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최면물-332화 (332/414)
  • 여신 공략!

    "아저씨는 후방 지원해 주세요.

    마신과 마물은 끝없이 몰려오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제르미나의 제압.

    그러므로 결정적인 순간에 아저씨의 최면이 있어야만 해요."

    "그렇겠지.

    잘 기억 안 나는데, 다시 설명해 줄래?"

    "네.

    여신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서는, 흩어진 분체를 하나로 모아야 해요.

    그전에는 최면을 걸어도 통하지 않고, 제르미나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분체를 지키려고

    할 거예요. 하지만……."

    시아의 눈빛은 확신으로 차 있었다.

    시아라면 믿을 수 있다.

    제르미나를 엿먹일 기가 막힌 방법이 있다고.

    "저와 헤르카가 제르미나를 묶을 거예요.

    벨라가 제르미나의 분체가 꼭꼭 숨어 있는 의식 세계를 열고.

    그 안에는 우리측 최강의 카드가 들어가야 해요."

    "분체는 둘이지. 우리의 카드도 마침 둘이고."

    "네. 우리한테는 마왕과 용사가 있어요."

    "그 둘은 이걸 알아?"

    "설명해 두었어요.

    이제 곧 도착할 거예요."

    이제 곧 도착한다.

    시아의 말을 끝으로, 호수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리사는 자기가 나타날 때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딱 맞춰서 산에 올라왔다.

    "데칼!"

    애용하던 갑옷과 투구를 껴입은 벨리사는 이쪽으로 말머리를 틀어 내 앞으로 왔다.

    산을 오르는 말이라니, 대단한데.

    "시아 님도 계셨군요.

    벨리사 크라멜, 지금 도착했습니다."

    리사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무릎부터 꿇었다.

    "벨리사. 편하게 해요.

    우리 모두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거니까."

    "알겠습니다."

    모두 리사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리사를 처음 보는 사람만 있지는 않다.

    오히려 면식이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도 벨리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어당기는 존재였다.

    용사니까.

    영웅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리사. 얼굴 보여 줘."

    "알았다."

    리사는 투구를 벗어 보라색 머리카락을 풀어헤쳤다.

    여자들이 감탄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나조차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리사 뿐만이 아니다.

    내 앞에 가장 눈에 띄게 서 있는,

    백금발의 엘프와 흑발 녹안의 여신까지 장소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모두 데칼이 모은 사람인가?

    후보생들도 눈에 띄는데."

    "모두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

    마음대로 정해서 미안해."

    "괜찮다. 내게 맡겨라.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

    대단한 자신감이다.

    한 번 마왕을 잡는다는 목표를 잃고,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녀가 이토록 원기 왕성한 이유가

    뭘까.

    "우리 대원들도 기꺼이 손을 빌려주기로 했다.

    내가 앞서 도착하긴 했지만, 곧 올 거야."

    "용사 파티? 환영이지."

    나는 리사와 가벼운 포옹을 나누고 떨어졌다.

    용사님에게 달라붙어서 빨아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참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데칼.

    아리엘은 먼저 간 것 같았는데. 안 왔나?"

    "어? 안 왔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뒤늦게 두리번거렸다.

    구석에 틀어박혀서 호수를 내다보고 있는 수상한 그림자가 보였다.

    "내가 가볼게."

    귀찮은 게 딱 질색인 우리 마왕님을 여기로 부를 순 없지.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을 테니까.

    나는 그냥 직접 아리엘에게 다가갔다.

    "아리엘."

    "……."

    아리엘은 로브에 달린 후드를 걷고 부스스한 잿빛 머리를 드러냈다.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눈이다.

    "잠 안 잤어……?"

    "……햇살이 너무 눈부시다.

    얼마만의 산책인지 모르겠군."

    "밖에 나와서 광합성도 좀 하고 그래."

    "귀찮아.

    그보다 데칼. 불알에 정액 찼지."

    "……."

    엄청나게 직설적이라서 놀랐다.

    "찼느냐. 안 찼느냐.

    진한 정액이 찼으리라 생각하는데. 이실직고해라."

    "엄청나게 쌓여 있지."

    "그건 안 될 일이다."

    "모두 끝나면 쥐어짜게 해줄게."

    아리엘은 처음으로 공간의 틈새를 노려봤다.

    "상황은 대충 전해 들었다."

    "대충……."

    그래도 되는 거야?

    "네가 나라면 여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 같아?"

    "시아를 너무 미워하지는 마."

    "미워하지 않는다. 그저 꺼릴 뿐."

    아리엘은 다시 호수를 내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할 일은 한다.

    인간. 네가 사적 제재를 가하려는 여신의 의식 세계를 열도록.

    나와 벨리사가 단숨에 정리하겠다."

    리사와 같은 느낌이다.

    표현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은 자신이 넘친다는 점에서 완전히 같았다.

    "모두에게 소개하지 않아도 괜찮아?"

    "소개? 그런 건 관심 없다.

    남들에게 두려움과 원한을 사는 이름을 밝혀 보아야 의미는 없겠지."

    "용사 파티에는 적절한 설명을 해야겠지만,

    우리 식구들은 다들 든든하게 생각할 거야. 오늘은 아군이잖아?"

    "……속 편하군.

    나는 지금 몹시 불편하다. 네 정액을 짜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어."

    그렇게는 안 보이지만, 꽤 참고 있는 것 같다.

    "알았어.

    끝나면 아리엘을 위해 자지 대줄게. 그러면 됐지?"

    "좋아. 거래 성립이다.

    네가 어떤 존재의 권태를 깨웠는지 알려줄 좋은 기회야."

    아리엘이 싸울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위의 마력이 무섭게 팽창하고 있다.

    나는 그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마력은 이미 신급이다.

    신성만 없을 뿐이지 아리엘의 기운은 시아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여기에 혼자 있을 거야?"

    "그래."

    이 위치는…….

    용의 호수와 가장 가깝다.

    시아가 편제한 인원들을 보면 아무도 이 정도로 균열에 접근하게 허락하지는 않았다.

    아리엘은 철저하게 혼자서 할 생각이다.

    마왕님에게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멋없는 짓이지.

    나는 등을 돌리고 모두가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데칼!"

    헤르카가 검까를 타고 공중을 가로지르며 다가와, 내 앞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있지. 들어 봐봐!

    내가 여신님이랑 뭘 했는지 알아? 빛의 마법이 촤악! 내 마법 수준도 파앙!

    최강의 천재 소녀 데뷔야!"

    "진정하고 말해 봐."

    헤르카는 흥분해서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앙증맞아서 그런지 귀엽다.

    "오늘 여기에 작동 준비한 모든 빛의 마법은,

    여신님의 도움을 받아서 몇 단계나 수준이 올라간 상태야.

    거룡이 나타나도 단숨에 묶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이번에 묶어야 하는 건 신이지."

    "할 수 있어. 시아 님께 들었거든. 데칼은 모르지? 모르지?"

    "뭘?"

    시아랑 무슨 얘기를 나눴길래 이렇게 신났냐.

    "빛은 만물에 생명을 주는 힘.

    그 어떤 신도 빛의 권능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해.

    거슬러서 묶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묶이도록 하는 거지. 나는 지금까지 빛의 마법을 오해하고

    있었어."

    "…음."

    시아가 제천의 마신을 잡아 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게…….

    거슬러서 묶는 게 아니었단 말이지?

    아주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헤르카는 신이 나서 막 떠들었지만, 빛의 마법에 흥미가 없어서 한쪽 귀로 들어와서 다른쪽

    으로 전부 빠져나갔다.

    ……시아도 이렇게 될 걸 알고 말 안 한 게 아닐까?

    "끝!

    그러니 문제없다는 말씀!"

    "잘 들었어. 헤르카.

    역시 천재 소녀야."

    나는 적당히 맞장구치며 손뼉을 쳤다.

    "데칼은 이런 친구를 둬서 정말 다행인 줄 알아."

    헤르카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헤르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두를 돌아봤다.

    내가 말해야 하는 건가?

    "얼른 끝내고 엘린과 셀레네가 차려준 밥 먹자."

    "아저씨. 균열을 자극할게요."

    "바로 총공격?"

    "상황을 봐서요.

    제르미나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탐색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좋아."

    "저는 아저씨와 떨어져 있을게요.

    적의 목표를 하나로 좁혀줄 수는 없으니까…."

    시아가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안다.

    모두가 빛의 여신이라고 우러러보지만, 시아가 피나는 노력으로 시골 소녀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모르는 것도 있고 실수도 하고, 날 위해 세상을 설계한다는 무모한 짓도 했다.

    그래서 나는 시아를 좋아한다.

    내 시종, 내 여신.

    나는 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란 듯 시아는 눈을 크게 뜨고 날 올려다봤다.

    "같이 있자."

    "……네."

    잡담은 필요 없다.

    우리는 함께 있기로 했다.

    시아의 곁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서연이는 어딨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늘을 봤다.

    보인다.

    나한테 사랑받는 여자들 사이에 섞일 생각은 없다는 듯이.

    우리 마신님께서는 하늘 높이 올라가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벨라는 살짝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가자."

    시아가 눈을 감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빛의 창이 검은 균열에 꽂혔다.

    마치 균열은 생물처럼 몸부림치며 귀에 거슬리는 비명을 내질렀다.

    해가 떠오르는 중인데 다시 밤이 오는 것처럼 먹구름이 온다.

    "옵니다!"

    네리스의 경고를 신호탄으로, 이계 생물체들이 균열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심해 생물처럼 온몸이 문드러지고 눌린 네발짐승의 모습이었다.

    입이 허리에 달리지를 않나 생겨먹은 것도 제멋대로인데, 골격에 맞게 개처럼 움직이는 것

    도 아니고 벌레처럼 바닥을 잽싸게 기어왔다.

    "하하하!"

    틸리아가 도신에 불꽃을 휘감고 망설임 없이 뛰쳐나갔다.

    "아크 플레어!"

    디아나가 벼락을 떨어뜨려 틸리아 주변에 달라붙는 짐승들을 일격에 초토화했다.

    틸리아는 불꽃을 흩뿌리며 이계 짐승들을 시원스럽게 베어 넘긴다.

    뱅가드 자매의 벼락과 불은 매섭지만 조화로웠다. 두 사람은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예술

    같은 연계로 첫 시작을 끊었다.

    나는 문득 리사를 돌아봤다.

    "……."

    리사는 검을 뺄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듯이.

    그것은 오만함이 아니다.

    필요할 때가 되면 힘을 폭발시킬 수 있는 집중력. 그게 용사가 가진 강함 중 하나였다.

    "파이어 애로우!"

    나도 디아나와 마찬가지로 마법을 시전해서 틸리아를 도왔다.

    그러나 한 번 억누른 줄 알았던 이계 짐승들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틸리아는 훌륭하게 맞서 싸우고 있지만, 혼자서 막을 수 있는 수에는 한계가 있다.

    물 밀듯 몰려오는 검은 탁류가 새어 나온다.

    마법으로 제거해도 한계는 있었다.

    바로 그때, 네리스가 흑마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기수를 바로 잡았다.

    "카렌. 스티아.

    지금이 도우러 들어갈 때입니다."

    "넷!"

    "용사님 앞에서 실력을 보여줄 기회다. 카렌."

    카렌이 모험가 시절 애용하던 숏소드를 들고 뛰쳐나갔다.

    좀 걱정돼서 지켜봤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거침없이 이계 짐승을 베어 넘겼다.

    네리스는 짐승 떼를 분쇄하는 전차였다.

    창을 휘두르면서 더러운 짐승들을 거침없이 박살 내고 있다.

    "다행이네요."

    시아가 중얼거렸다.

    "이 정도 마물이라면, 후보생들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요."

    "싱거울 정돈데?"

    불의 종언을 쓰지 않아도.

    후보생 파티가 싹 쓸어버릴 듯한 느낌.

    하지만.

    역시 그렇게 끝날 리 없었다.

    시꺼먼 균열이 하나 더 나타났다.

    그 균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리라는 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

    안에서 나타난 건 머리를 산발한 키 3m의 남자였다.

    거적떼기로 상처투성이 몸을 가린 채 얼굴을 푹 숙이고 있는.

    손에는 피 묻은 톱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여신의 피를 쏟아라…!"

    톱칼 마신이 한마디 지껄인 순간.

    이스티의 화살이 미간에 꽂혔다.

    그 화살은 한 번의 위력만으로 충격파를 퍼뜨리고 수면에 잔물결을 만들었다.

    그러나 톱칼 마신은 미간에 꽂히기 직전 그 화살을 손으로 잡아냈다.

    "엘프도 있군."

    "……."

    이스티는 무표정으로 활을 겨누었다.

    "노아. 유도할게."

    이스티가 다음 화살을 시위에서 놓기 전, 톱칼 마신이 움직였다.

    그러나 이스티의 화살은 그보다 빨랐다.

    놓기 전에 이미 도달해 있었던 것처럼.

    무수한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마신은 그걸 피하고자 몸을 던졌고, 그곳에는 노아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아는 통파를 휘둘러 톱칼 마신의 머리를 깨버렸다.

    치명적인 일격이다.

    이스티와 노아 역시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서, 상대가 무언가 할 틈도 없이 제압해 버렸다.

    강하다.

    내 기억으로 이 콤비가 당해낼 수 없었던 적은 서연이 뿐이었다.

    그 서연이도 마신화 하기 전에는 노아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나는 몸에서 힘을 빼고 지켜봤다.

    시아가 언급조차 안 하는 하급 마신들.

    그것들은 이스티와 노아의 손에 차례로 쓰러져나갔다.

    시체가 쌓일 정도였다.

    마신의 몸뚱아리가 신격을 잃고 소멸하기 전에, 노아는 다시 새로운 시체를 그 위에 올렸다.

    두 균열에서 쉴 새 없이 적이 밀려든다.

    하지만, 어디도 뚫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기당천.

    1번 균열은 네리스와 틸리아가 앞장서서 후배들을 지휘하고,

    2번 균열에는 이스티와 노아가 모든 마신을 능숙하게 제거한다.

    정말 무서운 건 이스티와 노아 둘 다,

    승리의 기쁨에 조금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죽이고 나서 다음 상대를 찾는 눈.

    그저 일을 해낼 뿐이라는 듯한 군더더기 없는 동작.

    특유의 노련함으로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날 리 없다.

    이 세계에 제르미나가 구멍을 뚫었다면,

    그 구멍을 타고 오는 놈 중에는 진짜가 있다.

    리사가 단칼에 썰어버렸던 마신도 이보다는 훨씬 강했어.

    언제까지 뜸 들일 생각이지?

    그때, 세 번째 균열이 열렸다.

    [작품후기]

    대이최 완결 임박!

    마지막 메인 스토리가 전개 됩니다.

    그러나 그대로 메인 스토리 종료와 함께 끝나버리는 건 아니고요.

    후일담 형태로 캐릭터들의 신을 충분히 뽑은 후에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잘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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