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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24화 (124/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12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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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지시를 받았다고?"

"그래."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여신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고?

에페는 지금 그렇게 말한 건가.

벨라도 꽤 충격이었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벨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신이 사주를 받고 인간을 죽이려 든다는 게 말이 돼?"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야.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어. 왜 신이 인간에게 그 정도 원한을 갖겠어?

당장 죽으면 찾아가서 영혼을 소각해버리면 그만인데. 애초에 5급 신을 부릴 정도면……."

벨라는 오한을 느낀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창백한 안색을 한 벨라는 본 적이 없다.

"2급 신 이상일 거야.

창조신 바로 아래야. 나 따위는 감히 앞에 서는 것도 두려울 정도란 말이야."

"……."

나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어서 질문했다.

"누구야?

너한테 지시한 건 누구야. 날 죽이라고 지시한 신은 누구야!"

"……극."

그때였다.

"아아악!"

여신 에페는 갑자기 심각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처럼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마법적인 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다.

에페의 목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금색의 전류가 발작적으로 흐르며 에페의 생명을 신속하게 앗아가고 있었다.

"위험해!"

벨라가 보호 마법을 펼쳐서, 금색 전류가 방출되는 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전류는 멈추지 않았다.

에페가 내 암시에 걸려 계속 말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건……. 그으윽."

"주인님!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 빨리!"

"말하지 않아도 돼."

에페는 강한 충격 때문에 깨어났다.

트랜스 상태가 풀린 것이다.

암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위험한 상황이었다.

"으, 아……."

하지만 에페는 방금 그 마법으로 인해 모든 생명력을 빼앗긴 것처럼, 저항할 힘도, 도망칠 힘도, 말할 힘조차 잃은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은 채

피를 토했다.

딱.

나는 다시 손가락을 튕겨, 에페를 트랜스 상태로 만들었다.

"지금 건 뭐였던 거야?"

"강력한 금제야.

어떤 말에 반응하도록. 이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겠네. 말하면 신속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금제였을 거야."

"풀 방법은?"

"없어. 동격의 신이 아니고서는.

간단한 마법처럼 보이지만 닿으면 피조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 정도로 강한 권능이야."

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었군…….

"이대로 두면 죽어?"

"죽어."

"……."

에페는 눈, 코, 입, 귀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트랜스 상태로 만들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암시를 걸어도 의미가 없다.

곧 숨이 멎을 테니까.

"별빛 조개를 써도 살릴 수 없어?"

"대는 것만으로는 무리야. 신의 생명력을 망가뜨릴 정도의 금제니까. 별빛 조개를 완전히 갈아서 쓰는 수밖에는……."

"……."

말하면서도, 벨라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나는 별빛 조개를 꺼냈다.

이 별빛 조개는 벨라의 보물.

그런 식으로 썼다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신도, 그 상급 신에게 닿을 유일한 단서다.

그 정도로 대단한 권능을 가진 신이라면 다른 단서가 남을 리 없고

오히려 자기가 부리던 여신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알면 스스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끝이다.

여기서 이어나가야 한다.

에페한테는 아직 듣지 못한 중대한 비밀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그런 비밀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패야.

"벨라. 미안해."

"괜찮아. 어차피 내 손을 떠난 물건이니까.

나도 주인님이 죽는 건 원하지 않아."

박서연을 이용한 여신에게 별빛 조개를 쓴다니.

전혀 바라던 상황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날 위해 사용할게.

결국 이게 내 목숨을 구한 것과 같을 거야."

"그러길 바라. 자, 건네줘."

나는 벨라에게 별빛 조개를 건넸다.

벨라는 쪼그려 앉아 에페와 눈높이를 맞추고, 별빛 조개를 풀어주듯 손에서 놓았다.

그러자 조개는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스스로 분해되더니 에페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에페의 상처가 나아가고 있다.

마치 시간을 되감는 것처럼,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적 같은 치유가 끝나자, 에페는 편안하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됐어. 이제 주인님 취향대로 구워삶아서, 원하는 걸 알아내야지."

그래.

부디 이 선택이 맞기를 바란다.

"에페, 일어나."

에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금제를 잘못 건드려 죽게 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할 수 있는 질문도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내가 묻는 말이 금제를 건드려 목숨이 위험한 경우 대답하지 않는다」"

"알았어."

에페의 목숨 하나를 지불해서 알아낸 중요한 정보다.

에페에게 지시한 상급 신은 금제로 협박해서 그녀를 부리고 있다.

저런 험악한 금제를 좋아서 받을 리는 없으니까.

"행동을 감시당하고 있어?"

"그래."

"서연을 이 세계에서 물러나게 하거나 날 죽이는 일을 포기하면 네 목숨이 위험해져?"

"위험해져."

골치 아프군.

"내 편이 될 생각은?"

"없어."

"네게 지시한 자가 날 죽이려 하는 이유는."

"……."

"서연을 고른 이유는 뭐야?"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

더는 생각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가려져 있어서 머리만 아플 뿐이다.

아직 내가 상대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서, 수동적인 상태로 질문만 받게 해서는 진상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나를 도울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협력해주는 태도로 나올 때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복잡하고 다양성 있는 반응을, 암시만으로 주입하기는 어렵다.

노예가 돼라. 하는 말은 뭐든 들어라. 날 위해서 일해라. 뭐든지 날 위해서 생각해라.

이러한 극단적인 암시는 그 사람의 내면을 망가뜨릴뿐더러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

극히 단조로운 반응은 기대할 수 있겠지만.

암시를 구체적으로 풀어도 시 읊조리듯이 길어지기만 할 뿐이다.

생각하다가 한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길들여야 한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로.

"벨라. 성이 복원되는 대로 에페를 가둘 방을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벨라가 깍듯한 태도로 말했다.

온종일 범해서라도 뜻대로 하게 만든다.

내 방식은 그런 것뿐이다.

적절히 회유하거나 내 인성에 탄복하게 만들어서 내 사람으로 만들거나.

그런 일은 나랑 안 맞아. 대신 지금까지 지겹게 해온 일이라면 있다.

나는 에페의 뿔을 꽉 잡고 말했다.

"에페.「너는 나한테 괴로운 일을 당했을 때. 아플 때. 고통스러운 순간에 행복하고 기쁘다」"

"아플 때……."

"「고통받는 순간,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잊을 수 없다."

"「아픔을 되새길 때마다 나를 떠올린다」"

"당신을, 떠올린다……."

나는 뿔 달린 젖 큰 여신에게, 어떤 인간도 씹변태 마조히스트로 만들 수 있는 암시를 세심하게 박아 넣었다.

모두 피학 욕구를 최대한 끌어올리며, 상승 작용도 큰 암시다.

일찍이 벨라에게 이와 비슷한 「굴복」 암시도 걸었던 적 있지만, 이 암시는 그보다 훨씬 강하다.

고통은 모든 인간이 공통되게 갖춘 감성이며 인식이고, 가장 강렬하기 때문이다.

「고통, 아픔, 괴로운 일」비슷하게, 혹은 다른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말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심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을 모두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다.

몸이 이러한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순간, 무슨 짓을 당해도 쾌락밖에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예전에 시험해본 적 있다.

고등학교 때, 모욕과 폭언을 일삼는 삼십 대 초반 여선생한테.

그녀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픔에 둔감해져서 자극을 추구하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너무 강한 효과 때문에, 덧써서 완화한 다음 돌려놓았지만…….

그 이후에도 아픔을 선호하는 성향 자체는 바뀌지 않아서, 자기를 망가뜨려달라고 애원하는 꼴이 되었다.

마지막 암시는 그런 내 반성이 들어가 있는 세밀한 조정이다.

「나」를 떠올릴 것.

아픔을 잊을 수 없고 되새길 때마다 날 떠올리게 한 이유는.

고통과 쾌락만이 전부가 되면 안 되니까.

「나」의 존재를 이른 시일 안에 에페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새겨넣어야 한다.

그러면 도움이 되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임한다.

에페가 꼴리는 몸을 가진 여신이라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럴 때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다.

"「나와 내 주변 인물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일절 금한다」"

나는 멈추지 않고 안전장치를 걸었다.

"「내 의도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녀의 몸을 보이지 않는 줄로 감는다.

그 줄은 절대 끊어지지 않고 풀리지 않는다.

내가 그럴 마음이 들기 전까지는.

"「내 곁에서 허락 없이 이탈하는 것을 금한다」"

총 여덟 개 암시를 걸었다.

이 일은 나한테 있어서 최우선 사항.

짝.

손뼉을 친다.

"아……."

에페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얼굴은 나를 인지하자마자, 뜻밖의 불쾌함. 짙은 경계심으로 물들었다.

도망가려는 듯 뒷걸음질 치기에, 나는 말했다.

"내 곁에 있어야지?"

"…읏?!"

에페는 강한 중력장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뜻대로 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겠지.

"날 보고 그런 표정 짓는 걸 보니 알고 있나 보네.

내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 알고 있어…!"

"도망치려다 붙잡힌 기분이 어때?"

나는 에페의 뿔을 잡고 흔들었다.

"으읏! 이거 놔!"

에페는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나한테 뿔을 잡혀 끌려다녔다.

"죽여버릴 거야. 너 같은 것. 여기서 지금이라도 당장…!"

나는 에페의 뺨을 때렸다.

"아읏!?"

"말버릇부터 예쁘게 고쳐주마."

에페는 무력하게 뿔을 잡힌 채 뺨까지 맞은 것이 당황스러웠는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뺨을 맞은 순간 느낀 미지의 감각도 너무나 생소했겠지.

누군가한테 맞으면 불쾌함이 앞서야 하는데 그녀는 자기 뺨에 손을 얹고 멍하니 있었다.

때맞춰 팔색 조개 성의 복원이 시작되었다.

무너졌던 건축재들이 알아서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것처럼 움직이며, 성은 급속도로 원래 모습을 되찾아간다.

"벨라. 얘 가두고, 엘린을 안전하게 보호해 줘."

"네, 주인님."

나는 에페의 뿔을 잡고 끌어와서 벨라에게 넘겼다.

"나한테 무슨 짓 하려는 거야?!"

"금방 알 거야."

"이거 놔! 어째서 권능이 말을 안 듣는 거야?!"

도망칠 수도 없고 벨라에게 피해를 줄 수도 없다.

에페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비협조적으로 칭얼대는 것뿐.

벨라는 무력화된 에페를 데려갔다.

나는 그사이에 케파 마을 숙소를 돌아왔다.

아무나 한 사람 찾아서 전언을 맡기고 싶은데.

마침 복도에는 카렌과 스티아가 있었다.

내가 먼저 두 사람에게 말 걸려고 했는데, 둘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듯했다.

"오빠?"

"무슨 일 있었어? 데칼."

뭐야, 이 반응은?

"……내 표정이 그렇게 심했어?"

"응. ……많이 화난 것 같아."

"……."

카렌이 쭈뼛쭈뼛하는 걸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괜히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네.

"급한 일 있어서, 하루만 자리를 비울게. 너희는 하던 대로 계속해도 돼.

혹시 늦어지면 먼저 돌아가도 상관없어."

"오빠. 기다릴게."

"마찬가지야. 데칼을 놓고 가다니, 그럴 순 없어."

"고맙다.

나 없는 사이에 너무 무리하지 말고. 디아나랑 아바한테도 잘 전해 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내 표정이 좋을 리가 없지.

본래 그 세계에서 헤어져야 했을 서연과 나를 강제로 재회시킨 빌어먹을 여신을 만났으니까.

어두운 흥분으로 마음이 들끓고 있었다.

잠시 속세 일을 치워두고 팔색 조개 성으로 돌아온 나는, 즉시 벨라가 준비한 방으로 갔다.

처음 보는 방이다.

다른 객실과 배경은 같지만, 무척 살풍경하다.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것처럼 그냥 텅 비어 있는 방.

어쩌면 복원이 덜 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방 중앙에는 에페와 벨라가 있었다.

에페는 아무리 씩씩거려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이제는 붉은 눈으로 날 쏘아보며 묵언으로 항의하고 있었다.

"벨라. 내일 아침이 되면 알려줘."

벨라는 내게 다가와 입맞춤하고, 방을 나섰다.

에페와 실내에 단둘이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나는 창문에 커튼을 쳐서 빛을 줄이고 에페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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