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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08화 (108/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10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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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대로 줄 서주세요."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카렌이 사람들을 줄 세웠다.

하지만 노인들은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어두운 표정이었다.

"무슨 일 있나요?"

"우리보다 심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네. 그 사람들을 먼저 봐주지 않겠는가?"

"걱정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도 치료할 겁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수라고 해봐야 서른 명 남짓.

별빛 조개를 갖다 대기만 해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소요 시간은 십분 내외.

굳이 치료 순서를 바꿀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먼저 치료해야만 하는 이유라면 있었다.

"너, 치료 마법을 쓸 수 있었어?"

디아나가 놀란 듯 묻는다.

"마법은 아니지만, 치유의 힘을 가진 아티팩트를 갖고 있어."

"치유의 힘을 가진 아티팩트?"

"그래.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스티아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그렇다고 해도, 위급한 사람을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나 나름대로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 우린 아직 이 마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상한 자가 없는지 확인해볼 거야. 협력해 줘."

"……!"

스티아는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 도적단과 협력하는 무리, 혹은 도적단의 연락책이 있다면

못 보던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흥미를 느끼고 접근할 거야.

아바, 내가 치료하는 동안 근처에 수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지 경계해 줘."

"그런 뜻이구나. 알았어."

나는 이제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스티아, 위급한 사람이 있는 곳에 먼저 가서 사람들 상태를 살펴봐.

당장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날 불러."

"알았어."

"누구 한 명, 부상자가 있는 곳으로 스티아를 안내해 줘요."

"내가 안내하겠소."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세요."

"기다려, 나는?"

디아나가 날 붙잡고 묻는다.

콧대 높은 귀족 가문의 영애께서 내 뜻을 묻는 건가? 좋은 자세다.

하지만 나는 디아나한테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디아나의 성격에 근거한 판단이다.

디아나는 하고 싶은 대로 두는 게 낫다. 그럴 때 오히려 자기 능력을 전부 발휘할 수 있다.

"너한테는 지시 내리지 않을 거야. 네가 가장 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그게 정답에 가까울 테니까."

"너, 조금은 괜찮은 말도 할 줄 아네."

"반려로 삼을 만 해?"

"……."

농담이었는데, 디아나는 진지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아직은 아냐. 하지만 이제 알았어. 넌 쓰레기가 아니었어. 언니 말대로, 내가 보는 눈이 없었네."

……아니, 나는 언니 쪽이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내가 쓰레기라고 주장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다.

디아나가 처음으로 날 대등하게 봐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아를 따라갈게. 이럴 때 혼자 두면 안 되니까."

"그래."

디아나는 스티아를 따라서 자리를 떴다.

"카렌. 날 도와줄래?"

"응! 오빠의 간호사 할게."

"널 남긴 건 이유가 있어."

이제부터 쓸 방법은 남한테 보여줄 수 없으니까.

치료는 간단하다. 별빛 조개를 환부에 갖다 대기만 하면 될 뿐.

하지만 그 간단한 치료 과정에, 나는「최면에 의한 취조」를 넣기로 했다.

협력자로 카렌을 고른 건 필요불가결한 일이었다.

"모두 빠짐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탈자가 생기지 않게 해 줘."

"……알았어!"

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다치지 않은 분도 혹시 모르니까 검진을 받아주세요."

"고맙습니다. 후보생님…!"

"상처 보여주세요."

다들 등에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마을 처녀도 데려가, 술이랑 음식도 가져가, 마을에 남은 힘없는 노인들을 폭행하기까지.

도적들의 행패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별빛 조개는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서 감염되기 시작한 상처까지 아물게 했다.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다.

"어떻습니까?"

"아프지 않아요! 세상에……! 감사합니다."

"이걸 봐주세요."

나는 손가락을 튕겨, 최면을 걸었다.

키워드는 둘.

「내가 묻는 말에 진실하게 대답할 것」

「용사 후보생에게 협력할 것」

"마을에 도적단과 연결이 있는 자, 겁박당해서 시키는 대로 하는 자가 있습니까?

아는대로 말해주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통과.

나는 카렌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봤다.

"저기! 검진받고 가세요."

"나는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혹시 모르잖아요! 저, 아버님이 걱정 돼서 그런 건데……."

"……어험. 그러면 받고 갈까."

카렌은 질서 있게 줄을 세우는 동시에, 몸이 성하다는 이유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잘 통제했다.

그걸 웃는 얼굴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해내는 것이 꽤 어렵다.

적어도 나는 최면을 쓰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다.

하지만 카렌의 매력은 남녀노소 먹혔다.

덕분에 나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치료하고 취조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최면에 의한 취조는, 신뢰성이 무척 높다.

굳이 키워드를 걸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은 트랜스 상태에서 무의식이 무방비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일에 곧이곧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왕국 병사가 이 마을을 해방하려고 온 적이 있다면, 도적단도 경계할 것이다.

마을에 첩자를 심었거나, 마을 사람을 겁박해서 협력자를 두었거나.

혹은 양쪽 다.

「인간」을 상대한다는 건 바로 그런 일이다.

이게 그저 마물과 싸우는 일이었다면 내 특기 분야가 활용될 여지는 적다.

그러나 머리를 쓰는 인간을 상대할 때 최면은 매우 효과적이다.

물론 상대가 돼먹지 못한 도적 무리에, 그중 몇몇은 마물화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결국 싸움은 피할 수 없겠지만.

최면은 상대가 똑똑할수록, 면밀하게 준비할수록, 계략과 음모가 치밀할수록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인다.

그런 것들은 속내를 감추고 심리전을 할 수 있어서 성립하는 것.

돈이든 권력이든 대가성이 있는 무언가를 약속하고 많은 사람을 하수인으로 부리기 때문에,

뿌리부터 한 번에 쫘악 뜯어버리는 최면이랑은 상성이 최악이다.

언제나 최면의 약점은 인간의 돌출된 광기였다.

또는 머리 위에서 예고 없이 떨어지는 폭탄.

이미 일어나버린 현상.

그런 것들은 돌이킬 수 없다.

아니, 이제 칼에 찔린 정도는 돌이킬 수 있나?

벨라의 선물─이 아니라 뺏은─은 한 번뿐이지만 죽은 사람조차 살려낼 수 있는 보험.

평상시에는 갖고 있기만 해도 상처를 치유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상처도 치유한다.

그래도 나는 일일이 치료한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며, 꼼꼼하게 취조했다.

이번 일은 적당히 할 수 없어서 평소보다 신경 쓰고 있다.

파티에 내 여자가 셋이나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예정이기는 한데, 어쨌든.

이번 만큼은 귀찮다는 핑계 없이.

마을에 있는 인간 전원에게 최면을 걸어서라도 안전하게 건넌다.

그게 내 각오였다.

"감사합니다!"

"상처가 씻은 듯 나았어요!"

모든 치료를 마치자 노인들은 내 손을 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통증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일까. 어두웠던 사람들 얼굴이 좀 밝아진 것 같았다.

"다른 부상자들은 어디에 있죠?"

"저쪽 건물입니다!"

"아바! 가자."

나는 멀리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바를 가까이 불렀다.

"어땠어?"

"거동이 수상한 사람은 없었어."

"그래?"

어쩌면 내가 도적단을 너무 과대평가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쯤 마을 처녀들을 껴안고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바가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건물 안.

거동이 불편한 부상자들이 누워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대부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열병을 앓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나는 우선 어린아이부터 치료했다.

열은 내렸지만, 오랫동안 시달린 탓인지 아이는 입을 뗄 힘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카렌. 애들 좀 돌봐줘."

"응, 알았어."

스티아가 나한테 다가왔다.

"데칼. 도울 일은 없을까?"

"환자들 붕대 좀 풀어 봐."

"붕대를? 알았어."

다들 의식이 혼미하다.

최면에 의한 취조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나는 스티아와 역할을 분담해서 환자를 빠르게 치료했다.

오래 방치된 탓에 다리가 썩기 시작한 환자도 있었다.

속이 메스껍다.

새삼 외과의가 존경스러워진다.

그냥 조개만 갖다 대면 될 뿐인데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붕대를 풀고 있는 스티아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금방 나아질 거야."

나는 스티아를 안심시켰다.

"……응."

마지막 사람을 치료하고 나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치료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노인들이 눈물을 흘린다.

아예 나를 향해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이 마을에 환자는 없다. 하지만 다들 기력이 쇠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처가 회복됐다고 바로 의식을 되찾거나 일어나지는 못했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낫기도 했고, 감염된 사람도 없어졌으니 원기 회복은 시간문제다.

"식수는 충분합니까?"

"물은 우물에서 뜨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에라도 저희가 뜰 수 있을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물을 가득 담을 수 있는 통 좀 가져와 주세요. 깨끗한 거로."

"알겠습니다!"

곧 사람들이 힘을 합쳐, 원목재로 된 대형 욕조를 가지고 왔다.

나는 여신의 물병을 들고 그 위에 물을 뿌렸다.

다들 의아한 듯 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병에서 물이 멈추지 않자 다들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대, 대체 그게 뭐야?"

아바가 놀라서 묻는다.

"이것도 아티팩트."

"이런 많은 사람을 치료해낸 아티팩트를 갖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물이 솟는 병도 처음 보네.

대체 이런 진귀한 것들은 어디서 구한 거야?"

디아나까지 호기심을 보였다.

"모험가 시절에 모았어."

나는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적당히 둘러댔다.

"이 물은 오직 식수로만, 필요한 만큼 덜어서 사용하세요."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혹시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데칼입니다."

"데칼 님! 저희 마을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구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도적단에 대해 아는 사람을 모두 모아주세요. 무엇이든 목격했다면 어린아이도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을의 중년인들이 한참 어린 나에게 깍듯이 머리를 숙이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저렇게 서두를 거 없는데.

어쨌든 마을 사람들은 떠나고,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남았다.

나는 욕조 가득 차도록 물병을 기울인 상태로, 모두에게 말했다.

"거짓말하는 인원이 있는지 나름대로 조사했어.

마을 초입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 말은 전부 진짜야."

나는 도적단과 연결이 있는 인원을 찾는 한편,

촌장이 얘기한 도적단이 벌인 일이 사실인지도 확인했다.

그들이 준 정보는 신뢰할 수 있다.

적어도 교묘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스티아는 분노로 손을 쥐고 떨었다.

"아무것도 몰랐어.

가까운 마을에서 이런 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멜브릿에 있었으니까, 모를 수밖에 없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용사라고 해도 그건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을 지킨다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당장 생활을 위협당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그런 기분이야."

"일 하러 왔다고 생각해. 도적단은 어차피 섬멸시키는 게 기본이잖아?"

잠자코 있던 아바가 조용히 말했다.

"저기, 그건…….

결국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지?"

"……."

"미안. 말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어서……."

"맞아. 사람을 죽이는 일이야."

한 번 해봤기 때문일까?

전혀 거리낌 없이 살인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죽여도 죄책감이 들 것 같지는 않아."

"당연하지. 그런 쓰레기들은 없는 편이 세상에 이로워."

디아나 역시 시원스럽게 내뱉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

슬슬 욕조가 가득 찬다.

나는 물병을 보관함에 수납했다.

"얘기 들으러 가자."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았다.

이제 우리가 상대하는 적이 누군지 알아볼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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