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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45화 (145/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4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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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안하게 앉아주세요."

    우리는 손님용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모아 구석에 치워 놓고, 이쪽으로 와서 상석에 앉았다.

    다들 묘하게 긴장하고 있어서 나까지 뻣뻣해지는 기분이다.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긴급 지령을 훌륭하게 완수해낸 고마움의 표시를 하기 위해서랍니다."

    아, 보상이 아직이었지.

    모두 한 단계씩 진급하기는 했지만 멜브릿이 준비한 보상은 이 정도가 아닐 터였다.

    어젯밤에 겪은 일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학교 관련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데칼."

    "예."

    나는 학생회장의 부름에, 반사적으로 응답한다.

    시아는 보일 듯 말 듯 하게 눈웃음을 짓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다른 후보생의 이름을 차례대로 호명했다.

    ……몰래 사귀는 사이처럼 굴기는. 요망한 여신 같으니라고.

    "……이상 5인은, 무고한 이를 구한다는 용사의 뜻을 널리 알린, 멜브릿의 자랑스러운 용사 후보생입니다.

    저는 멜브릿 대표해서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우리는 시아를 따라서 묵례했다.

    상투적인 이야기를 마치고, 시아는 본론을 꺼냈다.

    "여러분의 성장을 돕기 위한 영혼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리스가 안내해 줄 거예요."

    카렌은 주먹을 꼭 쥐며 소리 없이 기뻐했다.

    다들 각양각색으로 기뻐하는 눈치였다.

    레벨이 오른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지.

    "하지만, 조심하세요."

    시아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저희는 멜브릿이 가지고 있는 가장 질 좋은 영혼을 대량으로 준비했답니다.

    저항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

    저항이 만만치 않아?

    대체 무슨 뜻이지?

    시아가 자리를 뜨고, 네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안내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리스의 뒤태를 보기 위해서 그녀의 바로 뒤에 붙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곧게 편 등과 잘록한 허리 밑으로, 중량감 있는 엉덩이가 걸을 때마다 씰룩거린다.

    그 엉덩이는 이런 얇은 옷감으로는 자기를 억누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스커트 위로 윤곽을 드러내고 냈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만나는 경계선. 접힌 엉덩잇살이 보일 듯 말 듯 하다가 스커트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됐을 때는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올 것 같다.

    ……지금 덮칠까?

    덮치고 싶은 충동이 무럭무럭 솟구친다.

    "……."

    네리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가 흘낏 돌아본 순간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눈빛이 나를 찌르는 것처럼 파고든다.

    "……당신의 눈알에 예의를 주입해 줄까요?"

    "……아니오."

    나는 뻣뻣하게 굳어서 답했다.

    "마물을 잔뜩 죽이고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제 몸은 흥분한 상태예요. 조심하시길."

    "……예."

    ……지리는 줄 알았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장수들의 기백이 이랬을까.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타고난 용맹함이 있다.

    그런 여자가 폭발적인 젖과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근데 내가 뒤에서 엉덩이를 보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렸나.

    시선이 내려가지 않게 애써보지만, 네리스의 엉덩이는 블랙홀처럼 내 눈길을 끌어당기려고 한다.

    큭……! 이건 무슨 도전 과제냐?

    애써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린다. 옆에는 웬일로 카렌이 아닌 디아나가 바짝 붙어 있었다.

    "……."

    그녀는 나랑 눈이 마주치더니, 볼을 붉히고 고개를 돌린다.

    자연스럽게 카렌의 자리를 빼앗다니. 이 녀석도 요망하네.

    나는 디아나의 손을 잡았다.

    "……."

    디아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꼬옥 잡았다.

    "학생회장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아?"

    "격이 높은 존재의 영혼일수록, 영혼병에 정착시키기 어려워.

    그런 영혼들은 더 좋은 몸을 원하기 때문에 영혼병의 출력과 성능도 상승하는 거야."

    "디아나. 똑똑하네."

    "……이 정도는 당연한 거야."

    디아나의 손을 꼼질꼼질 만진다.

    깍지를 꼈더니 디아나의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오빠."

    카렌이 몰래 다가와서, 내 반대편 팔을 젖가슴 사이에 끼웠다.

    아앗. 이 부드러움…….

    허억. 빨려들어 간닷…….

    "오빠, 기분 좋지……."

    "아아……."

    녹는다.

    "비겁하게 가슴을…!"

    카렌의 압도적인 스킨십에, 디아나가 항의한다.

    "비겁하다니, 디아나도 가슴 있잖아?"

    "큿…! 당신의 가슴이랑 비교할 수 없잖아요."

    "나는 오빠 좆집인걸."

    스티아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셋 다, 너무 크게 떠들면……."

    이미 늦었다.

    뒤에서 이렇게 떠드는데 모를 리가 없다.

    네리스는 멈춰서서, 우리를 돌아봤다.

    "떨어지세요."

    "네, 넷…!"

    카렌과 디아나가 황급히 떨어진다.

    "……."

    네리스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빨리 용 급으로 와주시겠습니까. 데칼. 이렇게 후배를 손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처음이에요."

    "……살살 부탁합니다."

    "다른 두 분도. 멜브릿의 용사 후보생이라는 자각이 부족하군요.

    한 번만 더 내 눈앞에서 남자한테 매달려 교태를 부리는 일이 있으면, 집행관을 부를 겁니다."

    "……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디아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앞입니다."

    어느새 목적지 앞까지 다다른 것 같다.

    네리스가 안내한 장소는 본관 내부에 있는 시설 중 하나였다.

    틸리아가 훈련하자며 나를 데려갔던 도장과 비슷한, 장애물 하나 없는 넓은 공간.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강당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넓은 장소였고, 벽마다 문이 세 개씩은 있었다.

    2층에서도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쪽에도 창문과 별도로 문이 달려 있었다.

    뭐지? 뮤지컬이라도 보여주려고 데려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아무것도 없다. 영혼병 비스무리한 것도.

    "요령을 설명하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네리스는 돌아서서 우리를 보았다.

    "여기서 가져갈 수 있는 경험치는 「능력만큼」입니다."

    능력만큼?

    안 좋은 느낌이 든다.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그 시점에서 종료.

    제가 여러분을 구하러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힘을 합쳐 모두 해낸다면 엄청난 성과를 얻을 수 있겠죠.

    이곳은 멜브릿「시험의 방」, 총 10 웨이브로 구성된 마물 무리를 처리하는 것을 가정해서 만들어진 방어 훈련 시설입니다."

    안 좋은 예감은 잘 맞아떨어지더라.

    좀 편하게 주면 안 되나? 영혼병을 벽에 묶어 놓는다든지.

    "참고로 긴급 지령 보상으로 시험의 방을 배정받은 역대 후보생 중.

    10 웨이브를 전부 막아낸 후보생은 두 명뿐입니다."

    "……."

    한 명은 용사겠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큰 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치세요."

    네리스는 날 보며 살짝 입꼬리를 비틀었다.

    "잘 들리게 말하지 않으면, 구하러 들어가는 것이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니까요."

    …….

    벌써 불안해지기 시작하는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중앙으로."

    우리는 중앙으로 이동했다.

    카렌은 등허리에 찬 숏소드를 빼 들고 내 옆에 섰다.

    "오빠. 하던 대로 갈까?"

    "그래야지."

    아바가 카렌을 보고 결심한 듯 검을 쥐었다.

    "디아나 씨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하아? 필요 없어요."

    "……."

    앗. 아바의 상태가…!

    "디아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아니…. 아바 씨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한테는 호위가 필요 없다는 뜻으로……."

    "……."

    아바는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간신히 제정신을 붙잡고 돌아왔다.

    "그, 그래도…… 방해되지 않게 잘해볼게요."

    "흐응…. 좋아요. 그럼."

    스티아는 세검을 뽑아 들고 자연스럽게 카렌 옆에 섰다.

    그림이 되네. 두 사람은 같은 수업을 들은 영향인지 함께 서 있는 게 무척 잘 어울렸다.

    우리 준비가 끝나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고 영혼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첫눈에 지금까지 본 영혼병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몸집도 커졌고, 동작은 스켈레톤 워리어만큼이나 빠르다.

    대체 무슨 영혼을 썼는지 활동성 자체가 전혀 달랐다.

    "라이트닝 스퀘어!"

    디아나는 즉시 마법을 꽂아버렸다.

    네 마리에서 다섯 마리 정도가 한 번에 나자빠지고 뒤에 있던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듯이 몰려온다.

    나는 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파이어 볼!"

    바람의 장막으로 열기를 가린 파이어 볼을 집속 팔찌로 응축시켜서, 문으로 나오는 영혼병들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쾅!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벌써?

    멜브릿이 우리를 위해 어마어마한 보상을 준비한 것 같다.

    의욕이 절로 나왔다.

    "데칼! 12시 방향!"

    디아나가 외쳤다.

    다른 방향에서도 문이 열리더니 영혼병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확인했어!"

    검을 든 세 사람은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디아나와 나는 서로 영혼병의 위치를 소리 내어 말하며

    원거리에서 마법을 난사했다.

    "파이어 볼!"

    집속 팔찌로 응축한 파이어 볼은 몰려드는 적들을 막는데 무척 효과적이었다.

    주변 일대를 완전히 날려버리는 파괴력 덕분에, 나는 마법을 한 번 쏘고 나면 주변을 느긋하게 둘러볼 여유도 있었다.

    네리스는 내 마법을 보고 살짝 놀란 눈치였다.

    내 불 마법은 벨라의 가호 덕분에 특출난 위력을 발휘한다.

    나는 그 특출난 위력을 숨김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파이어 볼!"

    "데칼. 3시!"

    "뭐야. 또 나와?"

    하지만 모든 영혼병이 하나의 길로만 오는 게 아니었다.

    중앙에 있는 우리를 포위하듯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마법으로는 전부 처리할 수 없다. 지근거리까지 적들이 접근한다. 그때부터 우리 파티의 검사들이 나섰다.

    "흡."

    스티아는 세검 찌르기로 단숨에 영혼병을 터뜨리듯 파괴한다.

    카렌은 스티아의 측면으로 엉겨 붙는 영혼병들을 밀쳐내고, 스티아와 협력해서 영혼병들의 돌격을 저지했다.

    반면 아바는 부족한 힘을 기술로 보충하듯 영혼병들의 취약한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디아나가 마법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었다.

    "제법이야. 아바 씨!"

    "가, 감사합니다!"

    아바는 디아나의 칭찬을 받고 헐레벌떡 뛰어다녔다.

    디아나는 라이트닝 볼트와 라이트닝 스퀘어. 두 가지 마법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영혼병, 다수 무리를 지어 접근하는

    영혼병들을 제거했다.

    "파이어 볼!"

    나는 마치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대포다.

    영혼병 무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쌓였을 때 한 방에 터뜨려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역할.

    하지만 다음 마법을 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카렌은 그사이에 영혼병이 절대 내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날 지키기 위해 행동반경이 좁아진 카렌을 보조하듯이, 스티아는 앞으로 치고 나가서 영혼병들의 수를 적극적으로 줄여나간다.

    "윽!?"

    그러다 스티아는 둘러싸여서, 영혼병이 휘두른 팔에 맞을 뻔했다.

    "라이트닝 볼트!"

    디아나가 즉시 영혼병으로 스티아 주변에 몰려든 영혼병을 쳐낸다.

    스티아는 빠른 세검 찌르기로 영혼병을 정리했다.

    "고마워. 디아나!"

    "조심해. 이 녀석들, 생전의 못된 버릇을 못 고치고 사람을 공격하려 드니까."

    "알았어!"

    진짜 엄청나게 몰려오는군.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레벨이 올랐음을 알리는 건조한 안내 음성과 메시지가 정신없이 반복된다.

    평소에는 접하기도 힘든 최상급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영혼병.

    그 영혼병들을 부술 때마다 흘러들어오는 경험치가, 온몸에 힘을 치솟게 한다.

    기분이 들뜬다. 심장이 뜨거운 혈액을 펌프질하고 뇌를 달아오르게 하는 것만 같다.

    "데칼! 이 이상 막기는 어려워!"

    스티아가 외쳤다.

    "한 두 마리는 보내! 새도 상관없어!"

    "알았어…!"

    틸리아와 훈련한 성과를 보여주지…!

    근데 뭘 배웠더라? 음, 자신감만 있으면 되겠지!

    나는 마법을 준비하면서, 엉겨 붙는 영혼병을 주먹으로 때려서 넘어뜨렸다.

    때리는 순간 영혼병의 가짜 머리가 '쩌억'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좋은데?

    문제는 내 주먹도 갈라질 것 같았다.

    스티아가 유리병 깨듯이 하길래 쉬운 줄 알았는데, 딱딱한 바윗돌을 때린 것처럼 아프다.

    달려오는 영혼병을 앞차기로 밀어낸다.

    "파이어 애로우!"

    나도 디아나처럼 두 가지 마법을 혼용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배리어를 펼쳐 공격을 맞으면서 마법을 시전했다.

    이놈들 공격이 아프기는 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보다 우리가 완전히 둘러싸여서 꼼짝도 못 하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영혼병의 수는 그 정도로 많았다.

    다행히 첫 번째 웨이브는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남은 한 마리를 정리한 나는 오랜만에 여신의 물병을 꺼내서 마셨다.

    "디아나! 마셔."

    나는 디아나에게 물병을 던졌다.

    "마력을 채워주는 물이야."

    디아나는 물병을 쥐고 주저했다.

    "교양 없는 행동이지만, 상황이 급박하니 어쩔 수 없네."

    디아나가 물병에 입을 댄 직후, 바로 다음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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