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23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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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후.
"우욱……."
어떻게든 다 먹었다.
몸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아.
시아가 옆에서 응원해주지 않았더라면 도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얻는 게 아무리 많아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건, 역시 힘든 일이다.
하지만 끝내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아저씨. 이거 드세요."
시아가 마실 것을 건넨다.
살짝 씁쓸한 차였는데, 입안 가득한 단맛을 없애줘서 좋았다.
"고마워. 잘 먹었어."
"적당히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
"영혼병이랑 싸우는 것보다는 나아.
속이 거북해지는 정도로 레벨을 올릴 수 있다면 괜찮은 교환이지."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 시아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쯤 훨씬 괴로운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초콜릿에 들어가도 반발하는 놈들인데. 몸을 얻으면 나한테 무슨 짓을 하겠어?
입이랑 눈에서 뭐가 나오는 기믹만 없었더라면, 평범하게 맛보고 칭찬했을 거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고마워. 잘 먹었어."
"변변찮았습니다."
시아는 겸손하게 고개 숙였다.
"좀 뛰어봐도 돼?"
몸이 근질근질했다.
"네. 여기 있을게요."
나는 가볍게 땅을 박차고 뛰었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바람의 정령까지 더하면 어떨까?
다리에 힘을 넣고 뛰기 시작한 순간, 바람이 세차게 피부를 두드린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시아가 점으로 보였다.
빠른데.
정령의 도움까지 받으면, 자동차랑 나란히 달릴 수도 있겠다.
여기에 공간 도약까지 사용한다면 상당히 먼 거리를 주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스티처럼.
나는 공간 도약을 사용해서 시아에게 되돌아갔다.
정령핵으로 도약 지점을 설정하고 뛰어든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없이 반복해서, 도약의 한계 횟수를 알아냈다.
16회.
전이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야생마처럼 뛰어다녔더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아저씨. 어때요?"
"멋진데. 전보다 훨씬 좋아졌어."
스테이터스 오픈.
이름 : 데칼
Lv : 1398
힘 10 마력 11 체력 14 민첩 12
여신의 가호[불 면역, 불 마법 위력 UP, 모든 스킬 숙련치 UP]
여신의 대리인[스킬 습득률 UP, 경험치 UP, 능력치 적용 배율 UP]
바람의 정령술 [LV 8]
스킬
파이어 애로우[MAX]파이어 볼[MAX]불의 종언[LV MAX]
수색[MAX]마법 응축[LV MAX]공간 도약[LV MAX] 배리어[LV MAX]
불의 속삭임[LV 3]
은폐의 장막[LV 0]- 죄 없는 자의 반지
해를 가리는 자[LV 0] 별 떨구기[LV 0] 삼중 영창[LV 0]
능력치가 굉장히 큰 폭으로 올랐다.
기존의 세 배 이상.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높아졌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어디까지 강해졌는지 궁금할 정도다.
싸움에 관심도 없으면서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신일 때의 능력치란 말이지?"
"몸의 힘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을 거예요.
아저씨는 대리인이 되어 단련했으니까요."
열심히 단련한 기억은 없지만,
박서연이나 용사의 강함을 생각한다면 딱 노력에 걸맞은 수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시아가 멜브릿에 축적한 영혼 금고를 해방함으로써, 나를 키워주었다.
미치광이처럼 레벨업에 몰두하지는 않았다.
용사처럼 신념 아래 몸을 던져가며 담금질한 순수한 강함과도 거리가 멀다.
편하게 대충 얻어먹은 강함.
그래서 나랑 잘 어울린다.
"대리인 좋네.
신들은 왜 이런 방법으로 강해지려고 하지 않아?"
"흥미 없어서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빨리 강해질 수 있는데?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걸 알았는지, 시아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저씨. 공부 좋아해요?"
"싫어."
"공부 효율을 열 배로 만들어 준다고 하면, 학자가 되고 싶을 것 같아요?"
"아. 이해했다."
바로 그런 거였군.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필요하다는 굴레 없이, 순수하게 학업을 지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나도 신이었을 때 집을 짓고 원하는 대로 살았지.
어려운 세계로 가서 궂은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대리인 내세워 신경 써주는 것도 어지간히 사랑이 많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마신의 대리인이 되어서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라면 재밌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사람이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신은 웬만큼 강해서 더는 강해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재능도 권능 앞에서 빛바래지기도 하고……."
"하지만 시아는 처음보다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저는 부족했으니까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어요.
마법 실력도 훨씬 늘었고요."
시아는 가슴을 쭉 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귀엽네.
"믿음직해."
"이제 신성 기사 몇백 명이 몰려와도 문제없어요.
조화계 일은 맡겨주세요. 그리고 아저씨는……."
"마왕과 용사를."
"네. 맞아요."
"이제 돌아가자. 다들 기다리겠어."
오늘 밤은 파티다.
나는 시아와 함께 팔색 조개 성으로 돌아왔다.
마침 복도를 지나치는 셀레네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님. 준비 끝났습니다."
"다 모였어?"
"각자 방에 계십니다. 지금 바로 부를까요?"
"부르는 건 내가 할게.
먼저 식당에 가 있어."
"알겠습니다."
셀레네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품행이 단정한 메이드네요."
시아가 멀어지는 셀레네를 보며 말했다.
"눈에 띄어서 데려왔어. 젖가슴도 크고."
시아는 자기 가슴을 내려보았다.
"가슴……. 네리스가 부러워요."
"네 가슴도 충분히 크잖아?
네리스의 젖가슴은, 카렌 말고는 비교할 수 있는 애가 별로 없지."
"역시 가슴 큰 애 고를 거예요?"
"응?"
그 얘긴가? 오늘 밤 누구를 고를지.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면 안 돼요?"
"아직 안 정했어."
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누구를 고를 거냐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에 스친 건 있다.
그러나 아직 확신이 없다.
나한테도 미지의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결정을 미루고, 머리를 비웠다.
"밥이나 먹으면서 생각해보지. 뭐."
나는 방에 있는 여자들을 모두 식당으로 호출했다.
터치해서 끌어오는 식으로 조작하면…….
"됐다. 먼저 가 있자."
"네!"
식당은 1층에 있다.
시아와 함께 가는 중에 네리스와 마주쳤다.
네리스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끔한 모습으로, 박력 있는 젖을 출렁이며 꼿꼿이 서 있다.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나를 쓱 훑었다.
"시아 님. 안녕하세요."
"그래요. 네리스.
잘 지내고 있나요?"
"예."
네리스가 눈을 깜빡이고, 살짝 머뭇거린다.
"주군 덕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후후. 그래요."
"정식으로 인사하는 편이 좋을까요. 주군."
네리스는 날 똑바로 보며 말했다.
각 잡힌 긴장된 자세 덕분에 우리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느낀다.
"정식으로 인사하다니? 뭘?"
"당신을 기사로 섬기게 된 일. 섹스파트너라는 사실……."
"아아.
그거라면 나중에 모두 모인 곳에서 해줄래?
소개할 시간을 줄게."
네리스는 움찔했다.
"싫어? 그리고 기사가 아니지.
보지 기사라고 소개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나는 손을 뻗어 네리스의 젖가슴을 만졌다.
네리스는 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조물조물…….
"같이 가자."
"네."
세 명으로 늘었군.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맛있는 냄새가 난다.
초콜릿을 미각이 마비될 때까지 먹었는데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강렬한 냄새였다.
……그렇군.
고기인가.
나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더욱더 강렬해진 향신료와 먹음직한 냄새 때문에 뇌가 미친 듯이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스무 명은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은 널찍한 파티 테이블에 정확히 사람 수만큼 접시가 놓여 있다.
하나, 둘, 셋…….
눈어림으로 세면서 자리에 앉는다.
"주인님 왔어?"
벨라가 양팔에 음식을 나르면서 이쪽을 보았다.
"이게 다 뭐야?"
평소보다 조금 호화로운 만찬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좋은 의미로 기대를 아득히 웃돌았다.
"힘 좀 썼어.
요리는 두 사람이 하고, 나는 식자재를 구했을 뿐이지만.
앉아서 좀 기다려."
"좀 도울까?"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셀레네와 벨라가 오가면서 점점 테이블에 색이 채워진다.
파티 테이블을 삼등분해서 메인 디쉬는 총 셋이었는데, 그 엄청난 두께의 고기들은 보기만 해도 박력이 넘쳤다.
그보다 작은 접시는 빈틈없이 빼곡하게 테이블을 채우고 있다.
"엘린과 셀레네의 합작이야?
다 맛있어 보이는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싶어졌다.
"처음 쓰는 주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엘린 양이 도와주신 덕입니다."
셀레네는 자연스레 공을 주방에 있는 엘린에게 돌리면서, 차분하게 음식을 옮긴다.
"대단해요."
시아도 솔직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곧 이스티가 들어온다.
"이스티! 여기야."
셀레네가 내 옆자리 의자를 빼주었다.
이스티는 가벼운 묵례로 감사를 표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서로 마주 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거조의 영혼 고마워.
이스티가 고생해서 잡은 건데. 괜찮아?"
"달링이 써준다면 오히려 좋아."
"그런 놈을 잡았는데도, 자기가 쓰려는 생각은 안 했었어?"
"응. 딱히 관심 없었으니까.
거기에, 시아가 아니었으면 거조의 영혼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었을 거야.
멜브릿의 영혼병은 그릇이 너무 작아서 들어가지 않거든."
"……."
새삼 괴수의 영혼이 나한테는 과분했다고 느낀다.
그릇이 작다는 영혼병들로도 엄청나게 레벨업 했었는데.
"그걸 초콜릿으로 만들었단 말이지."
나는 시아를 쓱 봤다.
시아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미소 지었다.
"신의 영혼석도 만들었는데.
괴수의 영혼이 들어갈 틀을 못 만들면 이상하잖아요?"
시아의 전문 분야.
내가 맥없이 죽어버린 탓에 시아가 엄청나게 고생했다.
내 영혼과 권능을 지켜내고, 오랜 시간 내 기억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야.
나는 시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려다가,
머리카락이 너무 예쁘게 정리돼 있어서 관두고 손을 잡았다.
시아는 손깍지를 끼고 날 보며 웃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데.
"네리스는 왜 서 있어?"
네리스는 날 지키는 것처럼 배후에 서 있었다.
"기사니까요."
간단명료한 대답이다.
"여기서는 그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돼.
앉아."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네리스가 시아 옆에 앉았다.
셀레네와 벨라가 음식을 거의 다 날랐다.
향기로운 냄새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때맞춰 식당에 반가운 얼굴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멋지네요.
솜씨 좋은 요리장이 있다는 걸 알겠어요."
"온종일 훈련했더니 배고픈걸."
뱅가드 자매.
"현우 님~?"
보지 요정, 에페.
"맛있겠다! 이런 거 처음 봐."
"학생회장님도 여기에……. 으윽. 이상한 꿈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카렌과 스티아가 들어온다.
직접적인 친분은 없지만, 복색이 까매서 왠지 어울리는 둘.
베일 노아와 에카테리나도 왔다.
"데칼 님. 어디에 앉으면 좋을까요?"
"아무 데나."
암퇘지나 암캐는 사람처럼 앉을 수 없으니 바닥에 엎드려서 먹으라고 할까.
……상상만으로 해두자.
퍽 괜찮은 변태 짓이지만,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
"……."
에카테가 무릎을 꿇는다.
"꿀…."
"잠깐!! 에카테도 앉아. 사람 말해도 돼!"
시키지 않아도 하는 녀석이 있었어!
"어째서? 나는 데칼의 암퇘지인데."
심지어 되묻기까지!
"지금은 괜찮아.
사람처럼 말하고 밥 먹는 암퇘지여도 돼."
"……알았어."
에카테는 간신히 융통성을 발휘해서 의자에 앉았다.
엄청나게 긴 머리카락이 등받이를 다 가리고 있다.
"안 온 사람 있나?"
여신들은 다 모였고.
엘린은 주방에 있지. 열세 명 모였네.
한 사람 없다.
"셀레네."
"네. 주인님."
"밤색 머리카락에 회색 눈을 한, 귀여운 여자애 못 봤어?"
"헤르카 필리오테 양이라면, 30분 전에 성에 계신 걸 확인했습니다."
어, 그래?
내 호출을 못 받았나?
"주군. 제가 찾아볼까요.
헤르카가 어딨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네리스가 나섰다.
헤르카 일이니까 맡겨봄직하다.
"부탁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리스는 일어나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뭘 하려는 거지?
마력 반응은 아니지만, 낌새가 묘하다.
"나오세요. 헤르카."
식당 구석에 헤르카 필리오테의 모습이 드러났다.
좀 전까지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 마법 무효화를 쓰다니 비겁해!"
"정당하게 초대받았으면서 왜 숨어 있습니까."
상황을 보니,
헤르카는 몸을 숨기는 마법으로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나가는 방법을 찾다가 길을 잃었을 뿐이야."
"나올 때를 놓쳐버린 건 아니고요?"
"……."
"나가는 방법을 왜 찾아?"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데칼도 없고.
내가 올 데가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있으니 됐네.
헤르카. 앉아서 밥 먹자."
"그래도 돼?"
"안 될 게 뭐가 있어? 친구인데."
"……훗.
친구의 부탁이라니 어쩔 수 없네."
헤르카는 당당하게 걸어와 노아 옆에 앉았다.
"데칼 씨. 모두 모였나요?"
엘린이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다.
"지금 막.
너도 앉아."
"네! 지금 갈게요."
모두 다 모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