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10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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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모였습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회관으로 이동했다.
나와 촌장은 서로 대표 격으로 의자에 앉아서 마주 본다.
촌장 뒤로는 도적단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을 마을 사람들이 부름을 받고 모여서, 불안한 얼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왕국 병사들의 뒤를 이어, 도적단에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 졸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까지 불안해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심호흡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멜브릿에서 온 용사 후보생입니다.
도적들을 잡으러 왔습니다. 제 이름은 데칼입니다."
촌장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픈 이들을 돌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어울리는 환영도 해드리지 못하는 점,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환영보다, 일이 수월하게 해결되는 것을 원합니다. 도적단에 대한 정보.
사소해도 좋으니 무엇이든,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힘닿는 데까지 협력하겠습니다."
"도적들이 술과 음식, 여자를 가져간다고 들었는데 그때 상황을 좀 알려주세요."
"처음에는 눈에 잡히는 대로 앗아갔습니다.
돌아다니는 아낙네는 유부녀 아이 할 것 없이 데려가고, 팔려고 내놓은 것들을 쓸어갔습니다.
나중에는 기간을 정하고, 그때까지 여자를 단장 시켜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까?"
"예……. 안 하면 붙잡은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촌장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가, 질문을 이어갔다.
도적단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보면 놈들이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마을을 들쑤시고,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
나중에는 들쑤시는 것도 귀찮아서 여자를 준비하라고 시켰겠지.
저항하면 죽이고, 끌려간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결국 마을의 기능은 완전한 마비 상태에 빠진다.
케파는 이제 마을 구실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도적단의 근거지에 대해 아시는 바 있습니까?"
"도적단의 근거지는 숲에 있습니다."
"숲에?"
"예…. 놈들은 북부 전선의 패잔병입니다. 북부 전선 근처에서 보급을 도둑질하며 세를 불렸습니다.
도망친 탈주병을 하나둘 흡수하더니 어느새 그 규모가 커져서 지금은 사람이 서른 명이 넘는 규모가 큰 도적단이 됐습니다."
군의 보급을 건드렸다고?
그러고 용케 철퇴를 맞지 않았군.
애초에 군사보다 경험치 많이 먹은 정규 후보생을 기르는데 힘쓰는 나라라서 그런가?
어쨌거나 이건 의미가 있는 정보다.
도적들 하나하나 얕볼 수 없을 것 같다.
굶주린 농민이 아니라 한때는 마왕군과 싸우던 병사였다면, 싸움에 익숙하겠지.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아무나 좋습니다.
사실 저희는 붉은 영혼석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붉은 영혼석……?"
다들 서로 얼굴을 보며 술렁인다.
"스티아. 설명해드려."
스티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붉은 영혼석은 마왕의 잔재. 지극히 위험하고 불안정한 물질입니다.
저희는 도적 중에 그 영혼석을 흡수한 자가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짚이시는 점 없으십니까?"
딱.
나는 스티아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손가락을 튕겨 회관에 있는 사람 전원에게 최면을 걸었다.
"여러분은, 「용사 후보생의 질문에 거짓 없이 답한다」"
짝.
손뼉을 쳐, 내 동료와 마을 사람들을 깨운다.
"그러고 보면……."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말했다.
"처음 습격 때 이상하게 흥분한 자가 있었습니다."
"네. 마왕의 영혼에 노출된 사람은, 폭주해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합니다.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스티아가 추궁하자, 마을 사람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억을 더듬었다.
"…예.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했어요.
도적들 다 흥분하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고, 말하는 것도 어눌했거든요.
꼭 괴물 같았어요. 다른 도적들도 기피하더라고요."
"……."
좋아. 목격 정보를 얻었다.
"그런 사람을 더 본 사람은 있습니까?"
"저도 본 것 같아요. 말을 타고 있었고, 얼굴에 흉터가 있었어요."
"저도……."
목격 정보를 꼼꼼하게 모아보니,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 도적은 둘인 것 같았다.
"영혼석이 마을에 반입되었던 적이 있나요?
도적들이 어디서 그걸 손에 넣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혼석은 성도에서 취급하는 물건이라. 저희 마을과는 인연이 없는데…….
어쩌면 북부 전선에서 손에 넣은 물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는 길 잃은 마물이 많습니다.
성도에서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 곳이라, 지원은 아주 가끔 갈 뿐이죠."
"……."
그러면,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 마물을 잡고 손에 넣었다?
이 추측이 맞는다면 이 지령은 너무 위험하다. 그 정도 실력이 있는 자가 붉은 영혼석까지 흡수했으면 더더욱 강해졌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붉은 영혼석에 관해서는 정보가 없다.
나는 북부 전선이라는 곳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마물과 인간이 싸우는 전선이겠거니 어림잡아 생각할 뿐이다.
내 추측에는 근거가 너무 희박해.
다른 녀석들 생각을 좀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여러분은 평소처럼 행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도적들이 이상한 낌새를 채지 못하게."
"예, 알겠습니다."
"다음 여자를 넘길 때가 언젭니까?"
"모레, 자정입니다."
"……."
우리가 도적단 근거지에 쳐들어가는 것보다.
놈들이 기어 왔을 때 잡는 것이 좋기는 하다.
근거지 위치를 정확히 찾아서 기습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고.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 인간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운반 역으로 오는 도적들은 멀쩡하겠지.
그럼 최면을 걸면 돼.
"저희가 방법을 생각하겠습니다.
우선 예정대로 준비해주세요. 도적들이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게."
"네, 알겠습니다.
피곤하실 테니 숙소를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서
호화로운 식사를 하고, 마을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방은 둘로 나누어서 잡았다. 나와 아바가 머물 남자 방. 나머지 여성진들이 머물 여자 방.
그런 다음 우리는 다 남자 방에 모였다.
오늘 들었던 얘기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제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로 침대에 앉았다.
"스티아. 어떻게 생각해?"
"생각보다 어렵겠어. 우리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임무일지도 몰라."
스티아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말로, 운을 뗐다.
"북부 전선 병사들은 전투 경험이 많고 평균 레벨이 높아.
그런 사람들이 서른 명이나 모여서 도적단을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쉽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붉은 영혼석을 흡수한 인간도 있으니까, 너무 불리해."
아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로 만족하고 돌아가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멜브릿에 사정을 설명하면 더 높은 급으로 인원을 꾸릴 거예요."
"그래서 포기하겠다는 거야?"
디아나가 짜증 섞인 어투로 말했다.
"우린 멜브릿의 용사 후보생이야. 쉬운 일만 골라가면서 할 수는 없어.
여기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상대는 추악한 짓을 일삼는 도적.
그것도 한때는 병사였는데 돌아서서 도적질을 하는 점이 더더욱 화가 치밀어. 정신 나간 놈 몇 명 섞여 있다고 포기할 거야?"
"붉은 영혼석은…… 단순히 심신을 망가뜨리는 작용만 하는 게 아니야."
스티아가 감정을 억누르고 조용히 읊조렸다.
"……마왕의 영혼에 잠식된 인간은, 창칼을 몸에 수십 개 꽂아도 태연한 얼굴로 걸어와.
마법을 아무리 맞아도 무시해. 그런 거로는 쓰러뜨릴 수 없어. 그런 적이 달려왔을 때, 우리 모두 힘을 합치지 못하면……
한 사람은 반드시 죽어. 목을 물려뜯거나, 눈알이 파내지거나……."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데?"
디아나가 묻는 말에, 스티아는 초탈한 것처럼 공허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아버지는 붉은 영혼석에 손을 댔어."
"뭐? 전쟁 중에 돌아가셨다며?"
"그건 사실이 아니야. 하르페 가문은 마왕의 권속이라는 누명을 쓰고 몰락했어.
사실은 스스로 일어날 힘조차 없었던 거지만…….
나는 그 모든 걸 봤어. 이 지령에 거는 각오는 남달라.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도 알아."
"……."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 있다.
사람들이 어떤 궁지에 내몰렸는지 알기 때문에 포기하자는 말을 입에 담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연스럽게 내가 말할 차례라는 걸 알았다.
"아직 내려놓기는 일러. 상상하는 건 아무런 손해도 없으니까, 좀 더 논의해보자.
만약 그 서른 명에 달하는 도적단을 친다면……. 이라는 주제로."
"그렇지. 미안해……. 묻지도 않은 얘기를 떠벌리는 바람에, 분위기를 망쳤어."
"네 덕분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붉은 영혼석에 대해 올바르게 알았어.
그것이 무척 위험하다는 것을."
"……응."
"마을 측에서 준비한 공물을 도적들이 가져가는 데 몇 명이나 필요할 것 같아?"
"음?"
내가 갑자기 던진 질문에, 다들 고민에 빠졌다.
스티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곱 명.
짐꾼, 감시역을 포함해서 최소한 일곱 명은 있어야 해."
"그래.
그 일곱 명을 사전에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확실하게 제거……?"
"우리 쪽은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고."
"아!"
카렌이 갑자기 날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오빠가 최……."
나는 카렌의 입을 틀어막았다.
"최?"
"최가 뭐야?"
손을 떼자 카렌은 창피한 듯 볼을 붉혔다.
"……아무것도 아냐."
"……."
디아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무언가 효과적인 수단이 있는데 우리한테 말할 수는 없다?"
"……그런 거야?"
두 여자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음……."
이러면 차라리 잘 됐다.
최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
하지만 이건, 알고 있는 사람을 모두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어. 이해해 줘."
"……카렌은 알고 있구나."
스티아는 쓸쓸한 듯 중얼거렸다.
"운반책으로 온 도적들을 전부 제압해서, 만약에 그들이 가진 정보를 털어낼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정보를? 데칼은 그런 것도 가능한 거야?"
스티아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렇게 가정했을 때야.
일이 잘 풀렸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양쪽 다 생각해보자."
"……이건 잘 풀렸을 때인 거지?"
"그래. 고문을 하든 매수를 하든, 도적들을 깔끔하게 제압했다고 쳐.
근거지에 대한 정보도 얻었고 주변에 누가 매복하고 있는지, 경계하고 있는 인원수도 전부 알아내.
그러면 어떨 것 같아?"
"……."
스티아는 금세 결론을 내놓았다.
"해볼 만 해.
이쪽에 정보원이 있다면, 상대의 수적 유리함을 크게 꺾을 수 있으니까.
상대가 무장하지 않은 시간대를 노려서 접근하면, 일망타진할 수도 있어."
"잘 풀렸을 때 얘기지만 말이야."
디아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할 리도 없잖아. 분명히 이상한 정보를 주워 먹고 교란당할 거야.
혹은 제압하려고 했는데 하나가 도망가서 나머지 전체가 무장하고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지."
"그게 바로, 잘 안 풀렸을 때로군."
"최악의 경우 길거리에서 말 타고 온 도적들이랑 싸워야 할 수도 있어.
나는 그런 놈들 쓰러뜨릴 수 있지만, 너희가 버틸 수 없을 거 아냐?"
디아나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너무 편향된 의견이기는 하지만 일리는 있었다.
마법사는 말을 탔어도 기수를 공격하기 쉽지만, 검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최면술사.
도적들을 사로잡는 것은 물론, 정보를 털어내는 일까지.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해낼 수 있다.
아군한테 이걸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할지가 문제였다.
그냥 최면을 걸어서 아무튼 믿으라고 한다?
그건 내가 싫다.
꼴리는 섹스를 하기 위해 믿도록 하는 거라면 모를까.
"나는 지금 공격하러 가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해. 다들 여기에는 동의하지?"
"당연하지. 내가 마차에서 말하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
상대의 수가 많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아무런 대책도 없이 덤비는 건 하책이야."
"설명 고마워, 디아나."
"흥. 오히려 무턱대고 돌격하자고 했으면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을 거야."
"놈들이 여자랑 술을 건네받으러 왔을 때 접촉하자."
작전 자체는 숙소에 오기 전에 이미 떠올렸다.
내가 평생 해온 일을 할 뿐.
도적놈들이 가엾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