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1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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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샤워실에서 나온 후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다.
카렌과 손을 맞잡고 애정이 어린 스킨십을 나누며 낯간지러운 말도 속삭이며 키득거리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아침이었다.
살짝 움직이면 달아날 듯한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몸을 감싼다.
카렌은 어제 샤워실에서 나눈 격렬한 정사 때문인지 내 품에서 아기처럼 잠들어 있었다.
오늘은 각자 자유롭게 흩어져서 마을을 조사하기로 한 날이다.
「붉은 영혼석」을 보이는 대로 회수해서 파괴하기는 했지만 그게 모든 영혼석이라고 밝혀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적단 괴멸에는 성공했으나 붙들고 늘어질 만한 유의미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스티아 만큼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는 않았다.
내 긴급 지령은 도적단을 괴멸하고 돌아온 날 끝났다.
그래서 오랜만에 좆집을 불러서 잔뜩 안았고.
카렌의 음란한 몸은 언제나 그랬듯 꽉 차는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기분 좋게 잘 수 있었다.
오늘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어제 낮에는 스티아와, 밤에는 카렌과 놀았으니 오늘은 디아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다가 디아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듬뿍 포상 섹스하는 것도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이건 나한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박서연」을 이쪽 세계로 부른 신은 누구인가.
즉, 새로 개입한 세 번째 신의 정체.
그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이는 내가 알기로 한 명 뿐이다.
보지 노예 벨라.
전 4급 여신 벨레이라.
그녀라면 무언가 알고 있겠지.
스티아와 카렌의 몸으로 위로도 받았고, 서연의 존재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벨라를 찾아가기에 딱 좋다.
나는 보관함에서 대왕 팔색 조개를 꺼냈다.
바닥에 조개를 내려놓자, 카렌이 졸린 얼굴로 일어났다.
"오빠……? 어디 가?"
"조개 성 갔다 올게.
벨라한테 볼 일이 있어서."
"응, 잘 갔다 와."
나는 팔색 조개 메뉴를 조작해서 홀로 이동했다.
여느 때처럼 벨라가 중앙 홀 옥좌에서 잘난 듯 앉아있으리라 믿고서.
나는 조개 성에 진입한 순간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당연히 실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뻥 뚫린 하늘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성이 박살 나 있었다.
더럽게 발라먹은 생선 뼈처럼 처참한 상태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벨라와 엘린이 어떻게 됐는지 걱정이 돼서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늦어버린 것일까?
하늘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새는 아니다. 확실히 사람의 모습이었다.
나는 바람의 정령을 불러서 공간 도약으로 날았다.
아직 간신히 뼈대를 유지하고 있는 성의 고층에 착지 지점을 만들고 한순간에 거리를 좁혔다.
날아다니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슬슬 시간 끄는 건 그만하고 내려오지 그래. 내 보금자리를 망쳤으니 각오는 돼 있겠지?"
선명한 붉은색 머리카락과 하얀 슬릿 드레스.
우아한 자태로 하늘에 떠 있는 여신, 벨레이라.
「보지 노예」로서 나한테 복종하던 암컷 느낌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날이 서 있었다.
"보금자리? 그런 이상한 취미를 갖고 있으니까 신들이 널 싫어하는 거야. 벨레이라."
상대는 누구지.
벨라와 대치하고 있으니 동격의 존재, 신이겠지.
나는 적당한 높이로 솟아있는 파편에 몸을 숨기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뜻밖에 상대도 젊은 여자였다.
하지만 벨라처럼 「여신」이라고 불릴 법한 외양은 아니었다.
예쁘장한 외모라는 건 한눈에 알아봤지만 마치 우리가 아는 악마의 특징을 일부 빌려온 듯한 생김새였기 때문이다.
키는 작고 가슴은 큰 편이다.
알맞게 태운 갈색 피부와 붉은 눈이 잘 어울렸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잘 맞는 보라색 단발머리에, 앞쪽으로 굽은 두꺼운 뿔.
그 뿔은 마치 산양의 뿔과 닮아 있었다.
젖가슴 큰 단신의 갈색 피부 소녀를 악마라고 부르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뿔만 떼어놓고 보면 확실히 불길한 인상이 있다.
뿔이라고 하면 악마의 상징 같은 거 아닌가?
애초에 악마가 있는지도 나한테는 알 수 없지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범인이 누군지는 알았다.
"응? 누구야!"
들켰나?
나는 뿔 달린 젖 큰 소녀랑 눈이 마주쳤다.
젠장. 알기 쉽게 괴물처럼 생기면 얼마나 좋아? 꼴리는 외모에 이끌리듯,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도망쳐야 할지 싸워야 할지,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그때였다.
"큿…!"
어……?
젖이 큰 소녀는 날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움츠린다.
벨라도 상대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여기 있었구나. 알았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고, 뿔 젖 소녀가 물러나려고 한다.
벨라가 사라질 때와 비슷하다. 뿔 젖 소녀의 근처에 작은 공간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이번에는 명확히 봤다.
딱!
나는 바로 손가락을 튕겨 최면을 걸었다.
"동작 그만."
뿔 젖 소녀는 도망치려다가 내 최면에 걸려 동작을 봉쇄당했다.
"어딜 가려고?"
거슬리는 말 내뱉고 도망가서는,
한참 뒤에 나타나 짜증 나게 하려고?
그런 개수작 질을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아?
"뿔 달린 애. 내 앞으로 온다. 실시."
"……."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 소리로 아이들을 납치하듯이.
공중을 유유히 날고 있던 뿔 소녀는 트랜스 상태로 얌전히 내 앞에 착지했다.
이렇게 보니 엘린과 큰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단신이네.
딱 알맞은 높이에 뿔이 있어서 핸들 같다.
손쉽게 얻은 내 전리품을 감상하고 있었더니, 벨라가 내 옆으로 이동했다.
벨라한테는 묻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에 최면을 걸지 않았다.
어차피 벨라는 걸리지도 않고.
"이 뿔 년은 누구야?"
나는 뿔 소녀의 머리에 달린 뿔을 꽉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5급 신.
질투의 여신 에페."
"「질투의 여신」?"
여신이 맞았구나.
이 뿔은 질투라는 뒤틀린 감정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잡고 흔들어보니까 장식은 아닌데. 진짜 머리에서 돋아난 것 같다.
"……."
벨라는 내가 질투의 여신 뿔을 한 손으로 잡고 장난감처럼 흔드는 모습을 기가 막힌 듯 바라봤다.
"여신을 한순간에 이렇게 만들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게 되니까 소름 돋았어."
"도망쳐서 귀찮은 일 만들 것 같길래. 바로 떨어뜨렸지."
이제 보지 노예 2호로 만들어도 그만이고, 벽에 걸어놔도 문제없다.
보통 예쁜 여자를 만났을 때는 즐거운 생각이 들 때까지 고민하지만 여신을 상대로는 그런 걸 할 여유가 없다.
우선 걸고 본다.
적어도 이 뿔 여신은 최면에 대해 몰랐고, 벨라처럼 분신체를 나눠서 대응할 줄 몰랐기 때문에 즉시 나한테 함락당했다.
"이제 설명해 줘. 무슨 일이 있었어?
성은 왜 이 모양이야? 아니, 제일 먼저…… 엘린은 무사해?"
"무사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어. 그래서 숲으로 가서 몸을 숨기라고 했어."
"성이 부서진 이유는?"
"에페가 도망치고 다녔기 때문이야. 하지만 내가 일부러 화려하게 부순 것도 있어."
"어째서?"
"시선을 끌고 싶었으니까.
상대의 의도를 모르는 이상 주인님의 여자를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어.
엘린한테 주의가 쏠리지 않도록 한 거야."
"……."
"어차피 성은 시간이 지나면 복구돼.
이 정도면 좀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딱히 문제없어."
아무리 복구된다고 해도, 아끼는 성을 자기 손으로 부숴가면서까지 내가 데려온 여자를 지키려고 한 건가.
이러면 벨라를 탓할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칭찬해줄 일이었다.
"고마워. 벨라."
"흐흠."
벨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이 뿔 여신은 질투의 여신 에페라고 했던가? 얘는 왜 여기 온 거야?"
"나도 모르겠어.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처럼, 아니…… 뭔가 찾는 것처럼 계속 돌아다니더라고."
"다른 신이 이 세계에 침범한 일이 예전에도 있었어?"
"없었어. 다른 신들이 관심 가질만한 일은,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걸.
만약 있다고 한다면……."
벨라가 나를 뚫어지게 봤다.
그래. 역시 그렇겠지.
이 뿔 여신은 나를 알고 있다. 나를 찾으러 이곳에 온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주인님."
"당연히, 거부할 수 없는 질문을 해야지."
나는 뿔 여신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갑자기 최근에 심문하는 일이 많아졌군.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는 상대를 심문할 때 위협하거나 회유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은 오직 진실만.
그러나 약간 다루는 데 요령은 필요하다.
우선 당장「아는 것은 전부 말해라」 따위로 범위를 넓게 잡고 얘기하면, 그날 온종일 뿔 소녀가 하는 얘기를 듣느라 밤이 샐 것이다.
내가 알고 싶은 정보에 대한 범위를 좁히고 그 일에 대해 말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내 질문에 거짓 없이, 왜곡 없이 답하라」"
"……알았어."
깨워서 이야기를 진행하면 피곤하기 때문에, 트랜스 상태로 심문을 시작했다.
"너는 누구지?"
가장 기초적인 질문이다.
"질투의 여신. 5급 신 에페."
"에페. 왜 팔색 조개 성에 왔지?"
"네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역시 날 노리고 왔군.
근데 난 벨라를 만나기 전 여신과 접점을 가진 적이 없는데?
"왜 나를 찾아왔지?"
"죽이기 위해서."
여신이 나를 죽이러 왔다.
박서연에 이어서 이 여자까지, 대체 뭐야.
여자가 날 죽이러 오는 건 솔직히 누구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다른 여신의 원한을 산 적이 있던가?
가만…… 박서연?
"혹시 네가 박서연을 내가 있는 세계로 보냈어?"
"그래."
범인을 찾았다.
나는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었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자. 화내는 건 이 여신이 왜 그랬는지 파악한 뒤에 해도 돼.
심호흡한다.
"주인님."
"응?"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무슨 얘기야?"
"아직 너한테 얘기 안 했지.
사실 오늘 그 얘기를 하러 온 거야. 내가 있는 세계에 다른 신의 개입이 있었어.
그 신의 대리인으로 온 게 「박서연」이라는, 현대에서 나랑 알던 인물이야."
"알던 인물?"
"……나를 죽인 여자야."
"주인님한테 원한을 가진 여자를 대리인으로 삼아서 주인님이 전이한 세계로 보냈단 말이야?"
"정황상 그런 것 같아."
이 뿔 여신이 왜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박서연의 존재는 내 치부이며 역린이라는 것이다.
건드리면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았다.
괜찮다.
적어도 이 뿔 여신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첫째로 서연은 터무니없이 강해져서 내 앞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날 죽이지는 못했다.
아니, 날 죽일 생각이 없었다.
여신이라고 해도 미친 사람 생각까진 알 수 없었겠지.
현대에서 날 죽이고 그게 실패라는 걸 알았던 서연은 나를 만나고 싶어하기는 했지만 다시 죽이려고 찾아온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만남은, 예정된 필연이 오기 전에 우연으로 맞닥뜨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연은 그걸 운명이라며 좋아했지만.
둘째로는 이 여신이 내 최면에 딱 걸렸다는 점.
뭘 꾸미고 있었든 다 털어놓게 만들고 단숨에 진상에 접근한다.
"박서연을 이용해서 날 죽이려고 했어?"
"그래."
……이, 씨발.
후우…….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들으니 태연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박서연이 날 죽이는 데 성공했는지 확인하러 팔색 조개 성에 왔다?"
앞뒤 얘기를 맞춰보면 이렇게 된다.
"맞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 사소한 의문이 들었다.
"처음부터 내가 있는 세계로 오면 됐잖아. 왜 여길 덮친 거지?"
"그건…… 그 세계의 신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군.
지금 대리인을 이세계에 보낸 신은 셋.
벨라, 에페, 그리고 정체를 알지 못하는 신.
그 신은 용사를 세계에 보냈고 세계의 구제 작업에 한창일 것이다.
이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을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용케 내가 팔색 조개 성에 드나들고 있다는 걸 알았네."
질문이 아니라 혼잣말에 가까운 의문이었지만,
그 의문에는 벨라가 대신 말했다.
"작정하고 그러는 신이 거의 없을 뿐.
신은 차원을 넘나들며, 피조물에 간섭할 수 있어.
다만 좀 화가 치미네. 내가 있는 세계는 만만했다. 이거야?"
"벨라는 어떻게 생각해?
적어도 내가 있는 세계의 신은, 너희보다 격이 높다고 봐?"
"……분하지만 그래.
3급 신 이상이라고 생각해. 왜냐면, 세계는 신의 관할 구역이면서 동시에 선물 같은 것이기도 해.
급이 낮은 신일수록 구제 가능성이 낮은 세계를 떠안게 되지."
그렇군.
용사가 있는 세계도 구제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다른 세계 정도로 막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비교적 평화롭기 때문에 높은 등급의 신이 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벨라도, 에페도 그 신의 눈에 띄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
여기까진 공통적인 인식인 것 같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왜 나를 죽이려고 했어?"
"그건……."
거기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대답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