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20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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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리스는 집행관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위기 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대기해주세요."
"시아 님.
지금이라도 후보생들을 모아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리스의 제안은 적절했다.
지금은 다들 학교 내에 퍼져 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면 대처가 늦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게 오히려 상대가 바라는 일일 수도 있어."
시아와 네리스가 나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후보생들 사이에 폭발물이 있을지도 몰라. 혹은 후보생으로 위장한 마물이나."
"근거는 있습니까?"
"인간 행세하는 마물을 여럿 잠입시키는 건 어렵지만, 우수한 마법사 한 명이 겉모습을 위장하는 거라면 어렵지 않다고 해.
현재 멜브릿에는 멜브릿의 관리 시스템이 포착하는 인원보다 더 많은 수의 마력 반응이 있어.
헤르카의 의견을 듣기 전까지, 사람을 모으는 건 위험해."
"……."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리스. 데칼 후보생 말대로 해요.
그는 특별 조사원이니까요. 이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전투 준비하겠습니다. 시아 님. 제 무장을 허가해 주세요."
"허가합니다."
네리스가 학생회실을 떠난 후, 나는 시아와 단둘이 남았다.
"특별 조사원이니까……라.
말은 잘하네. 나는 우연히 알았을 뿐이야."
"이럴 때 점수 벌어두는 거예요.
네리스, 분명히 아저씨를 다시 봤을 거예요."
"그래서. 이제 나는 어쩌면 되지? 바로 헤르카 만나러 가면 돼?"
"네. 멜브릿에 아저씨를 방해할 사람은 없어요.
헤르카를 만나서 조언을 듣고,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움직여 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한다?"
시아는 싱긋 미소 지었다.
"복잡한 일은 제게 맡기세요. 저는 아저씨의 시종이니까."
그때였다.
"꺄아악!"
"마물이다!"
"어디서 나타났지?!"
나와 시아는 눈을 마주쳤다.
"시작됐네요.
누구 솜씬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깜빡 속았어요."
"시스템의 허를 찔렀어. 나도 노아가 아니었으면 이상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을 거야."
"아저씨 주변에는 대단한 여성분이 많네요."
"너도 포함이야.
일단 궁금해서 질문하는 건데, 이제부터 어쩔 생각이야?"
"방금 에카테리나의 위치를 알아냈어요.
저는 차원마법으로 범인을 사로잡고, 인질을 구출할게요."
……알아냈다고?
학생회실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돼? 사기 아냐?"
시아는 귀엽게 입술을 내밀었다.
"사기라뇨. 제가 사기꾼 같잖아요."
"아니…….
뭔가, 중간 과정을 건너뛴 것 같아서."
"사기라는 소리 들어도 저는 할 거예요.
아저씨를 위해서라도, 멜브릿이 공격당하게 둘 수는 없어요.
여기가 무너지면, 인류는 단숨에 세계의 구석까지 몰리고 말 거예요. 온갖 장소에서 겁탈과 살인이 일어나고……."
"요컨대, 망한다는 거지?"
"네.
아저씨가 마왕과 용사를 손에 넣을 때까지는, 멜브릿이 무너져서는 안 돼요.
상대가 벌려놓은 일이 있는 만큼, 저 혼자서는 수습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렇겠지.
나라고 해서 피해 규모를 정확히 알아낸 것도 아니다.
시아는 지금부터 문제의 핵심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야.
아무리 차원 마법으로 어디든 오갈 수 있는 여신이라고 해도 시간이 걸리겠지.
내가 그녀의 수고를 좀 덜어주고 싶었다.
"여긴 맡겨 줘."
시아는 예쁘게 미소 지었다.
"맡길게요. 아저씨.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요. 멜브릿은 지켜질 테니까."
뭔가 의미심장한 말투였다.
자신의 힘 말고도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밖에서 기합 소리가 들렸다.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았다.
"시아. 또 보자!"
"네!"
집행부. 집행부가 어디지?
멜브릿에 있는 시설은 대부분 다 가봤다.
그래서 반대로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고르면 정답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복도를 내달렸다.
타이밍 한번 끝내주네.
학교 전체에 마물이 나타났다.
이게 에카테리나의 노림수였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피해 규모가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면 멜브릿에 있는 건 용사 후보생.
비전투 인원조차도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처는 신속하다.
마물들은 저마다 다르게 생겼지만 공통된 특징으로 검은 물체가 녹아서 형상을 이룬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까맣다고 해도 아주 새까맣지는 않고 약간 보랏빛 기운이 감도는 특징이 있었는데,
그건 에카테리나가 마법을 쓸 때 나는 색채와 아주 유사했다.
그녀의 마법이, 멜브릿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검은 인형 괴물들이 후보생들을 덮친다.
"큭!"
나한테도 달라붙길래 힘으로 떨쳐냈는데, 오싹했다.
순발력이 엄청나잖아. 훈련용 영혼병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다.
하나하나 상대하고 있으면 움직일 수 없겠어!
나는 바람의 정령을 불러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를 기다리고 서 있는 마물들을 뛰어넘고, 틈새로 빠져나가면서 질주한다.
본관 밖으로 나왔을 때, 어딜 가도 그런 검은 생물체뿐이었다.
"데칼!"
"오빠!"
스티아와 카렌이 보였다.
두 사람은 검을 들고 액체 괴물과 싸우는 중이었다.
"불의 종언."
나는 두 사람이 상대하고 있는 마물을 종언으로 날려버렸다.
바람의 보호막으로 압축된 열기가 작열하는 선을 긋고 괴물들의 몸체를 꿰뚫는다.
여파만으로 액체 괴물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스티아와 카렌은 검을 거두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카렌. 스티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데칼은?"
"보다시피 멀쩡해."
"오빠. 무슨 일이야? 갑자기 마물들이 솟아 나와서……."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안심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회장이 움직였어.
나는 지금부터 그 학생회장의 지시로 헤르카를 만나러 갈 거야."
"헤르카……. 헤르카 필리오테?"
스티아는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헤르카 필리오테. 집행부에 구금됐다고 들었는데.
어딨는지 알아?"
"집행부라면, 저쪽에 있어!"
나는 카렌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했다.
"먼저 간다.
무리하지 말고 자기 몸 지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데칼.
집행부 쪽은 마물이 너무 많아. 누구도 그쪽으로는 갈 수 없는 상황이야."
"해보면 알겠지!"
나는 정원을 가로질러 뛰쳐나갔다.
스티아 말대로 마물이 많기는 했다. 마물밖에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멜브릿이 검은 늪처럼 보일 지경이다.
나는 불의 종언으로 마물들을 불태우면서 내달렸다.
그래도 어디선가 계속 솟는다. 떨어지기도 한다.
끝이 없었다.
어디서 이렇게 쏟아지는 거야?
마치 영혼병을 뿌릴 때와 비슷하다.
이것들이 어디선가 계속 보내지고 있는 거라면, 일일이 상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물러나서 마력을 집중했다.
"파이어 볼."
좀 더 확실하게 섬멸하기 위해서.
나는 파이어 볼이 마력을 폭식하도록 풀어 해치고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마물들이 모여든 순간.
손으로 가리켜, 파이어 볼을 겨냥하고 날린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주변 일대가 깨끗이 청소되었다.
곧 물밀 듯이 밀려오겠지만……. 나는 바로 뛰어들었다.
공간 도약을 이용해서 먼 거리를 단숨에 좁히자, 집행부 건물까지는 거의 코앞이었다.
거기서 나는 조금 다르게 생긴 마물과 만났다.
"뭐야. 이 녀석은?"
나는 발을 멈추고 대치한다.
생긴 걸 보아서는 온몸에 검은 촉수가 나 있는 괴생명체다.
촉수를 모두 바닥에 꽂고, 빨갛게 빛나는 액체 같은 걸 지면에 주입하고 있었다.
기분 나쁘게 생겼네.
우선 공격부터 할까?
손을 내밀었더니, 갑자기 그것을 지키려는 것처럼 검은 마물들의 기세가 더욱더 거세졌다.
"이런…!"
나는 파이어 볼을 터뜨려 한 번 더 청소했지만,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마물들이 내 주변에 빽빽하게 몰려들었다.
이대로는 사로잡히겠어…!
그때였다.
바람이 마치 날 선 칼날처럼 핑, 하고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섬광처럼 날아온 화살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마물들을 휩쓸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더니 이스티가 보였다.
"이스티!"
"달링. 다친 데 없어?"
이스티의 얼굴을 보자 굉장히 안심되었다.
마물들이 몰려오자 이스티는 활대에 화살을 다섯 개 동시에 얹어서 쐈다.
네 개는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마물들을 초토화하고.
나머지 하나는 바닥에 촉수를 꽂은 괴물의 머리를 정확히 터뜨렸다.
굉장한 솜씨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데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스티는 반투명한 화살을 활줄에 걸치며 말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이것들은 다 미끼. 어떠한 의식 마법을 준비하고 있어."
"의식 마법?"
"응.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만, 발동하면 막기 어려울 거야.
의식 마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역시 헤르카 뿐이다.
이스티의 판단도 시아와 같았다.
"집행부로 갈게. 길을 뚫어줘!"
"알았어."
이스티는 검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마물을 화살로 쏘아 갈라버렸다.
나는 바로 뛰었다.
충분히 건물과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공간도약으로 문을 넘어 바로 안으로 들어온다.
"응갹!"
들어오자마자, 누가 나랑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런 예상 못한 공격이 들어오다니…!"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소녀는 빨개진 이마를 쓰다듬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누구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누구는 바쁘지 않은 줄 알아?
사람과 부딪혔으면 사과해야지! 내 이마 아프단 말이야!"
뭐야. 이 꼬맹이는.
자세히 봤더니, 얼굴이 낯익다.
트윈 테일로 묶은 밤색 머리카락, 회색 눈…….
잘 뜯어봤더니 귀여운 소녀였다. 가슴은 아직 빈약하지만, 그런대로 여성스러운 골반과 날씬한 다리가 매력적이다.
"뭘 빤히 봐? 아항. 내가 누군지 알아버렸구나?"
"……누군데?
바쁘니까 나중에 하지 않을래?"
"알고 나서 후회해도 늦어!"
"말하고 싶으면 빨리해라. 난 바빠."
"으그긋!"
소녀는 분한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나야! 나!
헤르카 필리오테. 멜브릿의 천재 소녀! 나를 모른단 말이야?"
"아."
웬일이냐.
찾던 애가 딱 여기에 있네.
"헤르카. 널 찾고 있었어."
"왜? 사인해줘?"
헤르카는 킥킥 웃었다.
……최면 마렵네.
진정하자. 이 녀석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 돼.
이렇게 보여도 멜브릿 최강의 천재 마법사.
그냥 여자애가 아니다.
"나랑 같이 가자."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내가 여기서 탈출하는 거 모른 척해주면, 나중에 사인 해줄게! 안녕!"
나는 그대로 떠나려는 헤르카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와악!"
헤르카는 팔다리를 바동바동 흔들었다.
"잡지 마. 들지 마! 날 들어 올리지 마아!"
"미안한데.
우선 내 얘기를 들어. 밖은 마물투성이라 난리가 났어."
"마물?"
헤르카의 태도가 급변했다.
"무슨 일인데?"
나는 헤르카를 내려두고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마왕군 간부가 멜브릿에 숨어들었어.
마물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정도 수로는 후보생들의 전투력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네리스만 나서도 다 정리될 거야."
……아까 그 꼬맹이 맞아?
굉장히 차갑고, 동시에 차분하다.
"일단 함께 가자."
"보아하니, 학생회장 명령으로 온 거지?
좋아. 같이 다니자. 지금은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네."
"문 연다.
마물이 뛰쳐들지도 몰라. 조심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멜브릿에 다신 없을 천재 소녀. 그게 나거든?"
"그래. 그래."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예상대로 우글우글 몰려 있던 마물들이 안으로 짓쳐 든다.
"흐약! 깜짝이야!"
"조심하라고 했잖아."
"깜짝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어!
마음의 준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걸! 생리적 반응인걸!"
으악. 시끄러운 녀석.
"불의 종언!"
나는 마법을 사용해서 마물을 날려버리고 길을 뚫었다.
"재밌는 마법 쓰네.
너는 신입생이야?"
"그래.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그럼 나를 모를 수도 있네."
"……그렇지."
들어오자마자 네 이름은 지겹게 들었지만 말이야.
헤르카는 자신 있게 문밖으로 나가서, 기지개를 켰다.
"깨끗한 하늘 아래, 있어선 안 되는 것들이 돌아다니네.
이번에는 내 마법을 보여줄게. 다시는 헤르카 필리오테를 잊을 수 없게 될 거야."
"……."
나는 긴장했다.
여신도 진짜라고 한 그녀의 재능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눈 감고 있어. 눈 뜨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야."
헤르카는 손을 들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헤르카는 어디로 가고 없었다.
"아!"
이 녀석! 도망쳤잖아!
나는 수색 스킬로 흔적을 쫓아 바로 헤르카의 뒷덜미를 잡았다.
"꺄앙! 놔. 이거 놔아."
"아예 토끼 귀잡듯이 머리카락으로 들어줄까?"
"그러면 머릿결이 상하잖아! 앙대!"
"……."
후…….
정말 제어하기 어렵네…….
시아가 날 보낸 이유를 알겠다.
"알았어. 놓아줄게."
"정말?"
나는 헤르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제복 다 늘어났어."
헤르카는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툴툴거렸다.
"헤르카. 이걸 봐."
"응?"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