    서연이 알겠다는 듯 웃는다.

    "오빠.

    이상하게 리더 같은 거 부담스러워했었지."

    "그게 부담스럽지 않은 쪽이 이상한 거야……."

    서연은 벨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잘 부탁합니다. 팀장님!"

    "팀장. 잘 부탁해."

    "좋아! 오늘 준비한 거 다 가져올 테니까 기다려…!"

    벨라가 차원 마법을 사용해서 어딘가로 이동했다.

    나와 서연은 그걸 보며 같이 웃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서연을 안고 입맞춤했다.

    "오빠…."

    서연은 내 입술을 쪼아먹듯이 수줍게 입맞춤하면서, 예쁘게 웃었다.

    "지낼 만해?"

    "응!"

    스마트폰 보급 이후, 서연은 팔색 조개 성 최고의 인기인이 되었다.

    다들 모르는 게 있으면 서연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나도 조작법은 알려줄 수 있지만, 나는 일부러 서연을 찾아가라고 했다.

    서연이 모두와 친해질 수 있도록.

    하지만 스마트폰이 당장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킨 건 아니었다.

    이스티처럼 전혀 흥미를 갖지 않는 부류도 있었고, 개인마다 배우는 속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리엘은 아예 보자마자 스마트폰을 분해하려 들기도 했다.

    '미지의 물건이라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헤르카한테 폰을 줄 때는 절대 분해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참. 뭔데 그래?"

    헤르카는 보자마자 경악했다.

    "매, 매끈해…!

    어떻게 이런 마감을 했지?"

    "……."

    화면을 켜서 보여주자, 헤르카는 꺄아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데칼! 데칼! 이거 뭐야? 마법?

    마력 반응은 안 느껴지는데…!"

    "기계야."

    "기계?!"

    헤르카의 반응이 몹시 귀엽다.

    "실은 살아있어.

    헤르카가 키워줘야 해."

    "……먹이는 뭘로 주면 돼? 씨, 씻겨도 돼?"

    한참 놀려먹다가 진실을 알려주자, 헤르카는 귀가 빨개져서는 주먹으로 날 토닥토닥 두드렸다.

    "통신기기라고 빨리 말해야지. 바보! 데칼이랑 30분 동안 절교야!"

    30분 절교라니.

    헤르카치고는 꽤 길게 잡았네.

    어쨌거나, 다들 반응이 신선하다 보니 재밌었다.

    나는 빈번하게 벨라와 붙어 다니며 팔색 조개 성을 개조할 계획을 세웠다.

    그렇다고 진짜 건축재를 뜯어서 새로 지었다는 뜻이 아니고, 아이디어를 내는 건 나지만 실행하는 건 벨라였다.

    동선을 줄이기 위해 층마다 차원문을 만들고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휴식 공간은 파티 룸을 개조해서 널찍한 방에 소파를 두고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수영장도 만들까?"

    나는 욕심이 났다.

    "집중력이…… 떨어졌어……. 우윽…."

    "괜찮아?"

    벨라는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진 것 같았다.

    무리하게 했나?

    나는 벨라를 부축하고 내 방으로 이동했다.

    "별일 아냐. 조금 쉬면 나을 거야."

    "여신도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구나."

    나는 의자에 앉아서 그녀 곁을 지켰다.

    "나만 그렇겠어?

    곧 성에 몸을 가누기 힘든 임산부들이 늘어날 텐데."

    "기대되는데.

    한 번쯤 만삭 임산부와 해보고 싶었어."

    "……아하하!"

    벨라가 몸을 웅크리고 폭소했다.

    "왜 웃어?"

    "주인님은 변태 짓을 쉬는 날이 없구나."

    "요 며칠은 쉬었어.

    네 말처럼 임산부가 넘칠 테니까.

    성에 물자를 비축하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거든."

    "……."

    "오늘따라 멋있다고 생각했어?"

    "뭘 잘못 먹은 줄 알았지.

    주인님은 야한 걸 참을 사람이 아닌데."

    이 녀석이…….

    "그렇게 웃는 걸 보니 괜찮은가보다?"

    "좋아졌어.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야."

    나는 일어나려는 벨라를 저지했다.

    "주인님?"

    "오늘은 쉬어."

    "왜 그래. 진지하게……."

    "걱정돼서 그래."

    "아하하!"

    "자꾸 웃으면 뚱뚱한 몸으로 온다?"

    벨라는 화들짝 놀라며 자기 입을 틀어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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