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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11화 (111/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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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으윽!"

    "크악!"

    곳곳에서 도적들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억지로 움직이려고 하지 마. 아픔이 따르니까."

    무릎 꿇은 도적들의 시선이 나한테 모였다.

    "네 짓이냐!"

    "그렇다."

    다른 놈으로 착각해도 곤란하다.

    굳이 나라고 인정한 후, 로푸스에게 눈을 돌렸다.

    "로푸스."

    "……어, 어, 왜 그러지?"

    "너는 우리 편이다. 뭘 이상한 듯이 보고 있지?"

    "그랬지……. 한데 나는 당신 이름도 몰라. 왜 그쪽 편이 되기로 했었지?"

    "내 이름은 데칼.

    도적단 일망타진을 도와라. 그러면 풀어주지."

    "알았어. 나는 용사 후보생의 협력자다. 무엇이든 돕지."

    이야기가 끝났군.

    나는 촌장과 두려움에 떠는 처녀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데칼 님! 부디 무사하시길."

    촌장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별일 없을 겁니다. 가자. 로푸스."

    "그래."

    "이 개새끼가!"

    "로푸스, 이 배신자 새끼!"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어디를 가?"

    "젠장! 몸이 움직이지 않아!"

    나와 로푸스는 아우성치는 도적들을 지나쳐, 마을을 나왔다.

    밖에 나오자 무성하게 수풀이 자란 숲이 보인다.

    아바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이미 모여 있었다.

    "어때?"

    "오빠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카렌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어."

    "이런 일이 가능한 거야? 여덟 명은 있었는데, 이런 짧은 시간에 다 제압하다니."

    스티아는 놀라움,

    디아나의 눈에는 맹렬한 호기심이 타오른다.

    "너,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벌써 추궁하기야?

    우선 일을 제대로 끝마치자. 이제 돌이킬 수 없으니까."

    "옆에 있는 놈은?"

    "협력자.

    너무 경계할 것 없어. 우리를 위해 배신했으니까. 이미 도적들과 다시 사이좋게 지내는 건 무리야."

    "그 말대로다.

    내 이름은 로푸스. 너희가 도적을 일망타진하는 것을 돕는 대가로, 목숨을 보장받았어."

    다들 로푸스를 떨떠름한 얼굴로 봤다.

    말하는 것까지 들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방금까지 그렇게 신나게 마을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돌아섰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일에 대해 따지지는 않았다.

    이미 일은 그럴 단계를 지났다.

    남은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다들 그것 하나만으로 긴장하고 있을 터였다.

    "데칼! 괜찮아?"

    연락책을 맡았던 아바가 뒤늦게 뛰어왔다.

    혹시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아바가 신호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바는 따로 숨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최면은 무서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그 사실이 다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로푸스. 말해. 도적단에는 몇 명이나 있다고?"

    "열명 좀 넘게 있어. 나도 얼굴을 다 기억하는 건 아니야."

    디아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 말을 정말 믿을 수 있는 거야?"

    "곧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모두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차분히 로푸스를 추궁했다.

    근거지의 위치는 어딘지, 어떻게 가면 되는지, 중간에 경계하고 있는 인원은 몇인지, 무장 상태는 어떤지,

    함정은 어디에 있고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나는 기계에 입력하듯이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로푸스는 그 정보를 풀어도 되는지 어떤지 고민하는 순간조차 없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의심스러운 듯 지켜보고 있던 디아나도 점차 정보량이 늘어날수록 납득하는 분위기로 변해갔다.

    "다 사실은 아니겠지만, 도움이 될만한 정보도 있네.

    이런 많은 거짓말을 꾸며냈을 리도 없고."

    "그러니까, 거짓말이 아니라고. 나는 용사 후보생의 협력자야. 모두 다 사실이지."

    로푸스는 도리어 자신을 의심하는 디아나에게 역정을 냈다.

    "닥쳐! 그건 내가 판단해. 너같은 쓰레기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뭐야. 어느 집 아가씨야? 크, 성질 더러워 보이는데. 데칼 형씨도 고생 좀 하겠어."

    "너, 너! 죽고 싶어?"

    로푸스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었다.

    "워, 워. 진정하라고. 그랬다간 계약 위반이잖아?"

    "디아나라면 하고도 남을걸."

    내가 옆에서 주의하자, 로푸스는 어깨를 움츠렸다.

    "정보는 진짜야."

    "……음."

    생각에 잠겨 있던 스티아가 입을 열었다.

    "데칼이 로푸스를 데리고 오는 동안 숲 입구에 누가 접근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어.

    상대는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기습은 유효해. 남자가 말한 정보가 맞는다면 결정적이야."

    "우리끼리 이용하는 샛길이 있다니까.

    그쪽으로 가면 귀찮은 함정도 없고 경계하는 놈들 뒤통수도 칠 수 있으니까, 일석이조지."

    다들 뻔뻔한 로푸스를 황당한 듯 보고 있다.

    최면이 너무 강했나…….

    「필요하다면 몸을 바쳐서 용사 후보생을 지킨다」까지는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필요하다면」이 개인의 판단에 의지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 경우에는 도적을 상대할 때 효과적이다.

    로푸스는 자기가 좀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린 것처럼 완전한 협력자가 됐다.

    우리를 향한 경계심도 없다.

    이래서야 디아나는 최면의 존재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추측하는 정도라면 상관없다.

    내가 이렇게 되도록 조종했다는 근거가 희박하다.

    로푸스가 천박한 인간이라고 믿는 쪽이 가능성 있을 것이다.

    "로푸스. 마지막 질문이야.

    너희 도적단에 상태가 안 좋은 자는 몇이나 있지?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 인간을 말하는 거야."

    "……붉은 영혼석?"

    로푸스가 처음으로 머뭇거렸다.

    붉은 영혼석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없는 것처럼.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이상한 놈이라면 있었지. 우린 서로 살갑게 굴거나 하지 않으니까, 이유는 묻지 않고 내버려 두지만."

    "몇 명이나 있었어?"

    "두 명. 자꾸 모자란 놈처럼 굴어서 내버릴까 했는데, 싸울 때는 또 기가 막히게 잘 싸우더라고.

    여자를 강간할 때도 지칠 줄 모르는 것 같았지. 두목이 퍽 마음에 들어서 곁에 두기로 했어."

    "그놈들이 언제부터 이상해졌는지, 짚이는 점은 있어?"

    "글쎄. 말했다시피 우리는 친한 놈들끼리나 친하지. 그런 놈이랑 가까이하지 않아.

    출신도 묻지 않아. 도적단에 뭘 바라?"

    "……."

    두 명이라.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 인간에게는 최면이 먹힐까?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 두 놈만은 전투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다.

    캐낼 수 있는 정보는 다 캐냈다.

    나는 모두를 둘러봤다.

    돌아가고 싶은 얼굴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샛길로 가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로푸스. 앞장서."

    "알았어."

    우리는 로푸스를 앞세워 그가 말한 샛길로 들어섰다.

    나는 준비한 랜턴을 꺼내서 아바에게 건네고, 하나는 내가 들었다.

    "스티아.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 인간은, 웬만한 수단으로는 저지할 수 없다고 했지?"

    "아픔을 잊게 되는 것 같아."

    마약을 한 범죄자 같은 느낌인가.

    "실제로는 그게 다가 아니겠지만……. 분명히 훨씬 강인한 상태가 돼."

    그보다는 좀 더 어렵겠군.

    약에 잔뜩 취해서 아픔을 잊은 범죄자도 한 번에 제압하려면 총알도 여러 번 박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 검사들 부담이 좀 심할 수도 있겠다.

    "전투 때는 복잡하게 생각해도 별수 없으니까, 간단하게 하자.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마물」이 나타나면, 아바, 스티아, 카렌이 시간을 벌어줘."

    "우리 예전에 검은 숲에서 함께 싸울 때처럼?"

    "그래. 홉 고블린 잡을 때처럼."

    "맡겨 줘. 오빠는 내가 지킬 테니까."

    카렌이 믿음직하다.

    몇 번이나 함께 싸웠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그녀와 만난 이후로 쭉 함께 싸웠던 것 같다.

    최면으로 시작된 파티였지만…….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었지.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게.

    "곧 도착해."

    로푸스가 말했다.

    아바는 들고 있던 랜턴을 내렸다.

    "불을 끌까?"

    "아니. 괜찮아. 이대로 가자. 여기가 도적들이 이용하는 길이라면 불을 끄는 게 더 수상해."

    "데칼 형씨 말 대로야."

    로푸스의 동의도 얻고, 내 주장에 힘이 실렸다.

    우리는 수월하게 도적들 근거지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근거지라고 해봐야 간이 목책에 둘러싸인 버려진 건물이었지만.

    예전에 이곳에 살던 부호의 별장이기라도 했는지 도적들이 숨어 살기에는 호사스러운 곳이었다.

    "이제부터는 불 끄고 접근하자."

    "응."

    나는 랜턴을 개인 보관함에 집어넣었다.

    "자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순찰조가 올 거야."

    로푸스는 몸을 낮추고 자신만만하게 지껄였다.

    "……."

    이제 로푸스가 푼 정보가 맞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특별히 의심하고 있지도 않지만, 모두가 함께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면 망설임 없이 아지트를 털어서 일망타진.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나한테 있어서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리가 저릴 정도로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어? 이상하네……."

    "……."

    그때 스티아가 매서운 눈빛으로, 칼을 로푸스에게 들이댔다.

    "무슨 짓이지?"

    "아, 아니! 이 시간에 자리를 비울 리 없어.

    그럼 두목 명령을 어겼다는 소리인데 들키면 바로 맞아 죽는다고."

    "……."

    "스티아. 칼 내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떠들고 있을 수는 없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이렇게 되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카렌. 나랑 같이 가자."

    "응!"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우리가 순찰조 움직임을 확인하고 올게."

    "……알았어."

    스티아는 검을 거뒀다.

    디아나는 로푸스의 뒤통수를 뚫어지라 노려보고 있었다.

    "데칼. 이놈이 수상한 짓 하려고 하면 죽일 거야."

    "마법은 너무 시끄러우니까 그렇게 되면 스티아나 아바한테 맡겨."

    나는 카렌과 함께 장막으로 몸을 숨기고 도적들의 순찰 루트로 나왔다.

    길을 따라서 아지트 외곽을 쭉 걷는다.

    "읏……."

    카렌이 소름 돋은 듯 어깨를 움츠렸다.

    나 역시 놀라서 숨을 삼켰다.

    순찰 루트에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시체.

    갈기갈기 찢긴 도적의 변사체가 숲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도적이 죽은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만 해도 도적들을 죽이러 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기 전에 누가 죽였다면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간신히 억눌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자."

    "……응."

    곁에 누가 있어서 다행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카렌의 손을 잡았다. 카렌도 내 손을 꽉 쥐었다.

    누가 겁쟁이라고 놀려도 상관없다. 몸이 제멋대로 떨렸고, 그건 카렌도 마찬가지였다.

    "……."

    나는 차분하게 심호흡하고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심하다.

    그냥 진짜 심하다.

    누가 이렇게 했든 이렇게 한 새끼랑은 절대 상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죽어 마땅한 범죄자라고 해도 말이다.

    순찰은 2인 1조라고 들었는데.

    나는 주변을 둘러 봤다.

    행여나 시체를 이렇게 만든 자가 눈치챌까 봐 우리는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근처에 또 다른 시체가 있었다.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길에 놓인 도적은 자기가 당할 줄도 모르고 당한 느낌이라면, 이 자는 등을 보이고 엎드려 있는 것으로 보아…….

    도망치려다가 죽은 것 같다.

    범인이 사람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자비가 없다.

    도망치려고 등을 보인 사람까지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

    카렌의 숨이 거칠어진다.

    나는 카렌의 손을 잡고, 시체가 널린 곳에서 멀어졌다.

    "후……."

    우리는 서로 말없이 계속 심호흡했다.

    "그게 뭐였을까?"

    "잘 모르겠어. ……사람의 짓이 아닌 것 같아."

    "그래……."

    곰이면 모를까.

    사람의 힘으로 그렇게 해놓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 사람이 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은 들었다.

    그 시체는 마치 학대당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응."

    나는 카렌과 함께 돌아갔다.

    "……두 사람 모두.

    무슨 일 있었어? 안색이 안 좋아."

    어두운 와중에도 그게 보였는지, 스티아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순찰조는 죽었어. 무언가에 살해된 뒤였어."

    스티아는 눈을 매섭게 떴다.

    "시체의 상태는…… 어땠어?"

    "심했어. 말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었어."

    "영혼석의 폭주가 시작된 거야."

    "……."

    나는 지금까지 파티를 잘 이끌었다고 생각했다.

    최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위험은 줄이고 이득은 크게 보자.

    그런 생각으로 움직였고, 지금까지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다.

    이런 순간을 헤쳐나갈 용기도, 배짱도 없어.

    "로푸스. 네가 떠나기 전에 순찰조를 봤어?"

    로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나서기 전에 시답잖은 얘길 주고받았어.

    ……그때까지는 살아있었어."

    "그럼……."

    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나는 완전히 경직되었다.

    도망가자고도, 도망가지 말자고도 할 수 없었다.

    다들 겁에 질려있었다.

    예외는 한 명.

    "……가자."

    스티아는 검을 쥐고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는 먼저 발을 뗀 스티아를 따라서 도적단 아지트로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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