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15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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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좀 봐."
"헉……."
뭐지? 본관 정문이 소란스럽다.
대부분의 후보생이 본관을 떠나는 늦은 밤. 웬만한 일로는 말소리조차 나오기 힘든 고요한 시간대.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후보생들이 저마다 발을 멈추고 어느 한 곳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그쪽을 봤다.
이런 후보생이 있었나.
아름다운 붉은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완벽에 가까운 미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소한 빈틈도 찾아볼 수 없는, 잘 빠진 몸매와 풍만한 가슴.
그녀는 바라지도 않았을 시선 세례를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으며 나한테 걸어와…… 나한테?
"……?"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가만히 있었다.
붉은 머리 미녀는 날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인님? 왜 그래?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누군가 했더니 내 보지 노예, 벨라였다.
"잠깐 몰라봤어."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
"설마. 성 밖에서 너를 만날 줄 몰라서 당황한 거야."
벨라가 이 세계에 분체로 강림할 수 있다는 것은,
일레시아가 적대 여신이 아니라고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벨라의 몸에서는 일레시아한테 느꼈던 성스러운 느낌.
「신격」이라고 불릴만한 고결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지만, 일레시아 쪽에서 무언가 대응하는 낌새는 없다.
"그나저나, 내가 섹스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언제 얘기하러 오나 계속 기다렸는데, 설마 원숭이처럼 반나절 간 계속할 줄은 몰랐어."
"음. 많이 쌌지."
아마, 단시간 최다 사정 회수를 경신하지 않았을까.
네리스가 자길 보고 꼴린 만큼 해도 좋다고 하기에 그만, 고삐가 풀리고 말았다.
전보다 체력이 좋아진 것도 있고.
"레벨이 많이 올랐어.
지금 나는 정액 만드는 공장 그 자체야."
"세계를 구제할 용사의 능력을 정액 만드는 공장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미래영겁 주인님뿐일 거야."
"하핫. 부끄럽네."
"칭찬한 거 아니거든?"
팔짱 끼고 뾰로통한 벨라가 귀여워서, 엉덩이를 찰싹 때린다.
평소처럼 '포상' 개념으로 벌을 주는 거라 자연스럽게 손이 나갔는데.
왠지, 집행관들이 내 근처로 다가온다.
"어, 어……?"
범죄자로 몰릴 것 같은 예감이.
"괜찮으십니까? 레이디."
"아뇨. 제 엉덩이에 함부로 손댄 치한이에요. 지금 당장 처벌해주세요."
"……!"
집행관의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자, 잠깐만…!"
"저항하지 마십시오. 무기를 쓰는 걸 원치 않는다면."
근육 덩어리 같은 집행관들이 내 양팔을 단단히 구속한다.
"벨라! 도와줘. 장난치지 말고……!"
"미안해요. 아는 사이라 장난 좀 쳤어요. 그는, 제게 실례될만한 일은 하지 않았어요."
"……아, 그렇습니까.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이 멜브릿에서는, 이성과의 신체 접촉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향후 같은 행동을 하실 경우 점수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두 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웃기는 학교네.
좋아요."
어휴, 겁났다.
벨라는 내 모습이 퍽 유쾌했는지 쿡쿡 웃었다.
"아무리 내가 주인님 보지 노예라지만, 밖에서 함부로 여자 몸에 손대면 안 되지.
그런 상식도 몰랐어? 우리 주인님."
"……."
"우쭈쭈."
"……큭."
이 녀석, 멜브릿의 집행체계를 등에 업고 콧대가 높아졌군.
이런 모습이 여신일 때부터 이어진 벨라의 매력이기는 하다.
"뭐, 됐어. 엉덩이 맞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
거기에 또 최면으로 추가한 매력.
속으로는, 복종하는 게 좋아서 어쩔 수 없다는 특성까지.
"주, 주인님……. 장난쳐서 화났어? 웅?"
벨라가 가까이 다가와 매달린다.
"됐어."
"돌아가서 엉덩이 마음대로 때려도 되니까. 그만둔다는 말 하지 마세요. 주인님……."
"……."
벨라가 애원하니까 삐진 척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예쁜 얼굴에 무장해제 되어, 나도 모르게 웃었다.
"후후……."
벨라가 부드럽게 따라서 미소 짓는다.
"일레시아 공략.
잘 부탁해, 벨라."
"잠깐이지만 불의 여신으로서 주인님을 도와주겠어. 영광으로 알도록 해."
잘난 척하는 벨라와 악수를 하고, 본관으로 들어간다.
시각은 곧 자정.
일레시아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다. 우리는 1층에 있는 일레시아 조각상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일레시아의 의식 세계로 들어가서 분체를 퇴거시키면 된다는 건 알겠는데."
"뭐, 주인님 입장에서는 간단해.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거기다 도움까지 되는, 주인님의 든든한 보지 노예 벨라가 있으니까."
"나도 간단했으면 좋겠는데.
일레시아가 뒤통수 때리면 우리 둘 다 죽는 거 아니었나?"
"……갑자기 심각한 얘기로 넘어가지 마. 우울해지려고 하니까. 그건 일레시아를 믿을 수밖에 없어.
주인님이 그렇게 판단한 거잖아.
마음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지?"
"……."
일레시아가 나쁜 마음을 품으면 우리 둘 다 죽는다.
그녀는 내 성추행을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나한테 호의적이지만, 왜 그런지는 몰라.
연기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벨라와 일레시아의 관계도 모른다. 두 사람, 아니, 두 신은 전혀 접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바뀌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일레시아를 믿는다.
그녀가 믿음직하게 행동해서 그런 게 아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그래…….
그녀가 나를「어차피 대책은 없죠」라고 했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다.
내가 갑자기 있지도 않은 신중함, 현명함, 계획성, 창의력 등을 발휘해서 일레시아의 허를 찌른다?
그런 건 나 자신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일레시아의 보지에 질싸하고 싶어.
그 예쁜 여자를 엉망진창으로 하고 싶어.
그렇다.
그뿐이다.
"……목숨을 걸자."
"……무슨 각오를 했길래 그렇게 비장한 표정을 짓는 거야?"
"남자는 공짜 질싸를 위해 목숨을 걸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야."
"그럴싸하게 말한다고 주인님이 멋있어지는 건 아니거든? 역겨워! 내가 들은 동기 중에 제일 역겨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나에게 대리를 맡긴 여신님."
"우, 우윽……! 나까지 변태 말종 여신이 된 것 같은……!!"
벨라는 내가 자신의 정식 대리인임을 상기하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핫핫하.
"너와 이렇게 다른 사람이 있는 세계에 나오니까, 느낌이 이상한데."
팔색 조개 성에는 워낙 걸출한 미모를 지닌 여자들만 있어서 그런지, 벨라만 돋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이 세계에 와서, 다른 사람들을 배경으로 놓고 보니까 벨라와 있는 것 자체만으로 우월감이 생기기까지 한다.
'나는 이런 여자랑 함께 있다' 같은, 유치하지만 마음이 들뜨는 기분.
실제로, 멀리서도 그녀의 미모는 빛나기 때문에.
같이 있는 나까지 시선을 받는다.
본관에 사람이 많은 낮이었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왜? 내가 예쁘고 우아한 여신이라는 걸 깨닫고 마음속 깊이 기뻐했어?"
"응."
"~~~!"
벨라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항의했다.
"아, 아니……! 거기서 뻔뻔하게 수긍하면 어떻게 반응하라는 거야. 이 철면피!"
"예쁘고 우아해서 고마워."
"읏……. 응……."
"……."
뭐지, 밀회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어.
이대로 화장실 가서 섹스 한번 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네리스의 보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제 곧
약속 시간이다.
그 전에 작전 개요를 간단히 정리하고, 가야겠지.
"무사히 잘 끝내면 벌을 줄게."
"상이 아니라?"
"온종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섹스 해줄게."
벨라는 군침을 삼켰다.
"약속이야?"
"그럼. 일레시아가 우리 편이 되면, 여신 셋 모아놓고 임신섹스 해야지."
벌써 즐겁군.
"……하아. 주인님도 원래는 신이었잖아?
인간이란 굴레에서 벗어났는데 왜 번거롭게 임신 같은 걸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니까."
"꼴리니까."
"……."
"내 아이를 배는 게 꼴리니까."
"두, 두 번이나 말하지 않아도 돼……. 하여튼! 작전 얘기는 하나도 못 했잖아."
"30초 설명 부탁해."
내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부탁하자, 벨라는 꽁하게 있다가 말했다.
"차원마법으로 일레시아의 의식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 거야.
들어가서 분체를 퇴거시킨다. 돌아와서 최면을 건다. 끝!"
"굿."
설명은 심플하게!
복잡한 일은 모두 벨라가 알아서 하겠지.
"여신의 의식 세계에는 뭐가 있을지 몰라.
그 나름대로 분체를 지키기 위한 보안 장치가 있을 텐데……."
"보안 장치?"
"만 년 묵은 드래곤 같은 거.
신 취향에 따라서는 미궁 같은 걸 만들어 놓고, 시시덕거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팔색 조개 성' 같은 걸 만드는 취향을 가진 게 너만은 아니구나."
"의외로 할 일없으니까.
신이 직접 나서서 세계를 구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고."
"그러게나 말이야. 직접 나서서 구하면 좀 좋아? 왜 신들은 게으름 피우는 건데?"
"……."
벨라는 어처구니없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신들이 나태해서 그런 게 아니야. 이제 감출 것도 없으니 얘기해줄게.
마물신과 인간신으로 파벌이 나뉘었기 때문에 그런 법도가 생긴 거야."
"파벌이라."
즉,
마물을 창조한 여신, 프레미아와.
인간을 창조한 여신 니뮤엘……. 두 여신 밑에 모인 신들끼리 편을 가르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신이 직접 세계에 개입하면,
생각이 다른 신이 똑같이 개입하지 못할 이유도 없잖아?
견해가 다른 신들끼리 마구 들이닥쳐서 싸워 봐. 사람이 살 수 있겠어?"
"마물도 못 살겠네."
"그래서 천상의 법도가 세워진 거야. 신은 대리인을 통해 세계에 간섭할 수 있고,
신들끼리 싸우면 안 돼."
"함부로 깨면 큰일 나겠네."
"……그걸 나로 하여금 함부로 깨게 한 것이 주인님이야. 이미 잊은 것 같지만."
"아."
그렇군…….
일레시아가 마물쪽 신이었다면 큰일이었겠네.
내가 뻔뻔한 얼굴로 여신의 대리인을 자칭하며 숨 쉬고 있는 걸, 마물쪽 신이 이해해줄 리도 없고.
"그러면 이상하지 않아?
일레시아는 왜 멜브릿의 학생회장을 맡은 거야? 이것도 간섭이라면 간섭 아닌가."
"그래. 이상해.
그 여신이 하는 행동은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게 없어.
주인님을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도 이상하고. 3급 신이 피조물의 성추행을 받아주는 것도 이상하고."
"마지막 건 얼마나 이상한데?"
"본래 같았으면 피부에 닿은 순간 소멸이지.
3급 신은 일부지만 '창조의 권능'도 가지고 있으니까. 피조물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닌데."
일레시아는 심지어 받아주기도 하던데.
떠올렸더니 자지에 피가 쏠렸다.
"비유하자면 애완동물이 자기를 덮치려 드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이지."
"흠……."
……수간인가.
여자 주인을 아무렇지 않게 범하려 드는 대형견…….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아래에 깔려 받아주는 여주인…….
제법 꼴리는데? 그럼 내가 개인가?
내 뒤틀린 인식을 벨라에게 말해봐야, 개변태 소리 들을 게 뻔하니 닥치고 있었다.
"주인님.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않아?"
"잠깐 개로 변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우욱. 제발 역겨운 상상은 머릿속에서만 해줄래?"
"네가 물어봤잖아. 아직 십 분의 일도 말하지 않았는데."
"하아. 애완동물 비유를 그런 식으로 받아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정말, 개변태네. 내 주인님은."
"그럼 갈까?"
우리 목숨이 걸렸을지도 모를 작전 얘기는 스치듯 지나가 버린 것 같지만.
"이게 유언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싫어……."
"만약 배신당해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 같으면, 시간 좀 달라고 하고 종말이 찾아올 때까지 섹스하자."
"……주인님, 정말 대책 없구나."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사람이 없는 본관 1층을 내려다본다.
"그런데, 사람 없다지만 꽤 떠들었네.
누가 엿 들은 건 아니겠지?"
"참 빨리도 걱정하네. 진작 음성 차단 마법을 걸었어. 아무도 모를 거야."
"보지 노예, 편리하네."
"좀 더 칭찬해도 좋아."
나는 칭찬 대신 벨라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꺄앙."
허를 찔린 벨라는 귀여운 소리를 내고, 나를 노려봤다.
"……정말. 변태……."
모든 일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도.
지금처럼 즐거운 기분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도서관 문을 열었다.
벨라가 동행하고 있어서 그런지 전처럼 긴장되지는 않았다.
불의 여신이 나와 함께 한다.
그리고, 거사를 맞이하기 전 레벨도 충분히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학생회가 낸 긴급지령 덕분이기는 한데.
마치 모든 것이 일레시아의 계획처럼 느껴진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레시아의 계획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내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도록 이끄는 것일까.
왜 자애가 넘치는 태도로, 내 모든 걸 받아주는 것일까.
그 해답이 건너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