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보스에게 패배하는 절망적인 내용
"됐어."
"좀 더 철저하게 하지 않아도 돼?"
헤르카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날 사랑해라! 같은."
흑역사를 떠올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최면을 걸겠냐!"
"제 기억으로는, 아저씨가 저한테……."
시아가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안 돼. 말하지 마!"
"뭔데? 뭔데? 여신님! 가르쳐주세요! 무슨 최면이었는데요?"
"비밀로 할래요."
창피해 죽겠다.
"뻔뻔한 주인님이 저렇게 당황하는 걸 보니 뭔가 있네.
주인님의 약점이야?"
벨라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제르미나는 이제 우리를 건드릴 수 없어.
너희가 없었다면 <제르미나 육변기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을 거야.
고마워."
"주인님은 순화해서 말하지 않으니까.
우리의 필사적인 싸움이 굉장히 추잡해진 느낌이야."
"그게 내 매력이지."
리사는 트랜스 상태에 빠져 있는 제르미나를 보고
상황이 해소되었다고 확신한 듯 성검을 집어넣었다.
"리사. 고생했어."
"너의 용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나의 용사'라.
"그거 듣기 좋은데."
가슴 크고 예쁜 용사가 날 따른다니, 좋은 일이다.
"긴박한 순간에 도와준 서연이도 고맙고."
"현우 오빠!"
서연이 웃으며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온다.
이렇게 귀여운 얼굴로 웃을 수 있으면서…….
"가끔 그렇게 스위치 들어가?"
"음……. 가끔?"
"사이좋게 지내라고는 안 하겠지만, 그래도 진작 도와줬으면 더 기뻤을걸."
서연이 내 상의를 꾹 잡고 보채는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오빠가 나한테 다른 여자들까지 아끼라고 하면, 정말 슬플 거야."
"……."
정말…….
얘는 어쩔 수 없네.
곧 죽어도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는 듯하다.
다른 여자들이 내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나는 그냥 서연의 손을 맞잡았다.
"다시 말할게. 고마워."
"응, 오빠!"
아리엘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질색했다.
"짐은 마왕이다.
일일이 고맙다는 말은 됐다. 이미 알고 있으니."
"마왕님. 쑥스러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약속은 미루어 두지. 어차피 이 여신 말고는 안중에 없을 테니."
잘 아네.
지금 내 최우선 타깃은 제르미나다.
일에는 순서가 있기 때문에 잠시 그대로 뒀을 뿐.
"모두 너를 위해 힘써서 싸우는 걸 보았다.
왕이 국민을 돌보듯이 너는 보배와 같은 여자들을 아끼고 사랑해 줄 책임이 있다. 알고 있
지?"
"흠. 아끼고 사랑해 달라는 말이야? 아리엘."
"그건 말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
"당연히 아끼고 사랑할 거야.
제르미나까지 포함해서."
제르미나에게는 끔찍한 일이겠지만.
아리엘은 제르미나를 쓱 보고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저것의 어디가 좋은 건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군.
예쁜 건 인정하는데 말하는 걸 들어 보면 정말로 기가 막혀. 수백 년 성에 틀어박혀 있었던
나도
저토록 속이 썩지는 않았다."
요컨대 '마음이 예쁘지 않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제르미나 성격이 괴팍한 건 잘 안다.
교활하기도 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지.
그러고는 여신의 긍지니, 뭐니……. 자길 아름답게 포장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잘 한다고 생
각한다.
하지만…….
"그래서 가지고 놀 구석이 많잖아?
시아처럼 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최면으로 건드리기 껄끄러워지지……."
"제르미나가 저보다 낫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아저씨?"
앗.
말하는 방식이 좀 안 좋았다.
너그러운 시아라도 제르미나와 비교하는 건 싫겠지.
"시아는 이미 좋아하니까.
그 모습을 굳이 바꿀 필요 없다는 뜻이야."
시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저씨도 참."
"……그만하고 돌아갈래."
이번에는 벨라의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
"그나저나, 여신들이 날 도와줬다는 건 진짜야?"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다.
"네.
아저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여신들이 많아요.
저는 그들과 연락하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데칼 커뮤니티에요."
"……."
그런 게 있었다니.
"막판에 제르미나가 무슨 짓을 할지 알았어?"
"아무리 금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해도.
첫 등장 때부터 마신들을 너무 화려하게 쓸어버렸어요. 그러면 싫어도 상급 마신 눈에 띌
수밖에 없거든요.
그때 제르미나가 보험을 들었다는 걸 알았어요."
여차하면 마신들에게 맡기고 도망칠 궁리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마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도망치면 자신이 타깃이 되어 쫓길 테니
우리한테 적절히 관심이 분산될 때까지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겠지.
지금 보니 다 계산된 행동이었다.
"서운하네. 얼굴 한 번 보러 오지 않고."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들이 나타나면 마신들도 기웃거릴 게 분명하고.
무엇보다 이 세계는, 제 허락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벨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는 천상의 법도를 어기고 들어온 거야.
잊은 건 아니지?"
"아."
그렇군.
마신들이 선을 넘었으니 여신들도 움직일 수 있게 된 셈인가.
조화계에 꼭 여신만 있는 건 아니지만, 데칼 커뮤니티는 최면 섹스에 당한 여신들 모임이나
다름없으니
여자들만 있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벨라 씨와 저는 할 일이 남았어요.
마신들을 몰아내야 해요.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괜찮겠어?
힘을 많이 썼는데."
"벨라 씨. 괜찮은가요?"
"우습게 보지 마. 상대가 제르미나라서 힘을 못 쓴 거지.
조무래기 마신들 정리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다른 마신은 제가 정리하고요.
어렵지 않을 거예요. 여신들이 이토록 단단하게 결속하는 건 여태껏 없었던 일이니까요.
마신들이 뭉치지 않는 이상 아무런 피해도 없을 거예요."
일리 있는 말이다.
다들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쳤지.
정확히는 최면 섹스에 푹 빠져버린 상태.
여신들이 나와 한번 섹스하고 싶어서 힘을 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지가 단단해진다.
모두 서운하지 않게 해줘야겠지?
싸움은 끝났지만,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러면 엄숙하게 선언하지.
내 하렘이 지금 여기서 완성되었다!"
"……."
리사가 짝짝 손뼉을 친다.
헤르카도 영문 모르고 따라서 쳤다.
아리엘과 벨라가 날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정말 품위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네."
"성을 제공해서 하렘 건설을 도와준 벨라에게는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할게."
"따지고 싶은 게 많은데.
뭐, 됐어.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진 거지."
벨라는 은근슬쩍 애정표현을 끼워 넣고는, 팔짱을 끼고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귀여운 녀석.
나는 대왕 팔색 조개를 꺼내서 새로 식구가 될 세 사람을 돌아봤다.
"이건 내 성으로 가는 입구야.
차원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없어도 오갈 수 있겠지만.
도착하면 메이드부터 찾아. 너희에게 설명해 줄 거야."
"알았다.
지금부터는 그대를 방해할 수 없지."
"나는 구경하고 싶은데…….
데칼이랑 제르미나가 절친 되는 거."
헤르카는 흥미진진한 것 같다.
"헤르카는 에페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돌아가도 된다고 설명 좀 해줘."
"왜 나한테 심부름 시키는데에!"
"그러면,
빛의 여신, 불의 여신, 용사, 마왕, 반마신을 두고 누구한테 심부름을 시킬까?"
"……부우."
헤르카는 삐져서 볼을 부풀리고 날아올랐다.
"아. 하늘이 개였어요."
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제르미나의 권능으로 평평하게 깎인 바위산이 아주 잘 보였다.
경치 좋네.
"시아."
"네?"
"오늘 있었던 일.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시아는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두 떠나고, 나는 제르미나와 단둘이 남았다.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바위산 위에서.
나는 제르미나한테 다가가면서 말했다.
"제르미나. 내 물음에 답해라."
"……그래."
"내가 아는 것 외에 다른 금제는?"
"없다."
"지금 기분이 어때?"
"……."
제르미나는 입을 다물었다.
트랜스 상태에서 말할 수 있는 기분이 아니겠지.
사람이 화가 났을 때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니까.
그녀는 지금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춰있을 뿐.
나에게 패배했다는 굴욕감으로 길길이 날뛰는 상태에서 고정돼 있다.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 있는 그녀의 시간을 돌려주면
바로 나를 저주하고, 침을 뱉겠지.
"가만히 있으면 예쁜데."
감히 아무도 만질 수 없었던.
북극여우 털 같은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을 살살 어루만진다.
뱀처럼 손을 놀려 볼을 만지며, 천천히 품평한다.
"……."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좋은 향기가 났다.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었는데도 전혀 빛바래지 않는 미모.
내 터치에 거부감을 드러낼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 서 있는 파괴의 여신.
오늘부터는 내 육변기다.
"제르미나. 「너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다.
해칠 수 없다.
새로운 노예의 몸에 인두를 지지고 발목에 사슬을 감는 것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잔혹한 속박을 건다.
모처럼 여기 남았는데…….
아까 하던 걸 마저 해볼까?
"「너는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승리…."
달콤한 말에 이끌린 듯 제르미나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겠지.
그녀가 지금 가장 바라고, 원하는 말…….
"너는 나에게 결정타를 넣어야 한다.
「나한테 가장 가혹한 일은 여신의 보지에 질싸하는 임신섹스다」"
"어째서냐?"
"음……."
뭐라고 할까.
어디, 만화책 같은 데서 주워들은 말이 있었는데.
복수 최면에 딱 맞는 그런 암시.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섹스하는 건 엄청난 굴욕이기 때문이야.
꼴사납게 싸버리면 더욱더 그렇지."
"……."
제르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는 모양새다.
사실 이 부분은 최면으로 하지 않았다.
고쳐 쓰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앞서 말한 부분만으로 충분하다.
제르미나는 굴욕과 패배감으로 맛이 가서 정상적인 판단이 안 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트랜스 상태일 때 속삭여준 말도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물론, 진정하면 그게 잘못됐다는 걸 깨닫겠지만.
짝.
나는 손뼉을 쳤다.
"후……!"
제르미나가 어느새 다가온 날 보고 놀란 듯 눈을 뜨더니,
갑자기 폭소했다.
"아하하!
승리를 확신하더니, 꼴 좋구나."
"……."
음. 어쩌지?
완전히 자기가 이겼다고 믿는 중인데.
좋아. 연기하자.
"크윽……. 제르미나…!"
나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주 유쾌하다.
보아하니…… 이제 널 대신해서 나설 사람도 없어 보이고."
제르미나가 날 쓰러뜨리고 내 위에 올라탔다.
"나한테 뭘 할 생각이야!"
혼신의 연기……!
제르미나는 잘난 듯 턱을 쳐들고 날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당연히 임신섹스지.
싫어하는 여자에게 질싸할 수밖에 없다니, 그게 네 놈한테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지?"
"하지 마…!"
"저항해도 소용없다.
꼼짝없이 여신 보지에 사정하게 해주마. 크큭……."
제르미나한테 강간당한다!
아주 온 동네에 떠들고 싶은 기분이다.
나는 저항하는 둥 마는 둥 엎치락뒤치락하며, 제르미나의 뜻대로 힘차게 발기한 자지를 꺼
냈다.
두꺼운 자지가 튀어 오르는 걸 본 제르미나는 멈칫했다.
"이렇게나… 큰 것인가?"
"으윽! 이대로 가면,
제르미나의 보지에 쌀 수밖에 없어…!"
"당연하지. 네놈이 임신섹스로 파멸하는 미래가 기대되는구나…!"
제르미나는 자지 보고 놀랐으면서 여유로운 척하며 허리를 든다.
이상하다고 눈치챌 법도 한데 흥분해서 전혀 모르는 눈치다.
제르미나는 내가 최면으로 착각하게 만든, <나한테 가혹한 일>을 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
을 뿐이었다.
나를 고문하는 것보다,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는 것보다 훨씬 와닿는 게 임신섹스라고 여기
는 중이다.
제르미나가 삽입을 준비하려고
가장 은밀한 다리 틈새에 내 자지를 유도한다.
제르미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처럼 하얀 옷감을 몸에 두르고 허리를 끈으로 감
아 놓은, 간단한 차림새였기 때문에
손으로 옷감을 끌어당겨서 허벅지를 드러냈을 때는 자지가 터지는 줄 알았다.
"복 받은 놈. 굴욕을 받아 죽을 때조차
내 속살을 보는 영광을 얻다니, 감사하게 생각해라."
"그런 건 필요 없어…!
섹스하고 싶지 않아. 질싸하고 싶지 않아…!"
제르미나는 내 배를 손으로 꾹 누르고 히죽거렸다.
"안 된다.
몇 번이고 말해주마. 너는 내 보지에 사정하게 되리라……. 두려우냐? 네게 찾아올 파멸
이…!"
"으아악."
나는 영혼 없는 비명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