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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82화 (182/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8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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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 급에 있는 앤데.

    며칠 전부터 내가 좋다면서 계속 말을 걸더라."

    "너를 따라다녔다는 소리야? 첫 눈에 반해서?"

    "으, 응……. 그, 그런가?"

    아바는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행복해 보이네.

    결국, 사귈 놈은 어떻게든 사귄다.

    거기다 여 후보생이 남 후보생을 좋다며 따라다니다니.

    꿈만 같은 상황이잖아.

    "계속 얘기해 봐."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호감이 생겨서 사귀기로 했어."

    "예뻐?"

    여자 얘기라면 빠질 수 없는 질문이다.

    "응, 예뻐."

    "스티아와 비교하면?"

    "스, 스티아 양이랑은 비교할 수 없지만.

    여 후보생들 사이에서는 예쁘장한 편이라고 생각해."

    미모의 여성이 많은 멜브릿에서 상위권…….

    아바의 취향을 생각하면 가슴이 크지는 않겠지.

    "이름이 뭐야?"

    "릴리."

    "릴리……."

    흔한 이름이군.

    아바의 그녀, 릴리…….

    "빨리 만나고 싶어.

    수업이 끝나고 보기로 했거든."

    "풋풋하네."

    "데칼은 많은 여자와 사귄 경험이 있잖아. 어, 어떻게 하면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

    처음 만났을 때 뭘 해주면 기뻐할까?"

    "……."

    갑자기 연애 상담인가.

    여자의 마음 같은 거 모르는데.

    하지만 반드시 연애가 성사할 수 있게 만들 수는 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최면의 신.

    큐피드가 되어도 딱히 이상할 건 없지.

    그렇지만, 이 단계에서 내가 최면으로 개입하는 건 어설픈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서로 사귀게 되었는데, 내버려 두자.

    "그냥 자연스럽게 해.

    여자도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보고 싶을 거야."

    "그럴까?"

    "가서 잠만 안 자면 되지."

    "나, 나라고 좋아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자지는 않아."

    "그래. 불안한 건 알겠지만, 남한테 조언을 구하지 마.

    릴리…라고 했던가? 다음에 나한테도 소개해 줘."

    "응. 알았어!

    ……아아. 빨리 만나고 싶다!"

    아바는 침대 위를 뒹굴었다.

    "형이 지금 날 봤으면 때리려고 했을 거야."

    "나도 때리고 싶었어. 방금."

    "기,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래."

    "만나러 가지 그래? 지금이라도."

    "나도 그러고 싶지만, 멜브릿이잖아."

    아바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생각하지만, 너무 답답한 곳이야."

    동감이다.

    지금이라면 모든 후보생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겠지.

    앞으로 멜브릿 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야겠어.

    알림음으로 쓰이는 새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 강의받으러 가야 해.

    공격 마법 대응 훈련을 듣기로 했거든."

    아바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도 얼마 전에는 야간 수업까지 꼬박꼬박 나갔었는데.

    지금은 마치 남 일 같다.

    평가 점수 2,300pt.

    마침내 멜브릿의 꼭대기, 용 급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수업을 들으러 갈 필요는 없지만, 해야 할 일은 있었다.

    나는 학생회실로 향했다.

    두어 번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학생회실에는 네리스도 있었다.

    얼굴보다 먼저, 터질 듯한 젖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시아.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

    "회장님께 무슨 말버릇입니까?"

    "네리스. 괜찮아요.

    데칼 후보생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답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리스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 시아는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미소 지었다.

    "데칼 후보생. 무슨 일이신가요? 앉아서 얘기할까요?"

    사랑스러운 녀석.

    눈빛으로 어찌나 반가운 티를 내는지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좀 답답해서 말이야.

    학생회장님께 건의를 드리러 왔는데."

    네리스는 알아차리지 못하게, 넌지시 내 뜻을 내비친다.

    "네리스. 자리를 비워줄래요?

    그와 할 얘기가 있으니."

    "네. 시아 님."

    네리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학생회실을 떠났다.

    힘 있고 안정적인 걸음걸이로, 흉부에 달린 큰 젖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면서 걷고 있지만,

    크기가 크기인지라 아주 약간의 부들부들한 느낌만으로도 젖 전체의 부드러움을 예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 속옷 안 입었나?

    ……무심코 옆을 지나가는 젖을 잡을 뻔했다.

    조금만 참자.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멜브릿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후보생들에게 최면을 걸어두고 싶어."

    "만약 필요하다면 규제 수준을 완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저씨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죠?"

    나는 대답하는 대신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씩 웃었다.

    "야한 짓 못 하면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학생회장 권력을 이용해서 후보생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없는지 물으러 왔어."

    "네, 어렵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여기는 인원 관리를 어떻게 해?

    전산 시스템도 없는 것 같은데."

    평가 점수를 가차 없이 깎기는 하지만, 멜브릿은 기본적으로 후보생이 있어야 할 위치를 강제하는 편은 아니다.

    마음대로 학교 밖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뭐, 아주 방황하기 시작하면 금방 제적되겠지만…….

    "멜브릿은 영혼에서 추출한 마력으로 다양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어요.

    학생 수첩에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평가 점수, 인원 관리도 그중 하나예요."

    "보호 마법이 다중으로 걸쳐진,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들어오는 훈련장도?"

    "네.

    이곳은 어찌 됐든 데이툰 왕국의 최중요 거점. 인마전쟁의 핵심 시설…….

    무너지면, 인류 측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돼요. 저는 그래서 여기를 떠날 수 없어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일레시아는 여길 떠날 수 없다.

    인간과 마물, 두 세력이 가진 힘의 크기가 평행이 되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학생회장으로 멜브릿에 머무는 동안에는, 인류가 허무하게 멸망하는 일은 없겠지.

    반대로 생각하면 일레시아가 이 자리를 벗어나면

    마물 측에서는 최단기 승리 조건이 하나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아저씨가 바란다면 무시할 수 있는 조건이에요."

    "이 세계는 마음에 들어.

    마물이 없어지는 건 몰라도 인간이 사멸하는 건 곤란해.

    그대로 있어 줘."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도와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호출에 응하지 않는 후보생도 있을 수 있으니…….

    전체 인원 중 10% 정도는 이탈할 수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하긴, 부른다고 다 올 리도 없나.

    "괜찮아. 모아 줘."

    별문제도 아니다.

    당장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최면을 거는 것보다 멜브릿 대다수의 인원에게 최면을 거는 게 중요하다.

    나머지는 내용 나름이다.

    "점심시간에 지령을 낼게요.

    본관 좌측에는 사용하지 않는 빈 강당이 있어요. 마음대로 써 주세요."

    "내가 최면에 걸린 이들은 호출에 응하도록 할 테니까.

    매일 일과로 후보생들이 강당에 모이도록 해줄 수 있어?"

    "네."

    나는 시아와 논의해서 아침 식사 시간 중 30분을 조회 시간으로 만들었다.

    얘기를 나누며 알 수 있었던 것은

    시아가 오랫동안 멜브릿에 뿌리를 내리며, 많은 것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일레시아는 어쩌면 오늘 내가 찾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생회장이 이토록 간단하게, 어떤 절차도 거치지 않고 독단으로 멜브릿의 운영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그녀를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너무나 간단하게 일이 풀린다.

    "제 얼굴에 뭐 붙었어요? 아저씨."

    "새삼스럽기는 한데. 왜 내가 자유롭게 변태 짓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아저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저씨의 행복이, 제 행복이기도 해요."

    "흠. 어째서?"

    "아저씨는, 제 신이니까."

    "……."

    들은 적 있는 말이다.

    나는 갑자기 캐묻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말해줘."

    "음……."

    "네가 아직 인간이었을 때, 내 덕에 괴로운 처지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야?"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그냥 첫눈에 반했다는 식으로 말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아저씨가 제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줬어요.

    그래서 제 의식 세계는 언제나 같아요.

    아저씨와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아저씨를 기다리기로 했을 때."

    ……맞아.

    시아의 의식세계 중 하나는 나와 만났던 그 숲이었다.

    손을 뻗어준 게 나였다는 이유로…….

    "그 이후로 같이 지내면서 아저씨를 더욱더 사랑하게 됐어요.

    음……. 후후……."

    살짝 부끄러웠는지, 시아는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면, 나는 멈추지 않겠어.

    전교생에게 최면을 건다. 강당에 사람을 모아."

    "네. 아저씨!"

    나는 먼저 강당에 가서 기다렸다.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고 들었지만, 주기적으로 청소하는지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앞에는 강의나 연설 따위를 하는 사람이 올라서도록 약간 높게 만든 강단이 있었다.

    최면에 앞서 불특정 다수의 의식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주목받는 자리에 서야겠지.

    걱정되는 건 범위였다.

    최면의 범위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흔히들 생각하는 집중하기 쉬운 환경, 조용한 실내가 최적이다.

    그 점은 합격이지만, 한 번에 천 명이 넘는 인원에게 최면을 걸어야 하는 만큼 유효 거리가 충분할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저씨."

    어느새 시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호출했어?"

    "네. 곧 있으면 모일 거예요."

    "묘하게 긴장되는데. 한 번에 다 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저씨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믿는 구석이라도 있어?"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영혼석을 반납했을 때 돌아간 건 기억뿐만이 아니에요.

    아저씨는 지금 전성기의 권능을 되찾았어요."

    "최면이 더 강해졌다는 거야? 별다른 건 느끼지 못했는데."

    "아저씨는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맞는 말이군.

    내가 신일 때와 같은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되찾은 기억을 차분히 떠올리면 될 뿐이다.

    시아를 만나기 전부터, 여신들을 겁탈하고 다니던 시기까지.

    …….

    지난 기억을 토대로, 최면의 범위가 내가 알던 것보다 향상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굳이 손가락을 튕기지 않아도 최면을 걸 수 있다.

    손뼉 치는 소리만으로 최면을 걸었을 때처럼.

    훈련 없이 어떠한 소리나 충격도 루틴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루틴을 바꿀 이유는 없지만…….

    "이해했어."

    최면의 효력은 그대로지만, 이건 원래부터 강했으니까 상관없었다.

    곧 후보생들이 두리번거리며 강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레시아 다음으로 단상에 올랐다.

    이탈한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나 천 명 이상이 강당에 발걸음을 옮겼다.

    디아나, 네리스 등 낯익은 얼굴도 있었고 플레노어 교사도 있었다.

    카렌과 이스티는 안 보였지만……. 뭐, 상관없지.

    모든 후보생에게 최면을 건다고는 해도,

    다짜고짜 모두 노예로 만든다거나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부작용이 헤아릴 수 없고, 돌이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거는 최면은 나를 편하게 하는 정도면 족하다.

    나는 단상에 올랐다.

    "주목."

    후보생들의 의식이 모인다.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모두가 볼 수 있게 손을 들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강당에 메마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를 들은 이는 모두 최면에 노출된다.

    꼭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생물이든 순간적으로 난 소리나 상대방의 움직임에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약간 주의를 끄는 정도로 충분했다.

    일레시아를 제외한,

    강당에 있는 모든 이가 최면에 걸렸다.

    조용한 건 같지만 좀 전과는 분위기가 명백히 다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나는 광역 암시를 걸 생각이지만, 이 암시는 멜브릿에 있는 대다수의 불특정 후보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한 암시.

    즉, 네리스나 디아나 같은…….

    공들여서 최면을 걸었거나, 혹은 걸 예정인 여자는 제외한다.

    이것은 최면을 걸 대상과 걸지 않을 대상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암시를 말하는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암시를 말하기 전에 시아를 쓱 봤다.

    시아는 인형들만 서 있는 강당에서, 홀로 나를 지켜보는 관중이다.

    내가 어떠한 최면을 걸었는지, 시아는 알고 있어야겠지.

    "내 이름은 데칼.

    학생회 소속, 멜브릿의 특별 조사원이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너희는 특별 조사원이 자신의 신분을 밝힐 시, 모든 요구 사항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첫 번째 암시.

    이것은 신분을 밝힐 시, 라는 조건을 스위치로 해서 발동하는 순화된 복종 암시다.

    이어서…….

    나는 생각 했던 암시를 쏟아냈다.

    "「오늘 이후로 너희는 매일 조회에 성실하게 응한다」,「특별 조사원이 하는 일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특별 조사원은 필요한 사항을 명확하게 알아내기 위하여 멜브릿에 있으며, 따라서 멜브릿 어디든 머무를 자격이 있다」

    「특별 조사는 인류를 위해서 숭고한 사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므로, 경의를 표해야 한다」"

    이로써, 조회 시간에 강당으로 모이지 않으면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걸리지 않았어도 다른 후보생 따라서 조회에 가는 후보생도 적지 않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특별 조사원이라는 직책을 부여했다.

    이성 교제를 금기로 하는 학교에 빈틈을 만들었다.

    이 빈틈은 나만이 파고들 수 있는 약점이다.

    "……이상.

    「특별 조사원은 오직 나, 데칼 뿐이며. 예외는 없다」"

    짝.

    나는 손뼉을 쳐서 후보생들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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