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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205화 (205/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20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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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은 없다.

네 개의 의자는 등받이를 마주 댄 형태로 중앙에 놓여 있었고, 의자마다 한 사람씩 앉아 있었다.

체중, 연령대, 신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제각각 다르지만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의자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점이다.

"우웁! 으읍!"

남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구속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입이 틀어막혔음에도 목청껏 소리 지르는 사람.

몸을 앞뒤로 흔들며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사람.

팔근육이 비대하게 보일 정도로 안간힘을 쓰며 구속을 끊어내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처럼 보였다.

상황을 봤을 때, 에카테리나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왜?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런 게, 나는 그녀를 용의자로 추적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정답 풀이를 하기 전에 아직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팔색 진주로 그녀의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마도 여러 가지 정황 증거와 단서를 모아 논리적인 사고 끝에 도달했을 터인 저 장소를…….

나는 신의 힘을 빌린 도구로 아무렇지 않게 내다보는 중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 정답은 무슨 문제에 대한 정답이지?

에카테리나는 왜 저 남자들을 묶어 둔 거지?

이 화면을 눈앞에 두고 내가 알고 있는 건, 간신히 추측할 수 있는 건

에카테리나가 평범한 용사 후보생이 아니라는 사실 뿐이었다.

"조사원님! 괜찮으세요?"

"아, 아……. 응."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지나다니는 여 후보생들이 한마디씩 건네고 지나간다.

일단은 보자. 전부 보고 나서 생각하자.

다른 데 집중해서 신경이 분산되면 눈앞의 화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칠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근처를 둘러보고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화면에 집중했다.

에카테가 마침 무언가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사로잡힌 남자 한 명의 볼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남자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음음……."

에카테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에카테는 토끼급에 있던 시절 나와 수업을 같이 받았던 후보생이다.

나는 그때 에카테에게 질싸한 만큼 점수를 받고 진급했다.

팔색 진주를 건네기는 했지만, 그날 이후로는 훔쳐본 적도 없고 따로 만난 적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그녀가 뭘 했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저는 마왕군, 인간거열단 단장 에카테리나입니다……."

"……."

나는 숨을 헉 삼켰다.

……그렇게 쉽게 밝혀도 돼?

아니, 내가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겠지만…….

기뻐해도 되나?

나…….

진짜 조사원 체질이었어?

진지하게 나의 재능이 두렵다.

……물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이건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불리는, 얻어걸린 상황.

에카테리나의 정체가…… 마왕군이었다니…….

생각보다 놀랍지는 않았다.

왜냐면 에카테를 보면서 한 번도 용사 후보생 같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겉모습만 봐도 마녀 그 자체인데.

"저는 마왕군 인간거열단 단장 에카테리나입니다……."

응? 말을 반복했다.

에카테는 말을 건넬 대상도 없이 조용히 벽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 들으라고 한 소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녀가 이쪽을 봤다.

눈이 마주친 건 아니지만 조금 섬뜩한 순간이었다.

"앉아 계신……. 앉아 있는…. 분들의 면면을 봐주세요…."

…….

나는 봐도 누군지 모르겠는데.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틀 전부터 입막음하고 있겠지만…….

실종된 데이툰 왕국의 요인들. 멜브릿의 최고 권한에 접근할 수 있는……. 응……. 이름은……."

"읍! 우웁!"

"읍! 흡!"

남자들의 저항이 거세진다.

"순서대로. 대법관 페리온, 학장 글램, 총장 나켈리우스, 교육본부장 틀레너.

아. 순서대로라는 것은…… 흑마술 기초배열 순이라는 뜻……."

에카테는 잠깐 말을 멈췄다.

"아니. 평범하게 시계방향으로.

나켈리우스, 틀레너, 페리온, 글램……."

그러다가 뭔가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는 마왕군 인간거열단 단장 에카테리나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네.

설마 범행성명…… 예행 연습?

내가 준 팔색 진주를 가상의 관중으로 생각하고 연습하는 중인 것 같다.

헛웃음이 나왔다.

"대법관 페리온, 총장 글램, 학장……. 아. 잘못 말했다."

에카테는 긴장이 풀릴 정도로 잇달아 귀여운 실수를 저지르며 첫 단계로 되돌아갔다.

실수 패턴도 다양한데, 사람 이름을 잘못 부르거나, 혀를 깨물어서 잘못 발음하거나,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는 등.

……이런 애가 어떻게 대법관, 학장, 총장, 교육본부장 같은 듣기만 해도 무거운 직책을 달고 있는 사람들을 납치했을까.

그냥 깜짝 쇼 아닐까?

이런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을 때,

겨우 에카테는 마의 인물 소개 구간을 넘어섰다.

"인간을 파괴하라는 마왕님의 명에 따라,

인간거열단은…… 멜브릿을 접수하겠습니다. 항복…해주세요. 항복한 자는 가축으로…….

저항하는 자는 파괴하라…. 그것이 마왕님의 명이고, 저는 명에 따라… 인간거열단은 멜브릿을 접수하게흡……."

에카테는 쓸데없이 말이 반복되는 걸 깨닫고 수습하려다가 혀를 깨물었다.

"~~~!"

아팠구나.

표정에서 티는 안 났지만, 살짝 벌린 입에서 신음 같은 게 들릴 듯 말 듯 하게 새어 나왔다.

"햐, 향복하면 가축으로 삼겠습니다.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고…… 마왕님에게 귀의하길 바랍니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설픈 에카테리나가 귀여워서.

연설은 특기가 아닌 것 같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요컨대 그녀는 마왕군의 첨병. 멜브릿을 노리고 있으며, 다양한 준비를 해왔다는 거겠지.

하지만 마왕이라는 녀석도 개성이 없네.

때가 어느 때인데 파괴하고 정복이야. 명령이 너무 구닥다리잖아.

거기에 아무래도 이 세계의 마물은 인간을 가축으로 삼는 모양이다.

에카테리나의 가축이라면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에카테리나.

동화책 속 마녀 같은, 발목까지 닿을 듯한 검은 머리카락에 굽은 등.

어딘가 피로에 찌든 눈매 때문에 미모를 스스로 깎아 먹긴 하지만,

옷 위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풍만한 젖가슴과 튼실한 엉덩이가 매력적이다.

섹스해봐서 알지만 에카테의 보지는 굉장히 기분 좋다. 수업 시간에 얼마나 쥐어짜였는지.

그것도 내가 암시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순응하게 했기 때문이지만.

여기가 어딘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찾아갈 수 있을 텐데…….

근데.

남자들은 왜 저렇게 떨고 있는 거지?

방이 추운가?

"아. 그리고……."

에카테는 뒤늦게 무언가 떠올린 투로 말했다.

"본보기를 봐주세요."

"읍! 읍!"

본보기?

에카테는 손바닥에 검은 구체를 띄우더니, 남자의 머리에 박아버렸다.

"우웁! 우우웁!"

그러자 남자의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터졌다.

나는 끝까지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다시 봤을 때, 남자의 목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

젠장…….

웃음기가 싹 가셨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에카테는 토끼급 수업 때 나한테 붙들려 질싸 당하던 여자고,

어설픈 실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귀여워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건 실제 상황이다.

잡혀있는 사람은 정말로 목숨이 위험하다.

에카테리나는 장난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사람의 머리가 눈앞에서 터지는데도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연설은 서툴러도 사람을 죽일 때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흥분에 의한 미세한 손 떨림조차 없었다.

"아. 실수했다."

나는 남자의 목 부분은 차마 볼 수 없어서 손으로 가려 놓고 에카테를 봤다.

"……저항하면 벌레처럼 죽이겠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겠습니다.

본보기를…… 벌레처럼……. 응. 다시……."

……다시?

"……저는 마왕군 인간거열단 단장 에카테리나입니다."

에카테는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갔다.

그때 알았다.

남자들이 왜 떨고 있는지.

에카테는 실수 없이 말할 때까지 반복하고 있다.

사람을 죽여버린 일에 대해서는, 실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니, 어쩌면 세 사람 남아 있으니까 두 번은 더 연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처음 잡혀 온 사람은 몇 명이었던 거지?

"순서대로 대법관 페리온, 학장 글램, 총장 나켈리우스.

흑마술……. 아. 이게 아니었지. 시계 방향으로……."

묶여 있는 세 남자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나는 화면을 옆으로 치워 놓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찾아야겠어.

찾아서, 못하게 막아야 해.

하지만 태평하게 범행 성명을 연습하고 있다면, 이미 테러 준비는 끝난 게 아닐까?

에카테리나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움직이면 멜브릿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

나는 학생회실로 뛰었다.

내가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면 열 가지, 백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돼.

"시아!"

나는 학생회실을 박차고 들어갔다.

"……데칼 후보생?"

학생회실에 있던 후보생들의 시선이 나한테 꽂혔다.

오늘따라 유독 손님이 많군.

나는 학생수첩을 보이며 말했다.

"데칼. 특별조사원이다.

학생회장에게 급한 용무가 있어서 왔다. 나머지는 자리를 비워줘.

지금 당장!"

"아, 넵!!"

특별 조사원 신분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후보생들은 이유도 묻지 않고 후다닥 뛰어서 학생회실을 빠져나갔다.

네리스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런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겠죠."

"학교에 마왕군 간부가 있어…!"

네리스의 눈빛이 변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어디서 알았죠? 아니, 마왕군 간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자의 이름은? 생김새는……!"

"네리스. 진정해요."

시아는 네리스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죄송합니다."

자신이 흐트러졌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네리스는 뒤로 물러났다.

"마왕군 인간거열단 단장. 이름은 에카테리나.

멜브릿의 후보생으로 등록되어 있었으며, 최근까지……. 아니 아마도 지금도 토끼급에 있을 거야."

"확인해 볼게요."

시아가 허공에 손을 뻗자, 내 스테이터스 메뉴와 같이 하얀 입자들이 모여서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무수한 정보가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빛의 구체.

시아는 그 안에 손을 넣어서, 한 후보생의 정보를 끄집어낸다.

우리들의 눈앞에 에카테리나의 신분증명서가 떠올랐다.

"이 후보생이 맞나요?"

"맞아. 이걸 봐줘."

나는 팔색진주로 보는 화면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네리스는 몸을 숙이고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제복 안으로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자입니까?"

"이미 한 사람 죽었어.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잡혀 있는 사람은?"

"학장. 총장. 뭐였더라. 하여튼……."

"총장님이 잡혀 있다고요?"

"대법관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 교육본부장은 방금 죽었어."

"……."

네리스와 시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저씨. 잘했어요.

일이 터진 뒤에는 늦었을 거예요. 조금이나마 빨리 대응할 수 있어요."

"이 화면에 나오는 곳이 어딘지 알아낼 수 있겠어?

아니, 그전에 멜브릿에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몰라. 대응할 인원이 필요해."

"네리스. 헤르카를……."

시아는 멈칫했다.

"헤르카는 현재 집행부에서 구금 중입니다."

……아직도 갇혀 있었어?

"……13번의 탈옥 시도 끝에, 간신히 잡아놓은 상태입니다."

"상대는 레벨이 높은 하이캐스터예요. 헤르카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가 갈까요?"

"아뇨. 헤르카를 데려오는 일은 데칼 후보생에게 맡기겠습니다."

"나?"

"데칼 후보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헤르카를 풀어주는 건 적법한 절차를 밟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그런 얘기가 아니겠지.

최면이다.

시아는 내가 헤르카와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는 나중에 마왕에게 맞설, 혹은 신에게 맞설 카드 중 하나.

내가 그녀의 안위를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좋아. 멜브릿의 최종병기는 내가 만나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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