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최면물-282화 (282/414)
  • 드디어 박서연 포획 작전이 시작되었다.282회

    오전 08시 35분.

    포획 작전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나는 할 일 없이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작전을 준비하는 다른 대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런데, 밖에는 지원팀을 제외하고 나보다 먼저 나온 전투원이 있었다.

    밤색 머리카락을 좌우로 정리해서 늘어뜨린 사랑스러운 소녀.

    헤르카 필리오테.

    처음에는 검까를 정비하러 나왔나,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거나…….

    보기만 해도 재밌다.

    뭘 하는 걸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헤르카에게 다가갔다.

    "헤르카. 뭐해?"

    "응? 보면 몰라?"

    "모르겠는데."

    이 일대에 마력 반응이 느껴지긴 한다.

    한 번 때려 맞춰 볼까?

    "헤르카가 개발한다고 했던. 새로운 마법이야?"

    "아니. 이건 고대 마법.

    새로운 마법은 토니우스와 함께 개발했어. 반마신이라고 해도 몇 초간은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고대 마법……?

    아무리 봐도 주변에는 건물 잔해뿐인데.

    우리 천재 소녀는 뭘 하려는 걸까?

    "좀 더 자세히 알려줘."

    "데칼도 멜브릿에서 겪었지?

    대규모 마법을 준비할 때는, 의식 마법이 필수야.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건 그 의식 마법을 위한 제단."

    "……."

    그러니까. 그걸 왜 여기서 하는 거야?

    호기심은 커지기만 했다.

    "아! 불안정해졌어.

    또 갔다 와야겠네. 가볼게!"

    헤르카는 검까를 타고 날아가 버렸다.

    뭔가 공들여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지원팀은 지원팀대로 바빴다. 브루노와 바커스는 적당한 건물을 찾아서 개조 중이었고,

    오이아와 에이미는 배낭에 든 약품을 전부 바닥에 풀어놓고 라벨을 하나씩 확인하며 점검 중이었다.

    슬슬 돌아갈까.

    미끼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어야지.

    이제부터 서연을 만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오전 08시 58분.

    후방 교란을 맡은 토니우스와 헤르카. 후방지원팀의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유격대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비 오면 쓰려고 준비했는지 다들 적절한 걸칠 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물론, 나는 일부러 얼굴을 드러냈다.

    노골적으로 대열 선두를 맡았다.

    말을 모는 건 네리스였지만.

    "주군. 제 허리를 꼭 잡아주세요."

    "가슴은 안 돼?"

    "……말씀하시는 걸 보니, 걱정할 필요 없겠군요."

    나는 네리스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네리스는 흑마의 고삐를 꽉 쥐었다.

    블램과 리사가 양옆을 지키고 나머지는 뒤를 따른다.

    투구를 쓰고 후드를 걸친 리사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박서연은 내가 치겠다.

    내가 놓치면 나머지가 데칼을 지키며 후퇴한다. 알았나?"

    "일부러 보내도 상관없어. 내가 쓰러뜨려 주지."

    앙겔이 호기롭게 말했다.

    배짱 두둑한데?

    우리는 말을 천천히 몰아서 마을 출구까지 이동했다. 눈앞에는 탁 트인 개활지. 그리고 상공에, 확실히 무언가가 떠 있는 게 맨눈으로 보였다.

    "그대로 있군. 첫 관문은 넘었다.

    곧 토니우스가 신호를 보낼 거다. 그때 움직인다."

    "……."

    모두 숨을 죽인다.

    지금부터 상대하는 건 마왕급의 전투력을 가진 반마신.

    리사가 곁에 있더라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그때, 갑자기 바닥에서 작은 촉수가 올라왔다.

    촉수는 토니우스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은 토니우스.

    준비됐습니다. 다른 마물은 없습니다. 바로 시작해 주세요."

    "……."

    리사는 한 호흡 길게 삼키고, 외쳤다.

    "가자!"

    네리스의 흑마가 포효했다.

    떨어질 것 같아서 네리스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는다.

    최대한 빨리 서연과 거리를 좁혀야 한다.

    토니우스와 헤르카의 봉쇄 마법이 들어갔을 때, 5초 안에 리사가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가야 작전이 성공하기 때문이다.

    풍압으로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다.

    이게 네리스의 전속력……! 다른 말들이 따라오질 못하잖아!

    "리사, 적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어!"

    블램이 소리쳤다.

    그 말대로, 서연 근처에 무수한 붉은 빛이 떠올랐다.

    설마 저걸 전부 날릴 셈인가?

    "흩어져! 뭉쳐있지 마라! 거리를 두고 네리스를 따라간다!"

    온다!

    마치 폭격기 그 자체다. 생물을 살해하는 붉은 빛이 수백 수 천개의 빗줄기가 되어 떨어진다.

    "이대로 돌파하겠습니다!"

    이것보다 더 빨리 나아간다고?

    나는 네리스와 함께 몸을 낮추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흑마의 빠르기는 서연의 예상조차 웃돌아, 소나기가 쏟아지는 지역을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뒷줄과 떨어졌어!"

    나는 소리쳤다.

    "여기서 속도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적에게 노려질 겁니다!"

    리사가 뒤에서 외쳤다.

    "계속 가라!

    이쪽에서 따라가겠다!"

    다시 상공에 붉은빛이 맺힌다.

    헤르카, 아직이야?

    이제 곧 서연에게 충분히 접근하는데,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빨랐나?

    "떨어져라!!"

    헤르카의 목소리다.

    서연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고도를 낮춘 게 허점이 되었다.

    헤르카는 훨씬 높은 고도에서 몸을 감추고 급강하했다.

    헤르카의 뒤를 이어 나타난 건 빛무리가 모여서 형상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갈고리였다.

    산도 가를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날이 네 개 뭉쳐 십자를 이루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서연은 회피 동작에 나섰지만, 마법의 부피가 너무 커서 피하기는 무리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헤르카를 뚫고 나아간 열 십자의 빛줄기는 서연을 강타했다.

    충격을 받은 서연이 주춤하며 고도를 낮춘다.

    하지만 아직도 칼을 뻗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이제 닿습니다!"

    그때.

    토니우스의 촉수가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악마의 사도처럼 바닥에서 솟아 나와 서연의 발목을 붙잡았다.

    "!"

    서연의 얼굴이 보이는 거리까지 내려왔다.

    서연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쾅!

    촉수는 서연을 바닥에 내리 꽂아버렸다.

    흙먼지가 확 피어오르고, 바닥에 무릎 꿇은 서연을 보고 헤르카가 웃었다.

    "신을 무릎 꿇렸노라. 내가 바로 헤르카 필리오테다! 아하핫!"

    "성공했습니다!"

    환희는 잠시뿐이었다.

    서연의 마력이 임계점에 다다른 폭탄처럼 고밀도로 집중된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 검은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토니우스가 부른 촉수는 갈기갈기 찢기면서 피를 쏟았다.

    "안 돼! 3초도 못 버티다니…!"

    서연이 날개를 펼쳤다.

    다시 날아오르면 막을 수 없어…!

    바로 그때, 불가사의한 참격이 허공을 갈랐다.

    "아……!"

    서연의 날개가 검으로 베였다는 건 피가 쏟아지는 걸 보고 뒤늦게 알았다.

    리사다.

    네리스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춘다. 그러자 리사의 말이 우리를 앞질러, 다친 서연에게 육박한다.

    서연은 뒷걸음질 치며 적광탄을 마구 쏘아댔다.

    "소용없다!"

    리사는 탄환에 비견될 정도로 빠른 그것을 검으로 쳐냈다.

    서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뒤로 물러난다.

    "리사! 죽이면 안 돼!"

    "알고 있다!"

    리사는 아예 날개를 절단할 생각이다.

    다시는 날아오르지 못하게.

    아무도 예상 못 한 일은, 바로 다음 순간에 벌어졌다.

    리사가 무언가를 맞고 튕겨 나갔다.

    서연이 한 게 아니다.

    서연도 놀란 얼굴로 리사가 날아간 궤적을 따라서 보고 있다.

    지금 그건 뭐였지?

    평범한 공격이 아니다.

    리사는 말과 함께 족히 20m를 날아가서 바닥을 뒹굴었다.

    블램이 파래진 안색으로 소리쳤다.

    "리사!!"

    헤르카가 이쪽을 보고 소리쳤다.

    "데칼! 몸을 지켜!"

    뭐?

    무언가가 이쪽으로 쇄도한다. 검은 인영.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네리스는 급하게 말머리를 틀고 창을 휘둘렀지만,

    검은 그림자는 네리스의 창을 부숴버리고 뛰어올랐다.

    마지막 순간에 본 건 그것이 휘두르는 검은 도끼였다.

    "데칼……!!"

    네리스가 날 밀치고 도끼를 대신 맞았다.

    "흐윽…!"

    흑마가 날뛰면서 네리스와 함께 낙마한다.

    네리스의 허리는 벌써 피투성이였다.

    "네리스!"

    "윽, 학……. 어서 피해요."

    "파이어 애로우!"

    나는 바로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해 검은 그림자를 몰아붙였다.

    그림자는 즉시 뛰어올라 내 불화살을 피했지만,

    해를 가리는 자를 발동해서 계속해서 그림자를 쫓는다.

    그림자의 발이 멈춘 틈에 앙겔이 뛰쳐 들었다.

    "내가 막겠다!"

    앙겔 밑에 깔린 듯했던 검은 그림자는 마치 이 세상 생물이 아닌 것처럼 바닥을 미끄러지더니,

    좀 떨어진 곳에서 형체를 드러냈다.

    뼈밖에 없는…… 언데드 괴물. 검은 가죽을 걸치고 있는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돌았다.

    머리에는 보석 박힌 왕관을 쓰고 있었다.

    마왕군 간부?

    아니…….

    나는 놈에게서 희미하지만, 신격을 느꼈다.

    "조심해! 놈은 마신이다!"

    "뭐야?"

    "메딕! 네리스를 치료해 줘!"

    오이아와 에이미가 즉시 달려와 말에서 내린다.

    "우리한테 맡겨!"

    나는 치료 받는 네리스를 등지고 일어났다.

    "누구냐!"

    이쪽 말은 이해할까?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여신의 대리인 효과가 있으니 분명히 알아들었을 거다.

    "내 이름은 가르키소스. 마신이다. 네놈이 데칼인가?"

    "그렇다면?"

    가르키소스는 도끼를 꼬나쥐고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나를 주박한 것은 파괴의 여신일지니.

    원망하지 말고 운명을 받아들여라."

    제, 제르미나. 이 미친년……!!

    에페의 배신을 알게 되면 움직일 줄은 알았지만,

    아니, 조화계 여신이라는 년이 마신한테 손을 빌려?

    니뮤엘이 무섭지도 않은가?

    가르키소스는 도끼를 들고 유령처럼 땅을 미끄러지듯이 다가온다.

    앙겔이 뛰쳐나와서 부딪친 순간, 두 사람이 만든 충격파가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크윽!"

    "앙겔!"

    블램이 뛰쳐들어 가르키소스에게 검을 휘두른다.

    도끼 마신은 블램의 검격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며 둘을 동시에 상대했다.

    "형님! 우리도 갑시다!"

    "기다려! 저걸 봐!"

    마케르가 압베트를 말리며 소리쳤다.

    나도 마케르를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연이 날아올랐다.

    작전은, 실패인가……?

    아니, 아직이다. 날개를 다쳐서 높이 날지는 못해.

    해를 가리는 자라면 충분히 공격할 수 있다. 그 전에 서연을 공격하는 게 최선인가?

    마신은? 앙겔과 블램이 붙잡아 놓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돼!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이는 찰나의 순간.

    박서연이 손가락을 딱 튕기더니 붉은빛을 쏟아 보냈다.

    바로 마신에게.

    "앙겔! 피해!"

    블램이 몸을 던진다.

    가르키소스는 붉은빛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태연하게 서 있었다.

    "허어. 이건 무슨 짓이냐."

    서연이 붉은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야말로.

    오빠를 다치게 하는 데 동의한 적은 없는데?"

    "모순되는군.

    네년이야말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그 짙은 죽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살해 말고 무엇이 있느냐?"

    "닥쳐.

    어쨌든 오빠는 내 거야. 나만이 오빠를 사랑할 수 있어. 누구도 방해하지 못해."

    …….

    서연이 날 지켰다.

    이러면 마신이 공동의 적……인가?

    서연과는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게 날 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헤르카와 토니우스도 상황을 파악하는 듯했다.

    서연이 날 지켰다는 건, 그만큼 모두에게 뜻밖의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지.

    나와라. 오플래시오. 플라나케스."

    차원의 균열이 다시 한번 벌어졌다.

    신격이 느껴진다. 앙겔은 배에 난 상처를 손으로 지혈하면서 물었다.

    "데칼.

    설마 저놈들도 마신은 아니겠지?"

    "마신 맞아."

    "……."

    "……."

    제르미나의 사주를 받은 마신 셋…….

    그러면 이쪽은 시아와 벨라를 부를 수밖에.

    "오호호. 찢을 보람이 있어 보이는 인간들이네요."

    광대처럼 생긴 마신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웃었다.

    "불려나오길 잘했지 뭡니까."

    반면 잘 빼입은 백발 신사처럼 생긴 마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제길. 하는 수밖에 없나."

    앙겔이 주먹을 꽉 쥐었다.

    "너부터 먼저 찢어 주마아아!!"

    광대 마신이 뛰어든다. '이제부터 간다'고 광고하듯 소리치면서 뛰어왔는데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시아…!"

    빛의 여신의 이름을 부른 바로 그 순간.

    "여신님께 기도하기는 이르다. 데칼."

    리사가 전장에 복귀했다.

    좀 전의 충격으로 투구가 벗겨졌는지 보랏빛 머리카락이 우아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오호호?"

    광대 마신은 자기 앞을 가로막은 리사를 보고 힐쭉 웃었다.

    "인간치고는 제법 빠르네요."

    "그쪽은, 웃기게 생긴 광대 복장을 한 주제에 제법이군."

    "계속 잘난 척, 막고 있어 주세요!!"

    그때, 도끼 마신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오플래시오! 기다려라!

    여기서 그걸 쓰면……!!"

    "이야아아앗!!"

    광대 마신의 긴 손톱이 불길한 빛을 머금었다.

    무언가 할 생각이다……!!

    "하."

    리사는 코웃음 치며, 손톱과 맞대고 있던 검을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이쪽을 향하고 있던 거대한 힘의 흐름이 비틀려,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으악!"

    후폭풍 때문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리사와 광대 마신은 서로를 담담히 보고 있었다.

    "……인간. 네가 튕겨낸 거냐?"

    "그렇다면?"

    "오호호. 그럼 이것도 막아봐라……!"

    "싫다."

    리사가 검을 휘두르자, 광대 마신의 긴 손톱이 일제히 부러졌다.

    "어?"

    그게 광대 마신의 유언이었다.

    리사의 참격이 마신을 여러 조각으로 갈라버렸다.

    "다음."

    "네 이놈!"

    백발 신사가 리사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른다.

    리사는 가만히 서서 그 검을 받아내더니, 한마디 했다.

    "마신이라더니 약해빠졌군."

    백발 신사의 목이 떨어졌다.

    검을 휘두르는 게 보이지도 않았다…….

    "……."

    ……강하다.

    리사의 초연한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도끼 마신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정말 인간인가?

    좀 전에 그걸 맞고 살아남다니."

    "살아남아?"

    리사는 검을 휘둘러, 검날에 묻은 녹색 피를 털어내고 말했다.

    "착각하지 마라. 마신.

    튕겨 나가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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