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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57화 (157/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5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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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추악한 인간일지라도 니뮤엘 님의 축복을 받고 신이 된 이상,

    함부로 지워 없애지 못한다. 그것이 천상의 법도.

    하지만……. 벌을 줄 때는 다르지."

    큰일이다.

    몸을 가눌 수 없다.

    제르미나에게 최면이 먹히지 않는 이상, 몸을 가눌 수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다.

    "제가…… 제르미나 님의 밑에서,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거라곤 목숨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제르미나의 손에 맺힌 붉은 빛. 태양의 빛을 응축시킨 듯한 저 극광에 닿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은 없다.

    그리고 이 자존심 강한 파괴의 여신은, 나를 죽일 명분이 생긴 이상 절대 멈추지 않겠지.

    그녀의 변심 말고는, 나와 시아가 살 방법은 없다.

    "흥미가 생기는구나."

    제르미나의 손에 맺혔던 붉은 빛이 사그라든다.

    조금이지만, 목숨이 이어졌다.

    "어째서 그 소녀를 지켰지? 촌각을 줄 테니 말해보아라."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온몸이 욱신거린다. 토혈 같은 거 해보기는 처음이다.

    인간이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뭐, 아무튼…….

    어떻게든 제르미나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이 기억을 보고 있는 나」는 시간을 끌 수 있는 몇 가지 단어 조합을 생각해내고 있었지만,

    이 시점의 나는 정말 고집스럽게도, 꾸밈없이 부딪치기를 택했다.

    "시아는…… 내가 아끼는 시종입니다."

    마음속 어딘가에, 진솔하게 말하면 제르미나가 봐줄지도 모른다는 타산은 없었다.

    나는 원래부터 내 마음에 거짓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진심이 나온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가. 잘 알았다.

    그 여자도 함께 죽여주지."

    죽음의 선고.

    제르미나의 손에 극광이 모인다.

    애초에 내 대답을 듣고 싶었을 뿐, 나를 살려줄 생각은 없었겠지.

    조금 더 교활하게 굴었으면 시아는 살았을까.

    그런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며 모든 걸 체념했을 때였다.

    "누가 네 시종이야!"

    시아는 거칠게 쏘아붙이며, 나를 밀었다.

    힘이 없었던 나는 꺾이듯 땅에 쓰러졌다.

    시아는 흙 한 줌 쥐어 내 얼굴에 뿌리고 매몰차게 소리쳤다.

    "너 같은 쓰레기는 혼자 죽어!

    입맛대로 맞춰주었더니, 내가 네 물건이라도 된 줄 알아?"

    "시, 시아……."

    "나는 네 권능이 무서워서 따르는 척하고 있었을 뿐이야.

    얼마나 대단한 신인가 했는데. 여기 계신 분에 비하면 너는 볼품 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잖아!"

    "……."

    "아하하하!!"

    제르미나가 폭소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알았다.

    지금 내가…… 얼마나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는지.

    평소의 뻔뻔함은 무너지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시아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제르미나는 배를 움켜잡고 웃는다.

    극광이 사그라들었는데도 기뻐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이렇게 웃어본 건 천년 만이다.

    사람의 마음을 희롱하는 신이, 저런 얼굴을 하다니……."

    "……."

    "계집. 영특하구나. 내게 얼굴을 보여라."

    "네."

    시아는 제르미나에게 다가간다.

    "저 남자에게는 과분한 시종이구나. 총명하고 아름답다. 여신의 품위에 걸맞으니, 내가 널 거두어주마."

    "감사합니다."

    시아는 제르미나 곁에서 나를 돌아봤다.

    나는 일레시아의 진심을 알게 될까 봐 무서워서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이름은 뭐라고 하느냐?"

    "일레시아라고 합니다."

    "일레시아. 이제 이 자를 죽여도 상관없겠지?"

    "네. 저한테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

    나 혼자 죽는구나.

    이게 맞는지도 모른다.

    둘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극광은 내게 쏟아 내리지 않았다.

    "뻔한 거짓말이지만, 훌륭하다."

    "……."

    "이 남자는 추악한 품성을 갖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 너를 지키려고 몸을 던졌다.

    그 행동만은 고귀한 것.

    그 은혜를 간단하게 저버리는 품위 없는 인간은, 내 슬하에 필요하지 않다.

    알겠느냐. 총명하다고 한 것은 그런 뜻이다. 너는 내가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살려줄지 알고 있었다.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충의를 이 남자에게 보인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시아가 내 눈을 피했다.

    "하지만 알고 있느냐. 일레시아.

    내게 허락된 파괴는 혼과 육체의 파괴.

    너는 나조차 죽일 수 없는 것을, 지금 죽였다."

    "……."

    "이 남자의 표정을 봐라.

    신도 소중한 것을 잃고 좌절하는 존재라는 것을 네가 증명했다."

    몸의 떨림이 멎지 않는다.

    제르미나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피가 뚝뚝 흐르는 상처를 억지로 열어젖히는 것 같다.

    무력한 나를 조롱하는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자, 도망쳐라.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말아라.

    벌레와 같이 살면, 연명을 허락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제르미나는 품에 낀 일레시아를 과시하며 말했다.

    일레시아는 고개를 떨구고 외쳤다.

    "가요!"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등을 돌렸다.

    "아하하! 그게 바로 벌레의 자세지. 자, 빨리 뛰지 않으면 맞아버릴지도 모른다고?"

    제르미나가 극광을 쏜다.

    붉은 섬광이 빗발치는 소나기처럼 주변 일대를 휩쓴다.

    극광에 닿은 시체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터지고, 핏물이 튀었다.

    나는 끌려다니는 넝마쪽처럼 비척거리면서 뛰었다.

    애초에 날 맞힐 생각은 없고, 가지고 노는 중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얼마 가지도 못해서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제르미나는 내 모습을 비웃었다.

    그리고, 비웃음이 멎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어딘가로 가고 없어진 후였다.

    "……."

    나는 몸을 돌려서 눕고 하늘을 향해 크게 숨을 쉬었다.

    일레시아가 나를 구했다.

    언젠가 시종이 되기로 한 그녀가 나한테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기가 입은 은혜를 돌려주고 싶다고 했던가.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은혜를 너무 많이 돌려줬잖아……."

    시아는 알고 있었다.

    제르미나는 아무리 자비를 구걸해도 용서하지 않는 신이라는 것을.

    사전에 제르미나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일레시아는 제르미나의 행동, 언행 등을 보고 성격을 유추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임기응변으로 나섰다.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제르미나의 뜻을 바꾸려면,

    그녀의 예상을 웃도는 방식으로 날 모욕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한편, 이 방법은 내가 일레시아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면 성립하지 않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상처받았기 때문에 제르미나가 깔깔 웃었다.

    참 짜증 나는 여신이다.

    성격도 생긴 것만큼 예뻤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것으로 좋았던 게 아닐까?

    제르미나는 2급 신. 파괴의 권능을 허락받은 여신 중의 여신.

    여자와 섹스하는 것밖에 모르는 9급 신의 곁에 있는 것보다는, 제르미나 밑에 있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신격을 부여받고 신이 될 수도 있겠지.

    영원한 젊음과 안전한 거처, 편안한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원한다면 수십 명의 남창을 끼고 향락을 즐길 수도 있겠지.

    일레시아는 내 목숨을 구했다.

    ……그녀가 잘된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

    …….

    ….

    그럴 리가 있냐!?

    이게 무슨 케케묵은 로맨스도 아니고!

    화나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생겼는데!

    미쳤다고 떠난 여자를 축복하고 빌어줘?

    시종 주제에 막말한 대가를 보지로 사죄하기 전까지 용서할 수 없다.

    제르미나, 이년은 특히 괘씸하다.

    제르미나의 보지를 혼내주기 위한 참신한 능욕법을 백 가지 떠올렸다.

    전부 실행하기 전까지 용서해줄 수 없다.

    상처 회복 끝!!

    나는 벌떡 일어나서 몸을 풀었다.

    과연 신의 육체. 좀 쉬었더니 금세 나았다.

    인간이었다면 미세한 극광에 노출되어도 죽었겠지만, 운이 좋았다.

    제르미나가 인간을 죽일 때도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었다면, 지금쯤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중이었겠지.

    나는 지금까지 겁쟁이처럼 살았다.

    제르미나와, 제르미나가 부리는 신들의 악질적인 괴롭힘을 꾹 참아왔다.

    그렇게 산 이유는 내가 약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비겁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들을 상대로 대립하면 소요가 발생하고,

    그 소요는 끝내 나를 적대하는 여신들의 노예화, 혹은 내 죽음으로 끝난다.

    그 과정이 너무 귀찮고 번거로운 데다, 내 죽음으로 끝날 가능성이 너무 컸기 때문에 예쁜 일반인 여자를 안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르미나는 선을 넘었다.

    제르미나가 있는 이상, 나는 내가 원하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아끼는 여자를 채갔다.

    화가 난다.

    이 분노를 부딪치지 않으면 온몸에 번져 내 몸을 태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제부터는 이쪽에서 공격한다.

    당연히 대책은 없다.

    궁금하기는 했어. 여신의 보지는 어떤 느낌일지. 제르미나가 내 억제기를 완전히 깨버렸다는 걸 알았다.

    이제 멈출 수 없다.

    나는 차원 마법을 사용해서 공간의 문을 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건「오염의 권능」을 가진 질병의 여신 헤벨.

    4급 신이고 우리 집 작물을 망쳐 놓은 범인이다.

    제르미나와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했으니, 그녀 스스로 했든 제르미나의 지시를 받고 했든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차원 도약을 하자마자 헤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헤벨의 거처 안뜰에 내려와 주변을 둘러봤다.

    멋진 집이다.

    밝은 햇살을 받고 빛나는 것 같은 하얀 건물.

    몇 개나 되는 별장을 이어붙인 것처럼 화려하고 청결한 건물이다.

    바닥에는 먼지 한 톨 없다.

    나는 피식 웃었다.

    우습군. 병을 뿌리고 다니는 여신이 자기 집은 청결하게 둔다는 것이.

    "하여튼, 기분 나쁜 새끼였다니까.

    니뮤엘 님은 왜 그런 남자를 신으로 추대했는지 몰라.

    최면의 권능이라니, 우엑. 기분 나빠…!"

    "하하하. 너무 그러지 마.

    니뮤엘 님도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우리 여신님은 담소를 나누느라 바쁘신 모양이다.

    빛이 내리쬐는 안뜰에 발을 들인다.

    이때 나는, 헤벨이 제르미나와 마찬가지로 최면 대책을 세웠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일레시아가 이어준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

    몇십 년, 몇백 년의 세월을 들여서라도 정보를 모아서 확실한 상황에 최면을 시도해야 한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구태여 말하지. 좆까.

    "어떻게 네가 여기에……!! 내 거처를 침입했어? 9급 신이 감히!"

    짝.

    손뼉을 쳐서 최면을 건다.

    "누구냐! 아내에게 무슨 짓을 했어?"

    대화 상대는 남편이었던 것 같군.

    "신성 기사단! 침입자다. 침입자를 죽여라!"

    남편의 부름을 받고 신성 기사들이 몰려온다.

    나와 마찬가지로 차원 도약을 사용해서, 순식간에 나를 둘러싼다.

    "흠."

    둘러쌌다고 말하기도 그렇군.

    넷밖에 없나.

    4급 신치고는 많이 데리고 있는 편이기는 한데, 싱겁군.

    "정체를 밝혀라. 네놈은 누구냐!"

    "9급 신 데칼. 워낙 저급한 신이라 수식어는 없다.

    일단은「최면의 신」이라고 해두지."

    "최, 최면의 신……?"

    헤벨의 남편은 아내를 무력화시킨 마법의 정체를 깨닫고 하얗게 질렸다.

    나는 신성 기사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게 손뼉을 쳤다.

    짝.

    "신성 기사단.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신이다."

    "예!" "예!" "예!"

    "전원, 자결하라!"

    내 지엄한 명을 받은 신성 기사들은 검으로 자신의 목을 가르고 죽었다.

    나는 트랜스 상태에 빠져 있는 헤벨을 보았다.

    질병의 여신, 헤벨.

    왜 여신들은 다 극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을까.

    혼자 속으로 그런 의문을 품었던 적 있다.

    괘씸하게도 모든 여신과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

    헤벨은 그런, 내가 욕망을 품은 여신 중 하나였다.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젖. 굴곡진 골반, 쭉 빠진 다리.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헤벨의 녹색 머리카락을 차분히 손으로 쓸면서 감상한다.

    여신 쪽은 이렇게 예쁜데.

    남편은 의외로 평범하다. 어딘가의 남자 신이었던가? 아마 7급 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헤벨의 남편. 이름은?"

    "아콥이다."

    "아콥. 너는「앉아서 일어나지 못한다」"

    "앉아서……."

    "「눈앞의 광경을 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알았다."

    다음은 헤벨 차례다.

    사양하지 않겠어. 이 괘씸한 년.

    "헤벨. 「내가 묻는 말에 진실하게 대답해라」"

    "……."

    "「내게 위해를 끼치지 못한다」"

    "……끼치지, 못한다."

    "「너는 타고난 변기 보지다. 내 자지를 보지로 받아내는 일은 당연하다」"

    "변기,  보지……."

    짝.

    나는 손뼉을 쳐서, 두 사람의 정신을 각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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