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최면물-280화 (280/414)
  • 벌써 견제하는 리사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280회

    "웃지 마라…!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키스는 야한 짓에 안 들어가?"

    "……."

    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은 그렇게 해두자."

    "일단이 아니다. 향후 계속될 지침이다."

    과연 그럴까?

    "가소롭게 생각하는 눈치로군. 그대, 생각보다 성격이 꼬여있구나."

    "이제 알았어?"

    "……사귀게 되었으니. 질문 하나 해도 될까?"

    질문?

    혹시 최면을 눈치챘나?

    "말해 봐."

    "……키스.

    처음이었다."

    "응?"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니까. 첫 키스였어.

    내 키스, 이상하지 않았나? 나도 모르게 데칼의 혀랑 입…… 쯉쯉 빨거나 할짝거렸는데…….

    이상한 키스 아니지……?"

    그래.

    이게 리사한테는 첫키스였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상하지 않았어.

    사랑스럽고, 꼴리는 키스였어."

    "꼴린다……? 칭찬인가?"

    "칭찬이야."

    "꼴리는 키스여서 다행이다. 잘 부탁해. 데칼."

    나는 리사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나저나, 밖에서 날 기다린다고 했는데.

    무언가 할 얘기라도 있었나?"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제대로 된 요리 먹고 싶지 않아?"

    "그야말로 뜬금없군.

    훌륭하게 조리된 음식을 먹는다면 대원들의 사기도 오르겠지만, 지금은 사치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실력 있는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모두에게 대접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작전 얘기 전에 잠깐 나한테 시간을 줄 수 있어?"

    "알았다. 미리 가서 얘기해두지."

    리사는 바닥에 떨군 투구를 다시 주워서 먼지를 털어냈다.

    "나와 사귄다는 얘기도 모두에게 할 거야?"

    "데칼. 그런 한가한 얘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오이아가 신나서 떠들고 있을 것 같지만."

    "……하아."

    "먼저 가 있어."

    "대원들 얼굴 보기가 이렇게 내키지 않는 건 처음이다."

    나는 리사를 배웅하고 팔색 조개 성으로 왔다.

    아. 맛있는 냄새가 난다.

    "데칼 씨!"

    우리 예쁜 요정님이 밝은 얼굴로 다가온다.

    셀레네도 있었다.

    "주인님."

    "둘 다, 밤새 고생 많았어."

    "일의 중요성은 전해 들었습니다.

    솜씨를 발휘해서 도시락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데칼 씨는요? 테이블에 코스를 준비할까요?"

    "아니. 나도 그냥 도시락 가져가서 먹을게."

    "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무리 작업할게요."

    나는 구경이나 해야지.

    석탑처럼 척척 쌓이는 특대 사이즈 도시락을 보면서 감탄했다.

    내용물을 힐끗 봤는데 형형색색 음식들이 예술품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기 비율이 상당히 높네. 그것도 각각 다른 부위, 모두 다른 조리법을 사용해서 구운 것 같은데.

    "맛있겠네."

    "영양도 충분히 고려했습니다."

    "이거 먹으면 사흘 내내 굶어도 되겠어."

    "안 돼요! 그러면."

    엘린이 도시락 뚜껑을 닫으면서 엄하게 말했다.

    "날마다라도 만들어 드릴 테니까.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출정하면 찾아오기도 어려울 것 같지만,

    또 기회가 되면 말할게."

    "네! 준비됐어요!"

    나는 도시락을 보관함에 넣었다.

    식기 전에 배달하러 가볼까.

    "잘 먹을게. 엘린. 셀레네."

    "부디 몸 조심히."

    "잘 다녀와요. 데칼 씨!"

    셀레네와 엘린의 배웅을 받고 다시 낡은 저택으로 귀환한다.

    팔색 조개 성이랑 너무 비교되는데.

    꺼진 바닥에 발을 쑤셔 넣지 않게 주의하면서 식당으로 이동한다.

    낡은 저택의 식당은 그저 휑했다.

    값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가지고 나간 느낌.

    커튼, 식탁보 따위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넝마가 되었다.

    "데칼!"

    헤르카가 나한테 안겨들었다.

    어찌나 기세가 좋은지 뒤로 넘어갈 뻔했네.

    "너무 늦었잖아. 얼마나 기다렸는데!"

    "뭐 좀 하느라."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원탁에 하나둘 모인다.

    빠짐없이 모였군.

    오이아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데칼~! 맛있는 거 가져왔다면서?"

    "기대해."

    앙겔은 나를 흘낏 보며 말했다.

    "빈손으로 보이는데."

    "뭐든 좋아. 맛 같은 건 기대 안 하니까 빨리 먹게 해줘!"

    압베트가 책상을 씹어먹을 기세로 소리치자, 형 마케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압베트. 용사님은 '식량에 관한 얘기'라고 했지.

    데칼이 먹을 것을 잔뜩 싸 온다고 한 적은 없다. 얌전히 있어."

    "기대를 배신해서 미안하지만, 먹을 것을 잔뜩 싸왔어."

    "……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나는 보관함을 열어 특대 사이즈 도시락을 하나둘 꺼내서 테이블에 놓았다.

    향신료 냄새가 사람 미치게 하는군. 오이아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다 뭐야?

    만져보니 따뜻해. 설마 방금 만든 요리야?"

    "그래.

    실력 있는 요리사가 만들어준 도시락이야."

    "와!"

    "이건 놀랍군."

    보고 있던 앙겔도 한마디 했다.

    "솔직히 제대로 된 식사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이건 향기부터 사람 기대하게 하는걸?"

    토니우스도 입맛을 다신다.

    나는 모든 도시락을 꺼낸 후, 리사와 눈을 마주쳤다.

    "리사. 이걸 모두에게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지?"

    "용사님!"

    오이아가 기도하듯 손잡고 리사를 바라본다.

    "내가 말리기라도 할 줄 알았나?

    모두 함께 먹자. 데칼이 가져온 요리다. 그에게 감사해."

    "고마워. 데칼!"

    나는 엘린과 셀레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데칼 옆에 앉을래!"

    "아예 무릎 위에 태워줄까?"

    헤르카를 번쩍 들어서 품에 안는다.

    "나를 기쁘게 하다니, 데칼도 얕볼 수 없네. 특별히 날 앉히는 걸 허락할게."

    "영광입니다. 천재 대마법사님."

    "흐흥!"

    헤르카는 내 위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며 온몸으로 기뻐했다.

    "데칼. 도시락 열어도 돼?"

    "그래. 식기 전에 얼른 들어."

    다들 도시락을 열고 감탄한다.

    언젠가 요리 만화 같은 데서 봤던, 음식이 드러나자 '번쩍' 하고 빛이 나는 연출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휘황찬란하다.

    "맛보기 할게요."

    오이아는 벌써 음식을 입에 넣고 있다.

    "맛보기?"

    "보통 외부에서 반입한 음식을 먹을 때는, 지원팀이 맛보기 합니다.

    독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죠."

    네리스가 설명해 주었다.

    "독이라니……."

    "움움. 쩝쩝……. 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데칼. 그냥 절차 같은 거니까."

    앙겔은 쯧하고 혀를 찼다.

    "그냥 먹자고.

    이러다 지원팀이 모두 다 먹어 치울 것 같으니."

    "너무 맛있어요. 먹다가 죽어도 모를 것 같아."

    에이미도 입을 손으로 가리고 감탄했다.

    "진짜로…….

    고기가 입에서 사라졌어. 간도 딱 맞고…. 이런 거, 성도에서도 먹어본 적 없어."

    "셀레네 솜씨다. 맞지?"

    헤르카가 떠들며 말했다.

    "맞아."

    도시락 요리라는 특성 때문인지, 한 손에 집어 먹기 좋은 크기의 음식들이 많았다.

    홍옥처럼 붉게 빛나는 고기 쌈들이 먹음직스럽다.

    이건 찐 전복인가? 같이 가져온 젓가락을 사용해서 빠르게 음식을 비워나간다.

    "데칼.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식지 않게 가져온 거야?"

    토니우스가 말했다.

    "아지트에 가서 보관함에 넣은 뒤 가져왔어."

    "아지트? 여기서 가깝나? 아니, 그럴 리 없지.

    공간 마법인가?"

    공간 마법?

    차원 마법이랑은 다른 건가? 여기서는 적당히 묻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비슷한 거야."

    "굉장하군. 적지에서 이런 식사를 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훌륭한 맛이에요. 블램 씨, 그렇지 않아요?"

    블램이 대꾸가 없자, 오이아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시 말했다.

    "블램 씨?"

    "……아. 그래. 좋은 맛이야."

    오이아는 블램이 용사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던 일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반응을 봐선 대부분 모르는 듯하다.

    그때 지원팀의 메딕, 에이미가 말했다.

    "아무도 안 물어봐?

    데칼. 어떻게 용사님이랑 사귀게 된 거야?"

    "……."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

    물어보면 안 되나……?"

    "아니! 나도 궁금했어. 얘기해 주세요. 용사님!"

    후방지원팀의 메딕 두 명이 눈을 빛내며 나와 리사를 바라본다.

    리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중해라. 오이아. 에이미.

    아무리 편한 자리라도, 화제는 골라야지."

    "네에……."

    오이아가 풀이 죽어 대답한다.

    "맛있군.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모두를 대신해서 말하지. 고맙다. 데칼."

    리사는 날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애쓴 건 우리 성의 요리사와 메이드지만, 솔직하게 기뻤다.

    "고맙다면, 깔끔하게 빈 도시락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해줘.

    우리 요리사가 굉장히 기뻐할 테니까."

    뭐, 벌써 반쯤 비어있는 것 같지만.

    "콜록! 콜록!"

    압베트가 흡입하듯 먹다 체한 듯 고개를 돌리고 기침했다.

    "미련한 놈아. 천천히 좀 먹어라. 누가 뺏어가냐?"

    마케르가 압베트의 등을 두드린다.

    사이 좋은 형제네. 내장이 떨릴 정도의 세기로 때린 것까지 고려해도.

    "커헉! 어흑! 형, 내려갔어. 내려갔다고…!"

    "마왕 만나기 전에 음식물이 목에 걸려 죽는다면, 참 멋진 이야깃거리다.

    사람들이 시를 지어 부를 수 있도록 내가 전해주마."

    "천천히 먹으면 되잖아. 잔소리는."

    토니우스가 둘을 보며 거들었다.

    "노래로 만든다면 부디 곡조는 내가 지을 수 있게 해줘.

    아아, 압베트! 용감한 용사여. 목에 고기가 걸려 죽지만 않았어도!"

    하하. 마실 거라도 좀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사람 수만큼 일회용 종이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헤르카. 혹시 보관함에 컵 있어?"

    "컵? 응!"

    "모두에게 나눠줄래?"

    헤르카는 보관함에서 컵을 꺼내어, 염력을 쓰는 것처럼 조종해서 모두의 앞에 내려놓았다.

    각각 색깔도 문양도 다른, 귀여운 머그잔이었다.

    나는 여신의 물병을 꺼내서 나와 네리스의 잔에 먼저 물을 따르고, 나머지는 헤르카에게 맡겼다.

    "작아 보이는 물병인데, 엄청나게 많이 나오네."

    토니우스가 신기한 듯 말했다.

    "아티팩트야. 보는 것보다 많이 나와."

    많이가 아니라 무한히 나오지만.

    안쪽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언제나 깨끗한 물이 나온다는 점이 좋다. 전에 누가 입을 대고 마셨어도 그렇다.

    원래부터 그런 아이템이라서, 불순물이 섞일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 너무 행복해."

    오이아가 볼을 손으로 감싸고 배시시 웃었다.

    모두 만족한 것 같다.

    나는 진한 화이트소스가 걸쳐진 송아지 고기가 제일 좋았다. 익힌 당근도 소스와 잘 어울려서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주군."

    네리스는 식사를 다 마친 후 입을 열었다.

    "잘 먹었습니다."

    "엘린과 셀레네한테 말해 줘. 기뻐할 거야."

    "네."

    식사를 마친 후, 모두가 테이블 위를 깨끗이 정리하는 데 협력했다.

    나는 빈 도시락을 보관함에 넣어서 정리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원팀의 보고부터 순서대로 듣지. 바커스."

    바커스는 지원팀 경계 담당이었다.

    "예. 야간, 마물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았다?"

    "마을 자체가 꺼려지고 있는 듯합니다."

    "브루노. 조사 결과는?"

    브루노가 일어나서 말했다.

    "확실하지 않지만, 비행형 마물이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블러드 하피인가?"

    "자세히 식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크기로 보건대, 사람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무언가였습니다."

    "……반마신일 가능성은?"

    "……꽤 큽니다."

    서연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무슨 의도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데칼. 어떻게 생각하지?"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서연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오히려 잘됐어. 내가 네리스와 함께 가볼게."

    "안 된다. 다 같이 움직인다.

    데칼, 너를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

    "……."

    오이아가 꺄악, 하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리사가 째릿 노려보자 바로 쭈그러든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그러면 징계하겠다."

    "힝…."

    "다 몰려가면 도망치지 않을까? 애초에 서연이 미끼를 물지 않으면 곤란해."

    리사는 서연이 사정거리로 들어온 순간, 간단히 죽일 수 있다.

    그게 문제다.

    나는 박서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혼자 서연과 합류해서 그녀가 바라는 바를 들어줄 뜻도 있었다.

    하지만 리사는 나를 위험하게 하는 작전에 동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게 기쁘면 기뻤지, 싫지는 않았다.

    결국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날아다니는 서연을 어떻게 제압하느냐.

    리사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데칼. 우리를 믿어라.

    이 정도 일로 막힐 정도였다면, 마왕 토벌은 꿈 같은 소리지."

    "좋은 생각 있어?"

    "토니우스. 헤르카. 어떻게 됐지?"

    "수단은 마련했습니다.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5초 정도라면 묶을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5초라고 하지 않았나?

    충분하다고……?

    "지원팀. 반마신을 가둘 공간을 만들어 놓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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