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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209화 (209/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20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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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쪽으로 오기 위해 단숨에 뛰어올랐다는 건 조금 뒤에 알았다.

    네리스는 창대를 크게 휘둘러 추락하는 서연을 받아쳤다.

    "하앗!"

    잘했다. 네리스!

    서연은 어디로 갔지? 눈으로 궤적을 쫓는다.

    튕겨 나간 것 같지는 않은데…….

    "차, 창 위에…."

    카렌이 믿기지 않는 듯 서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연은 네리스가 휘두른 창대 위에 서 있었다.

    "무슨……!"

    네리스는 놀라서 벌레 쫓듯이 급하게 창을 휘두른다.

    서연은 사뿐히 공중 한 바퀴를 돌고 흑마의 목 위에 쪼그려 앉더니, 작두를 횡으로 휘둘렀다.

    네리스가 위험하다……!

    그 순간에 누구보다 빨리 대응한 건 이스티였다.

    이스티는 공간 도약으로 네리스와 서연 사이에 끼어들어, 작두를 짓밟아 억누르고 활을 서연의 미간에 겨눴다.

    "빠르네."

    서연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 거리로 들어와 주다니……. 기뻐."

    "이스티…!"

    아무리 너라도 근접전은 위험해……!

    말로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흑마는 몸을 일으켜 포효한다. 네리스가 고삐로 말머리를 통제하며 창을 바로 잡았다.

    내 시선은 공중으로 떠오른 둘을 보고 있었다.

    이스티는 자세도 잡지 않고 즉시 연발 사격해서 서연을 쏘아 맞혔다.

    서연은 당연히 작두로 화살을 쳐냈지만, 충격으로 튕겨 나갔다.

    네리스가 고삐를 당긴다. 이제 막 착지하려는 서연을 향해, 그녀가 돌격했다.

    보호 마법이 걸린 건물 벽을 날려버렸을 정도의 돌격이다.

    아무리 서연이라고 해도, 맨몸으로 맞설 수는 없어.

    서연은 몸을 크게 낮추더니 돌격하는 흑마의 배 밑을 사선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면서 흑마의 배를 작두로 갈라버렸다.

    "아하핫!"

    흑마는 내장을 쏟으며 쓰러지고, 네리스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윽……!!"

    네리스는 서둘러 낙법을 취했지만, 서연은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네리스가 외쳤다.

    "조심해요.

    적은 데칼을 노리고 있습니다!"

    "아하하하!"

    서연이 뛰기 시작했다.

    이스티의 견제사격. 눈으로 셀 수도 쫓을 수도 없는 무수한 화살 비가 서연을 추적한다.

    서연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폭발적인 주력으로 화살을 따돌리면서 단숨에 이스티에게 육박했다.

    "……큿!"

    이스티는 활대를 들어 작두 공격을 막아냈다.

    네리스의 공격은 정령의 도움 없이 한 손으로 대수롭지 않게 막아냈던 그녀가.

    바람의 정령까지 사용하면서 방어에 급급하다.

    그 작두 휘두르기는 그만큼 통렬한 일격이었다.

    언제 저렇게 힘을 길렀지? 불가사의할 정도다.

    아무리 용사나 나와 같은 여신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 세계에 왔다지만, 마물 떼를 통으로 갈아서 마셨는지 서연의 움직임은

    전이랑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데칼을 해치게 둘 수는 없어…!"

    "아핫. 현우 오빠를 향한 내 사랑을, 이런 빈약한 활로 막아낼 수 있을 줄 알았어? 귀엽네."

    이스티는 한 손으로 화살을 꺼냈다.

    그 순간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작두가 활기를 되찾는다.

    서연이 자세를 잡고 작두를 재차 휘두른다.

    찰나의 순간.

    이스티는 몸을 비틀어 서연의 작두를 피하면서 동시에 화살을 쏘아 반격했다.

    근접 격투 중에 쏘아진 화살은 서연이 회피할 틈도 없이 그녀의 허벅지와 가슴팍을 관통했다.

    아니, 관통한 것처럼 보였다.

    이스티의 화살은 마물의 단단한 육체에 바람구멍을 뚫는다.

    그런 화살을 인간이 몸으로 맞았는데 멀쩡할 리 없다.

    그래야 했는데.

    서연은 화살이 박힌 채로 멀쩡히 움직였다.

    오히려 작두를 다시 휘둘러 이스티를 공격했다.

    "읏……!"

    작두가 이스티의 머리를 가르기 직전.

    이스티는 공간 도약으로 빠져나갔지만,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이스티를 돌아보지 않는다.

    서연은 눈앞의 적을 죽이는 데 관심이 없다.

    그녀는 허벅지와 가슴팍에 박힌 화살을 손으로 비틀어 빼면서, 나한테 달려들었다.

    "오빠!"

    "데칼. 뒤로 물러나.

    적이 노리는 건 너야…!"

    스티아와 카렌이 내 앞으로 와서 검을 빼 들었다.

    윽, 안 돼.

    두 사람을 죽게 둘 수는 없어……!

    서연이 아직 가까이 오기도 전에 작두를 휘두른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봤기 때문에 겨우 눈에 익었다.

    나는 내 정령의 모든 힘을 발휘해 보호막을 쳤다.

    "악……!"

    카렌과 스티아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보호막을 쳐서 막았는데도 여파만으로 이 정도다. 이런 걸 어떻게 활로 막았냐. 이스티는……!

    "라이트닝 스퀘어!"

    디아나의 마법 공격……!

    서연은 보지도 않고 손으로 전깃불을 잡아서 꺼트렸다.

    "소, 손으로…!"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서연은 마법을 휙 던져 디아나에게 되돌렸다.

    "꺄……!!"

    디아나는 한 번에 제압당해서 뒤로 쓰러졌다.

    위험해.

    상황 판단이 따라가지 못해. 지금까지 십 초는 흘렀나?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폭풍을 보고 아연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현우 오빠. 오랜만에 만나서 기뻐……."

    "큭……! 불의 종언…!"

    서연은 내가 쏜 마법을 춤추듯 피하면서 다가왔다.

    "기뻐. 기뻐. 기뻐."

    으, 으윽……!

    내 마법은 애들 장난이라는 건가?

    분명히 같은 여신의 대리인인데. 이 정도 차이가 벌어지다니…….

    용사가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게으른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실하게 했다고 저걸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절대 무리다.

    서연의 강함은 의욕이나 성실함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

    표현하자면 광기. 박서연은 내 권능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미쳐 있다.

    이미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벗어났다.

    나는 두려워서 못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멈추세요."

    노아…!!

    노아는 쓰러진 세 사람을 돌보고 있었다.

    머리는 다치지 않았는지, 기절하면서 혀가 목 뒤로 넘어가지는 않았는지.

    그러면서도 마치 서연이 어디까지 접근했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히 최후통첩을 고했다.

    말 한마디에 이런 위압감이라니.

    노아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서연이 발을 멈췄다.

    "한 발자국 더 다가오면 처형하겠습니다.

    내 눈앞에서 후보생을 해쳤으니,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

    어느새 일어난 노아의 손에는 검은 통파가 쥐어져 있었다.

    "데칼 님. 안심을.

    범죄자를 사로잡는 일은 제가 적임입니다."

    서연이 작두를 꽉 쥐었다.

    그것을 신호로 노아가 움직였다.

    노아가 휘두른 통파가 검은 궤적을 남기고 서연의 머리에 꽂혔다.

    서연은 작두를 들어서 막았지만, 이번에는 꽤 아슬아슬했다. 서연의 작두가 떨리고 있었다.

    "장난감 여자들이 많이 늘었구나. 오빠.

    하지만 소용없어. 오빠의 참사랑은 나인걸. 나만이 오빠를 지켜줄 수 있어. 나만이 오빠를 사랑할 수 있어.

    이건 시련인 거야. 내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시련.  우후후. 아하하!"

    서연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머리에 든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이 시련을 극복하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가 되는 거야. 나는 오빠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런 짓 그만둬!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 박서연!"

    어쩌면 구슬릴 수 있을지도 몰라.

    에페도 그런 식으로 말했잖아.

    박서연과 맞서 싸우는 게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로 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게 너무 싫었다.

    "오빠는 날 못 믿는구나?

    좋아. 먼저 이 여자의 창자를 쏟아내서 증명해 보일게. 오빠를 지켜낼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라는 걸!"

    그때.

    지면에서 솟아난 빛의 창이 서연의 배를 강타했다.

    서연은 투석기로 쏘아낸 돌처럼 날아가서 강당 벽에 처박혔다.

    지금 그 마법은……?

    "듣자 듣자 하니까. 너무 설치는 거 아냐?"

    "헤르카…!"

    "협력하기로 했으니까. 호위 정도는 서비스로 해줄게.

    이 천재 소녀가 철벽 선배와 함께 하는 이상……."

    "헤르카 님."

    노아가 헤르카의 말을 끊었다.

    "옵니다."

    "……!"

    서연이 뛰어올랐다.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다릿심으로 해낸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서연은 허공을 박차고 별똥별 떨어지듯이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나의 선. 나의 힘.

    이것은 뿌리를 차단하는 힘일지니!"

    헤르카가 노아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쳤다.

    기초 수업으로 배우는 마법 보호막을 수만 개는 겹쳐 씌운 것 같은 농밀한 방어막이었다.

    서연은 그것을 몸으로 돌파해 유리창 깨부수듯 박살 내고 노아를 작두로 내려찍었다.

    "흐읍!"

    노아는 숨을 들이 키고 통파를 들어서 작두를 막았다.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무언가 폭발한 게 아니다. 무기와 무기가 부딪쳤을 뿐인데 지면이 흔들려, 주저앉았다.

    바닥이 꺼졌다.

    노아가 서 있던 지면은 진짜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움푹 팼다.

    서연의 작두가 울부짖는 것처럼 보인다. 도저히 내가 끼어들 싸움이 아니었다.

    최소 헤르카 수준은 되어야 저 싸움을 도울 수 있다.

    내가 해봐야 노아의 집중을 깨뜨릴 뿐이다.

    "집행. 시작하겠습니다."

    노아는 통파로 서연의 배를 강타했다.

    "윽!?"

    서연은 큰 충격을 받고 바닥을 뒹굴었다.

    노아는 뒤따라가서 서연을 일방적으로 두드려 팼다.

    서연은 자기 몸을 전혀 돌보지 않기 때문에 맞으면서도 작두를 휘둘러 반격에 나섰지만,

    노아는 마치 서연의 행동을 모두 예상한 것처럼 한 수 앞선 움직임으로 작두를 차단하고 서연의 머리를 깨부술 기세로 통파를 휘둘렀다.

    압도적인 전투기술이다.

    범죄자를 잡는 일은 자신이 적임이라는, 노아의 자신감은 허세가 아니었다.

    마물을 잡는 일이면 몰라도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일이라면.

    노아의 통찰력은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한다.

    미쳐 날뛰는 광기마저 베어버리는 날카롭게 벼린 검.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앞서 생각하기에, 격투에서 서연을 웃돌 수 있다…!

    "윽, 아……!"

    서연은 피를 쏟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몸을 떨고 있는 걸 보니 피해가 상당히 심한 것 같았다.

    "끝입니다."

    노아는 짤막하게 내뱉고 통파로 서연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틀림없는 살수였다.

    "현우, 오빠……. 우……."

    ……큭.

    나는 손을 꽉 쥐고 고개를 돌렸다.

    박서연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쳤다. 노아가 죽이게 두는 것이 나아.

    말도 안 통하고, 살려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나는 같잖은 정의감이나 동정심을 발휘해서,

    내 여자들 모두 죽게 할 위험을 안고 갈 용기는 없었다.

    "윽!?"

    노아의 공격이 빗나갔다.

    정확히는 서연이 피했다. 서연은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리면서 노아에게 매달렸다.

    그저 최후를 잠시 미룰 뿐인 발악이었다.

    노아는 동요하지 않고 다시 서연을 때려눕힌다.

    서연은 계속 다시 일어났다.

    자기 피로 미끄러져서 고꾸라지면서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박서연. 그만해!"

    나는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

    "오빠……. 날 걱정하는 거야?"

    "……."

    노아의 통파가 서연의 목을 으깼다.

    "헉, 끅……!"

    말을 할 수 없게 된 서연의 머리 위로, 검은 번개처럼 노아의 일격이 내리꽂혔다.

    서연은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서 있는 방향을 기억하고 이쪽으로 기어 오려 하고 있었다.

    "……그만 봐."

    헤르카가 중얼거렸다.

    "마음에 남겨서 좋은 거 없는 광경도 있어."

    "……."

    그래. 죽게 두기로 했다.

    서연의 목숨을 위하는 척 말하는 것도 우습네.

    그저 더는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노아는 결정타를 꽂기 위해 통파를 높이 들었다.

    그때, 서연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헤르카였다.

    "철벽 선배! 물러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노아는 헤르카의 조언을 듣고 물러났다.

    이 세계 사는 마법사들 정도로 마법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나도 헤르카가 느끼는 것과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서연의 마력 반응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새까만 바람이 불어 올랐다.

    "헤르카 님! 무슨 일입니까?"

    "저 녀석, 인간을 포기했어……. 마왕의 영혼석을 먹은 거야!!"

    "붉은 영혼석이 있었단 말입니까? 어디에…!"

    "바닥에 널려 있었어. 종선자들을 강화할 수단이었겠지. 그래서 바닥에 엎드렸던 거야!"

    서연의 한쪽 눈이 붉게 타올랐다.

    검은 폭풍과 함께 등에서 솟아난 한 짝의 검은 날개.

    "마물화한다!

    장난 아냐! 이미 마왕급이야!"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결정타를…!"

    "안 돼! 철벽 선배. 부풀어 오른 마력이 폭탄처럼 터질 거야.

    생존자들을 데리고 도망가야 해! 지금 당장!"

    헤르카가 급박하게 소리쳤다.

    ========== 작품 후기 ==========

    전편 오타 수정. 스티아를 틸리아라고 썼네요.

    틸리아는 해당 편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혼동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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