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최면물-232화 (232/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232편

    <--   -->

    깨끗이 몸을 씻고 나와서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셔츠와 바지를 골라 입는다.

    묵은 옷 특유의 냄새도 없고 언제나 청결해서 좋다니까.

    셀레네는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반대인가?

    셀레네 혼자서 성을 청소해야만 했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주인님은 나지만, 그녀는 사실상 성에 있는 모든 여성을 손님으로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넓은 성이라서 편의 기능이 없었으면 사용인이 더 많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오빠! 이따 봐!"

    "그래."

    나는 목욕탕 앞에서 카렌과 헤어지고 시아를 찾아 나섰다.

    시아는 성 주인의 방이 근처에 있는 4층 객실에 있었다.

    부르면 차원 마법으로 오겠지만, 여신님을 계속 부르는 것도 좀 그러니 이번에는 걸어서 가자.

    나는 직접 4층에 가서 방문을 두드렸다.

    "시아. 나야."

    "네!"

    안에서 밝은 목소리가 돌아온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약속대로 왔어."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로 갈까요?"

    "그래."

    무한의 정력을 얻으러……가 아니라,

    레벨을 올리러.

    나는 시아의 차원 마법에 몸을 맡겼다.

    세찬 바람이 살을 파고든다.

    우리가 이동한 장소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땅이었다.

    바람의 정령은 기뻐 날뛰고 있지만, 정작 나는 조난된 기분이다.

    내 안의 현대인 감성이, 압도적인 자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시아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 와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네.

    제가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보았던 풍경이에요."

    "아."

    그랬군.

    시아가 의식 세계에서 마주하고 있던 쓸쓸한 풍경.

    그게 바로 이곳이다.

    시아는 여기서부터 세계를 쌓아 올리기로 한 거야.

    나는 그것이, 여신이 되면서 그녀가 구제한 세계 중 하나일 줄 알았지만…….

    "시아는 어떻게 3급 신이 된 거야?"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불의 여신님. 벨라와 같아요.

    대리인을 지원하고 세계를 구제했어요."

    "대단하네."

    "저는 회의적인 편이에요."

    "세계를 구한 거?

    왜? 많은 사람을 구제했는데."

    "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근본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화계는 잘못된 순환에 빠져 있어요.

    애써 구제한 세계는 마신의 먹잇감이에요. 그들도 대리인에게 가호를 주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죠."

    "그런 구조였군."

    조화계 신들이 바로 잡으면,

    마신들이 날뛸 절호의 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대립하면서도 협력하는 것 같은 관계네.

    사이가 좋아질 수는 없지만, 어느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싸우는 것도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남자와 여자처럼. 달과 태양처럼.

    신들의 관계가 돌고 돈다는 걸 알았다.

    "네. 이제는 무뎌졌지만, 처음에는 욱했어요.

    애써 구원한 사람들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니까."

    "……."

    이 세계를 만들 때 시아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왜 굳이 멜브릿의 학생회장을 자처하며 균형을 잡으려 했을까?

    균형이 깨지면 예정된 파멸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왕군이 인류를 압도하면,

    상위 여신에게 엄청난 가호를 받은 대리인─나, 박서연, 용사─이 나타나서,

    마물들을 잡고 말도 안 되게 성장한 다음 마왕을 친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인류가 마물을 싹 밀어버리고 고도의 발전을 이룬다.

    그러면, 마신이 가호를 내리고 미친놈을 보낸다.

    …….

    잠깐.

    내 존재는 마신 쪽이랑 더 맞는 것 같은데?

    벨라가 경을 쳤겠군.

    "이상하게 생각한 적 있어.

    1급 신들은 그렇게 강대하다면서, 왜 서로 멀찍이 떨어져 보고만 있는지에 대해서."

    "상대를 멸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대로가 좋으니까…….

    니뮤엘 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프레미아가 손댄 세계는 몇 번인가 본 적 있어요."

    "어땠는데?"

    "……프레미아의 가호를 받은 괴물은 너무 강대해서, 반드시 세상을 끔찍한 지옥에 빠뜨려요.

    재앙이 따로 없었어요. 아저씨는, 그 괴물과 절대 만나서는 안 돼요."

    "……."

    무슨 괴물이길래, 그녀가 이렇게 겁에 질리는 것일까?

    "만나고 싶지도 않아.

    만날 일도 없잖아?"

    "그건 그래요.

    물론 아저씨는 도와줄 여신분들이 굉장히 많아서,

    마신들이 떼로 몰려와도 대응할 방법은 있어요."

    "그런 거였어?"

    "네. 헤벨과 페라토가 협력해주기로 했어요."

    오.

    여신 겁탈 때 만났던 유부녀 여신이랑, 증오의 여신 아냐.

    페라토가 보채던 건 아직도 기억한다.

    살아있었네. 다행이다.

    "무서운 거 없네.

    여차할 때 날 도와줄 여신이 그렇게 많다면."

    "아저씨!"

    시아가 드물게 엄한 태도로 말했다.

    "안 돼요. 마신들이랑 싸우는 건.

    프레미아의 괴물들에게 관심 두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걱정하지 마.

    예쁜 여신이라면 모를까. 괴물에 관심을 가지겠냐."

    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여기로 온 이유는 걸림돌이 없어서예요.

    아저씨의 힘을 신일 때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서. 제가 준비한 영혼들이 있어요."

    "진짜로?"

    "네. 그중에는 재앙 급 마수, '해를 가리는 로가웰의 거조'도 있어요."

    어디서 들어본 놈인데?

    "이스티가 잡은 녀석 아냐?"

    "맞아요. 거조의 영혼을 쓰는 건 이스티한테 허락받았어요.

    왕국 건립 이래 최악의 돌연변이였으니까요."

    듣기만 해도 겁난다.

    "이스티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네.

    근데, 그런 건 어쩌다 생기는 거야?"

    "마왕이 되려다 만 것들이에요.

    선대 마왕이 없었으면, 그것이 마왕의 자리를 차지했을 거예요."

    마왕은 필연적 존재라고 했었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게 태어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돼?"

    "꺼낼게요. 영혼을 흡수해 주세요."

    시아의 손에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강한 영혼병이 나올까. 몸이 자연스럽게 긴장한다.

    부탁한다. 정령아.

    "……흐읍!"

    시아는 귀여운 기합 소리와 함께, 손에서 예쁜 초콜릿을 꺼냈다.

    "여기요."

    "응?"

    "거조 영혼이에요."

    "이게?"

    "네."

    "영혼병은?"

    "……? 그런 거, 여신인 제가 쓸 리 없잖아요."

    와.

    지금 완전히 여신 같았다.

    하찮은 피조물의 상상력이 깨진다.

    아니, 스켈레톤 워리어 영혼 따위도 대신할 몸체로 들어가서 날뛰는데.

    얘는 무슨 재앙 급 마수 영혼을 초콜릿에 넣었냐.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만들어 봤어요.

    익숙하지 않아서, 쓴맛이 조금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수제 초콜릿이었어?"

    "네!"

    "이 정도면 방해받을 일도 없겠는데……."

    그냥 방에서 먹어도 됐던 거 아냐?

    나는 시아의 손에 있는 초콜릿을 집어서 입에 쏙 넣었다.

    냠.

    "앗. 아저씨! 조금씩 먹어야……."

    "구어억!!"

    온몸이 폭발한다아아!!

    초콜릿을 씹은 순간, 과장 하나 없이 몸이 터지는 줄 알았다.

    엄청난 열기! 식도를 태우는 것 같은 목 넘김!

    "우어어억! 우어억!"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이게 조금 쓴 거냐!"

    "그건 맛이 아니라 영혼의 거부 반응……."

    "시아가 날 독살한다!"

    "아앗! 아저씨가 거품을!"

    시아는 서둘러 마법을 사용했다.

    통증 억제 마법이었는지 급격히 안정을 되찾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가 눈 앞을 가릴 정도로 무수히 떠오른다.

    "후……."

    다 먹고 나니,

    정말 달콤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문제는 초콜릿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게 하는, 영혼의 몸부림이다.

    "확실히 황야로 오길 잘했네."

    "힘내서 다 먹어주세요!"

    "다?"

    시아는 초콜릿 보따리를 꺼냈다.

    그 보따리는 네리스 젖가슴보다 컸다.

    "아까처럼 강렬한 것들만 있지는 않겠지……."

    "지금 아저씨라면 평범한 초콜릿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걸 고려해도 이정도 양이나 되는 초콜릿을 다 먹을 생각 하니 벌써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힘들면 나눠서 먹어도 좋아요. 아저씨."

    "아니."

    나는 비장하게 말했다.

    "한 번에 먹겠어."

    정력 강화 퀘스트다.

    적당히 하면 남자가 아니지.

    "제가 옆에서 도와줄게요!"

    시아는 소풍 나온 것처럼 바닥에 보자기를 깔고 보따리를 펼쳤다.

    나는 앉아서 초콜릿을 먹는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맛이다.

    그때.

    내 눈이랑 입에서 엄청난 빛의 광선이 나갔다.

    "우오오!!"

    "꺄아악!"

    "우오옥!! 우오옷!"

    힘이 넘쳐흐른다!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전방 백 미터를 빛의 광선으로 태운 후에야, 나는 왜 황야로 왔는지 알았다.

    "생전에 한가락 하는 놈들로 만든 건 알겠는데.

    먹을 때마다 이래야 해……?"

    "아하하…….

    저도 이 정도로 반응이 격할 줄은……."

    "시아. 살짝 즐거워 보인다?"

    "……."

    시아는 눈을 돌렸다.

    다시금 초콜릿 산과 눈싸움 한다.

    잘 보니 모양도 맛도 전부 달라.

    ……시아가 애썼구나 싶었다.

    초콜릿에서 창의적인 맛이 안 나는 걸 감사히 여기자.

    "우오옥!"

    입에서 다이아몬드가 쏟아져 나온다!

    "그건……. 오스켈의 구두쇠 같아요.

    천 년 동안 땅을 파서 지각변동을 일으킨 마수예요."

    "……."

    "……어째 국가 자산을 다 나한테 박고 있는 것 같은데?"

    "아, 아저씨가 원정 나갔다가 다치면 안 되니까…….

    오히려 늦어서 죄송한 마음이에요."

    이러다 용사보다 세지겠다.

    아니, 어찌 보면 올바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게 맞는데.

    멜브릿은 용사 후보를 길러내려고 경험치를 모으는 곳이잖아.

    여신이 직접 여신의 대리인에게 먹여준다는데 문제 될 게 있을 리 없다.

    그 결과, 세계가 구해진다면.

    "이러다 무력으로 마왕도 때려잡겠어."

    나는 초콜릿을 입에 한 움큼 털어 넣으며 구시렁거렸다.

    "마왕이든 용사든, 존재하는 이상 무력으로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단지, 정말 어려운 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내가 바라는 건 뭐든지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최면 말이지."

    "네. 용사와 마왕은, 맞붙는 것이 숙명.

    그걸 평화적으로 깨뜨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면, 아저씨의 권능뿐이에요."

    평화적이라.

    용사도 마왕도 공평하게 내 정액받이로 만드는 게 과연 평화로운 일일까?

    서로 칼 꽂고 피 질질 흘리는 것보다는 평화적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는 차라리 전자가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물론, 그런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게 최면이다.

    카렌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최면 조교는 세상 어떤 도구로 하는 조교보다 강하게 사람을 일그러뜨린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고정한다.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좀 낯간지러운 질문인데."

    "뭐든 물어보세요."

    시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른 남신은 안 그런 것 같던데.

    내 정력은 왜 스탯이 오를수록 늘어나는 거야?"

    처음에는 육체 능력이 향상되면서, 신의 육체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헤벨의 남편을 보았을 때…….

    아니, 내가 그 부부의 관계를 본 건 아니지만, 헤벨의 말에 의하면 아콥은 시원찮았던 모양이고.

    시아도 말을 고르는 듯 헤매고 있었다.

    "음…….

    다른 남신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상되는 이유는 있어요."

    "예상되는 이유?"

    "아저씨의 정력은 타고난 거예요. 분명히."

    "……."

    "신이 되면 여러 가지 없었던 능력이 생기기는 하지만,

    육체는 사람일 때를 기초로 삼아요.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저씨가……. 스탯이 오를수록 본래 힘에 가까워지는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본래 힘?"

    "저, 정력이요."

    시아는 볼을 붉혔다.

    아무래도 노골적으로 하기 힘든 얘기지.

    "그럼,

    늘어나는 게 아니라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였구나."

    여신 겁탈 때,

    확실히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늘에서 알몸으로 강림해서 여신들 겁탈하던 시기.

    사실 나는 자지의 신이 아니었을까?

    9급 신에게 꾸밀 말 따위 없지만,

    솔직히 나도 내가 무슨 신인지 모르겠네.

    어쨌든 급을 올렸으면 추잡한 신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이거 먹었더니 갑자기 추운데?

    숨 쉬었더니 콧구멍 속에 서리가 낀다.

    덜덜덜.

    "아, '녹지 않는 얼음' 빙해 괴수 슬론이에요."

    "부, 부연 설명은 됐어.

    몸 데워줘."

    시아는 내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고생스럽군. 정말이지.

    "옆에서 보살펴 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시아는 방긋 웃는다.

    저 얼굴을 보면 불평하고 있을 수도 없지.

    "이것들 먹고 나면.

    레벨 오르는 거 말곤 아무것도 없어?"

    "유니크 스킬의 조건이 해금되었을 거예요.

    마음먹으면, 언제든 배울 수 있어요."

    "오.

    가장 쓸만한 거 알려주라."

    "로가웰의 거조는 마법 즉시 시전 · 유도 공격이에요.

    유니크 스킬은 해를 가리는 자……. 공격 마법을 써보세요."

    "파이어 애로우!"

    (유니크 스킬, '해를 가리는 자' 습득)

    (유니크 스킬, '별 떨구기' 습득)

    (유니크 스킬, '삼중 영창' 습득)

    "뭔가 많이 생겼는데.

    별 떨구기?"

    "말 그대로 유성을 낙하시키는……."

    "대체 이 나라 모험가들은 뭐랑 싸운 거야?"

    "그래서 다이아몬드 등급은 7명이 다 있을 때가 드물어요.

    부상 때문에 몇몇이 금방 공석이 되고…….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해서."

    삼중 영창은 뭐지.

    나는 파이어 애로우를 영창 없이 시전해봤다.

    마법을 즉시 시전하는 '해를 가리는 자'와 더불어, 파이어 애로우가 동시에 세 개까지 내 몸 주위에 생겨났다.

    생각한 곳에 날린다.

    파이어 애로우가 즉시 날아가 꽂혔다.

    엄청난데. 마법 활용이 전이랑 비교할 바가 아니다.

    "내 노력은 정말 별거 아니었네.

    신들이 도와주는 게 최고잖아?"

    나는 치트에 맛이 들어버렸다.

    마○ 부우의 마음으로 초콜릿을 마구 집어 먹었다.

    삽 가져와! 삽!

    ========== 작품 후기 ==========

    프레미아는 촉괴에 나오는 그 여신이 맞습니다.

    촉괴가 연중된 아쉬움을 설정 풀이로 약간이나마 해소하려는 제 욕심이고

    촉괴 몰라도 아무 지장 없는 내용입니다.

    아는 사람만 깨달을 수 있는 약간의 재미 요소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ㅎㅎ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