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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269화 (269/414)
  • 269화

    "다 모였군."

    리사는 늠름한 모습으로 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요점을 간추려 설명하겠다.

    여기서 2km 앞, 적의 대규모 부대가 진을 치고 있다.

    브루노. 모두에게 정찰 결과를 알려주도록."

    "예."

    브루노, 그는 후방지원팀에 있는 남자 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이 경계 담당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브루노의 역할은 조사 및 정보 수집.

    그는 뒤돌아서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02시에 다수의 B+급 내지 A급 마물로 구성된 대규모 부대의 움직임을 확인했습니다.

    관찰 결과 이 부대의 목적은 론그리카 늪지대를 봉쇄하여 마왕성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단순한 이동일 가능성은?"

    앙겔이 말했다.

    브루노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작습니다.

    저희는 꽤 깊숙이 침투했고, 늪지대는 전략적 이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별동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배치했다면 앞뒤가 맞습니다."

    "늪지대를 봉쇄당하는 것이 그렇게 치명적인가?"

    이번에는 블램이 묻는다.

    "만약 늪지대를 점거한 마물 부대와 싸우지 않고 우회하는 길을 택한다면

    산을 두 개는 넘어야 합니다.

    도저히 열흘 안에 다다를 수 없는 거리가 됩니다."

    "……맞붙는 수밖에 없겠군."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브루노가 들어가자, 모두 그러기로 약속한 것처럼 리사를 바라본다.

    리사는 망설임이 없었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지금부터 만날 적은 만만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적은 우리 움직임을 알아차렸고 본격적으로 대응하겠지.

    온갖 함정, 술수,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마왕성이 가깝기 때문이다."

    마왕성이 가깝다.

    그 한마디로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은 같다.

    우리는 야음을 틈타 적을 기습, 돌파한다.

    한 명도 떨어지지 말고 따라오도록."

    "반마신은 어떻게 합니까?"

    토니우스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 일은 데칼과 논의했다.

    전장에 반마신이 나타나면 당황하지 말고 데칼에게 길을 열어줘라."

    "데칼에게……?"

    다들 당황한 얼굴로 날 보았다.

    심지어 네리스와 헤르카까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데칼을 혼자 싸우게 둔다는 뜻입니까?"

    토니우스가 재차 물었다.

    "데칼이 바란 일이다.

    마왕과 싸우기 전에 반마신과 결판을 낼 수 있다면 바라던바.

    방해받지 않게 도우되, 반마신에 대한 건 전적으로 데칼에게 맡긴다."

    오이아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데칼…….

    혼자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마.

    우리가 같이해줄게!"

    "자살 지망따위는 아니겠지."

    앙겔이 비아냥거린다.

    "앙겔 씨!"

    다들 날 불나방 보듯이 하는군.

    그런 식으로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유격대 신참이 반마신을 혼자 상대하겠다는데, 웬만한 이유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테니까.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승산은 있어.

    죽을 생각으로 덤비는 건 아니야."

    블램이 이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텐트에서 길게 나눈 대화가 이거였나.

    리사는 설득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아직 납득하지 않았어.

    자네 혼자 반마신과 싸우는 게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싸우는 것보다 나은 이유가 뭐지?"

    "서연을 설득하고 싶기 때문이야."

    "설득?"

    "박서연은 인간 편으로 되돌릴 수 있어."

    "실패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 해. 나는 그걸 위해 여기에 온 거야."

    이럴 때는 거짓말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괜히 없는 말 지어내다가 꼬리를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앙겔은 못마땅한 듯 바닥에 침을 뱉고 말했다.

    "어이없군.

    죽여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

    인제 와서 설득하겠으니 비켜달라고? 그런 뻔뻔한 말을 잘도 늘어놓는군."

    "죽이는 건 차선책.

    박서연이 우리 편을 들어준다면 그게 최선이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네 머릿속 이야기지.

    네 망상에 어울릴 생각은……."

    "그만."

    블램이 앙겔의 말을 끊었다.

    "데칼의 행동이 전략적으로 어떤지를 떠나서, 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

    앙겔, 너무 비난하지 마라."

    "……."

    설마 블램에게 도움받을 줄이야.

    그렇다고 고맙지는 않았다.

    이 상황은 내게, 차 한잔하며 시간을 죽이는 일상의 한때와 다를 게 없다.

    나와 뜻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건 손가락만 튕기면 언제든 가능하니까.

    하지만 이놈의 언제든 조종할 수 있다는 전제 때문에

    나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보는 것부터 할 뿐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평온했다.

    "앙겔이 옳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지.

    마왕을 처리한다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유격대가 나 때문에 피해를 보길 원치는 않아."

    나는 날이 선 앙겔에게 묵묵히 말했다.

    "그때는 날 두고 가."

    "…!"

    다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였다.

    토니우스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너, 너는…….

    진짜로 죽을 생각인 거야?"

    "여기에 자긴 안 죽을 것으로 생각하는 놈도 있어?"

    그놈이 나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각오는 했다.

    팔 한쪽이나 다리 한쪽. 그 정도는 내어줘야 할지도 모르지.

    여신님이 감쪽같이 붙여주겠지만, 나한테는 그것도 대단히 큰 각오다.

    "좋든 싫든 박서연은 날 노리고 있어.

    결판을 미루고 계속 시간을 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서연의 방해를 받아도 곤란하잖아.

    그러니까, 서연이 나타나면 나한테 맡겨 줘.

    그것이 최선이야."

    "……그것은……."

    네리스가 쓰라린 표정으로 입을 뗀다.

    하지만 먼저 말한 건 블램이었다.

    "리사도 이 일을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지."

    "……."

    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두 그의 뜻을 존중하길 바란다.

    이상이다. 30분 내로 막사를 철거하고 움직일 채비를 마쳐라.

    우리의 목적은 마왕 토벌. 다른 일은 모두 머리에서 지워라."

    대원들은 하나둘 흩어져 짐을 정리한다.

    앙겔은 할말이 있는 것처럼 남아서 날 보고 있었다.

    "앙겔?"

    "아까는 미안했다."

    의심하기는 그만두기로 한 것 같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훌훌 떠났다.

    나도 도우러 갈까?

    "데칼!"

    헤르카가 검까를 타고 날아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이다.

    "헤르카?"

    "나는 그런 얘기 못 들었어!"

    "저도 못 들었습니다."

    "미리 얘기하려고 했는데 좀 늦었네.

    나는 부대에서 이탈하게 될지도 몰라.

    너희는 남아서 리사를 도와줘."

    "싫어!"

    헤르카는 단호히 거부했다.

    "어디로 가든 데칼이랑 같이 갈 거야.

    데칼이 없으면 이런 유격대에 남아있을 이유 따위 없는걸!

    네리스도 그렇게 생각하지?"

    "……."

    네리스는 침묵을 지켰다.

    책임감 강한 그녀에게, 유격대를 나가겠다는 다짐을 받는 건 어렵다.

    하지만, 네리스의 생각도 헤르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저희에게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벌써 몇 번이나 설명해서 질렸어.

    하지만 네리스는 알고 있겠지. 내가 왜 그 녀석을 혼자 만나고 싶어 하는지."

    "아……. 최면…."

    네리스가 중얼거린다.

    "최면?"

    헤르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대상의 정신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단이 있어.

    그래서 반마신이 된 박서연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왜 자꾸 이별할 것처럼 말하는 건데!"

    "아마도 나는,

    서연이랑 함께 떠나야 할 수도 있어."

    "뭐?!"

    "확실하지 않지만,

    서연은……. 에카테리나 말에 의하면, 이 땅 어딘가에 나와 살 신혼집을 마련했다고 해……."

    "……."

    "……."

    네리스와 헤르카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대원들에게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어.

    이런 얘기야. 나는…… 서연이 원하는 신혼 생활을 해주면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해.

    그 녀석에게 걸린 암시는「내가 없으면 불행해진다」니까."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하아. 그러니까, 그 여자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왜 그런 미친 여자에게 신경을 써? 데칼의 몸에 칼도 들이댔잖아."

    "날 죽이진 않을 거야."

    그 부분은, 서연이 뱉은 말을 지키는 미치광이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지만…….

    "왜 신경 쓰냐고 묻는다면,

    박서연도 내 여자니까."

    "주군답네요."

    "괜히 걱정했어. 데칼 바보."

    "아니, 나름대로 위험한 일이거든?"

    "결과적으로 그 여성분도 주군의 손에 함락되어, 성의 식구가 되겠군요."

    "시시해졌어. 갈래."

    헤르카가 날아오른다.

    밝고 예쁜 좆집의 가슴이 그리운 밤이다.

    "빨리 말해주지 않아서 미안."

    "……?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무표정으로 보고 있으니 날 경멸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전 그냥 얼굴에 티가 안 날 뿐입니다.

    절 보고 사과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면, 주군께서 켕기는 일이 있기 때문이겠죠."

    "섹스할 때는 티 나던데."

    "……자, 대원들을 도우러 갑시다."

    나는 네리스의 뒤를 따랐다.

    "주군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마왕을 쓰러뜨리는 일도 반드시 해낼 겁니다."

    "그래. 나도 빨리 합류할게."

    마왕도 놓칠 수 없는 먹잇감이니까.

    「최소한 리사 급」이라는 보증이 붙어 있는 이상,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용사 유격대는 막사를 철거하고 이동 준비를 마쳤다.

    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네리스의 흑마에 올라타서 그녀의 젖가슴을 핸들처럼 돌리고 주무르며,

    선두로 달리는 리사를 뒤따랐다.

    그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여자 비명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한 명, 두 명, 아니 수십 명……?

    "블러드 하피입니다!"

    나는 후방지원팀 목소리를 듣고 하늘을 봤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집채만 한 검은 음영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무서워!

    "이대로 뿌리친다.

    대열을 흩뜨리지 마라!"

    "주군. 꽉 붙잡으십시오. 속도를 내겠습니다."

    "알았어!"

    나는 네리스의 허리에 팔을 감고 달라붙었다.

    흑마는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리사의 말에 빠르게 근접한다.

    네리스가 접근하고 있다는 걸 안 리사는 측면으로 빠지고, 네리스가 선두에 섰다.

    돌파 준비다.

    곧 마물의 대규모 부대와 격돌할 터.

    "데칼! 조심해!"

    위에서 헤르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블러드 하피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었다.

    하반신은 새, 상반신은 인간과 닮았는데 어느 쪽이든 새나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들이 고도를 낮추고 날아다니자 겁이 났다.

    네리스는 블러드 하피의 궤도를 미리 읽은 것처럼 흑마를 움직여

    발톱 찍기를 피하면서 쭉쭉 나아갔다.

    "큭, 이대로는……!!

    용사님, 반격할까요?"

    후열에서 누군가가 외친다.

    "우리 위치가 발각된다.

    적이 대비할 틈을 줘선 안 돼. 이대로 간다!"

    "옛……!"

    나는 마법을 쓰려다가 몸을 낮췄다.

    시끄러운 하피를 달고 있는데 기습 효과가 있을까?

    "돌파합니다!"

    네리스는 마상용 랜스를 소환해서 손에 쥐고 더욱더 속도를 냈다.

    흑마가 힘차게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뻗어 나간다.

    정면에는 마물 무리.

    잘 보이지 않지만 본 적 없는 불길한 실루엣이다.

    격돌하는 순간 캉, 하는 소리가 났다.

    단단한 것과 부딪혔을 때 나는 그런 이질적인 금속음이었다.

    하지만 우려와 반대로 네리스는 적으로 시인되는 검은 괴물들을 모조리 흩뜨려 길을 열었다.

    "네리스, 괜찮아?!"

    "예…!!"

    곧 천지가 밝아졌다.

    헤르카가 엄청난 규모의 빛 마법을 시전했다.

    나는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는 괴물 무리와 지상에 널린 뼈 갑주를 입은 악마들을 보고 기겁했다.

    돌아가고 싶어지는 광경이다.

    "가장 어둡고 천박한 존재들아. 여신의 부름을 받아라!"

    헤르카의 손에서 퍼져나간 빛이 지평선까지 뻗어 나갔다가 되돌아와서

    하늘에 거대한 구체를 만들고, 벼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블러드 하피는 모조리 새 통구이가 되어 바닥으로 추락했다.

    "끝내주는데!"

    압베트가 휘파람을 불며 환호한다.

    "동생아. 방심하지 마라!

    지천으로 널린 게 악몽갈퀴다. 어디서 드래곤 뼈를 구했는지 좋은 갑옷을 입었군."

    "그래 봤자 썩은 뼈잖아. 가자고. 형!"

    마케르는 동생 압베트와 함께 뛰어내렸다.

    그들은 마치 막을 수 없는 돌풍이었다. 악몽갈퀴라고 불린 괴물은 온몸에 뼈를 덕지덕지 붙인 묘한 괴물이었다.

    돌풍은 뼈 파편을 휘감은 태풍이 되었다.

    헤르카는 견제, 마케르와 압베트는 네리스가 만든 구멍을 넓히는 역할.

    후방지원팀이 안전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더욱더 강한 놈이 나타났을 때 블램과 앙겔이 길을 연다.

    "성체로군. 나와 앙겔이 맡겠다."

    블램이 검을 손에 쥐고, 앙겔과 함께 말에서 뛰어내렸다.

    악몽갈퀴 성체는 거인처럼 큰 몸집에 뼈로 만든 수레바퀴를 들고 있었다.

    네리스는 블램과 앙겔이 싸우는 동안 측면으로 돌아서 마케르와 압베트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사방팔방 달라붙는 마물들을 모조리 밀쳐냈다.

    "하앗!!"

    네리스가 창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악몽갈퀴는 온몸이 부서져서 바닥을 나뒹군다.

    하지만 무장 오크의 몸을 갑옷과 함께 두 동강 낼 수 있는 네리스가,

    세 놈만 붙어도 힘겨워하는 걸 보면 놈들은 확실히 수준이 달랐다.

    그 말은,

    드디어 나한테도 할 일이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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