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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210화 (210/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2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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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탄처럼 터진다고? 나는 바로 곁에 있는 헤르카를 안았다.

    "으앗!?"

    "이스티! 네리스는 맡긴다!"

    "응…!"

    노아는 카렌과 스티아를, 나는 헤르카와 디아나를 양팔로 들고 뛰었다.

    헤르카의 드론, 검은 까마귀가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부상자를 드론에 태우고 헤르카와 함께 올라간다.

    "노아! 여기야."

    나는 노아의 손을 잡아서 끌어당겼다.

    이스티는……! 다행이다. 이스티의 발은 드론보다 훨씬 빨랐다.

    모두 안전한 걸 확인한 후 강당을 다시 봤을 때.

    무색 폭발과 함께 소리가 지워졌다.

    엄청난 폭발이다. 눈을 뜰 수 없었다.

    헤르카와 함께 보호막을 쳤는데도 살갗을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충격파는 폭풍우를 동반한 거센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어닥쳤다.

    겨우 여파가 잠잠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눈을 의심했다.

    폭심지에 있는 건 마물화한 서연뿐이었다.

    다른 건 모두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거대한 파괴의 흔적이 구덩이라는 형태로 남아있을 뿐.

    그 폭발 속에서 서연만이 멀쩡히 서 있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그 아름다운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하얀 나신을 드러낸 악마.

    검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른다.

    "아아! 안 움직여!"

    헤르카는 검까를 잡고 울먹였다.

    "어떻게 만든 건데!"

    "헤르카. 노아. 도망쳐야 해!"

    나는 헤르카를 잡고 일어났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안 돼. 도망쳐야 해!"

    "하지만……."

    누가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나도 알고 있어……!

    저런 걸 잠깐이지만 가엾게 생각했다니, 내가 미쳤지.

    생각할 시간도 없다. 날개까지 단 서연은 지옥 끝까지 날 따라올 기세였다.

    나를 따라온다고?

    나는 헤르카를 내려놓고 뛰기 시작했다.

    "서연이 노리는 건 나야! 나한테서 떨어져!"

    "데칼 님!"

    "데칼. 그러면 네가 위험하잖아!"

    내가 노아 일행에게서 멀어지니까 예상대로 서연은 방향을 수정해서 나한테 접근했다.

    좋아! 이제 어쩌지?

    좆 되는 일만 남은 것 같은데!

    "데칼!"

    이스티의 목소리다.

    나는 하늘을 봤다. 한 명이 천 발을 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천 개의 화살이 서연을 공격한다. 서연은 속도를 늦추고 측면으로 빠져나가면서 최대한 화살을 흘려보내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이것이…… 다이아몬드급 헌터의 실력.

    날아다니는 재앙을 떨어뜨렸던 이스티의 진면목이다.

    이스티는 공간 도약으로 나를 따라붙었다.

    "달링. 내가 지킬게! 계속 뛰어!"

    이스티는 화살을 장전하고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서연은 아래에서 또 화살이 날아올 줄은 몰랐는지 그대로 공중에서 화살을 무더기로 맞고 추락했다.

    "잘한다. 이스티!"

    "아직이야!"

    서연은 마력 폭발로 화살을 떨쳐내고 다시 속도를 높였다.

    "뭐야, 저게!"

    "급소를 쏴야 해. 데칼은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그래!"

    이스티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이스티!?"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지 마!"

    이스티는 붉은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그러자 서연은 바로 정면에 존재하는 자신의 방해물을 인지하고 손에 검은 구체를 만들었다.

    그것은 에카테리나가 시전했던 마법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크기도 규모도 차원이 달랐다. 저것은 멜브릿을 박살 내고도 남을 정도였다.

    나는 멈춰서서 이스티를 돌아봤다.

    "이스티!"

    "……."

    뭘 마음대로 죽음을 각오하는 거야…!

    "엘프의 맹세. 여기서 지켜야 할 때……."

    이스티는 홀로 중얼거리며, 붉은 화살을 걸고 마력을 집중한다.

    "기다려!"

    안 돼. 너무 늦었다.

    이것이 내 업보인가?

    서연은 내 죄를 심판하러 온 필연적 존재인가?

    아니……!!

    그런 인과 따위, 좆 까라고 해!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만은, 인정할 수 없어!

    "시아!!"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창이 되어, 감옥이 되어, 서연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서연이 손에 응축한 검은 빛은 갈 곳을 잃고 뿜어져 나와 지면을 도려내면서 나한테 빗발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몸이 찢기는 고통을 각오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님. 뭐해?"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불의 여신이 내 앞에 나타났다.

    "벨라…!!"

    "얼마나 큰 사고를 쳤으면 신이 나서야 수습이 돼? 어휴……."

    "벨라!"

    나는 벨라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아이참."

    "이스티!"

    다가온 이스티도 같이 안았다.

    "다행이다. 이스티. 무사해서."

    "달링!"

    "안심하긴 일러."

    벨라는 내 손을 떼놓았다.

    "아, 서연이 마물화해서, 엄청나게 강해졌어."

    "그건 문제도 아냐.

    이건 간섭 정도가 지나쳤어. 시아와 내가 필요 이상의 신격을 발휘했기 때문에 마신들이 올 거야."

    "마, 마신들?"

    "자칫하면 이 세계가 신들의 전쟁터가 될 수도 있어.

    그래서 가급적이면 나설 일이 생기길 바라지는 않았는데……."

    맞아…….

    벨라가 왜 진작 나를 도와주지 않았겠어?

    세상에는 니뮤엘의 신들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신들을 고깝게 생각하는 프레미아의 신들도 존재한다.

    마신들…….

    마신들이 이 세계에 난입하면, 끔찍한 살육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에 비하면 서연이 일으키는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요."

    시아가 차원 마법으로 내 곁에 나타났다.

    "시아!"

    "아저씨!"

    시아는 내 품에 안겼다.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게 무슨 소리야?"

    "방금 마법은 제가 쓴 게 아니에요."

    "어?"

    "응?"

    벨라와 나는 동시에 시아를 돌아봤다.

    "불의 여신님……. 벨라 씨말대로, 제가 섣불리 신격을 발휘해서 강한 마법을 사용하면

    마신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들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신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 해낸 일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죠."

    "설마……."

    나는 서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엎드려 허덕이고 있는 서연의 뒤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떠한 마법 보호도 느낄 수 없는 빈틈 없는 갑옷 차림.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투구.

    한 손에 쥔 예리한 도검.

    내 상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겉멋도 없고, 기품도 없고, 어떤 성스러운 가호나 위광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기에 나는 저 자가 용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꽁꽁 싸매고 있어서 남잔지 여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 검을 들고 홀연히 나타나,

    빛의 여신이 한 일이라고 착각하게 할 정도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용사밖에 없다.

    나는 숨죽이고 지켜봤다.

    서연은 힘겹게, 자신의 날개를 관통한 빛의 창을 손으로 빼내고,

    피를 뚝뚝 흘리며 일어났다.

    용사는 뚜벅뚜벅 서연에게 다가가, 검을 쥔 채 짤막하게 말했다.

    "인간인가. 마물인가?"

    "……."

    서연은 대답하는 대신에 작두를 휘둘렀다.

    옷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들고 있었구나.

    용사의 칼날은 뒤늦게 움직였는데도 먼저 서연의 몸을 벴다.

    피가 지면에 후드득 튀었다.

    "마물인가."

    "아, 아아……."

    그 터프한 서연이 칼질 한 번에 치명상을 입고 주저앉았다.

    그녀는 죽음을 예감한 듯 이쪽을 보았다.

    …….

    용사의 칼날이 서연의 머리 위로 드리운다.

    "오빠…."

    서연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용사의 손이 멈췄다.

    서연은 그 틈에 상처 입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기 시작했다.

    나한테 오려는 건가?

    아니…….

    서연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용사는 칼을 거두었다.

    "큿!"

    나는 날아가는 서연에게 손을 겨누었다.

    용사가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

    내가 죽인다.

    "불의 종언!"

    내가 쏜 열선은 서연의 날개를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 안 돼.

    맞힐 수 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쏜 거지?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

    "달링……?"

    이스티는 의아한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상처 입은 서연을 죽일 수 없어.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빗나간 거야."

    "……."

    이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러 와줘서 고마워. 벨라."

    "…윽! 결과적으로, 필요 없는 도움이었잖아."

    벨라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언성을 높였다.

    "시아! 그런 계획은 나랑 공유해.

    후다닥 뛰어온 나만 바보가 됐어."

    "어머나."

    시아는 미소 지었다.

    "멋있어요. 벨라 씨.

    아저씨를 지켜줘서 고마워요."

    "으, 으긋……! 돌아갈래!"

    벨라는 차원 마법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귀여운 녀석.

    "시아. 에카테리나는 어떻게 됐어?"

    "팔색 조개 성에 가둬놓고 왔어요.

    적은 멜브릿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성도를 함락할 계획이었어요."

    "진짜?"

    엄청난 대작전이잖아. 그거.

    "밖에 주둔군이 있었는데, 아. 지금은 없어요."

    "괜찮은 거야?

    벨라 말로는, 네가 신격을 발휘하면 마신들이 눈치챈다고……."

    "주둔군은, 발각 위험을 낮추기 위해선지 규모가 적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힘으로 정리할 수 있었어요.

    벨리사한테 정보를 살짝 흘리기도 했고."

    "벨리사……."

    용사의 이름이다.

    "오늘 용사가 오는 날이었구나. 시아.

    그래서 멜브릿이 지켜질 거라고 한 거였어. 맞지?"

    "제가 간과한 건……. 그 날개 단 여성의 존재였네요.

    붉은 영혼석으로 저렇게까지 각성하다니,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어요.

    반쯤은 마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정말로?"

    "신격이 없고 저렇게 다친 이상, 아주 거창한 일은 못 하겠지만……."

    역시 죽이는 게 맞았나…….

    아니, 방금 걸로 내 솔직한 마음을 알았다.

    이제 박서연이 죽어가는 걸 보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아.

    박서연을 제정신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고 싶다.

    에페와 한 번 더 진중하게 얘기를 나눠보자.

    어쩌면, 그녀를 아군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에요."

    시아는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응?"

    "아저씨가 무사해서요."

    "노린 거 아니었어?"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위험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범인 잡으러 안 갔어요.

    이쪽이 훨씬 안전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거기서 박서연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미리 설명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어."

    그래.

    왜 시아에게 진작 말하지 않았을까.

    날 쫓아다니는 미친년이 있다고.

    막연히 나와 주변 사람들 힘으로 충분히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별로 말하고 싶은 얘기도 아니다.

    "데칼. 그 여자, 누구야?"

    이스티가 물었다.

    시아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설명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 최면으로, 미쳐버린 여자야.

    내가 없으면 불행해진다는 최면에 걸려서……."

    "그랬, 구나…."

    이스티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 다물었다.

    "내가…….

    나한테 방해될 것 같아서 일방적으로 죽이려 한 거야.

    돌이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다시 최면을 걸면요?"

    "서연은 미쳤어. 최면이 걸리지 않아."

    "흐음…….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안정된 상태?"

    "아저씨의 권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어요.

    걸리지 않는다면 조건이 맞지 않을 뿐.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면 조금 제정신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요구……."

    항상 칼 들고 덤벼서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서연이 진정 바라는 건 뭘까.

    전에는, 내 여자들을 죽이고 창자를 흩뿌린 후, 그 위에서 사랑을 얘기하자고 했던 것 같은데.

    …….

    안 되겠다.

    살려준 게 후회되기 시작했어.

    아니, 그냥 그 일 자체가 나의 후회야!

    이랬다. 저랬다. 미치겠네!

    "이 얘기는 다음에 하자."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에페한테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어야겠어.

    "어쨌든,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달링도……."

    이스티는 울먹거리며 내 손을 꼬옥 잡았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스티.

    보다시피, 나는 여신들에게 과보호 받고 있어.

    다시는 그런 식으로 네 목숨을 걸려고 하지 마. 알았어?"

    "엘프의 맹세니까……."

    이스티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뚝."

    "흑……."

    누구 마음대로 죽으려고 해.

    정말 화났는데, 날 진심으로 걱정하며 눈물 흘리는 이스티를 보고 있으니 나무라기도 그랬다.

    나는 이스티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했다.

    "진정했어?"

    "응."

    "이제……."

    나는 용사 쪽을 보았다.

    용사는 멀어지는 서연을 먼 산 보듯 바라보며 서 있었다.

    "벨리사와 얘기해봐요. 아저씨."

    "내, 내가?"

    "용사님은 좋은 분이야. 데칼도 좋아할 거야."

    시아가 나를 떠밀고, 이스티가 나를 이끈다.

    나는 쭈뼛쭈뼛 용사에게 다가갔다.

    용사는 이쪽을 발견하고, 투구를 벗었다.

    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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