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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44화 (144/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4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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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레시아와 만나서 겪은 일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1층 홀로 이동했더니, 이미 벨라와 에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벨라는 잘난 듯 옥좌에 앉아서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에페는 그 옆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에페."

    내가 강아지 부르듯 손짓하자, 에페는 총총 뛰어와 나한테 안겼다.

    풍만한 젖탱이가 내 복부를 부드럽게 압박한다.

    나는 에페의 뿔에 손을 얹고 내려다봤다.

    "착하게 집 지키고 있었어?"

    "……네."

    전 여신이자, 지금은 내 보지 요정인 에페.

    작은 키에 맞지 않는 언밸런스한 힙과 젖가슴의 소유자로, 머리에 한 쌍의 뿔이 달려 있다.

    아직 보지 요정에 적응이 안 돼서 창피한지 수줍어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좋았다.

    에페는 건강한 연갈색 살결의 탐스러운 젖탱이를 내 복부에 비벼대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딱 쓰다듬기 좋은 높이에 와 있는 에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벨라를 봤다.

    "벨라.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있었지. 여기서 보고 있었어. 주인님이 일레시아와 만나서 얘기 나누는 거."

    "……나를 훔쳐보는 취미도 있었냐?"

    "그, 그런 취미 없어! 위험해지면 지켜달라고 한 건 주인님이잖아."

    그랬었지. 근데 내가 일레시아와 맞닥뜨린 순간을 어떻게 알았지?

    역시 평소 훔쳐보고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런 거 아냐.

    중간에 일레시아가 신격을 드러냈지? 그래서 알았어. 주인님이 있는 세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까.

    신이 강림하면 아무래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어. 상대도 내가 나타나면 알 수 있듯이. ……알았어?"

    "훔쳐보기 의혹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네."

    "……큿, 그래. 봤어! 주인님을 지켜주려면 어쩔 수 없는걸. 항의는 받지 않겠어."

    "장난이야. 봐도 상관없어. 오히려 고마울 정도야."

    오히려 설명할 시간이 줄어서 좋다.

    일레시아가 신격을 드러낸 후부터 이야기를 전부 같이 들었다면,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에페의 뿔을 잡고 말했다.

    "에페도 벨라랑 같이 보고 있었어?"

    "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건방지네. 보지 요정 주제에 보지 말고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야?"

    나는 에페의 젖가슴을 주물럭주물럭 만졌다.

    "앗……. 하읏……."

    강하게 쥐어짜듯이 주무르자, 에페는 내게 몸을 기대고, 날 올려다보며 움찔움찔 떨었다.

    "저도, 원래는 여신……. 이었으니까……."

    "그럼 같이 얘기할까?"

    "…네!"

    "벨라. 그래서, 어땠어?"

    "……어땠냐니. 어이가 없었어. 그 여신은 대체 뭐야?"

    "응?"

    벨라의 심기가 불편했던 원인은, 일레시아를 향한 불만이었나보다.

    "일레시아가 왜?"

    "모르겠어? 나는 운 좋게 입회할 수 있었던 게 아니야.

    일레시아는 일부러 보여주려고 한 거야. 주인님과 얘기 나누는 모습을, 나에게."

    "일부러 보여줬다?"

    "그럼. 목적이 있는 행동이었어. 위엄있는 연출을 하려고 신격을 드러낸 줄 알았어?"

    "……아니었어?"

    조용한 도서관에서 여신이라고 밝혀봤자 머쓱할 것 같아서 그런 줄 알았다.

    실제로 모든 것이 빛으로 뒤덮였을 때는 놀라기도 했다.

    일레시아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걸 느낀 순간이기도 했고…….

    "그런 의도가 아예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본 목적은 이후에 할 얘기를 나한테도 들려주고 싶어서였겠지.

    그래서 나는 일레시아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들을 수 있었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일레시아 나름대로 벨라를 떠본 것일까?

    아니면 순수하게 날 돕기 위해서?

    "모든 게 너무나도 파격적이야. 한낱 인간에게 밝혀서는 안 될 얘기들이 너무 많았어, 신의 품위를 떨어트렸지.

    거기에, 신격을 드러낸 상태로 주인님의 성추행을 태연하게 받아주는 걸 보고 경악했어.

    최면으로 뇌가 절여진 게 분명해."

    전 여신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나와 일레시아의 대담에 불쾌한 요소가 많았던 것 같다.

    하긴, 일레시아는 내게 친절했고, 너그러웠다.

    맛보기를 한다며 끌어안아서 키스하고, 엉덩이를 만지고…….

    벨라와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짓을 했다면 내 존재는 깔끔하게 소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지 노예인 네가 왜 화를 내는데?"

    "……."

    벨라는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

    "나, 나는 여신의 책임에 대해 얘기했을 뿐이야. 별로, 주인님한테 화가 난 건 아니야."

    "정리하자면, 일레시아는 여신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편든다.

    다른 신이 봤으면 졸도할 정도다……. 뭐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되는 거지?"

    "그래."

    "네."

    에페까지 동의하고 나섰다.

    나도 일레시아의 묘한 태도에 꼴림 반, 놀라움 반이지만…….

    여신들의 증언이 모이니 확실해졌다.

    일레시아는 나한테 어떤 종류의 암시를 받았다.

    지금 단계에서는 그게 어떤 암시인지는 알 수 없다.

    "벨라. 네 말 중에 하나 정정할 게 있는데."

    "응? 어떤 것?"

    "너희도 얘기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한낱 인간이 아니야. 신이다."

    "……." "……."

    막상 말하고 나니 부끄럽다.

    최면도 안 걸고 혼자 이러니까 신이 아니라 병신같다.

    "……역시 위엄 있는 연출은 필요한 것 같아."

    내 뒤에서 빛이라도 뿜어져 나왔으면 뭔가 달랐을 것 같다.

    "너희들은 내가 무슨 신이었는지 몰라?"

    확인차 묻는다.

    "전혀 몰랐어. 사람의, 신의 마음조차 조종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신?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에페는?"

    "……."

    에페는 말이 없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이것도 금제를 건드리는 일인가? 나는 벨라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래도 주인님이 노려지는 이유는, 과거에 무언가 저질렀기 때문인 것 같은데."

    "으윽……."

    뭘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도 남았을 것 같아서 찔린다.

    난 대체 뭘 한 거야?

    "애초에 신이었다가 인간이 될 수도 있어?"

    "죽으면 그럴 수 있어. 데칼은 한 번 죽었을 거야. 하지만 요령도 좋네. 신격만 버리고, 기억은 따로 보관하고, 권능을 가진 채

    혼돈계에 전생하다니.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됐는지 짐작도 안 가."

    나도 그렇다.

    내가 그런 용의주도한 준비를 했다고? 설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모르는 걸 생각하고 있어도 어쩔 수 없지.

    목표를 정하자. 일레시아에게 최면을 걸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이 일에 벨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레시아가 일부러 벨라에게 우리의 대화를 흘린 데에는 그런 의도가 있지 않을까?

    에페는……. 음, 딱히 도움 안 돼도 상관없다. 귀여우니까.

    나는 에페의 젖가슴을 조물조물 만지며 벨라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분신체를 만들었을 때는 의식이 흩어지니까 최면에 걸리지 않아. 그러니까 일레시아를 강제로 현신시킬 방법이 필요해.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역시 무력을 행사하는 거야."

    "무력을 행사한다고?"

    "응. 상대가 알아서 정체를 밝히고 나왔잖아. 그리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 이런 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뭐가 되겠어?"

    "신과 신이 붙으면 난리 나는 거 아니었어?"

    "맞아. 하지만 이쪽에는 주인님이 있어. 상대가 현신하지 못하면 나한테 승산이 있고, 현신해도 최면을 걸면 돼."

    벨라의 무력행사를 통한 겁박…….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레시아는 먼저 공격할 권리를 우리한테 넘긴 거나 마찬가지니까.

    "벨라는 지금 원하면 현신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언제든 완벽한 불의 여신으로 돌아가, 모든 걸 불사를 수 있지."

    좀 분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벨라는 옥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었다.

    역시 여신은 여신. 일레시아에게 뒤지지 않는다.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에페를 내려다봤다.

    "저는 애초에 되다 만 여신이라, 원래부터 반신반인 같은 것이에요."

    "아. 그럼 몸은 원래 하나야?"

    "네."

    "임신도 할 수 있고?"

    "……네."

    "급이 낮은 신들은 그래. 위업을 쌓으면 점차 신으로서 각성할 수 있지."

    벨라가 설명을 보태주었다.

    "죄송해요.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미 도움 되고 있어."

    주로 내 자지의 건강에.

    나는 에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지 요정의 역할은 날 꼴리게 하는 거야. 알았지?"

    "네!"

    에페가 야릇한 얼굴로 내 몸에 부비부비한다.

    기분 좋았다.

    "벨라. 일레시아는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잖아.

    다른 방법은 없어?"

    "그 여신을 있는 그대로 믿지 마.

    모종의 이유로 완전해질 수 없는 상태라면, 그저 현신하기 위해 주인님을 이용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

    지금은 일레시아를 믿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일레시아는 분명히 모범 답안을 준비해놓은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

    "……."

    벨라도 일부 동의하는지, 침묵으로 긍정했다.

    "벨라. 너와 나 둘이서 할 수 있을 거야.

    일레시아를 현신하게 만드는 방법이."

    "당장 떠오르는 건……. 분신체를 찾아서 강제로 퇴거시키는 거야."

    "그런 게 가능해?"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게 함정이었을 경우, 주인님만이 아니라 나까지 죽을 수도 있어.

    우리가 분신체를 퇴거시키기 위해 상대의 의식 세계에 들어가 있는 동안, 우리는 본체에 간섭할 수 없지만

    상대는 우리한테 간섭할 수 있기 때문이야."

    "즉, 일레시아가 우리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믿어야만 가능한 작전이다?"

    "그래.

    두 사람의 대화처럼 일레시아가 끝까지 가만히 있어 주기만 한다면 어렵지 않아.

    분신체를 퇴거시키고, 원래 세계로 돌아와서 최면을 걸면 끝.

    나는 차원 마법이 특기니까. 하려면 지금 당장도 할 수 있어."

    벨라는 말을 마치고 나를 바라봤다.

    이후의 판단은 내가 할 수밖에 없다.

    직접 일레시아와 대면하고 얘기를 나눈 나만이, 이 작전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보는 제한되어 있다. 일레시아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다.

    내 생각에는 믿을 수 있다.

    처음 얘기한 대로, 일레시아가 최면에 걸린 상태라는 정황이 너무 확고하다.

    일레시아의 태도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연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부자연스럽다.

    일레시아는 이미 많은 패를 보여줬고, 나한테 진솔함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내가 건 최면에 의한 결과든, 그녀 자신의 생각이든.

    내 마음은 정해졌다.

    "무력행사 얘기는 없었던 거로 하자."

    일레시아는 말했다.

    이건 실전을 대비한 연습이고, 실패해도 좋다고.

    나를 해치거나 하지 않겠다고.

    그 상냥함에 따라, 이쪽도 일레시아가 다칠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 솔직한 생각이었다.

    "……."

    벨라는 한숨을 쉬었다.

    "조금 불만은 있지만, 좋아. 주인님은 개변태인걸.

    길들인 여자에게 발목 붙잡혀서 죽는다면, 그것도 호상이지."

    은근슬쩍 심한 말 하네.

    "함정이라고 해도 더 복잡한 의도가 있을 거야.

    단순히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너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 안 들어?"

    "올바른 지적이네.

    나는 그냥…… 그 여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너무 형편에 맞게 돌아가는 상황이 의심스러운 거야."

    노아가 했던 말과 같다.

    나도 벨라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일레시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내 과거만큼이나 수수께끼였다.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거야? 주인님.

    나는 지금 당장 해도 좋은데."

    "일레시아가 예고한 시각에 시작하자. 내일 밤 자정."

    "좋아."

    벨라와 상의를 마치고 다음 날.

    나는 낮에 멜브릿 학생회의 호출을 받고 본관으로 갔다.

    학생회실 앞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긴급 지령 때 함께 했던 멤버들.

    스티아, 카렌, 디아나, 아바가 있었다.

    "오빠!"

    카렌이 가까이 다가와 배시시 웃는다.

    나는 인사보다 먼저 카렌의 젖탱이를 손으로 주물렀다.

    "앙…."

    카렌은 수줍어하면서도 젖가슴을 대주었다.

    "데칼! 자중해."

    디아나가 옆구리에 손을 얹고 엄하게 말했다.

    "왜? 아무도 안 보는데."

    "이 문 건너편에 학생회장, 시아 님이 계셔."

    아아.

    그래서 긴장하고 있었구나.

    스티아도 떨리는 듯했다.

    "학생회장…….

    어떤 사람일까.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아바는 중압감으로 찌그러지기 직전인 것처럼,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긴장해서 혀 씹으면 어쩌지……."

    "바로 들어갈까?"

    낮부터 일레시아를 볼 수 있다니.

    나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학생회실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네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학생회실 안.

    사람 한 명 더 있을 뿐인데도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네리스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시아가 있고, 네리스는 한 걸음 물러나서 그 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멜브릿 학생회장 시아와 그녀를 지키는 창기병.

    너무 잘 어울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멜브릿의 학생회장. 시아입니다."

    시아가 인사했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1월도 매일 오곡밥 맛있게 지어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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