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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333화 (333/414)
  • 여신 공략!

    틈새에서 나온 건 내 몸뚱아리만 한 검은 공이었다.

    적진에 던져 넣을 도구라고 하면 하나밖에 없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조심해!"

    검은 공이 일직선으로 검은빛을 뿜었다.

    그 빛은 거대한 검이 휘둘러지는 것과 같이 우리 모두를 휩쓸었고,

    내 몸을 지키는 대응은 늦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괜찮아요."

    시아가 한마디 읊조렸다.

    모든 이가 싸움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정체불명의 이계 병기가 뿜어낸 빛은 시아의 보호 마법에 가로막혔다.

    <빛의 권능>은 마치 상대의 공격을 가로막는 게 아니라 함께 융화되는 것처럼 얽히며 사그

    라들었다.

    빛의 여신이 모두를 지켜내고 있다.

    "지금 그건?!"

    스티아가 이계 짐승을 떨쳐내며 소리친다.

    스티아는 등으로 공격을 맞았지만, 보호 마법 덕분에 피격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카렌은 달라붙는 짐승을 어깨로 밀쳐내면서 소리쳤다.

    "스티아! 집중해.

    아직 끝나지 않았어!"

    화르륵, 하고 전장에 불꽃과 벼락의 폭풍이 쏟아진다.

    디아나와 틸리아가 첫 번째 균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계 짐승을 막기 위해 화력을 집중하

    고 있다.

    노아는 바로 이계 병기를 향해 뛰었다.

    "이스티. 엄호를!"

    "알았어."

    이스티의 견제 사격이 빗발친다.

    검은 공은 다리를 뻗어 거미처럼 미끄러지며 노아의 공격을 피했다.

    대단한데? 자율 병기인가?

    나는 수류탄 같은 걸 연상했는데 그보다는 훨씬 더 나은 기계였다.

    동작도 심리도 파악할 수 없어서 노아와 이스티가 애먹는 듯했다.

    나는 바로 <해를 가리는 자>를 발동했다.

    "불의 종언."

    이계 병기를 손으로 겨냥한다.

    불의 종언은 허공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며 단숨에 이계 병기의 몸통에 적중했다.

    효과가 좀 있었나?

    생물이 아니라 그런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으면서 잘 버틴다.

    [불의 여신의 가호가 강화됩니다]

    그때였다.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벨라와 눈이 마주친다.

    나에게 또 다른 축복이 내려진 듯했다.

    "노아. 물러서!"

    열기에 노출될까 봐, 다급히 경고하고 마력을 집중했다.

    노아는 팔로 얼굴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다.

    이계 병기는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동체에 큰 구멍을 뚫리니 움직이지 못하게 된 듯했다.

    기계로 된 마신……? 아닌데.

    혼자 생물조차 아니다.

    정말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세 번째 균열에서 갑주를 입은 검사가 나타났다.

    어깨에 늑대의 유령을 반신처럼 짊어지고 있는 자였다.

    양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큰 검을 각각 한 손에 쥐고 나타났다.

    이 신격…….

    리사가 상대했던 마신 정도는 된다.

    그러니 노아와 이스티에게는 몹시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둘은 해볼 생각으로 보였다.

    "달링. 맡겨 줘."

    "하겠습니다. 데칼 님!"

    "무리하면 안 돼!"

    "음."

    유령 검사의 입에서 하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는 꽤 눈이 즐거운 미인들이 많군."

    "말도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 나는 이름 없는 침략자.

    마신은 죽인 수급으로, 세상의 혼란을 먹고 보다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지.

    원한은 없으나 베겠다. 나를 증오해도 좋다."

    유령 검사는 시원스럽게 말하고 긴 쌍검을 바로 쥐었다.

    마치 주인과 호응하듯이 늑대 유령이 크르르하고 울부짖었다.

    니뮤엘의 여신들이 세상을 구제하고 급을 올린다면, 마신은 반대인가?

    대놓고 혼란을 조장한다.

    프레미아는 생각보다 정신 나간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별개로 이유는 알기 쉬워서 좋다.

    원한은 없지만 침략한다. 그것이 마신의 동기.

    "이쪽도 이름은 대지 않겠습니다."

    "근접전이 특기인 수녀라.

    재미있군."

    "글쎄요. 싸우기 전에 단정 짓는 버릇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쪽의 수단은 뻔히 알 수 있군요."

    "어디 들어볼까?"

    "검투를 벌여서 상대를 쓰러뜨리고 피를 취한다. 틀립니까?"

    "……후후후. 하하하! 그래. 맞다.

    어떻게 알았지. 신기하군."

    유령 검사는 보란 듯이 쌍검을 쥐고 큭큭 웃었다.

    "뻔한 것을.

    지독한 피 냄새가 났습니다."

    "좋다. 네 수급을 먼저 취하고 여신을 죽이도록 하겠다."

    노아는 통파를 연결하더니 라이플처럼 들고 마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깜짝 놀랐다.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스티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보고 있었다.

    "노아, 그거 뭐야.

    원거리 공격은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사정이 변했어요. 이스티.

    괴물 잡을 땐 이게 최고입니다."

    유령 검사는 재빠르게 움직이며 노아의 사격을 피하려 들었지만, 아무리 빨리 뛰어도 총보

    다 빠를 순 없었다.

    설마 여기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불공평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노아는 가차 없이 마력을 쏟아부으며 유령 검사를 몰아세웠다.

    이스티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검사를 조준한다.

    유령 검사의 갑주는 지금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노아의 마탄 연사를 맞고 덜그럭덜그럭 흔

    들리며 파편을 흩뿌렸다.

    하지만 검사는 침착하게 파고들 틈을 엿보는 중이었다.

    노아는 초조해하지 않고 마력을 탄 삼아 상대가 접근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그러나.

    "적응했다."

    유령 검사는 마탄을 쌍검으로 쳐내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노아는 바로 라이플을 분리해서 통파로 바꾸고 유령 검사와 근접전으로 들어섰다.

    통파가 만드는 검은 궤적과 하얀 궤적이 흑백으로 뒤얽히며 지면이 떨리도록 부딪치며 깨

    져나갔다.

    "일류끼리의 싸움에는 상대에게 시간을 줄수록 불리해지지.

    그것이 똑같은 방식의 공격이라면 더욱더!"

    "흐읍…!"

    노아가 밀리고 있다.

    검사의 맹공격을 막아내기 바쁜 상황이었다.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아서 돕지 않는 게 아니다.

    검사의 움직임이 너무 현란해서 원거리 공격을 맞히기가 어렵다.

    이스티나 내 공격은 총이 아니다.

    <불의 종언>은 유도 효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맞기는 맞더라도 놈을 관통해서 노아까지 지져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파이어 애로우!"

    내가 고른 마법은,

    이 세계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배웠고 숙련한 신뢰도 있는 마법.

    <파이어 애로우>

    마법 응축으로 오버 차징해서 위력이 몇 배나 뛰어오른 파이어 애로우였다.

    즉시 시전으로 파이어 애로우를 두 자릿수까지 뽑아내고 유령 검사에게 날린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쉽게 먹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상대로 유령 검사의 등은 늑대가 지켜냈다.

    유령 늑대가 울부짖으며 파이어 애로우를 집어삼키거나 발로 쳐낸다.

    씬 울프 정도는 우스워질 정도로 재빠른 동작이었다.

    "좋아. 다 덤벼도 좋다. 내가 침략하겠다. 한 여자도 빠짐없이 목을 베어 주마!"

    유령 검사의 쌍검이 매섭게 울었다.

    기세가 엄청나다.

    노아는 요령껏 위력을 흘려내고 있었지만 검은 통파에 불씨가 튀어 오르는 게 보일 정도였

    다.

    다 죽이지 못한 위력은 지면이나 허공에 흩뿌려지며 충격을 일으켰다.

    강한 상대다.

    아무리 노아라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바로 리사에게 쓰러뜨려 달라고 조를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기다리자.

    리사는 상황을 보고 있다.

    그 말은, 리사의 눈에 보기에는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뜻이다.

    균열에서 다시 그 이계 병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유령 검사와 노아의 싸움에서 눈을 떼고 이계 병기를 도맡았다.

    "불의 종언!"

    하나씩 녹여 없애면서 전황을 지켜본다.

    이계 짐승들은 아직도 이 산을 뒤덮을 것처럼 쏟아지고 있다.

    용사 후보생 파티는 눈을 뗄 시간도 없이 땀에 흠뻑 젖도록 맞서 싸우고 있었다.

    노아와 유령 검사의 숨 막히는 격전은 벌써 영원토록 계속되고 있는 것만 같다.

    실질적으로 삼 분 정도 흘렀다는 걸 알았을 때는 경악했다.

    혼신의 힘을 다 한 싸움이라면 그 정도만으로도 기진맥진해질 수 있다.

    둘의 싸움이 그러했다.

    하지만 마신은 지치지 않았고 노아는 점점 지치는 기색이 보였다.

    쌍검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노아의 통파를 두드린다.

    저걸 상처 없이 버텨내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철벽의 집행관이다. 감탄하게 되는 구석이 있

    었다.

    긴장되는 한편으로는 노아를 믿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스티도.

    "……."

    이스티는 모든 걸 내려놓고 오직 조준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도 처음 유령 검사가 나타났을 때부터 계속.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은 건 노아가 갑자기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이스티의 시위에서 폭발하듯 쏘아진 화살이 유령 검사의 가슴을 뚫었다.

    완벽하게 허를 찌르는 일격이었다.

    "적응했어. 당신의 움직임."

    "……이, 솜씨. 엘프인가!"

    "<일류끼리의 싸움에는 상대에게 시간을 줄수록 불리해진다>

    그 말대로야."

    이스티는 자신에게 시간을 준 게 실수였다는 듯이.

    가슴을 꿰뚫린 상대에게 조용히 말했다.

    진짜로 잡아냈어……!

    "이스티! 잘했어!"

    나는 신나는 마음에 소리쳤다가 움찔했다.

    이스티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절대 빗맞지 않는 치명적인 일격을 위해, 얼마나 심력을 쏟았는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흠잡을 데 없는 사격이었을 터. 본래였다면."

    뭐지?

    유령 검사가 가슴을 꿰뚫린 채로 쓰러지지 않는다.

    늑대 유령이 몸에 깃들더니 쌍검이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화살로.

    날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나…!"

    "읏…."

    뭐……?

    이스티가 집중하지 못했다고?

    설마 몸 상태가…….

    유령 검사가 움직인다.

    좀 전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위압감이 대단했다.

    신격이 몇 배나 부풀어 올랐다.

    이게 본래 모습……. 그러니까… 설마, 늑대 유령이 놈의 분체였단 말인가?

    즉, 이것이 유령 검사가 강림한 모습…!

    노아가 유령 검사를 가로막았지만,

    놈은 대수롭지 않게 검을 휘둘러 노아를 쓰러뜨렸다.

    "윽……!!"

    노아는 근접전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곧장 무기를 교체해서 사격했지만,

    유령 검사는 맞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모조리 맞으며 우직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스티는 화살을 연발하며 마신의 몸체를 노렸지만, 놈은 현세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처

    럼 끄떡없었다.

    "죽어라."

    그 한마디 후.

    유령 검사는 갑자기 이스티의 앞에 나타났다.

    리사가 끼어든 건 바로 그때였다.

    "……!?"

    유령 검사는 투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순간 완전히 당황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안 보였다.

    리사가 움직이는 게.

    리사는 허리춤에서 칼도 뽑지 않고 칼자루만으로 유령 검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너무 설치는군."

    "뭣이…?"

    "노아 선배님, 이스티 씨.

    제가 맡겠습니다. 여러분은 물러나 계세요."

    "내가 심장을 정확히 노렸다면……!"

    노아는 이스티를 안고 뒤로 물러났다.

    "이스티. 무리하면 안 됩니다."

    "……."

    이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둘이 대치하게 된 벨리사와 유령 검사.

    강림한 마신은 벨리사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리사는 그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마치 관심 없는 일인 것처럼 차원 관문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시아 님.

    이 자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요.

    이 세계를 지키는 여신으로서, 허락하겠습니다."

    유령 검사가 검을 내려찍는다.

    하지만 리사는 칼도 뽑지 않고 칼자루로 툭 툭 건드리며 막아냈다.

    놈은 정신적으로 위기에 몰린 듯했다.

    "인간 여자가 이런 검술을? 어떻게?"

    "그대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만.

    가슴이 뚫려도 죽지 않는 괴물이 되면 보이는 것이 있던가?"

    "크아아!"

    리사는 검을 휘둘렀다.

    나중에 검집에 칼을 넣는 것만 보였을 뿐이지만,

    유령 검사의 목이 날아갔다.

    리사는 쓰러진 마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정말로 아리엘과 싸웠다면 누가 이겼을까.

    리사를 최근 가장 가까이에서 본 나니까 알 수 있었다.

    리사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나 파고들 틈이 전혀 없어 보였다.

    "시아 님. 이제 슬슬……."

    "네."

    리사의 말을 듣고 보니 균열에서 쏟아지는 마물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거의 처리한 건가?

    고작 삼십 분만에?

    카렌과 스티아는 몸을 숙이고 헐떡이는 중이었다.

    "한심하네!

    고작 이 정도 싸웠다고 체력이 떨어져?"

    "그러는 디아나도 마력 떨어졌으면서."

    카렌이 중얼거린다.

    "나, 나는 아직 괜찮거든. 언니도 나도 완전히 멀쩡해!"

    디아나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명확해 보였다.

    멀쩡한 건 네리스 뿐.

    틸리아는 자기 몸은 문제없었지만, 불꽃을 너무 많이 써서 정령핵이 지친 게 보였다.

    "이제 용사 후보생들은 이탈해 주세요."

    시아가 말했다.

    카렌과 스티아가 이쪽을 돌아본다.

    "저희는 아직……."

    의욕 있게 일어서려는 스티아를, 카렌이 붙잡았다.

    "스티아. 돌아가자."

    "……그래."

    이 이상은 만용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스티아와 카렌이 물러났다.

    근데 디아나와 틸리아는 왜 버티고 서 있냐.

    시아는 <용사 후보생들>이라고 했는데. 분명?

    "야! 너희. 안 오고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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