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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337화 (337/414)

여신 공략!

아리엘과 리사는 각각 벨라가 어렵게 뚫어낸 제르미나의 의식세계로 침투했다.

우리 몸에도 외적이 침투하면 맞서 싸우는 백혈구가 존재하듯이,

제르미나의 세계에 강력한 가디언이 있으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아. 이쪽에서도 상황을 보고 싶은데."

"연결해 볼게요."

검게 칠해진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여기서 아리엘과 리사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팔색 진주로 훔쳐볼 때처럼 쾌적하지는 않다.

벽면이 굴곡진 거울로 된 방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의 모습과 현재 상황이 다양

한 구도로 비치고 있었다.

불편하기는 해도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기에는 딱 좋았다.

제르미나는 보기 좋게 빛의 권능으로 사로잡혀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다.

여기까지는 계획이 아주 잘 먹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신 공략의 열쇠는 리사와 아리엘이 쥐고 있다.

두 사람이 제르미나의 분체를 퇴거시키지 못하면 최면을 걸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조개 성으로 피신하는 수밖에 없다.

마왕과 용사는 사전에 어떤 적과 싸울지,

시간은 얼마나 주어지는지, 목표와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그런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한 채 죽음의 대지로 뛰어든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제르미나가 눈을 부릅뜨며 기대하는 게 뭔지는 뻔하다.

용사와 마왕의 허무한 죽음.

하지만 제르미나는 상상도 못 하겠지.

이 세계의 용사와 마왕은 엄청나게 강하고,

그것까지 포함해서 시아의 계획이었음을……!

리사는 모래 폭풍이 부는 땅 위에 떨어졌다.

빛이 서린 참격이 공간을 가르며 각양각색의 마물들을 두 동강 낸다.

"가이드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갑자기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다니……."

"리사! 괜찮아?"

리사는 전갈처럼 생긴 거대한 이계 마물들에 둘러싸였다.

"괜찮다.

3분 내로 정리하고 나가지."

한편 아리엘은 모든 게 불타고 있는 용암지대에 가 있었다.

온몸이 뜨겁게 타오르는 골렘과 산양의 뿔을 달고 있는 반인반마들이 아리엘 쪽으로 몰려

들었다.

"흠."

제르미나의 성격처럼 짓궂기 짝이 없다.

의식세계란 마음의 세계. 그곳이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든, 약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다.

그런데도 아리엘과 리사는 들어가자마자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수적 열세에 내몰렸다.

모든 게 불타고 있는 용암지대, 코앞에 뭐가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 모래 폭풍 속.

환경까지 정성 들여 최악으로 설정된 끔찍한 세계였다.

"말도 안 돼. 저놈들 하나하나 레벨이 1,800 이상이야. 영혼 하나만 가지고 올 수 있어도,

용 급 후보생 하나는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라고…! 그런 게, 십, 백, 천……."

헤르카는 손가락으로 의식세계에 있는 마물들을 세다가 입을 다물었다.

"구제할 수 없는 최악의 세계에나 나타나는 마물들이야."

벨라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틀림없이 웬만한 인간은 우습게 죽일 수 있는 괴물들이겠지.

하지만…….

"마신은 없잖아?"

아리엘과 리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마침내 전투가 시작됐을 때, 모두 전율할 광경이 펼쳐졌다.

"<육섬팔뢰>!!"

모래폭풍이 모든 걸 집어삼킨 세계에서 빛이 번뜩였다.

그건 무언가를 베는 게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참격에 지배되는 것처럼, 범위 안에 들어간 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종류의 공격이었다.

리사가 사용한 육섬팔뢰는 모래폭풍을 꺼트렸다.

주변에 포진해 있던 거대한 전갈들이 즉시 고깃덩이로 해체된다.

폭풍 대신에 피바람이 불었다.

그 현상은 이쪽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범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리사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40m~60m가량의 범위를 검으로 베어버렸다.

붉은 물보라가 지면에 가라앉기도 전에 리사는 이미 그곳을 벗어난 뒤였다.

3분.

리사는 주어진 시간 안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저게…… 뭐야…!"

헤르카는 경악했다.

나는 긴장하며 리사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리사가 달려서 지나간 곳에는 폭격이 따르는 것처럼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마물이 땅속에 숨어있건 하늘을 날고 있건 아무 상관 없었다.

천지를 흔드는 폭발이 모든 걸 집어삼킨다.

리사가 평소에 잘 보여주지 않는 빛 마법이었다.

그것도 헤르카를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의.

하늘을 열고 떨어진 빛의 창이 폭발하면서 깊이 팬 구덩이를 만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리사가 괴물 떼를 절반 이상 도륙했는데 1분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제르미나의 얼굴을 돌아봤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이 헤르카와 똑같은 말을 하는 듯했다.

'저게 뭐야'라고.

리사는 성검을 들고 육섬팔뢰를 뿌리며 뛰어간다.

그 강하다는 마물들은 눈만 마주쳤다 하면 그냥 죽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자신의 소질과 노력으로 닦아낸 기술이, 권능으로 무장한 신들이나 가능할 것 같은 전투를

보여주고 있다.

"하아앗!"

리사는 분체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여신의 분체는 둘.

두 분체를 제한된 시간에 철거해서 강림시키지 않으면, 제르미나에게 최면을 걸 수 없어…!

나는 아리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리엘은 여유롭게 용암지대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구도가 바뀌면서 놀라운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개 소대 규모 정도의 허수아비 검사들이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가며 마물들을 학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엘은 마치 자기가 지배한 땅에 발을 디디는 여군주처럼

급하게 서둘러야 하는 일은 아랫것에 맡겨 놓은 듯한 태도였다.

허수아비는 다리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공격적이었다.

볏짚 더미로 묶은 몸통, 그냥 툭 부러질 것 같은 얇은 팔다리. 막대기 같은 조잡한 검.

보잘것없이 생겼지만, 저들은 틀림없이 <허수아비 마왕>의 최고 역작들이다.

"저런 건 처음 봐요."

시아가 감탄한 듯 말했다.

시아도 마왕이 전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본 적 없었겠지.

쉽게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허수아비들이 용암 위를 뛰어다니며 자기보다 덩치가 다섯 배, 여섯 배는 큰 괴물을 농락하

고 있다.

리사와 아리엘은 거의 동시에 제르미나의 분체를 포착했다.

"데칼! 제르미나의 분신을 발견했다."

"인간. 들리나?

제르미나의 분체를 찾아냈다. 여신을 강림시켜도 상관없나?"

벨라가 팔을 파들파들 떨면서 외쳤다.

"그 안에서 한가롭게 말하지 말고.

빨리 할 일 하고 거기서 나와! 내 간섭이 끝나면 너희들 갇혀서 죽어버린다고!"

아리엘과 리사는 분체를 공격해서 강제로 퇴거시켰다.

식은땀을 흘리며 버티던 벨라는 바로 차원 마법을 사용해서 아리엘과 리사를 이쪽 세계로

돌려놓았다.

"잘했어!"

아리엘은 팔짱을 끼고 잘난 듯 서 있었고,

리사는 심호흡하며 성검을 내렸다.

"아저씨…!

제르미나가 돌아오려고 해요!"

내 차례다.

제르미나의 신격이 돌아오고 있다.

지금까지 느꼈던 신격조차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니, 정말 대단한 여신이다.

"안 돼……!!"

제르미나는 완전한 파괴의 여신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제르미나."

나는 손을 들어 제르미나에게 향했다.

"이제 대답해줄 때가 온 것 같군."

제르미나를 가둔 감옥이 터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바로 검지와 중지를 맞대고 튕겼다.

딱…!

"……."

이제 막 속박에서 풀려난 제르미나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파괴의 여신이 최면에 걸렸다.

우리의 승리였다.

흥분해서 호흡이 빨라지는 걸 억누르기가 어렵다.

그 정도로 짜릿한 성취감이 내 뇌를 불태우고 있었다.

어떤 여신이 최면을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게 이런 감동과 희열을 줄 수 있단 말인

가?

단언컨대 제르미나 뿐이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내가 복수를 이유로 최면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여신이다.

나는 제르미나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금색 사슬이 나타나 제르미나의 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아저씨!"

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직후, 벼락이 친 것처럼 번쩍하고 모든 게 새하얗게 변했다.

시아가 내 품에 있는 걸 보고 보호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시아의 보호 마법으로 살아남은 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날아간 뒤였다.

산이 소멸했다.

제르미나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폭발이 일어나서…….

호수까지 모두 증발해버린 모습이었다.

"설마……."

설마 자폭한 건가?

<금제>를 이용해서?

자존심 강한 제르미나라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굴욕을 받을 바에야 자결하겠다는 선택을 하지는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왜냐면 제르미나는 그런 선택을 강요받아서 죽는 것조차 굴욕으로 생각할 여자니까.

그러나 폭발하고 남은 흔적이 말하고 있다.

제르미나 역시 필사적이라는 것을.

"시아. 괜찮아?"

나는 시아를 부축했다.

지금은 모두의 상태를 살피는 게 우선이다.

다들 예상치 못한 폭발에 휘말린 여파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네. 상처는 제가 치유할 수 있어요.

그보다, 제르미나는……!"

"유감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저도…… 제르미나가 자해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왜 그랬을까?

다른 목적이 있었을지도 몰라.

단순히 최면 상태에서 깨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시아님!"

흙먼지 속에서 붉은 극광이 번뜩였다.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리사가 시아의 몸을 지켜냈다.

"베, 벨리사. 고마워요."

"감사 인사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성검은 여신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있으니까요."

괜찮은 척하지만 리사의 어깨가 떨리고 있다.

파괴의 권능을 받아낸 여파로 큰 타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리사, 괜찮아?!"

"괜찮다. 앞으로 두 번 정도는……."

"미련한 것. 괜찮을 리가 있나.

저건 권능에 의한 공격.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뒤로 물러나라. 용사."

"아리엘…."

아리엘은 허수아비 검사를 앞에 세워 우리를 지키도록 했다.

폭발로 인해 구름처럼 일어났던 흙먼지가 바람에 걷히고 제르미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제르미나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보아라. 아무래도 최면을 푸는 대가를 크게 지불한 듯싶군."

아리엘이 말했다.

제르미나는 상처가 아픈 듯 한쪽 눈만 뜬 채로 움찔하며 힘겹게 입을 뗐다.

"인정하지.

나를 이렇게 몰아세운 건 네가 처음이다.

이 금제가 발동하게 될 줄 몰랐으니까."

"<금제>?"

아리엘이 반응했다.

"제르미나는 파괴의 권능으로 금제를 걸 수 있어.

남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금지된 일을 하려고 하면 큰 타격을 받게 되는 힘이야."

"그렇다면, 저 여신은

인간과 자신의 거리가 좁혀지면 스스로 치명상을 입을 준비가 돼 있었다는 뜻인가."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자해한 건 최면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라지만,

제르미나에게는 금제가 하나 더 있었다.

나와 시아에게 간섭할 경우 대가를 치르는 금제.

지금은 금제가 발동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뭐지?

"상황이 좋지 않아요.

모두 힘을 썼기 때문에……."

시아가 말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저와 아리엘이 힘을 합친다면 당해낼 수 있습니다."

"……글쎄."

당찬 리사와는 반대로, 마왕은 의미심장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날 당해낼 수 있다고?"

제르미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극광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아리엘은 허수아비 검사들이 대신 맞게 해서 극광을 전부 막아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강인한 허수아비들이 한 번에 쓰러져 사라지는 걸 보고 리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저 권능에…… 저 정도의 힘이 담겨있는 건가."

"내 허수아비를 일회용으로 만들 정도다.

그걸 막아낸 네가 이상한 거지."

"……."

시아도 지금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시아. 눈치챘어?"

"네.

제르미나는 금제가 하나 더 있었을 텐데.

우리를 자유롭게 공격하고 있어요."

"신격이 떨어진 거야."

상황을 지켜보던 벨라가 끼어들었다.

"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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